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김창식씨의 기약 없는 고행길

법원 1백번 ‘들락날락’“삶 갈기갈기 찢겼다”

매일 오전 6시 기상하는 김창식씨. 그가 향하는 곳은 일터가 아닌 집 근처 구립도서관이다. 김씨는 하루 내내 도서관에서 지낸다.
‘열공’이 목적이다. 그가 끼고 사는 책은 법전이다. “읽고 또 읽죠. 그래도 이해가 안 가면또 읽어요”라고 너스레를 떠는 김씨는 법학도가 아니다.
올해 54세인 그는 법조계와도 전혀 무관하다. 너무나도 평범한 김씨가 팔자에도 없을 법한 법공부 삼매경에 빠진 이유가 뭘까.


김창식씨는 내부고발자다. 학교 운영의 부당함에 맞서고, 윗선 비리를 정면으로 공론화 했다가 하루아침에 ‘철퇴’를 맞았다. 이후 김씨의 삶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차별적인 대우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은 속여도 양심은 속일 수 없었지요. 두 사건으로 평범했던 한 가정이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김씨가 설명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불행의 씨앗은 표창장이었다. 1979년 2월 명문인 A대학에 입사한 김씨는 꼼꼼한 성격 탓에 늘 우수한 근무평점을 받았다. 교학실, 행정실, 기획실, 학생처 등을 두루 거치면서 엄격한 일처리로 ‘포청천’이란 별명도 붙었다.

부당혜택·휴학비리 고발 
파면후 복직…다시 파면
 

그러던 중 김씨는 1998년 2월 학교 신축공사 때 공사비 16억원을 절감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사장 표창을 수여받았다.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학교 측은 통상 이사장 표창시 당사자에 대해 1호봉 특별승급 등의 혜택을 줬으나 김씨에겐 예외였다. 달랑 표창장 종이 한 장뿐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차별이에요. 차라리 상을 주지 말던가 말이죠.”
김씨는 2000년 10월 교육부에 청원한 결과 학교 측의 부당함이 밝혀져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김씨의 ‘팽’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학교 측은 2001년 1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일방적으로 김씨를 파면 조치했다. 개인 임의대로 교육부에 항의해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이에불복해 복직 소송을 제기, 2004년 7월까지 이어진 총 27건의 재판에서 모두 승소한 끝에 같은 해 10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주변에선 “새끼줄로 호랑이 잡았다”는 말이 나왔다.
이도 잠시. 그에게 ‘검은 유혹’이 다가왔다. 교학계장으로 복직한 김씨는 2005년 4월 말 학교 운영진으로부터 아무런 명분 없이 자신의 아들을 휴학 조치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아들이 중간고사에서 받은 성적을 모두 삭제하려는 음모였다. 실제 이 운영진의 아들은 개강후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아 2005년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과목 ‘올 F’학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정상적인 휴학기간이 넘었고, 더욱이 중간고사가 끝난 상태에서 일반휴학은 허용되지 않아요. 다만 군입대가 아니라면병원 진단서를 첨부해 질병휴학을 신청해야 하는데 아무런 증빙 서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재량껏 은밀히 처리해 달라는 검은 청탁이었죠. 일반 학생은 꿈도 못 꿀 일이에요.”

김씨의 완강한 거부에 경영진은 또 다른 직원들을 통해 아들의 일반휴학 허가증을 급했다. 당연히 아들의 전과목 F학점 기록도 삭제됐다. 이를 뒤늦게 확인한 김씨는 참다 해 같은 해 10월 학교 이사장에게 운영진의 휴학비리를 고발했지만 돌아온 건 해고 통지서였다.
“내 회사를 고발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내부 비리를 털어야 회사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신념과 조직에 대한 사랑, 충성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측은 내부고발 10일 만에 직위해제 하더라고요. 명예퇴직을 종용했으나 응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어떻게 제 발로 나갑니까. 그렇게 버티다 결국 해고됐습니다.”

2006년 1월 강제해임 당한 김씨는 보름후 검찰에 휴학비리 고소와 복직 소송을 냈다.
법정공방은 쳇바퀴 돌듯 반복됐다. 김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법원을 들락날락했다. 지금까지 적어도 1백번 이상 법원 문턱을 넘었다는 게 그의 전언.
하지만 김씨는 그 높은 문턱을나올 땐 무지의 한계를 몸소 느껴 한숨을 길게 내쉬지 않은 적이 없다. 김씨가 다시 펜을 들고, 법전을 끼고 사는 이유다. ‘나홀로 소송’을 벌이는 그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빵빵한 스타 법조인들로 이뤄진 반대편 변호사 진영을 상대하려면 기초적인 법 지식 없이는 대결 자체가 불가능했다. 국선변호사가 있었지만 형식적인 도우미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변호사 수임료를 어떻게 감당합니까.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요. 10년 가까이 법전과 씨름한 결과 이제는 어느 정도 숙지해 ‘반 변호사’란말까지 들어요. 소장도 후딱 만들 정도죠. 이참에 아예 이 길로 나설 요량에 법무사 시험에도 응시할 생각입니다.”
그의 외로운 사투는 제빛을 내지 못했다. 무혐의, 항고, 재수사명령, 무혐의, 재항고, 각하 등으로 진행된 휴학비리 사건은 결국 마지막 보루인 헌법재판소에서 무혐의로 최종 마무리됐다.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준 법원은 “휴학은 학교 자유재량”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결은 학점 보완책으로 부정휴학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쓰레기 학점을 받아도 학교 재량만 얻으면 깔끔하게 청소되는 셈이죠.”
문제는 해임무효 소송. 2007년 10월 이후 4차례에 걸친 변론준비기일만 잡힌 채 감감 무소식이다.
지난 1월 4차 변론준비 종결 후 현재까지 10개월이 넘도록 답보 상태다. 김씨의 재판 기일탄원도 소용없었다. 김씨는 급기야 최근 대법원장과 담당 부장판사를 상대로 직무유기로인한 손해배상 소송까지 냈다.

“무더위에 수박 한덩이도…”
정신·경제적 고통 호소

“법원은 복직 소송에 대해 1년 넘게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그저 팔짱만 끼고 있어요. 이기든 지든 재판이 열려야 끝이 날 게 아닙니까. 설마 사건을그대로 덮으려는 속셈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시간이 지나니까 공방 상대방이 학교가 아니라 법원으로 바뀌더라고요.”
재판이 ‘홀딩’되면서 김씨뿐만 아니라 가족이 겪고 있는고통의 나날도 하루하루 연장되고 있다. 김씨는 가족 모두의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호소했다.
김씨는 극도의 정신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최근엔 안면마비 증세까지 생겼다.
김씨의 부인도 사정은 같다. 남편이 해고된 뒤 두통, 위염, 불면증, 이명현상 등의 증세로 바깥출입조차 힘겹다고 한다.

대학생인 딸은 은행에서 대출 받아 등록금을 간신히 몇 번 냈지만, 재판이 장기화되자 등록금을 감당 못해 결국 3학년 재학 중 휴학계를 냈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다니던 학원을모두 끊었다. 김씨 부부에게 매일 같이 학원에 보내 달라고 조른다고 한다. 가족의 몸과마음이 갈수록 황폐화되자 김씨의 부인은 “재판을 열어 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고 재판장님의 처분만 목 빠지게 기다리며 연명하고있습니다…10여년의 고통으로 심신이 병들고 황폐해져 이제 한 끼의 식사도 힘겨운 폐인이됐습니다…부모 눈치만 보고 말을 잃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고기는커녕 무더위에 수박 한 덩이도 마음 놓고 먹일 수 없는 어미의 심정을 헤아려 주세요….’

김씨의 수입이 끊기면서 가정경제도 엉망진창이 됐다. 여기저기 ‘빚잔치’다. 지인들에게 ‘구걸’하다시피 꿔온 돈만 1억원이 넘는다. 한달에 고정적으로 45∼50만원이 이자 비용으로 나간다.
북한산 자락 산동네에 자리 잡은 집은 압류된 지 오래다. 각종 세금은 물론 5백여만원의 의료보험료 미납으로 매일 독촉전화가 온다. 신용카드, 예금통장 등도 채권압류로 묶여 있다. 김씨는 학교에서 근무한 27년치 퇴직금 4억원 정도가 있지만, 학교 측은“최종판결 전까지 줄 수 없다”며 지급을 미루고 있다.
“삶이 고달파요. 육신과 영혼이 황폐해질 정도로 괴롭습니다. 양심의 목소리를 냈을 뿐인데 하늘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에요. 가족들에게 미안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죠. ‘여기서 나까지 흔들리면 이 가정이 깨지겠구나’하는 생각에 중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입니다.”
그는 소송이 ‘투병 생활’과 같다고 정의했다. 그래서 김씨에게 “혹시 내부고발을 후회하지 않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뜻밖에도 “후회막급”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직장 비리는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능사인 것 같다”는 회한도 마구 쏟아냈다.
“솔직히 후회합니다. 이지경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참한 생활을 알았으면 내부고발은 물론 소송 시작도 안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세상이 더럽더라도 그냥 놔둘걸 그랬어요. 최소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말이죠. 시간을 되돌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실추된 명예를 반드시 회복하겠다는 김씨의 의지는 그대로다.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복직을 통해 증명하겠다는 각오다.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죠. 내년엔 끝나겠죠. 하여튼 하루 빨리 법원과의 악연을 끊고 싶을 뿐입니다.”

27년 퇴직금 4억원 묶여
“최종 판결 전까지는…”


김씨는 지금도 어디선가 내부 고발의 병폐를 알리고자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눈물은 거대한 장막 뒤에 가려져 점점 메마르고 있다.
“법원이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면 한 가족의 인생이 이렇게 휴지통에 버려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 맺힌 외침이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공허한메아리로 그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그리고 그는 단언했다. “참된 목소리가 보복을 당해도 구제를 요청할 곳은 대한민국엔 없다”고.

사진=송원제 기자


<보호책은?>

“보복, 대책 없다!”

내부고발자 보호책은 갖춰져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공익제보자를 보호할 만한 제도적장치는 미흡한 형편이다.
현행 부패방지법에 따르면 보호 가능한 내부고발자를 공직자와 공공기관이 관계된 부패행위 제보자로 제한하고 있다. 민간부문인 경우 원상회복 등을 강제할 수 없고 권고 외에는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결국 공익제보자가 보복 징계를 당해도 구제를 요청할 곳이 없는 셈이다. 예외적으로 국가청렴위원회에 신고된 경우에만 민간영역의 내부고발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위원회가 독자적인 조사권이 없어이 역시 미흡하긴 마찬가지다.



법조계 전관예우 <실태>

1~20위 변호사 90% 최종 근무지 개업
법원장 출신 1년내 최종 근무지  사건 수임

법조계의 ‘전관예우’문제가 또다시 도마에올랐다.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우윤근(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하반기 형사사건 수임 건수에서 1∼20위를 차지한 변호사 중 17명이 자신의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1위를 기록한 조모 변호사는 대전지검에서 퇴임한 뒤 대전에서 개업해 하반기에만 64건을 수임했다. 2·3위인 김모·이모 변호사는 인천지법에서 옷을 벗고 인천에서 개업, 각각 62건과 57건의 사건을 수임했다. 7~20위에 오른 변호사 역시 모두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해 35~48건의 사건을 맡았다.
이날 참여연대도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다.

참여연대가 2004∼2007년 퇴임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들의 사건수임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퇴임해 개업한 고등법원장 7명과 지방법원장 13명 모두 퇴임일로부터 1년 이내에 최종 근무했던 법원의 사건을 수임했다. 이들 법관이 맡은 사건은 판결문 등을 통해 확인된 것만 모두 2백10건으로 이중 형사사건이 1백55건(73.8%)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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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