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새, 갈대 명승지와 함께하는 ‘맛기행’ ⑤광주광역시

고개와 능선 따라 펼쳐지는 하얀 군무, 무등산 억새

무등산은 빛고을 광주를 품은 ‘어머니의 산’이다. 가을이면 어머니 가슴처럼 따사로운 능선에 억새가 핀다. 무등(無等)에는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해발 1187m로 풍기는 느낌에서 ‘무등’의 가치가 빛난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를 껴안은 산 가운데 높이 1000m대는 무등산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등산은 2013년 국립공원 21호로 지정됐다.

가을 무등산 산행은 억새 덕분에 발걸음이 들뜬다. 10월에 접어들면 정상 주변으로 억새가 하얗게 피어난다. 긴 숲길을 무념무상 걸으며 피로감이 덜한 것도 불현듯 억새와 마주할 광경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무등산 억새 산행은 오르는 길, 고개, 능선에 따라 다채롭다. 가장 일반적인 출발 포인트는 두 곳. 증심사 지구에서 출발해 중머리재와 장불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 원효사 지구 원효분소에서 출발해 서석대에 오른 뒤 장불재를 돌아오는 코스다. 증심사 지구 중머리재 코스는 산행 초입에 사찰, 미술관 등 볼거리가 곁들여져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산 중턱인 중머리재를 넘어서면서 크고 작은 억새숲이 길동무가 된다.

원효분소 입구에서 서석대까지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과 무등산옛길이 호젓하게 이어진다. 원효사 지구 코스에서는 우회하는 꼬막재 방향을 선택하거나, 사양능선을 넘나들며 여유롭게 억새를 감상할 수도 있다. 무등산 산행은 원점 회귀보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을 달리하는 게 진면목을 즐기는 요령이다.

증심교에서 출발해 문빈정사, 증심사를 거쳐 중머리재로 향하면 첫 쉼터인 당산나무까지 평이한 길이다. 당산나무는 수령 450년, 둘레 4.8m 아름드리 느티나무다. 당산나무에서 계곡 숲길과 돌계단을 거쳐 한 시간 정도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는 너른 공간과 마주한다. 억새 산행의 서막을 알리는 중머리재다. 해발 617m 중머리재만 올라도 억새 너머로 작은 능선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하늘거리는 억새

중머리재에서 장불재까지 본격적인 억새 산행이 이어진다. 용추삼거리에서 중봉으로 방향을 잡아도 억새가 흐드러지고, 갈 길을 고집해 장불재에 오른 뒤 큰 숨을 쉬어도 좋다. 장불재는 정상 등반의 마지막 쉼터이자, 무등산 억새 향연의 대표적인 아지트다. 장불재에서 백마능선으로 길을 잡으면 완만한 곡선을 따라 억새숲을 가로지른다. 하늘거리는 억새꽃이 백마 갈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백마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억새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해를 등지고 올려다보는 억새는 짙은 갈색을 띠고, 정상에서 해를 마주하는 억새는 은빛으로 부서진다. 석양의 억새는 황금빛으로 물들며 가을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장불재에서 억새밭 너머로 바라보는 정상 주상절리대는 무등산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입석대, 서석대 등 높이 1000m 주상절리대는 무등산의 지질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천연기념물 465호다. 주상절리대는 흐린날이면 구름에 휩싸여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입석대에는 오각·육각 돌기둥 30여 개가 10~18m 높이로 솟았다. 천왕봉 통행 제한으로 무등산 정상 역할을 대신하는 서석대(1100m)는 돌기둥 200여개가 병풍처럼 이어진다. 예전에 무등산은 서석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서석대 너머 원효분소까지 무등산옛길이 단장됐다. 무등산국립공원 탐방센터에서 추천하는 길로, 숲길 코스 외에 능선 코스로 내려올 수 있다. 이곳 숲길은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울창하다. 원효분소 초입에는 무등산 정상 높이와 같은 1187번 버스가 다녀 여운을 남긴다. 무등산 정상까지 왕복 산행에는 5~7시간이 걸린다. 국립공원 입구 탐방센터에서는 억새를 만날 수 있는 주요 포인트와 구간별 난도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무등산 길목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어 산행에 흥미를 더한다. 초입 증심사는 광주광역시의 당당한 ‘문화재 1호’다. 신라 헌안왕 때 창건했으며, 혜조국사가 중창했다. 오백전을 제외하고 대부분 1970~1980년대에 복원됐다. 증심사 계곡에 있는 의재미술관은 자연 친화적 미술관을 표방하는 곳으로, 의재 허백련 선생의 그림을 전시한다.


울창한 무등산 옛길

무등산에 오르는 이들의 미각을 자극하는 별미는 보리밥정식이다. 무등산 보리밥정식 상차림에는 10여가지 산나물 외에 돼지머리고기, 도토리묵 등이 푸짐하게 오른다. 참기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며,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찢어서 얹어 먹으면 향수가 피어오른다. 7000원선으로 값도 저렴하다.

억새의 군무는 영산강 일대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10월 한 달간 매주 토요일 오후, 극락교 일원에서는 영산강억새생태문화제가 열린다. 억새 감상을 마치고 저녁에는 문화적 향취를 음미하며 보낸다. 양림동 오거리 일대에는 양림교회를 비롯한 근대 문화 유적이 있고, 카페거리도 조성됐다. 앙증맞은 장식과 벽화로 단장한 펭귄마을 역시 옛 골목의 정서가 묻어난다.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산책하며 가을 향에 취해도 좋다.


==== 여행 정보 ==============================

당일 여행 코스
의재미술관→증심사→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무등산옛길→원효분소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의재미술관→증심사→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무등산옛길→원효분소
-둘째 날: 양림동 근대 문화 유적→펭귄마을→광주호 호수생태원→예술의 거리→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웹사이트 주소
-광주광역시 문화관광포털 http://utour.gwangju.go.kr
-무등산국립공원 http://mudeung.knps.or.kr
-증심사 www.jeungsimsa.org
-국립아시아문화전당 www.acc.go.kr

문의 전화
-광주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62)613-3622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 062)227-1187
-양림동주민센터 062)607-4502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899-5566

대중교통 정보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 KTX 하루 24회(05:20~22:15)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광주,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50여 회(05:30~다음 날 02:0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광주종합버스터미널 062)360-8114, www.usquare.co.kr)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천안 JC→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두암교차로→남광주교차로

숙박 정보
-베니키아 호텔예술의전당: 서구 시청로20번길, 062)600-9999, www.hotelarthall.co.kr (베니키아)
-세종호텔: 북구 경양로165번길, 062)528-0071 (굿스테이)
-에프엔티호텔: 서구 상무연하로, 062)714-1003 (굿스테이)

식당 정보
-전북식당: 보리밥, 동구 증심사길, 062)227-1449
-송정떡갈비 1호점: 떡갈비·육회비빔밥, 광산구 광산로29번길, 062)944-1439, www.sjddukgalbi.co.kr
-조선한정식: 한정식, 서구 상무대로, 062)365-6822


축제와 행사 정보
-영산강억새생태문화제: 10월 매주 토요일 오후 4~7시, 극락교 일원, 062)613-3622
-무등울림축제: 10월 한 달간, 전통문화관·운림동, 062)232-1501

주변 볼거리
광주향교, 광주시립미술관, 김대중컨벤션센터, 월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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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