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집권 위해서라면 ‘수위’라도 하겠다”

<대한민국 이끄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⑥>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오는 2012년 대선을 2년여 앞둔 시점에서 <일요시사>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라는 기획으로 편집국장 대담을 진행한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 정치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앞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판단되는 여야 유력 정치인, 정계 원로와의 만남을 통해 차제의 시대정신과 정치 발전 과제 등에 관한 철학과 지혜를 담아낼 예정이다. 그 여섯 번째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봤다.

형님 정계은퇴 촉구, 국정원 인사 비밀회동설 휘말려 화제
4·27 재보선 필승 전략은 야권 연대 “과감한 양보 필요하다”

최근 정가 안팎의 시선이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향하고 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개헌 논의를 일축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정계 은퇴를 촉구한 이유에서다. 여기에 박 원내대표가 국정원 고위 인사를 만나 정국 현안을 논의했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면서 박 원내대표에 대한 관심의 수위는 한층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러한 정치 이슈를 비롯해 성큼 다가온 4·27 재보선에 대한 이야기와 얼마 남지 않은 원내대표 임기, 연말에 있을 조기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도전 여부까지…. 수많은 궁금증을 안고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며야 했던 지난 2일 박 원내대표를 찾았다.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의를 끝까지 챙기고서야 돌아온 그를 원내대표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당장 오늘 아침 전해진 소식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달 28일 서울 한 호텔에서 국정원 고위 인사와 비밀 회동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 전혀 (사실이) 아니다.

- 당시 상황은 어떻게 된 것인가.
▲ 에리카 김 때문에 기자들이 잠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 사람은 문 앞에 서 있었다. 대화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다. 내가 평소에 하던 말들로 간헐적으로 듣고 짜 맞추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분위기를 바꿔 목전으로 다가온 4·27 재보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민주당은 어떤 전략으로 재보선을 준비하고 있나.
▲ 민주당뿐만 아니라 모든 야권이 하나의 전략을 갖고 있다. 이번 재보선은 물론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도 반드시 승리하는 야권 연합연대가 필수적이다. 야권은 지금까지 연합연대를 지켜왔고 특히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번에도 모두 함께 논의해서 승리의 길로 가도록 노력할 것이며, 산술적인 연합연대로 한나라당에 승리를 안겨주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할 것이다.
 
강원도로 당력 집중
“제 3후보 나설 수 있다”

- 민주당이 ‘순천 무공천’을 거론해 화제다.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순천 무공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연합연대 논의 과정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한 양보가 필요하다는 열린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순천과 김해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야권 연대를 해야 승리할 수 있고,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은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단의 방법을 토론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손학규 대표가 전남 의원들과 7시부터 조찬을 함께 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이 중 화력을 집중하기로 ‘선택’된 곳이 강원도지사 선거로 보이는데, 강원도 수성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민주당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모든 선거구에서 총력을 다할 것이다.
특히 강원도는 3년간 성실한 의정활동과 MBC 사장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언노련위원장으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일했던 최문순 의원과 백전노장 조일현 전 의원이 후보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있는 후보를 선출하고 당력을 집중해 지원할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20대부터 40대, 50대 초반의 강원도민들이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반드시 강원도를 지키고 이광재 전 지사를 찾아오겠다.
 
- 오늘 엄기영 전 MBC 사장이 한나라당 입당과 함께 강원도지사 재보선 출마를 선언했다. 엄 전 사장은 만만치 않은 후보인데….
▲ 엄 전 사장은 100m 미인이다. 멀리서 보면 ‘엄기영’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리더십이 없다. 최문순 의원과 조일현 전 의원, 그리고 또 한 명의 후보가 나타날 수 있다. 강한 경선을 해서 흥행을 이끌어 낼 것이다. 

형님 정계 은퇴 촉구
“기립박수 터져 나오더라

- 4·27 재보선도 결국 정권 교체를 위한 한걸음이다. 앞으로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이명박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야권 연합연대를 통해서 후보를 단일화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연합연대는 승리가 목표이기 때문에 여러 정당의 후보들이 공정한 방법을 통해 가장 확실한 후보로 단일화해야 한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으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살리고 견제와 감시라는 야당의 본분을 다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은 ‘그래서 민주당이 필요하구나’라고 느끼고 지지할 것이다.
또한 민주당의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민주당 지도부는 때로는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지도부에 항상 ‘개인이 아닌 당원을 보고, 계파가 아닌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의 훌륭한 인물들이 민주당원의 존경과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간다면 반드시 정권 교체를 달성할 수 있다.

-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현 정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근 취임 3주년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 대통령 따로, 국민 따로의 실패한 3년이었다. 대통령은 ‘할 만하다’고 했지만 국민은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고물가, 구제역, 전월세 대란, 실업난으로 국민들은 먹고 입고 잠자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BBK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았지만 국민들이 ‘경제는 잘하겠지’ 하는 기대로 당선시켰는데 지금 국가 채무는 제2의 IMF 사태를 우려할 정도로 엉망이다. 교류 협력으로 발전하던 남북 관계도 ‘불바다’ ‘몇 배의 응징’ 등 전쟁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와 야당의 충고를 새겨듣고 남은 임기를 성공하는 2년으로 만들기를 기대한다.
 
- 다양한 정치 현안이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이중에서도 개헌 논의와 관련,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18대 국회에서 개헌이 논의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앞으로 개헌에 대해서는 일체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건가.
▲ 개헌은 이미 실기했고 명분도 없다. 물리적으로 총선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을 추진하면 민생 문제 등 모든 국정 현안이 개헌의 블랙홀에 빠져버린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에서 친이와 친박으로 나뉘어 혈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통일된 안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개헌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일부 개헌 추진론자들도 하루빨리 개헌의 미몽에서 깨어나 민생 대란에 신음하고 있는 국민을 보살피는 국정을 펼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촉구한다.


-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왜 ‘지금’ 정계 은퇴를 촉구하게 된 것인지 듣고 싶다.
▲ 그 내용은 이미 대표연설에서 모두 밝혔기 때문에 또다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국민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는 언론 보도나 트위터,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의 충분한 반응이 나왔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길인지 잘 알 것으로 믿는다.


- 이 의원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자 본회의장에 소란이 일었었는데….
▲ (실제로는) 별 소란이 없었다. 장제원·이병석·강석호·이은재 의원 등 다섯 명 정도만 항의했지 나머지 분들은 가만히 있었다. 소리는 오히려 민주당에서 ‘앉으라고’ 지른 것이었으니, 정리해 보면 ‘한나라당이 손가락질하고 효과음은 민주당이 낸 격’이다. 발언이 끝나니, 국가원수 앞 외에는 기립박수를 치지 않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기립박수가 터져나오더라. 
 
파란만장 원내대표 1년, 정권의 저격수 역할 ‘톡톡’
당권 도전? “지금은 원내대표 직분에 충실할 때”

- 남북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고 갈 수 없다.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빠른 시일 내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길 희망했는데, 성사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 어떤 경우에도 남북 간 대화의 끈을 놔서는 안 되고,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TV 대화와 3·1절 기념식에서도 ‘북한과 언제든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씀했기 때문에 이제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통령의 말씀에 진정성이 있다면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또한 대화를 위해서는 남북이 모두 상대방을 대화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북한은 ‘불바다’ ‘조준 격파 사격하겠다’고 과민 반응을 하고 우리는 대북 삐라를 살포하면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북한도 민감할 필요가 없고 우리도 자제해서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하루속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핵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5월이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 4·27 재보선 일정 등으로 봤을 때 이제 ‘곧’인데, 그 때까지 꼭 이뤘으면 하는 것이 있나.
▲ 민주당은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3년 연속 예산안과 법안 날치기에 항의해 국민과 함께 투쟁하다가 4대 민생 대란에 고통받고 있는 국민을 외면할 수 없어 2월 국회를 민생 국회로 만들기 위해 등원했다. 따라서 2월, 3월 국회가 국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한상률 게이트, 대포폰과 민간인 불법 사찰 등 이명박 정부의 권력형 비리와 부조리에 대해서도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을 다할 것이다. 아울러 4월 재보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 어떤 원내대표였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가.
▲ 원내대표 취임 일성으로 ‘싸우지 않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켰고 집시법 개정 저지로 1500여 명의 촛불 민주 시민도 지켜냈다. 철저한 인사 청문회로 총리와 감사원장, 검찰총장, 장관 2명 등 5명을 낙마시켰고 민간인 불법 사찰, 영포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와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등 정권의 부도덕성을 파헤치면서 민주당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또한 비대위 대표로 민주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한 전당대회를 순조롭게 치러냈다. 이 모든 것을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서 벽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심정으로 모든 열정을 바쳐 해 왔다.
원내대표로 지난 1년간 대화의 정치를 복원하고 민주당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정권 교체라는 희망의 싹을 틔운 기간이었기를 기대한다.

차기 당권 도전?
“지금은 직분에 충실할 때”

- ‘대화 정치’를 강조했던 여당 파트너 김무성 원내대표와의 1년을 평가한다면.
▲ 김무성 대표와는 여야 원내대표로서 각자의 입장이 있고 김 대표는 정치가 무엇인지 아는 분이다. 그래서 여야 간에 많은 쟁점이 있었지만 김 대표와 협상을 통해 비교적 대화로 잘 해결해 왔다.
그런데 지난 연말 이명박 대통령의 3년 연속 예산안 날치기와 날치기 법안으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특히 민주당은 성공한 집권 경험을 가진 성숙한 야당이고 저 스스로 청와대와 정부에서 국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충분히 대화와 타협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국회를 무시한 처사는 큰 오점이었다고 생각한다.

- 여야의 파트너십은 어떠했다고 보나.
▲ 한나라당이 자주적 입장에 있는 권력 구조가 아니다. 청와대의 지배가 강하다. 그런데 청와대와 대통령은 국회를 경시, 무시하고 귀찮은 존재로 치부한다. 대화를 해 봐야 결국 청와대의 생각이 중요하게 행동으로 나타나니 딱히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

- 민주당은 당권·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연말 즈음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기 당권에 대한 의중을 듣고 싶다.
▲ 원내대표 임기가 5월 둘째 주까지다.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은 오로지 원내대표 직분에 충실할 때다.
평의원 때나 정책위의장, 원내대표일 때도 한결같이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수위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일해 왔다. 제 마음속에는 오직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지금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정리=장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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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