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떠도는 박근혜 망명설 실체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2.05 10:50:53
  • 호수 10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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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트라우마’ 성난 민심 피해 도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마지막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가운데 박 대통령 망명설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검찰에서 기소중지 방침을 세움에 따라 박 대통령이 법망을 피할 길이요원하기 때문. 몰릴 대로 몰린 박 대통령이 과연 망명을 선택할까.

정치권서 처음으로 박 대통령의 망명설을 언급한 사람은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이다. 남 전 장관은 지난달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서 “대통령 입장에서 가장 현명하게 물러나는 것은 하야 후 망명을 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에 회부돼 피고석에 앉히고 판결하고 그런 절차를 거치면 우리가 부끄러워진다. 해외 도피 재산도 있을 테니 망명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나라 뜨는 게
제일 좋은 방법”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도 박 대통령의 망명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천 대표는 지난달 24일, 국회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탄핵,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담회에서 “어제 어떤 분이 제게 전화를 해서 ‘다음 달 한중일 정상회담에 박 대통령이 절대 가선 안 된다’”고 했다“며 ”저도 같은 생각이다. 지금 외국에 나가면 나라 망신시킬 일만 있다“고 응대했다”고 밝혔다.

천 전 대표는 “그러자 그분은 ‘아마 박 대통령이 출국하면 안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며 “우리 당이 며칠 전(박 대통령의) 출국금지 당론을 정했지만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다”며 박 대통령의 망명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틀 전인 지난달 22일 광주서 열린 기자간담회서도 “박 대통령은 사퇴 순간 구속될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자진 사퇴는 없을 것 같다. 박 대통령 본인으로서는 망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 전 장관과 천 전 대표 모두 같은 망명설을 언급했지만 정반대 입장이다. 남 전 장관은 ‘더이상 국민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박 대통령이 망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천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망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이 사법처리를 피해 망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윤호중 정책위의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 사법처리 수위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달 29일 윤 의장은 “기밀누설, 뇌물죄, 직권남용, 강요죄, 기밀누설 총량은 무기징역이고 유기징역을 선택해도 45년”이라며 “법률가에게 자문을 구해 하한으로 감안해도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고 설명했다.

하야하고? 일부 의원 가능성 언급
가면 어디로…이승만처럼 하와이로?

현재 검찰은 공소장 주요 범죄 사실에 대통령을 공모혐의의 피의자로 규정했다. 헌법상 불기소 특권을 가진 박 대통령이 당장 대통령 신분을 유지한 상태로 기소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야’ 혹은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순간 박 대통령은 구속 및 기소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검찰은 박 대통령의 일부 혐의에 대해 ‘시한부 기소중지’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시한부 기소중지는 특정 시기까지 기소를 중지하는 것으로, 헌법상 보호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소를 미룬다는 의미다. 검찰이 기소를 중지함으로써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우여곡절 끝에 채운다고 해도 법망을 피해가기는 어렵게 됐다.
 

이렇듯 궁지에 몰린 박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망명’이라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다. 앞서 천 전 대표의 망명 주장 이후 김용태 의원(무소속)은 친박 내부서 망명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정치권을 술렁이게 했다.


지난달 29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김 의원은 친박에 대해 “국민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이제라도 물러나면 이승만식 해법이니 헌법조항인 사면을 나라와 국민 위하는 길이라고 목에 힘주고 얘기들 한다”며 말해 여당 내부서 사면을 전제로 한 박 대통령 망명 타협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그는 “괜히 국민들 이름 들먹이며 명예로운 퇴진 운운하는 것, 결코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요동치는 정국
일본으로 간다?

정치권에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사퇴 시점이 ‘반 총장 띄우기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오는 21일, 늦어도 26일에는 대표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 호위무사 역할을 마치면서 연말 유엔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반기문 총장의 국내 정치 활동에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친박계가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반 총장을 본격적으로 띄워 내년 정권재창출을 노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 총장 체제 하 정권재창출은 박 대통령의 안위와 직결된다. 현재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서 물러남과 동시에 사법처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친박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반 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반 총장이 박 대통령에 사면 등 ‘정치적 선물’을 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이 대표의 12월21일 사퇴 시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 ‘한중일 정상회담’ 일정에 사퇴시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지난달 12일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담을 이달 19∼20일 이틀간 일본 도쿄에서 개최하는 일정을 한국과 중국 정부에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정상회의에는 박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한다.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 대통령의 참석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박 대통령의 참석 의지가 강해 추진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국내서 반발이 일었던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도 박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예견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고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일본 망명’을 계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감지한 박 대통령이 일본 망명을 위해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군사협정을 맺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을 바라보는 국내외 시선도 곱지 않다. 앞서 박 대통령은 페루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불참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우리나라 주변 강대국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 외교무대에 ‘최순실 국정 농단’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세계 강대국이 모인 자리에 불참해 놓고 ‘한중일 정상회담’에 유독 애착을 보이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 APEC정상회의 당시에는 박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기 때문에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외교부는 지난달 18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외교적으로 큰 손실”이라며 민심과 동떨어진 답변을 내놔 눈총을 받기도 했다.

반기문 밀고
사면 노린다

최근에는 박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가 탄핵을 의도적 늦추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야권은 오는 9일을 ‘탄핵 디데이’로 정한 상태다. 비박계도 동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심을 타고 탄핵안은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제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중도 자진사퇴에 방점을 찍고, 전적으로 국회에 공을 넘겼다. 이에 비박계는 동요했다.

비박계 좌장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 담화 이후 추미애 더민주 대표와 긴급회동을 가졌다.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퇴임이 결정될 경우 탄핵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앞서 오는 9일 탄핵에 동참키로 한 비박계가 대통령 담화 이후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이처럼 비박계가 탄핵과 거리두기가 이어지면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일정이 계획대로 될 공산이 크다. 다만, 탄핵안이 9일 국회를 통화하면 박 대통령 일본 방문은 사실상 어렵게 된다. 탄핵안 통과와 동시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현재 흐름을 놓고 보면 박 대통령의 노림수가 통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퇴 일정은 밝히지 않은 채 국회에 공을 넘김으로써 탄핵바람에 분열을 조장했고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 가능성도 커졌다.

질질 시간 끄는 이유가?
혹시 사법처리 피하려고?

이처럼 궁지에 내몰린 박 대통령의 망명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정치권에선 과거 이승만 전 대통령 망명 당시 상황과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3대를 역임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4대 대선인 1960년에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이는 4·19혁명을 촉발했다.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시위를 잠재우려 했지만 결국 일주일 뒤인 4월26일 이 전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났다. 하야 이후 1달여 뒤 하와이로 망명하면서 대통령 시절 저질렀던 불법 행위에 대한 사법 처리를 피했다.

박 대통령도 이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민심이 들고 일어선 상황이다. 게다가 제1야당 수장인 추 대표는 박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언급키도 했다. 이처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조기 퇴진에 방점을 찍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서는 망명만이 유일한 출구전략인 셈이다.
 

이밖에 외국 사례서도 부패 스캔들 이후 망명 절차를 밟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계 페루인인 후지모리 페루 전 대통령은 1990∼2000년까지 페루를 장기 통치해오다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는 사법처리를 두려워한 나머지 일본으로 도피해 사실상 망명생활을 해오다 지난 2007년 본국으로 강제 송환돼 2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박 대통령 망명설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일본 망명’ 외에 추가적으로 망명을 고려해볼 만한 몇몇 나라들이 거론된다. 우선 중국이다. 박근혜정부는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는 등 ‘친중 행보’를 선보였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망명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이삿짐 싸나
외국선 흔해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미국 망명도 거론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미국 망명을 선택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높아질 우려를 들어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이밖에 독일, 캐나다 등 선진국들의 경우도 부패에 대한 처벌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망명이 허가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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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