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VS 우병우 사단’ 파워게임 막전막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6.11.14 11:05:45
  • 호수 10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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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아있는 권력에 누가 칼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사진 한 장으로 검찰이 발칵 뒤집어졌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른바 ‘황제수사’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김수남 검찰총장도 우병우 사단에 ‘수사 똑바로 하라’고 옐로우카드를 날렸다. 김 총장과 우병우 사단의 파워게임을 보는 것 같다.

지난 6일, 검찰서 조사를 받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오만한 태도에 김수남 검찰총장은 ‘철저히 수사하라’고 수사팀을 질책했다. 우병우 사단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병우는 팔짱
검사는 배꼽손

먼저 우 전 수석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의 포토라인에 서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기자를 불편한 표정으로 ‘지긋이’ 째려보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횡령·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에 전날 오전 10시께 소환됐으며 15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지난 7일 새벽, 귀가했다.

지난 7일 <조선일보>가 공개한 사진서 우 전 수석은 웃음을 머금고 팔짱을 낀 채로 매우 여유로운 태도를 보여 논란이 가중됐다. 옆에는 검사 1명과 수사관 1명이 서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해당 인물은 수사팀에 파견된 L검사와 수사관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해당 사진은 조사 중인 상황이 아니라 밤 9시까지 일단 조사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담당 부장검사가 팀장에게 보고를 간 사이 우 전 수석이 다른 후배검사 및 직원과 서 있는 상태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그의 오만한 태도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가 인터넷에 공개한 다른 사진에는 우 전 수석이 다가서자 수사검사와 수사관이 벌떡 일어나는 모습과 우 전 수석의 변호인 곽병훈 변호사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파안대소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민정수석서 경질돼 검찰에 출석한 ‘민간인 우병우’의 검찰 내 위세가 여전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특히 횡령과 직권남용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는 피고발인을 극진히 예우하는 검찰 태도에 안팎의 비난이 쏟아졌다.

김 총장은 진노했다. 우 전 수석의 ‘황제수사’ 논란과 관련해 수사팀을 질책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절차상이라도 그렇게 비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앞으로 더 철저히 하라고 김 총장이 강조했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의 황제수사 논란은 이미 법조계서 예상한 바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우병우 사단’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우 전 수석의 검찰 장악력은 여전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특별수사팀의 윤갑근 대구고검장이다. 윤 고검장은 대표적인 우병우 사단으로 꼽힌다.

여전히 오만한 우 전 수석 포착
쩔쩔매는 검사…황제수사 논란

윤 고검장은 우 전 수석과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로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법무부서 함께 근무했고 우 전 수석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을 지낼 때 윤 고검장은 중앙지검 3차장으로 활동하며 업무를 조율했다.

2014년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 당시 함께 호흡을 맞춘 경험도 있다. 이후 우 전 수석은 민정수석으로 승진했고 윤 고검장은 대검찰청의 요직으로 이동했다. 당시 윤 고검장을 보면 “우 전 수석의 구원투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실제로 윤 고검장의 수사는 우 전 수석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먼저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가 이뤄진 것은 특별수사팀이 꾸려진지 75일 만이다. 우 전 수석 부인 이모씨도 검찰소환에 계속 불응하다가 민정수석서 경질된 지난달 30일에서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한 변호사는 “다른 피의자였으면 벌써 체포영장을 청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특별감찰관실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우 전 수석이나 부인의 휴대전화는 압수조차 하지 않았고 우 전 수석 자택이나 처가(장모의 집)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 우 전 수석 수사를 느슨하게 했다는 게 중론이다.

짱짱한 가신들
총장은 허수아비?

이렇듯 우병우 사단은 윤 고검장뿐만 아니라 검찰 내 주요 요직에 곳곳에 있다. 핵심 고위직은 물론이고 전국 주요검찰청의 인지부서(특수부, 공안부, 강력부, 외사부 등이 지만 주로 특수부를 말함)의 중간 간부들은 대부분 우병우 사단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의 한 검사장급 간부는 “검찰서 핵심적인 사정수사를 담당하는 곳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와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그리고 서울남부지검”이라면서 “이 세 곳의 수장이 모두 우병우 사단”이라고 말했다.

현재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노승권 1차장과 이동렬 3차장도 대표적인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된다.

박근혜정부 아래 검찰의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다. 우 전 수석 비리와 최순실 게이트 수사는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만일 이번에도 부실 수사 논란에 휩싸인다면 검찰이 국민적 역풍을 맡을 수도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금 국민들께서는 오로지 검찰만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기회다. 최순실 사건 제대로 해라”고 충고했다.

강하게 질책?
그놈이 그놈∼

이 때문에 김 총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라는 게 검찰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 총장이 이끄는 검찰 조직이 박근혜정부 들어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시종일관 ‘눈치보기’ 수사로 일관해 비판을 받고 있다.

우 전 수석 관련 수사에 이어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사건 수사도 박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지난 2014년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대통령만 보는 수사들을 직접 지휘했다.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 사건,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시국장 사건 등이 ‘박근혜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른 사건들로 평가받는다.


청와대를 등에 업고 자기 사람을 꽂으며 우병우 사단을 구축했던 전 민정수석과 사실상 청와대 시녀로 전락한 검찰총장.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 김 총장이 우병우 사단 제거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김 총장과 청와대, 우 전 수석 등의 역학 관계를 고려하면 우병우 사단을 제거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검찰은 지난 7일, 우 전 수석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날 우 전 수석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했다.

대검 관계자는 “언론에 제기된 의혹들(우 전 수석이 재직 시 최순실씨의 비위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의혹 포함)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라고 최근 검찰총장이 지시했다”며 “이는 검찰 특별수사본부 출범 때부터 총장의 일관된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큰소리 떵떵’ 여전히 실세로 군림
검찰 내 두 개의 태양 존재 확인

검찰은 우 전 수석이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이나 최씨의 각종 비리 사실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묵인했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그가 두 재단 모금을 주도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나 문건 유출 혐의가 있는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행위에 가담했다면 직권남용이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김 총장은 우 전 수석이 지난 6일 ‘황제 조사’를 받았다는 <조선일보>의 보도와 관련해 수사팀을 강하게 질책했다. 대검 관계자는 “소환이나 조사 과정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는지, 국민 눈높이서 볼 때 어긋나게 비치지 않았는지 철저히 살피라고 김 총장이 강조했다”고 전했다.
 

정치권서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제대로 막지 못한 우 전 수석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서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최순실 게이트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 전 수석은 가족회사의 자금 횡령과 공직자 재산신고 등에 대해서만 수사를 받았지만 ‘최순실 게이트’서도 핵심 피의자”라고 주장했다.

수사 결과에
검찰 명운 달려

우 전 수석과 김 총장의 파워 게임의 향방에 따라 이번 사건의 결론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은 과연 이런 파워 게임 속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수사 결과를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차은태 내사’ 우병우 은폐 의혹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이 지난해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의 각종 이권 및 정부·공공기관 등 인사 개입에 대한 내사를 벌여 구체적인 비위 단서를 적발했지만 청와대가 특별한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는 관련자 증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를 비롯해 차씨의 비위 행위를 알고도 방치했거나 은폐했는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해졌다.

지난해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은 아프리카픽쳐스나 모스코스 등 차씨가 이끌던 회사의 대기업 및 정부부처 일감 수주 문제점에 대한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복수의 대기업에서 구체적 자료까지 확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정수석실은 또 차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고위직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문체부를 통해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씨 소유 업체 혹은 그의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들은 KT, 현대차그룹, 포스코 등에서 광고 일감을 대거 수주했다. 또 차씨의 든든한 배경에 은사인 문체부 장관, 외삼촌인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이 있었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이 차씨를 눈여겨본다는 기류가 민간에 포착되면서 일부 대기업에서는 차씨와의 업무 관계를 꺼림칙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우 전 수석 산하의 민정수석실이 차씨를 내사하기 시작하면서 미르재단 등으로 차씨와 깊이 연관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우 전 수석 사이에 깊은 갈등이나 긴장 기류가 조성된 적이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차씨의 비위 의혹이 수집된 자료가 어디까지 보고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만일 조사가 이뤄졌다면 결과가 민정수석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있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라인에 대한 감찰을 소홀히 해 이 사태를 방치했다며 직무유기로 현재 고발돼 있다. 민정수석실이 차씨의 비위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우 전 수석에게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보고받고도 묵살했다면 박 대통령의 형사적 책임이 무거워진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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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