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철의 부동산테크 필승전략 <13>

놀릴 수 없잖아……변신하니 수익률 ‘쑥쑥’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공실이 늘어난 상층부 상가, 사무실, 수익률이 떨어지는 역세권 인근 모텔 등 수익형 부동산들이 용도변경이나 리모델링을 통해 수익성이 좋은 원룸텔, 고시텔로 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변신을 통해 공실부담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장기간 방치할 경우 금융비용 및 관리비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실 가능성이 많은 2층 이상의 상층부 상가를 상권의 특성에 맞는 스터디카페와 같은 새로운 수익형 모델 개발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춰 새로 생긴 사업 모델을 적극 유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공실 빌딩’리모델링 통해 임대료·매매가 껑충
원룸·고시텔, 스터디카페 등 수익형 모델 인기


최근 장기간 공실인 상가들이 원룸텔이나 고시텔로 변신중이다. 원룸텔로 변경하는 경우 투자비용이 크지 않으면서 수익률은 상가 2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상층부에 있어 기존 임차인이 계약이 끝나거나 영업이 잘 안 돼 계약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경우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장기간 공실로 방치돼 있던 ‘천덕꾸러기’상가가 원룸텔로 변신하고 있다.

천덕꾸러기서
황금알 거위로

2009년 7월 건축법상 용도 분류에 포함되지 않았던 고시원이 제2종 근린생활시설(바닥면적 1000㎡ 미만)로 인정받은 후부터다. 주로 상가 공실률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되는 경기도 일산·분당 신도시, 용인시 동백지구, 부천시 일대 등에서다.

서울·수도권에 건물을 신축하는 경우 토지매입비용과 건축비 등 최소 10억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기존 상가를 리모델링하는 경우 투자비가 상당히 절감된다. 리모델링 비용은 서울은 3.3㎡당 280만원선, 수도권은 210만원선이다. 전용 400㎡ 상가의 경우 상가 매입비에 리모델링비 2억5000만~3억3000만원을 투자하면 32실 이상의 원룸텔을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기존에 상가를 가지고 있는 수요자 뿐 아니라 원룸텔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경·공매를 통해 저렴하게 상가 건물을 매입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1~2인 가구가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재건축·재개발 등으로 다세대·다가구 등 소형주택이 줄어들어 수요가 넉넉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가보다 수익률이 높다. 판교, 용인 등 일부지역에서는 아예 분양중인 상가의 일부 층을 원룸텔로 분양하기도 한다. 원룸텔로 리모델링을 고려하고 상가 일부 층을 매입할 경우 같은 건물 안에 노래방 등 소음이나 진동을 발생하는 업종이 입점해 있는 건물은 피해야 한다. 대부분 원룸텔의 경우 구분등기가 아닌 지분등기인 경우가 많아 소유권 이전에 제한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임대수요를 고려해 대학가나 역세권 등 1~2인 가구가 많은 곳이 유리하다.

서울 남현동에 사는 박경한(39)씨는 총 5층 상가건물 중 사무실 용도로 사용하고 있던 4, 5층 2개 층을 빌려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교통편이 좋은 사당 역세권에 위치해 있지만 임대가 안 돼 오랫동안 비어있던 업무시설인 사무실을 고시원 120실로 바꿨다.

고시원 운영자인 박씨의 전체 투자비용은 3억원 정도로 리모델링 공사비용이 2억5000만원 정도 들어가고 보증금이 5000만원에 월세는 500만원 정도 들었다. 주로 강남과 충무로, 명동일대 직장인들이 이용하는데 임대료는 방의 크기에 따라 45만원에서 50만원선이다.

매달 들어가는 건물 임대료와 관리비를 제외하고 투자금 대비 수익률만 최소 25%에 달한다. 때문에 도심 주요 역세권에서는 기존 업무시설인 사무실을 주거용 고시원으로 개조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비슷한 면적으로 건물을 신축해서 임대 사업에 나서는 경우 토지매입비용과 건축비 등 최소 1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기존 상가를 리모델링할 경우 비교적 소액으로 짧은 기간 안에 설비를 마치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주의할 점도 적지 않다. 인건비, 냉난방비와 같이 규모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고정비용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최소 면적이 400㎡는 돼야 하고 역세권, 대학가, 산업단지 주변 등 유동인구나 상주인구가 많은 지역이 유리하다. 또 건물의 용도가 고시원 임대 사업을 할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로 지정이 돼 있는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위법 건축물은 아닌지 건축물 대장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최근에는 도심의 모텔이나 사우나를 낙찰 받아 원룸이나 고시텔로 용도를 변경하거나 스크린골프장, 여성전용 헬스장 등으로 바꿔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전문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법과 경기침체가 맞물리면서 수익률이 급격히 떨어진 역세권 인근 모텔이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익률이 떨어지는 도심 모텔을 경매로 싼값에 잡아 리모델링을 한 뒤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바꾸려는 투자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상주인구 등 주변 상권
위법 건축 여부 살펴야

작년부터 건축허가가 이뤄지고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은 독신 또는 나홀로족, 신혼부부 등 수요를 위해 역세권 등에 들어서는 소형(원룸형)주거 형태다. 이 때문에 기존 역세권 오피스텔 상가, 모텔 등을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용도변경하려는 건물주들이 늘고 있다.

모텔이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상가, 오피스텔 등도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활용이 가능하지만, 그중에서도 모텔은 대부분 역세권 등 상업지역에 있는 데다 방의 구조가 도시형 생활주택과 비슷해서 개조하기에 안성맞춤이란 분석이다. 도심 모텔을 경매로 낙찰 받아 원룸이나 고시텔, 일반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하거나, 규모나 시설 면에서 최신식 찜질방에 밀려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사우나를 스크린골프장, 여성 전용 피트니스센터 등으로 바꿔 가치를 올린 뒤 되팔거나 안정적인 임대료 수입을 얻는 방식도 유행이다.

신림역세권에 있는 K모텔은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로 3~4년 전에는 월 4000만원대를 유지하는 수익률 높은 숙박시설이었다. 그러나 1~2년 사이 주변에 신축모텔들이 들어서면서 매출은 점점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경매로 나오게 됐다. 이 모텔을 리모델링한 건축업자인 허창(40)씨는 경매로 매입 후 숙박업을 포기하고 일반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해 임대수익률 9%대의 안정적인 상가 건물로 수익을 얻고 있다.

방배동에 사는 홍성호(51)씨는 작년 서울 군자교 인근에 있던 5층 규모의 산부인과 전문 병원 빌딩을 30억원에 매입 후 5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후 약국과 이비인후과 소아과 등 개인 병·의원 상가로 탈바꿈했다. 이 빌딩에선 현재 보증금 6억원, 월 임대료 2800만원의 고정 수익이 들어온다. 리모델링 후 시세도 55억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매입한 건물을 리모델링해 도시형생활주택이나 고시원으로 변신한 사례도 있다. 수원에 사는 임홍수(45)씨는 올초 안산시 중앙동 지역에서 건물을 4억8000만원을 들여 매입한 빌딩을 고시원으로 리모델링했다. 리모델링에 들어간 비용은 약 1억원. 현재 이 고시원에선 보증금 1억원과 월 임대료 520만원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빌딩 가치도 8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테마상가의 경우 아예 업무용 오피스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2005년 3월 오픈한 성남 분당구 수내역 인근 애견 전문 쇼핑몰 ‘쥬쥬시티’는 개점한 지 6개월 만인 2005년 9월말 문을 닫았다. 분양률이 낮고 임차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데다 운영비용에 비해 수익률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인데 현재 이 건물은 통째로 외국계 펀드로 넘어가 수익형 오피스빌딩으로 전환됐다.

수도권 기준 비용 3.3㎡당 210만~280만원
3억원 들이면…투자 대비 수익률 최소 25%


분당 서현역 인근 테마상가 ‘시마 1020’도 마찬가지다. 2003년 미분양 상가를 일부 사무실로 전환했던 이 상가는 분양률이 50~60%에 그치는 바람에 시행사 측에서 금융비용을 치르지 못해 한신상호저축은행이 출자한 판타곤이라는 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판타곤측은 이 건물을 하층부는 편의점 음식점 등의 근린생활시설, 상층부는 사무실로 전환했다.

이밖에 서울 남부터미널 국제전자센타 쇼핑몰 역시 오피스로 전환했다. 통상 연면적 3만3000㎡ 이하 오피스 빌딩은 상가에 비해 3.3㎡당 임대료가 적다는 장점도 전환하는 데 작용을 하였다.

인천국제공항 인근에서는 비워져 있는 오피스텔이 숙박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 등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소유주로부터 오피스텔을 빌려 적게는 하루 이틀에서 많게는 2, 3개월까지 공항 이용자와 여행객들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는 형태다. 인천공항 인근 국제업무지구에는 2~3년 전부터 오피스텔이 대거 들어섰지만 장기 거주 수요가 없어 임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단기 숙박 수요는 많다. 오피스텔을 이용한 숙박업 운영은 임대 수요 부족에 따른 저렴한 오피스텔 임대료와 인천공항 인근의 부족한 숙박시설이라는 조건을 파고든 결과다.

서울 신촌에서는 임차인을 구하기 힘든 지하상가와 이면도로 상가건물의 2층 이상 상가에서 ‘스터디카페’가 성업하고 있다. 스터디카페는 직장인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카페 등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 및 스터디 공간을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거나 차와 음료를 파는 사업모델로 2~3년 전부터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공실을 줄이려는 상가 소유주와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역세권에 넓은 공간을 확보하려는 사업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사례다.

“임대 수요에 맞게”
대형 쇼핑몰도 변신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의 주상복합상가인 ‘르메이에르’에서는 지하상가 점주들이 연합해 조합을 결성하고 스터디카페를 유치했다. 지하 2층에 위치해 2년여간 공실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7년 4월 1155㎡의 공간을 활용해 스터디카페가 문을 열자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얻고 있다.
노래방과 주점이 성업하던 이면도로의 2층 이상 상가에도 스터디카페가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대거 공실이 나면서 권리금이 사라지고 임대료가 소폭 떨어지자 객단가가 높지 않은 스터디카페가 입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경철은?

- 스피드뱅크, 조인스랜드, 닥터아파트 부동산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부동산 기사 제공
- 프라임경제 객원기자
-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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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