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주변인 의문사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0:17:09
  • 호수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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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의 시대’ 건드리면 죽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유독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선 의문사와 사망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대통령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망사건이 주목 받고 있다. 이들 사망자 대부분은 박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와 연관돼 있다. 이들은 어떻게 죽었으며, 왜 죽었을까.  
 

그 동안 박근혜 대통령 주변서 일어난 사망사건은 총 4건이다. 이 중 3건은 최태민 목사와 박 대통령과 연관된 사람들의 죽음이다. 나머지 1건은 박 대통령만 연관된 사건이다.

최태민 파헤친
종교연구가 사망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 지난 1994년, 자신의 아파트 근처서 한 광신도에게 살해당했다. 탁 소장은 사이비 신흥종교·이단문제의 선구자였다. 그는 1970년도 당시 최 목사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기독교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그가 신흥종교운동 연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56년, 20세 때인 신흥종교단체 영주교를 목격하면서부터다. 이후 64년부터 본격적인 신흥종교운동 연구에 나서기 시작했다.

1967년부터 1984년까지는 계룡산 신도안 일대를 다니며 신흥종교를 연구했다. 당시 신도안 주변을 하도 집요하게 취재하고 다녀 주변 사람들은 그를 ‘계룡산 출입기자’로 불렀다. 


탁 소장은 신흥종교를 순수한 민족종교와 반사회적 사이비종교 집단으로 분류했다. 그는 특히 기독교의 전통적 가르침서 벗어난 기독교 이단들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통일교, 천부교, 동방교, 여호와의증인, 대한기독교장막성전 등 70년대에 연구한 단체만 해도 27개나 됐다. 

이렇다 보니 신변 위협도 많이 받았고 실제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단 강연회를 여는 곳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해당 신도들이 몰려와 난동을 부렸고 몰매를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탁 소장은 긴박한 상황이 아닌 한 좀처럼 경찰에 경비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1969년엔 동방교서 살해 계획을 세우기도 했고 유신 치하에선 이단들의 모함으로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탁 소장은 1973년 5월, 한 신문광고를 통해 최 목사의 존재를 알게 됐다. 신문광고는 ‘영 세계에서 알리는 말씀’이란 제목으로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 사상을 혼합한 교리를 전파한다는 내용이었다. 점을 치고 관상을 보던 무속인 광고와 흡사했다. 이 때 광고를 낸 사람이 최 목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독 대통령 주변 사망사건 끊이지 않아
어느날 갑자기 비명횡사…살인도 일어나
 

탁 소장은 이후 최 목사의 정체와 대한구국십자군의 발족과 폐해, 교회를 이용한 정황 등을 담은 글을 <현대종교> 1988년 4∼6월호에 소상히 담았다. 시리즈 글의 제목은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었다.

탁 소장은 글 말미에 “최태민의 구국선교단 사건은 확실히 암흑기의 권력형 부조리와 야합한 우리 시대의 단막극”이라며 “언젠가는 이 사건이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 실명으로 기록될 때가 올 것”이라고 썼다. 


탁 목사는 기사를 내기 직전, 실제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중앙정보부 관계자가 찾아와 “그 사건을 파헤치면 신상에 좋지 않을 거다. 영애(박 대통령)가 관련된 일이니 입 다물고 있어라”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4공화국> 찍은
촬영감독 교통사고
 

1995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 박 대통령과 최 목사가 등장한 후 촬영감독 조모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제4공화국> 영상 속에는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독대 하는 장면이 담겼다. 극중 대화 속에서 김재규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큰 영애’의 문제를 거론한다.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은 “최태민 목사가 영애(박근혜 대통령)의 후광을 얻어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드라마의 대사내용이다. 

김재규: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 문제입니다.
박정희: 최(최태민) 무엇인가하는 그 목사 이야기요?
김재규: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큰 영애의 후광을 입고 지나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아니, 무슨···.
김재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건 허울뿐이고, 업체에서 찬조금 챙기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그 여자문제까지... 여기 보고 내용입니다(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려둔다).
박정희: 내 그 문제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근혜 말은 그게 아니던데? 오늘은 이쯤에서 관둡시다.
김재규: 네(일어나서 자리를 뜬다) 

이 장면이 나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조 감독이 현장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1995년 9월28일 새벽 1시50분쯤 인천대 제3정문 앞길서 촬영 중이던 제작팀을 음주운전 차량이 덮쳤다. 이 사고로 조 감독이 숨졌고 최모 PD, 분장사 안모씨 등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촬영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행렬장면을 찍고 있었다. 최 PD 등이 차도를 일시 차단하고 촬영을 진행했지만 음주운전 차량이 이를 음주단속 현장으로 착각하고 그대로 돌진했다. 사고를 일으킨 이모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16%로 만취상태였다. 사고 이후 PD가 바뀌었고, 경찰은 술에 취한 사람의 단순 범행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MB에게 붙은
최태민 의붓아들
 

최 목사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씨의 의붓오빠인 조순제씨가 지난 2007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제씨는 2006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MB캠프에 들어갔다. 이 때 MB 측은 박 대통령(당시 대선 경선 후보)을 공격할 카드로 최 목사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일명 ‘조순제 녹취록’에는 최 목사 일가의 재산 형성과정의 비밀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녹취록에 따르면, 1970년대 초중반 최 목사 일가의 생활은 궁핍했다. 최 목사가 1975년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 대통령을 명예총재에 앉힌 후 엄청난 부를 얻게 됐다. 순제씨는 “돈 천지였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 다 냈다. 돈은 최태민이 관리했다”고 녹취록서 밝혔다. 

그 외에도 녹취록에는 10·26(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 이후 “뭉텅이 돈(전두환 대통령이 준 6억으로 추정)이 왔다”는 내용도 담겼다. 순제씨는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있었다. 최순실이 심부름을 꽤나 했다”고 밝혔다. 


총 4건…3건은 최태민과 연관
그들은 어떻게 죽었을까 의혹

순제씨는 ‘1988년 영남대 사태'(박근혜 대통령이 학내 비리와 학원 민주화운동으로 물러난 사건)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5개월 후인 1980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교수들의 반발에 4개월 만에 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이사로 직위를 옮겼는데, 당시 박 대통령의 지시로 영남대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4인방이 있었다고 했다. 이중에 순제씨와 손윤호(순제씨의 외삼촌)가 있다. 순제씨는 당시 자신의 아들을 영남대 경제학과에 부정으로 입학시켰다. 불법자금 편취와 공금 횡령, 판공비 사적용도 사용 등 비리도 일삼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녹취록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MB후보 캠프서 작성됐다. 핵심 관계자는 “녹취록 작성자는 전직 언론인 2명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가 앞서 나갔고 결국 승리했기 때문에 해당 녹취록을 공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청문회 당시 “조순제를 모른다”고 말했다. 순제씨는 녹취록 작성 1년 뒤인 2008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순제씨는 이 녹취록서 10·26 이후 굉장히 친밀한 관계로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 토사구팽, 배신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대통령 5촌 인척
의문의 살인사건
 


2007년 박 대통령과 5촌 지간이었던 박씨 형제 사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사촌형 박용수씨가 사촌동생 박용철씨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원한에 의한 사촌 간 살인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수사 종료 후에도 석연찮은 대목이 있어 논란은 계속됐다. 살해된 용철씨는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박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현 공화당 총재 사이에 진행되던 재판의 주요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신 총재는 지난 2009년 지만씨가 박 대통령의 묵인 하에 박근령씨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자신을 청부살해했다는 주장을 했다. 결국 핵심 내용을 쥐고 있는 당사자가 죽음으로써 육영재단 사건의 내막은 묻히게 됐다. 

당시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먼저 지만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 했던 과정에서 피살됐다는 점이다. 용철씨는 이전에는 지만씨의 최측근이었으나, 증언 당시에는 사이가 틀어져 있어 재판서 용철 씨의 ‘양심 고백’이 기대되던 상황이었다. 

또 사건 이후 용철씨가 보관하고 있던 핸드폰이 분실된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으로 꼽힌다. 용철씨는 2010년 9월1일 재판서 자신의 휴대전화에 육영재단 사건 관련 녹음파일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시신 부검 결과 용철·용수씨 모두 수면제를 복용했다는 점도 수상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흔히 자살사건과 관련해 수면제는 대개 타살의 근거로 수사 단서가 된다. 이 때문에 제3자 개입의혹이 제기됐다. 용수씨가 자살 직전 소화제를 복용한 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용수씨가 사전에 구입한 칼이 실제 살해에는 사용되지 않았고, 살해에 사용된 칼에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이며, 휴대폰 분실로 통화 내역 자체가 밝혀지지 않은 점도 석연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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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