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내정부터 낙마까지 풀스토리

차관 찍고 부총리로?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 본 ‘한겨울밤의 꿈’


정치권에서는 이번 정동기(58) 전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관련, 득실 계산이 한창이다. 주로 제기되는 최대 수혜자는 민주당을 필두로 한 박지원 원내대표 그룹이 아닌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다. ‘안상수발(發) 부적격론’이 자진 사퇴로 이어진 가장 큰 원인이라는 판단에서다. 대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인물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MB)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잘못된 인사로 인해 레임덕 시기가 앞당겨질 거란 얘기다. 이 대통령과 박빙의 승부를 펼친 또 다른 피해군(群)에는 실질적으로 ‘12·31 개각’ 관련 인사를 이끈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었다. 의원직 포기 6개월 만에 청와대에서 낙마해 ‘야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전 후보자 본인을 꼽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첫  ‘사전’ 자진사퇴
여야 집중 포화 속 지명 12일만에 꿈 ‘물거품’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는 지난 ‘12·31 개각’ 발표 직후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먼저 인사청문회에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각오를 밝힐 예정이라 내정 단계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 “담배 하나 갖다주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한나라당발 자진 사퇴 요구’ 소식을 전하는 방송 뉴스를 보고 “나는 그간 마이너리그로 살아왔다. 세를 모아 본 적도 없고 절제하며 소신껏 살아 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사청문회 전 자진사퇴
각종 논란 제기돼 ‘송구’

그는 “민정수석 마치고 변호사를 했으면 수십억을 벌었을 텐데 (사건)수임으로 돈 버는 게 싫어 그냥 정부 법무공단 이사장으로 갔다. 나에게 공직이 천직인데”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정 전 후보자 부인이 곗돈 등을 부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알뜰살뜰 살아도 죄가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 전 후보자는 지난 12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그는 대검찰청 차장검사에서 물러나면서 법무법인 ‘바른’의 대표변호사로 자리를 옮겨 7개월 간 7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같은 ‘전관예우’와 관련된 돈 문제와 대통령 최측근 참모인 민정수석을 역임한 ‘출신지’에 따른 ‘감사원 독립성’ 침해 가능성 문제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의 사퇴는 감사원장 후보 내정 12일 만에 이뤄진 것으로 지난 2003년 감사원장에 대한 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후보자가 청문회 시작 전 사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보 지명 이후 12일간 막혔던 그의 말문은 사퇴의 변을 밝히는 자리에서 시원하게 터졌다. 정 전 후보자는 회견 당일인 지난 12일 통의동 금융감독원 별관으로 출근해 사무실에서 홀로 사퇴문을 읽으며 문구를 가다듬고 심경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짙은 남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오전 11시30분 통의동 금융감독원 별관에 마련된 기자 회견장에 입장했다.

회견이 시작되자 정 전 후보자는 “저는 오늘 감사원장 후보자 지위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부족한 사람이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돼 각종 논란이 제기된 데 대해 그 진상이 어떻든간에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며 미리 준비한 사퇴문을 읽어 나갔다. 그는 “평생 소신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왔다”면서 “남에게 의심받거나 지탄받을 일을 일절 삼가며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하고 살아왔다고 감히 자부한다”고 말했다.

두루미는 미역 안 감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먹칠 안 해도 새까맣다

인사청문회에서 의혹을 해명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청문회 없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재판 없이 사형 선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청문 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은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것’으로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라고 말했다.

정 전 후보자는 또 “30여년 법조 경력을 가진 변호사 급여와 이제 막 변호사로 출발하는 사람의 급여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액수가 많아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 회견장에서 이같이 밝히며 자신이 있었던 법무법인 ‘바른’의 급여 명세표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자신의 학벌과 관련된 언급도 했다. 정 전 후보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며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학위를 취득한 것까지 문제 삼는 대목에서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것만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수위서 MB와 ‘첫 만남’
천성관 낙마 책임 ‘민정수석 사퇴’ 

회견 말미에 정 전 후보자는 “이제 감사원장 후보자 직을 사퇴하고 평생 소홀히 해 왔던 가족의 품으로 ‘자연인’으로 돌아가려 한다”라며 당분간 공직을 맡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정 전 후보자는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통의동 사무실을 나서며 취재진에게 “홀가분하다. 집착을 떨쳐버리면 마음이 편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정 전 후보자는 그날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직에서도 자진 사퇴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이유와 진상이 어찌 됐든 감사원장 후보자직을 사퇴한 사람이 공단 이사장으로 남아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정 전 후보자는 1953년 8월 부산에서 출생한 정통 법조인 출신이다. 고향은 경북(TK)으로 알려졌지만 서울로 이사와 경동고를 졸업했다. 그는 한양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사시 18회)에 합격한 뒤 1981년 검사에 임용돼 대구·인천지검장과 대구고검장, 법무부 차관 등을 거쳐 대검 차장검사를 지냈다.

정 전 후보자는 대구지검장으로 재직중이던 지난 2004년 기업경영 혁신기법인 ‘6시그마’ 운동을 검찰에 도입해 검찰 개혁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6시그마’는 당시 일부 기업들에서 활용되었을 뿐 공공기관에서 이 기법을 활용한 것은 정 전 후보자가 최초였다. 그는 2007년 11월 대검찰청 차장을 끝으로 27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 ‘대통령에 누 끼치기 싫다’
‘기타 대학(비SKY)이지만 뛰어났는데’ 일각 ‘아쉬움’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MB 당선’ 직후 정 전 후보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법무·행정 분과위원회 간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정 전 후보자가 사전에 MB와 각별한 친분이 있을 거라는 세간의 추측과 달리 “인수위원회 위원으로 임명장을 받으러 간 날 이대통령을 처음 뵀다”고 정 전 후보자는 밝혔다.

퇴임 바로 다음 달 인수위 간사를 맡으며 MB와 첫 인연을 맺은 뒤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후임으로 현 정부 두 번째 민정수석을 지냈다. 그러나 2009년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자 후보자 선정 및 검증과정에 대한 총 책임을 지고 자리(민정수석)에서 물러났다.

그는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MB에게 “검찰총장 후보자의 선정 및 검증 절차의 불찰로 대통령에게 누를 끼친 것은 참으로 송구스러우며 소관 수석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보다 큰 꿈을 품어서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민정수석 퇴임 후 수십억 연봉의 변호사를 마다하고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자리에 취임했다. 2009년 9월 이후 임기 2년의 공단 이사장을 맡아왔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국회 본관 1층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직전 기자들과 대화 도중 “인격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데 안됐다. 기타 등등의 학교, 말하자면 SKY 출신이 아니면 그 바닥에서는 다 기타 등등이다. ‘SKY’ 출신 아니고 법무부 차관까지 오른 사람이 거의 없는데 (얼마나) 몸가짐을 잘 했으면 거기까지 올라갔겠느냐”라고 말했다. 정 전 후보자와 김 원내대표는 한양대 동문으로 나이는 김 원내대표가 2살 더 많다.

‘비SKY 출신’ 비주류
어떤 세력도 지원 안 해줘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경우 민주당이 그동안 인사청문회에서 문제로 삼았던 이른바 4대 의혹에 해당하는 사안이 한 가지도 없다”면서 “자진 사퇴하기에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4대 의혹이란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세금탈루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 논문표절을 더해 ‘4+1’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낙마 과정에서 한나라당 ‘메인 스트림’의 엄호 사격은 거의 받지 못했다. 이는 그가 ‘정통 TK출신’도, 현 정권 최대 실세 학맥인 ‘고대’ 출신도, 이 사회 최대 실세 그룹인 ‘서울대’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인데 이 같은 분석이 설득력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