12월 간이역 여행 ③충남 논산

느긋하게 흐르는 연산역의 시간

간이역을 찾아가는 여행은 느림을 즐기는 여정이다. KTX는커녕 새마을호도 서지 않는 호남선의 간이역 연산역을 찾아간다.

빠르게 지나칠 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자그마한 역에서 발견한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노래했다. 자세히, 오래 보려면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하루 10회 정차

논산 연산역은 상·하행을 포함, 하루에 10회 정차한다. 대전과 논산 사이에 있어 대전으로 통학하거나 장사하러 가는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타고 다닌 적도 있었다. 지금은 도시로 떠나고, 자동차로 다니느라 기차 타러 올 사람이 없다. 덕분에 연산역의 시간은 자연의 속도에 맞춰 느긋하게 흐른다.
 

연산역의 재미는 두 가지다. 등록문화재 48호로 지정된 급수탑을 구경하고, 철도 문화 체험을 하는 것이다. 연산역 급수탑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급수탑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다른 지역 급수탑은 보통 콘크리트로 만든 데 반해, 연산역 급수탑은 화강석을 쌓고 철제 물탱크를 얹었다.

1911년 호남선 대전-강경 구간이 개통하면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급수탑을 세웠으니, 100년이 지났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를 디젤기관차로 바꾼 1970년대까지 제 기능을 충실히 했다.
 


충남 지역에는 서대전역, 강경역, 연산역에 급수탑을 만들었으나 현재 연산역만 남았다. 원기둥 모양으로 전체 높이는 16.2m, 한 번에 30톤을 채울 수 있다. 목마른 증기기관차가 연산역으로 바삐 달려와 수증기를 내뿜으며 숨을 고르던 모습을 상상해본다.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가장 오래된 급수탑
기차 이용한 철도 문화 체험 프로그램

연산역은 철도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체나 개인이 미리 신청하면 안전 복장에 헬멧을 착용하고 체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체험을 위해 기차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 승차권이 없으면 입장권을 끊고 들어간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은 물론, 청소년과 어른 체험객도 있다.

급수탑 견학, 전호(깃발 신호) 체험, 기관사 체험, 선로 전환기 체험, 철도 안전 교육, 통일호 방송 체험, 승차권 발권 등 내용도 다양하다. 역대 1일 역장의 명패가 가득한 벽면이 이채롭다. 2014년 이후 1일 역장 체험이 중단돼 아쉽다.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역사 안팎을 둘러본다. 역 안에는 ‘연산역 타임 엽서’를 위한 우체통이 있다. 오늘 발송 우편함, 1년 후 발송 우편함, 3년 후 발송 우편함이다. 바삐 사는 현대인에게 1년 뒤, 3년 뒤에 받을 엽서를 쓰다니… 엽서를 쓴 사실도 잊어버린 어느 날, 1년 전이나 3년 전에 보낸 엽서를 받는 것이다.

논산 돈암서원(사적 383호)은 사계 김장생 선생을 모신 곳이다. 사계 선생이 타계하고 3년이 지난 1634년에 창건, 1660년에 사액서원이 됐으며,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강당으로 쓰인 응도당(보물 1569호)이다. 비바람에서 벽을 보호하기 위해 건물 좌우에 눈썹지붕을 둔 것이 특색 있다. 응도당 지붕의 암막새 중 일부는 창건 당시 것이니 눈여겨보자.
 


윤증 선생이 지은 논산명재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0호)은 한옥의 멋과 함께 과학적·실용적인 면모를 살피기 좋다. 특히 안채와 광채는 통풍과 일조량, 빗물의 흐름을 위해 지붕은 어긋나게 하고 바닥은 대각선으로 놓았다.

대문 안에 내외 벽을 두어 안채의 사생활은 보호하면서도 벽 아래를 뚫어 들어오는 사람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도록 설계한 아이디어가 놀랍다. 사랑방에 설치한 안고지기(한 짝을 다른 짝에 몰아넣고 창문틀까지 열리게 한 문)도 훌륭하다.

이곳에서는 고택의 멋과 운치를 느끼며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한옥스테이를 운영한다. 다례와 규방 공예, 천연 염색, 국악 공연 같은 체험도 가능하다. 사랑채 동쪽에 놓인 항아리 수백 개가 고택과 어우러져 보기 좋다.

명재고택에서 차로 3~5분 거리에 ‘KT &G상상마당 논산’이 있다. 갤러리, 아틀리에, 체험관, 카페, 캠핑장 등 문화 예술과 레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고택과 어우러지는 한옥스테이
문화, 예술, 레저 동시에 즐기기

관촉사에 가면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은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218호)이 있다. ‘은진미륵’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데, 높이 18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려 시대 석조불상이다. 전체 비례에 비해 큰 얼굴이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럽다.

경내로 들어갈 때 지나는 석문, 은진미륵 앞 석등과 오층석탑, 불경을 넣어서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 같은 효과를 준다는 윤장대 등 볼거리가 많다. 산신각 앞에 서면 관촉사 안팎은 물론 논산평야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화지중앙시장은 1970년대에 형성된 재래시장이다. 지금은 상설 시장이 됐는데, 요즘도 과거 오일장이 서던 끝자리 3·8일이면 시장을 찾는 이와 파는 이로 북적인다. 계절에 따라 인근 지역에서 수확한 농산물이 풍성하고, 정육·의류 상가가 많다. 강경 젓갈, 연산 대추, 상월 고구마, 양촌 곶감 등 비옥한 땅에서 자란 특산물도 다양하다.

강경은 흔히 젓갈 사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역사가 깊고 볼거리가 많다. 김장생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죽림서원과 임리정, 송시열이 지은 팔괘정 등 조선 시대 건축물이 여럿이다. 금강 하류에 자리한 덕분에 수상 교통이 발달해서 조선 후기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논산에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 11개 가운데 하나가 연산역 급수탑이고, 나머지 10개가 모두 강경에 있을 정도로 의미 있는 근대건축물이 많다.

조선 3대 시장

현재 강경역사관으로 쓰이는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등록문화재 324호),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등록문화재 10호),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등록문화재 60호),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등록문화재 322호), 강경 갑문(등록문화재 601호), 강경성당(등록문화재 650호) 등이다.


근대건축 관련 자료를 배포하는 강경역사관을 시작점으로 잡는 게 좋다. 등록된 근대건축물 외에 옛 건물을 복원한 강경근대문화코스를 걷다 보면 195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여정은 강경 읍내를 굽어보는 옥녀봉서 마무리한다. 옥황상제의 딸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읍내 전경과 금강을 굽어보는 풍광이 일품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 문화 탐방: 연산역→논산명재고택→KT&G상상마당 논산→강경근대문화코스, 옥녀봉
- 명소 탐방: 연산역→논산 돈암서원→관촉사→강경근대문화코스, 옥녀봉

1박 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연산역→논산 돈암서원→솔바람길→화지중앙시장→KT&G상상마당 논산
- 둘째 날: 논산명재고택→관촉사→강경근대문화코스, 옥녀봉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논산시 문화관광 tour.nonsan.go.kr
- 연산역(철도 문화 체험 신청) cafe.naver.com/yeonsanst/629
- 논산 돈암서원 donahmseowon.alltheway.kr/
- 관촉사 gwanchoksa.modoo.at
- 논산명재고택 www.myeongjae.com
- 화지중앙시장 www.traffer.com/specialmarket
- 강경읍사무소 www.nonsan.go.kr/ganggyeong


문의 전화
- 논산시청 관광체육과 041-746-5741~3
- 연산역 041-735-0804
- 화지중앙시장 041-735-3311
- 관촉사 041-736-5700
- 논산명재고택 041-735-1215
- 강경읍사무소 041-746-8502

대중교통 정보
기차 용산역-연산역: 무궁화호 하루 5회(07:15~18:12)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논산: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22회(06:30~22:45)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자가운전 정보
- 논산천안고속도로 서논산 IC→대백제로 1.85km→논산교차로 대전 방면 우측→득안대로→광석교차로 대전 방면 우측→국도4호선 따라 10.1km→청동로→선비로→연산역
-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서대전 IC→방동대교→국도4호선→국도1호선→연산사거리 우회전→황선벌로→선비로→선비로231번길→연산역

숙박 정보
- 논산명재고택: 노성면 노성산성길, 041-735-1215, www.myeongjae.com (한옥스테이)
- KT&G상상마당 논산: 상월면 한천길, 041-734-6980, nonsan.sangsangmadang.com
- 유명파크: 강경읍 옥녀봉로, 041-745-4320
- 리치모텔: 강경읍 대흥로11번길, 041-745-2700, blog.daum.net/inusmotel

식당 정보
- 달봉가든: 젓갈백반, 강경읍 옥녀봉길27번길, 041-745-5565
- 황산옥: 생복탕, 강경읍 금백로, 041-745-4836
- 소나무한정식: 한정식, 논산시 논산대로, 041-735-7191, sonamu.tnaru.com
- 고향해장국: 해장국, 논산시 중앙로492번길, 041-734-3888, gohyangfood.modoo.at

축제와 행사 정보
- 양촌곶감축제: 2016년 12월10일~11일, 양촌리 체육공원, 041-746-8795, gotgam.nonsan.go.kr

주변 볼거리
백제군사박물관, 개태사, 쌍계사, 탑정호, 죽림서원, 강경 갑문, 황산근린공원(전망대), 강경포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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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