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덮치는 3대 쟁점밀착취재


여의도가 출렁이고 있다. 굵직한 현안들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까닭이다.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북핵 문제,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 모욕죄 입법, 검찰의 구여권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작업 등 세 가지다. 북한은 최근 두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는 최근 유명 연예인의 자살 등을 계기로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다. 구여권 인사들에 대한 전면적 사정도 여의도 정가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국방위의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태영 합참의장은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소형 핵탄두를 개발했느냐’는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의 질문에 “뭐든지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이 (기술개발을) 하고 있으리라 본다”며 가능성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김 의장은 ‘북한이 40kg의 플루토늄을 가지고 있다는 게 국방부의 의견인데 이런 양이면 핵탄두를 몇 개 제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양이면) 6~7개를 제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북, 군사적 무력시위 긴장감만 고조

북한 문제 전문가인 한 인사는 “북한이 자신들의 핵능력을 확실하게 알리려고 추가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 소형 핵탄두의 위력을 공간적으로 과시하고자 미국까지 사거리로 둘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핵실험 2주기나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을 기해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사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한 지 10월9일로 2년이 됐다. 하지만 북한의 핵을 폐기하기 위한 북핵 6자회담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검증문제를 놓고 북·미가 이견을 보이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신고와 검증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의 검증방안에 합의해야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2.13합의에는 신고서를 제출하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게 돼 있다”고 미국의 약속 위반에 맞서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특히 테러지원국 해제 유보에 대한 불만으로 불능화가 이뤄지던 핵시설에 대한 복구를 시작하고 핵재처리시설을 재가동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강경기조를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며칠간의 방북활동을 마치고 북한이 제안한 메시지를 들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힐 차관보는 방북 기간 중 북한측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과 검증문제 등을 협의했다.

아직까지 협의내용이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힐 차관보는 정식 신고서에 담긴 영변 핵시설을 먼저 검증한 뒤 북·미 간 비공개의사록에 담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및 핵확산 문제는 추후 검증한다는 이른바 ‘분리검증안’을 제시해 북한의 호응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이에 따라 힐 차관보가 전달한 북한측의 제안에 대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가 향후 6자 회담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지렛대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0월2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 8개월 만에 열린 첫 판문점 남북 군사실무회담은 1시간30분이란 짧은 시간으로 끝마쳤다. 북측은 이날 남측에서 날려 보내는 삐라(전단) 문제를 집중 제기하며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삐라가 계속 날아오면 개성공단사업과 개성관광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며 개성과 금강산 지구 내 남측 인원의 체류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회의에 참석한 남측 관계자들을 압박했다.

북측이 이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와 관련한 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북측이 군사실무회담에서 이같은 문제를 제기한 것은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의 상호비방 등 선전활동 금지 합의가 동일한 채널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지난 2일 북한이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우리 민간단체들의 삐라 살포 중단을 요구한 데 대해 “해당 단체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고 8일 발표했다.

북한의 이번 문제제기는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들이 삐라를 풍선에 실어 북한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지난 2003년부터 ‘김정일은 3백만 인민들이 굶어 죽을 때도 일본 요리사를 불러 진수성찬을 차렸다’ ‘기쁨조 미녀들과 향락의 노래를 불러대며 인민들의 피와 눈물을 마셨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삐라를 풍선에 실어 북한으로 보내고 있다.

불거진 삐라 문제 해결 정부 ‘발만 동동’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을 중지하기로 한 남북간 합의를 성실히 이행, 준수한다는 입장 하에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 문제를 다뤄 나가고 있다. 전단 살포를 예정하고 있는 1개 이상의 단체를 대상으로 남북 간 합의, 군사실무회담 내용, 현재 남북관계 상황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자제를 당부했다”고 밝혔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북한의 삐라 살포 중단 요구에 대해 “우리 전단지 때문에 개성공단을 안 하겠다는 것은 적반하장격이다. 왜 남북관계가 경색이 됐냐. 북한에 관광하러 갔던 우리 관광객, 그것도 아줌마를 북한 군인이 조준사격해서 살해한 것에 국민이 분노해 그렇게 된 것이지 우리 전단지 때문이란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현재 ‘자유북한운동연합’, ‘탈북인단체총연합회’ 등 대북 민간단체들은 이같은 정부의 요청을 묵살하고 북한의 노동당 창당 63주년인 오는 10월10일에 맞춰 예정대로 북한을 향해 전단지를 날려 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통일부 직원 2명이 찾아와 전단 살포를 연기하거나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도 나왔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회 대표는 “최근 경찰이 전화를 걸어와 전단을 언제, 어디서 보낼 건지 등을 문의하는 일이 잦아졌다면서 계획대로 날려 보내기 위해 강화도나 파주, 포천 등의 후보지를 놓고 마지막에 풍선을 날릴 장소를 선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현실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실무부서에선 일단 정부입장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기 때문에 현재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RFA는 실제로 전단이 북측에 뿌려질 경우 북한 군부는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성관광과 개성공단 운영 등과 관련해 다양한 방법으로 남측에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탈북자 관련 단체들은 2003년부터 풍선에 삐라를 실어 북한으로 보내고 있으며 국내 종교단체와 미국 인권단체 등이 자금을 후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미사일 2발 발사 의미 분석 놓고 갑론을박

북한은 지난 7일 서해안으로 두 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이 단거리미사일은 KN-01 지대함 미사일을 개량한 공대함 미사일로 추정된다고 8일 군 당국이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미사일은 IL-28 폭격기에서 해상으로 발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KN-01은 실크웜(사거리 83~95km)을 사거리 100km 이상으로 개량한 지대함 미사일로, 길이 5.8m, 직경 76cm다. 북한은 이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려 공대함 미사일로 개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북한이 추가로 다수의 단거리 지대함 및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원회 비공개 국정감사에서 이같은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이번 미사일 발사가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북한 군부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측면 외에도 최근 국제관함식 등 우리 측의 대규모 건군 60주년 기념행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태영 합참의장은 국감 답변에서 “북한은 6~7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갖고 있으며 (미사일에 탑재가 가능한) 소형 핵탄두 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본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모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을 못하도록 타격을 가하고 북한이 쐈을 때는 중간에 인터셉트(요격)할 수 있도록 공군력이나 패트리엇 미사일 등의 전력을 증강하고 관련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 모욕죄 입법화 여 ‘공세’, 여 ‘반발’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옛 소련이 1960년 개발한 중거리 함대함 미사일인 스틱스(Styx·사정거리 46㎞) 미사일의 개량형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이 스틱스 미사일을 지대함으로 개량한 KN-01 미사일 실험을 해왔고 이번에는 이 KN-01 미사일을 공대함(사정거리 70㎞ 추정)으로 개조해 IL-28 폭격기에서 발사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해군은 해상초계기 P-3C에서 발사하는 사정거리 1백40㎞의 하푼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의 공대함용 미사일은 대공방어 능력이 취약한 광개토대왕함(KDX-Ⅰ급) 이하의 우리 함정들엔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KDX-Ⅲ급)이나 충무공이순신함(KDX-Ⅱ급)과 만나면 우리의 SM-2 함대공 미사일이 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이번 실험을 앞두고 함정들의 통행 제한을 2일부터 15일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조만간 한 번 더 같은 실험을 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8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관련 “우리도 뉴스를 보기는 했지만 확인해 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매코맥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다만 일반적인 코멘트를 한다면 우리는 이런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역내 긴장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의 사이버모욕죄법과 인터넷 실명제 추진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사이버 폭력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권 시절에 이미 사이버폭력죄를 신설하려고 했다. 표현의 자유라 해서 남에게 해악을 끼치고 남을 비방하고 욕설하는 자유가 아니다. 인터넷 공간이 화장실 담벼락처럼 사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는 두 배 이상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강력히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당 여의도연구소가 최근 여론조사를 실시해 사이버 모욕죄 도입에 대해 60.7%의 찬성이 있었고 반대는 29%, 인터넷실명제 강화는 59.5%가 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월8일, 과거 정권시절이던 2005년 정보통신부(현 방통위)에서 사이버 모욕죄 신설이 타당하다는 연구용역을 실시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방통위로부터 입수한 2005년 연구용역 중간보고서를 근거로 “사이버 공간에서 모욕행위에 대한 입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정보통신망법에 사이버 모욕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가 2005년 5월, 두 차례의 보도자료를 통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등에 대해서는 오프라인과 달리 반의사불벌죄, 친고죄 등을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이후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위한 구체적 법률 개정안을 성안하기 위해 용역을 발주했다는 것이다.

그는 “2005년 참여정부에서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했다면 2007년 이후 인터넷 악성 댓글로 자살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이버 모욕죄 신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법무부도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과 관련, 사이버 모욕제 신설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는 “사이버상의 모욕행위는 일반 모욕행위보다 더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처벌을 강화한 특별법 형식의 사이버 모욕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사이버 모욕죄의 형량을 형법상 모욕죄의 형량보다 높이는 한편, 고소?고발 없이도 수사가 가능하도록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김경한 법무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과 관련해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박용석 검사장)는 지난 8일, 이라크 유전개발 관련 청탁과 함께 수억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김상현 민주당 전 상임고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7월 한국석유공사가 이라크 유전개발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할 당시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로부터 컨소시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다.
 
중앙수사부(부장 박용석 검사장)는 지난 1일, 조일현 전 국회의원을 뇌물수수 등 혐의로 불러 조사했다. 강원 홍천?횡성에서 14대,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 전 의원은 지역 건설업체인 S사로부터 강원랜드의 공사를 하청받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민주당 강원?홍천횡성 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런가하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의 출국금지와 관련해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에게 로비가 이뤄진 정황을 포착하고 정 고문을 소환조사했다. 정 고문은 2005년 5월 이라크에 병원을 짓고 있던 최씨가 이라크 방문을 금지한 외교통상부 지침을 어기고 현지에 다녀왔다가 적발돼 출국금지 조치를 당한 상태였고 이를 해제하기 위해 외교부 관계자 등에게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검찰은 정 고문을 상대로 최씨로부터 금품을 받았는지, 외교부 관계자 등에게 청탁을 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당시 정 고문은 16대 국회의원(2000∼2004년)으로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돼 있었다. 검찰은 지난 2006년 출국금지 조치를 당한 최씨가 AK캐피탈 간부인 문모씨(구속)를 통해 출금 해제 청탁 대가로 정 고문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구여권 인사 겨냥 전면 사정에 정가 ‘술렁’

최씨는 국민의 정부 시절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았으며 지난 1999∼2000년 새천년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의 비서를 지낸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고가의 외제 명품시계를 차고 있었다고 발언한 혐의로 기소된 김현미 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에게 징역 1년6개월이 구형됐으며 선고공판은 10월 15일에 내려졌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국감진행으로 어수선한 여의도에 폭풍전야의 전운이 감지되고 있다”면서 “3대 현안이 어떤 방식으로 여의도 정가를 덮칠 지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그 향방을 가늠하기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