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저축은행-건설사 삼각 커넥션 의혹

눈뜨고 날린 금싸라기 땅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용인시에서 이해하기 힘든 토지 사기 논란이 불거졌다. 건설사는 물론 금융사, 지자체까지 연루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난 2014년 용인시는 신봉2지구 도시개발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수지구 신봉동 402-1번지 일원에 약 42만㎡ 규모로 주거지 및 도시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게 주된 골자. 신봉2지구 도시개발이 완료되면 인근 지역은 7000세대를 아우르는 대단위 계획주거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다만 산155번지(1만1714㎡)에서 불거진 의혹은 쉽사리 지나치기 힘든 사안이다.

멀쩡한 땅에
토사 불법투기

신봉2지구의 핵심 위치에 자리한 산155번지는 4년 전까지 양성옥씨와 그의 부인인 김경미씨의 소유지였다. 하지만 신봉2지구 개발사업이 수립되기 직전인 2012년에 양씨는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현재 이 땅의 주인은 모아저축은행. 그러나 양씨 부부가 주목하는 건 산155번지를 소유한 모아저축은행이 아닌 일레븐건설이다.

주택건설 및 분양 시행업체인 일레븐건설은 용인시를 거점으로 그간 대형 건설사들과 시공 계약을 맺고 분양사업을 진행해왔다. 건설업계서는 손꼽히는 ‘디벨로퍼(부동산 개발 및 시행업체)’로 손꼽힌다.

일레븐건설과 양씨 부부가 엮인 건 지난 2004년 12월부터였다. 당시 일레븐건설은 인근 건설현장서 나온 토사를 산155번지에 투기하는 기막힌 행태를 벌였다.


덤프트럭을 통해 옮겨진 토사는 순식간에 산155번지 일대 약 9000㎡의 면적에 7∼8미터 높이의 야산을 만들었다. 양씨 부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2005년 9월에는 준공하면서 쌓았던 축대, 길, 철대문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일레븐건설이 연루됐다는 대략적인 정황은 2007년이 돼서야 겨우 드러났지만 현재까지도 일레븐건설은 당시 상황에 대해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일레븐건설 관계자는 “시일이 많이 흘러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라며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왜 일레븐건설은 납득하기 힘든 일을 벌인 걸까.

일단 산155번지의 입지적 특성을 감안해볼 필요가 있다. 일레븐건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신봉2지구 일대의 토지를 다량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봉지구단위계획도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만 신봉2지구의 핵심이 되는 산155번지를 손에 넣는 건 실패했다. 향후 시행될 개발사업을 감안하면 신봉2지구 한 가운데 위치한 산155번지는 반드시 필요한 토지였다.

엇갈리는 진술
진짜 내막은?

흥미로운 점은 용인시가 피해자(양씨 부부)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가해자(일레븐건설)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사실이다. 용인시가 보여준 행정 처리 과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산155번지 일대에 일레븐건설이 토사를 불법 투기한 사실을 알게 된 양씨 부부는 용인시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용인시는 2008년이 돼서야 용인경찰서에 고발했고 이마저도 보여주기에 불과했다. 심지어 불법 행위자가 일레븐건설이라는 사실은 중간에 누락됐고 용인경찰서는 행위자 불분명을 이유로 고발장을 반송한다.


승복하지 못한 양씨 부부는 일레븐건설을 추가 고발했다. 엉뚱하게도 이번에는 약 9000㎡에 달했던 토사 불법 투기 면적이 2000㎡으로 80% 가량 축소 기재됐고 이 진술을 토대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원상복구돼 투기면적을 알 수 없다”는 진술이 받아들여진 까닭이다. 그러나 현장 취재 결과, 11년이 흐른 지금도 산155번지 일대는 불법 투기된 토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태였다.

국민신문고에 진정도 해봤지만 용인시는 “준공처리된 산지전용허가지가 붕괴돼 토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원”이라며 국민신문고에 허위 사실을 보고했다. 이 모든 과정은 김씨가 보유하고 있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해당 내용을 토대로 용인시에 당시 정황을 문의했지만 뚜렷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용인시 산림과 관계자는 “오래 전 일이라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른 민원 처리였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일레븐건설] 남의 땅에 군침
[모아저축은행] 해결사 노릇
[용인시] 피해 호소에 팔짱만

한술 더 떠 용인시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내세워 양씨 부부를 극단으로 내몰기에 이른다. 양씨 부부가 1998년에 산155번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행했던 준공완료를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무효화시키고 나선 것이다.

통상 산지를 대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준공허가가 필수다. 준공허가가 떨어지면 전용허가를 거쳐 지목변경이 가능하다. 양씨 부부는 1998년 3월과 6월에 자신의 소유한 산155번지(1/4 지분)과 368-2번지를 합쳐 준공을 완료한 후 건축허가명의까지 취득했다.

이는 산지였던 산155번지와 잡종지였던 368-2번지가 상업용도로 개발 가능토록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산155번지의 나머지 구역은 당시 이 땅의 소유주였던 권씨를 통해 준공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어쩐 영문인지 용인시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무시한 채 2008년에 해당 토지에 대한 산림형질변경허가를 취소했다. 사실상 대지였던 땅을 산지로 되돌려놓은 결정이었다. 용인시가 내세운 취소의 사유는 적지복구예치비(인허가시 내는 세금) 미납. 1997년에 내야 했던 2668만8020원의 적지복구예치비를 2008년까지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 결과 양씨 부부는 적지복구예치비를 냈다는 영수증을 가지고 있었다. 영수증에는 당시 김씨가 소유한 산155번지 지분의 1/4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지고 있던 권씨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권씨는 준공 완료 후 예치했던 2668만8020원을 절차에 따라 1998년 3월에 환급받았다. 산155번지 일부와 368-2번지에 대해서는 김씨가 서울보증보험에 해당 금액을 납부하고 준공을 완료했다.

만약 용인시의 주장대로라면 산림형질변경허가 과정에서 적지복구예치금을 외상한 상태로 건축허가를 받았다는 엉뚱한 공식이 성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시는 10년간 양씨 부부에게 별다른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았다.

더욱이 용인시는 산림형질변경허가 취소 결정을 4년이 지나도록 양씨 부부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양씨 부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산155번지의 소유권이 모아저축은행으로 넘어간 2013년 무렵이었다.

미심쩍은 흔적
커지는 의혹


토사 불법 투기건 및 산림형질변경허가 취소는 결과적으로 양씨 부부의 재산권 방어에 중차대한 결함으로 작용했다. 추후 산155번지를 잃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모아저축은행은 국면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난 2001년 양씨 부부는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경매 낙찰을 통해 취득한 전례가 있다. 이 과정에서 양씨 부부는 수십억원대 금전적 손해를 입었는데 이 무렵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모아저축은행이다.

김씨는 당시에 모아저축은행 회장과 직접 대면했고 산155번지를 담보로 감정가는 200억원, 대출은 120억원까지 가능하다는 대답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50억원(2006년 1월)과 1년 후 10억원까지 총합 6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6년 간 매월 6500만원씩 도합 50억원의 이자를 모아저축은행에 납부했다.

그러나 2011년 말 양씨 부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보유 현금 고갈로 6개월분의 이자를 연체하게 된 것이다. 다급했던 양씨 부부는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 237번지 토지를 24억원에 매각했다는 매매계약서를 모아저축은행 실무자에게 보여주며 매매대금을 받자마자 연체이자를 완납하겠다고 거듭 표명했다. 모아저축은행의 임원이자 해당 업무 실무자였던 박모씨 역시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씨 부부에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한 지 3일 후 모아저축은행이 돌연 산155번지와 신갈동 237번지 등을 공동담보를 잡아 경매에 넘긴 것이다. 이로써 사전 계약했던 신갈동 237번지의 매매계약이 파기됐고 채무 변제의 길도 막혀버렸다.

공교롭게도 모아저축은행이 경매에 넘긴 산155번지의 낙찰자는 모아저축은행 자신이었다. 이전까지 대지로 인정받던 산155번지는 산지로 평가돼 시가의 1/6에 불과한 61억원으로 감정이 이뤄졌다. 이후 김씨에 대한 대출채권액과 맞아떨어지는 63억원에 산155번지에 단독 입찰한 모아저축은행은 2012년 6월에 유찰 없이 1차 경매기일에 낙찰받았다. 결과적으로 김씨는 63억원에 불과했던 땅에 6년에 걸쳐 50억원의 이자만 쏟아 부은 채 소유권을 상실한 셈이다.


김씨는 “대지로 감정 받아 법원에서 경매 낙찰받았던 산155번지가 다시 산지로 둔갑할 때까지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며 “이 땅이 대지가 아닌 산지로 60억원대 가치였다면 50억원이나 6년간 이자까지 내면서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겠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지가 산지로? 이상한 토지변경
대출금 압박하더니 직접 낙찰

현재 모아저축은행은 낙찰받은 산155번지를 4년째 되팔지 않고 있다. 산155번지를 처분하고자 수차례에 걸쳐 매각공고를 냈지만 무위에 그쳤다는 게 모아저축은행의 설명이다. 그사이 매각가격은 60억원에서 80억원으로 30% 이상 올랐다. 그만큼 새 주인 찾기는 더 힘들어졌다.

공교롭게도 현장 확인 결과 산155번지 일대에는 유치권 설정을 암시하는 듯한 10여 곳의 가건물이 곳곳에 방치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산155번지의 전 소유주였던 양씨 부부가 준공비용 보전을 이유로 설치한 가건물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모아저축은행이 시기를 봐서 산155번지를 일레븐건설에 넘기려 한다고 김씨가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0억 땅에
이자만 50억

그러나 모아저축은행은 양씨 부부의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당시 양씨 부부는 대출금에 대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했고 은행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매를 밟았다는 게 주된 요지다. 산155번지가 산지인 만큼 해당 지목에 다른 감정을 거쳤고 양씨 부부가 말하는 무언의 의혹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모아저축은행 여신처리팀 관계자는 “당시 양씨 부부는 모아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고서도 이자를 6개월간 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산155번지의 소유권을 잃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며 “모아저축은행은 분명히 적법한 절차를 거쳐 모든 과정을 완료했다. 벌써 4년이 넘은 이 일을 지금에 와서 문제시 삼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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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