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은 세월호 의문>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

최순실과 성형외과 점점 맞춰지는 퍼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의 7시간. 세월호 참사 이후 베일에 쌓여있던 그 7시간이 서서히 드러날 조짐이다.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정국의 중심에 서면서 그동안 안개 속에 감춰져 있던 ‘비밀’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양새다.

‘세월호 7시간 논란’은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했던 7시간을 두고 불거졌다. 박 대통령은 16일 오전 10시 서면으로 첫 보고를 받은 이후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나기까지 약 7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사이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는 진도 인근 해상서 서서히 침몰했고 304명은 결국 차가운 바닷물 속에 수장됐다.

묻히나 했는데…

세월호 참사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을 낱낱이 드러내면서 국가 불신의 싹이 됐다. 세월호 유족을 비롯한 국민들은 진실 규명을 요구했지만 2년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대로 밝혀진 사안이 없어 많은 이들을 좌절케 했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7시간은 루머가 난무했을 뿐 명확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또 대통령의 7시간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이 보수단체에 고발당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 2014년 8월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은 <조선일보>의 한 기명칼럼을 인용 박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보수단체는 “근거 없는 허위사실로 국가 원수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기를 문란하게 했다”며 가토 전 지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출처불분명한 소문을 근거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가토 전 지국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일본 정부는 검찰의 구형에 대해 이례적으로 “무척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1심서 “가토 전 지국장이 허위사실임을 인식하고 사생활 의혹을 보도했다 해도 박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이 아닌 만큼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판결은 법원이 언론의 자유를 강조함과 동시에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을 받았다. 검찰이 이후 항소를 포기하면서 가토 전 지국장의 무죄가 확정됐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박래군 상임위원도 박 대통령의 7시간에 의혹을 제기했다 고발당했다.

박 상임위원은 지난해 6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참사 당일) 마약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 청와대를 압수수색해서 한번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보톡스를 맞고 있었던 것 아니냐, 보톡스를 맞으면 당장 움직이지 못하니 7시간 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보수단체는 가토 전 지국장 때와 마찬가지로 박 상임위원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앞서 박 상임위원은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불법행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법원은 1심과 2심서 박 상임위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은 박 상임위원의 마약, 보톡스 발언에 대해 “공적 관심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서 마약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 박 위원이 사용한 표현 등에 비춰볼 때 심히 악의적이고 경솔했다”며 “표현의 자유로 보호할 수 없는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한 언론은 검찰이 의혹을 언급한 두 사람을 모두 기소한 것을 두고 대통령의 7시간이 처벌을 부르는 마법의 단어라고 표현했다. 이후 의혹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구체성을 띄기 시작한 것이다. SNS상에선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최태민씨의 20주기 천도제를 지내고 있었다”는 풍문이 돌았다.

최씨 모녀 단골 병원 부각
사고 났을 때 피부과 시술?

이에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 담화에서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 분명히 말씀드린다”라며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인터넷 언론 <고발뉴스>는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고발뉴스>에 따르면 최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데리고 들어가 박 대통령에게 매선침, 즉 피부에 얇은 실을 넣어주는 리프팅 시술을 해줬다.

성형외과 전문의의 말을 빌어 세월호 참사 당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박 대통령의 눈 밑에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며 이는 매선침 시술에 따른 전형적인 부기로 보인다고도 했다. 지난해 6월 박 상임위원이 언급한 피부 시술 의혹이 1년여가 지난 시점에 다시 불거진 것이다.

보톡스 시술 의혹은 지난 7월에도 북한에 의해 한번 언급된 바 있다. 북한은 대남선전매체를 통해 “의문의 7시간 행적을 조사해야 한다는 민심의 요구는 정당하다”며 “(박 대통령이) 세월호 대참변이 일어난 그 시간에 얼굴에 주름살을 없애는 보톡스 주사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장이 4개월이 지난 현재 비슷한 내용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누리꾼들은 설왕설래를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JTBC 보도로 강남의 한 소형 성형외과가 갑자기 의혹의 중심으로 튀어나왔다.
 

최근 JTBC 보도에 따르면 이곳은 최씨와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다닌 병원이었다. JTBC가 확보한 고객 명단에는 ‘정유연’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정유연은 정씨의 개명 전 이름이다.

이어 ‘최’ ‘최 회장님’ 등의 단어도 나온다. 이 병원은 녹는 실을 이용해 주름을 펴주는 ‘피부 리프팅’ 등 피부과 시술로 유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화장품 업체와 의료기기 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 업체들이 대통령 순방행사에 동행하거나 병원서 만든 화장품이 청와대 선물세트로 납품되는 등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 지난해 4월 의료기기 업체는 중남미 4개국 경제사절단에 포함됐고, 같은 해 9월엔 중국 경제사절단에 참여했다.


올해 5월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및 프랑스 순방에선 병원 소속 두 업체가 동행했다. 병원이 만든 화장품은 청와대 설 선물세트로 납품되면서 이 실적을 바탕으로 최근 유명 면세점에 입점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혜 의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병원 김모 원장이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의 외래교수로 위촉된 것이다. 강남센터에는 성형외과가 없는데도 김 원장은 외과 외래교수로 위촉됐다. 시기는 박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교수가 병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였다.

JTBC에 따르면 김 원장이 외래교수로 위촉되는 과정에 서 원장의 압력이 있었다는 고위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서울대병원은 해당 의혹에 대해 “최씨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성형 서비스가 필요해 위촉했다가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2주만에 해촉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이 병원의 해외진출을 추진했다 실패해 교체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민간 컨설팅업체 대표는 “조원동 전 수석이 VIP(박근혜 대통령)가 이 성형외과의 해외진출을 챙기라 지시하셨다고 했다”며 해외진출 추진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병원이 사업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서 해외진출은 무산됐고, 이 때문에 조 전 수석은 전격 교체됐다고 한다. 업체 대표는 조 전 수석의 교체가 보복성 인사라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병원은 ‘휴진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부착하고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있다.

JTBC는 최씨 모녀를 비롯, 조카 장시호, 최씨의 언니 최순득씨, 전 남편 정윤회씨까지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의 프리미엄 병원 ‘차움’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도 보도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차움은 최씨에게 박 대통령의 주사제를 대리처방한 의혹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의원을 계열사로 둔 ‘차병원’이 올해 현 정부에서 큰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차병원은 박 대통령이 지난 5월과 9월 이란과 중국을 방문할 때 경제사절단으로 뽑혔다.

5월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체세포 복제배아연구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받기도 했다. 차병원 관계자는 “현 정부로부터 받은 특혜는 전혀 없다”며 의혹을 일축한 상태다.

청와대는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11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박 대통령은 청와대서 정상집무를 봤다”고 했다.

VIP 관계없나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일부 언론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성형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고 해명했다. 이어 “박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전혀 사실이 아니며 경호실에 확인한 결과 4월16일 당일 외부인이나 병원 차량이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호성 전 비서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당시 관저에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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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