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놓는’ 국회의원 특권 대해부

“금배지 달았는데…좀 누리자”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국민의 대표들이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난 여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유롭게 발언해 비리를 파헤치라고 준 면책특권을 이용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가 하면 불체포 특권을 이용해 법망을 피해가는 사람도 있다. 과거의 과오를 씻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화두도 이미 던져졌다.

20대 국회가 열리고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 같은 기류와 맞물려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방안을 마련할 기구를 설치키로 합의했다.

면책 불체포
손보기 작업

해당 기구를 국회 내 특별위원회 형태로 설치할지, 국회의장 산하 자문기구로 할지에 대해서는 여야 간 입장이 갈렸다. 정 국회의장이 기구 신설 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이에 3당 원내대표들도 모두 동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헌법학자인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악용 금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도 개혁 등 국회법 개정안과 구속된 국회의원의 수당 지급을 금지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의 내용에는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되지 않더라도, 재차 본회의에 자동 상정해 다른 토론을 하지 않고 다른 안건보다 먼저 표결로 처리되도록 했다.

정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로 “체포동의안의 표결 지연으로 인한 ‘제식구 감싸기’ 등의 비판을 해소하고, 표결에 대한 국회의원의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체포동의안을 개정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문제가 되고 있는 국회의원 특권 중 대표적인 것으로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들 수 있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면책특권을 의미한다.

이 특권은 국회 밖에서 민·형사상의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이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 폐지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반대로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국회 본래의 기능을 보장하려면 면책 특권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승함 전 교수는 "국회의원들의 조사 기능 과정에서 강한 발언이나 상대 모욕 발언이 나올 수도 있다"라며 "면책특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국회에서 말조심해야 된다는 것"이라고 말해 면책특권 폐지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면책특권 이용해 허위사실 유포
불체포특권 이용해 법 피하기도

불체포특권은 면책특권보다 폐지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면책특권은 감시와 비판이라는 순기능이라도 있지만 불체포특권은 원래 취지와 달리 ‘제 식구 감싸기’에 악용돼 왔다는 것이다. 헌법44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회의원들은 불체포특권을 악용해 비리 혐의가 있는 동료 의원을 감싸는 ‘방탄 국회’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방탄 국회는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이용한 것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국회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소속당이 일부러 임시국회를 여는 것을 말한다. 임시국회는 국회의원 4분의 1이상이 요구할 때 열릴 수 있기 때문에 방탄국회는 열리기 쉬운 상황이다.

지난 2014년 9월4일에 국회 본회의에서 철도 레일체결장치를 납품하는 AVT 업체대표로부터 관급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달라는 부정한 청탁과 함께 6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로부터 체포영장이 청구됐던 새누리당 소속의 송광호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당일 오후에 표결에 붙여져 총 투표수 223표 가운데 찬성 73표, 반대 118표, 기권 8표, 무효 24표로 부결되어 그 당시 제식구 감싸
기의 소위 ‘방탄국회’라는 비난 여론에 직면한 바 있다.


일단 법조계에서는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으려는 현재의 상황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국회가 불체포특권을 스스로 포기하면 수사 속도가 대폭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 관계자는 "국회의 논의 방향이 다행스럽게 생각된다”며 “‘비정상의 정상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일부 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 폐지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희상 의원은 지난 11일 불체포특권에 대해 “국회 내부조사권을 발동해 사건의 중대성, 체포 필요성 등을 파악해 희원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법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면 마땅히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국회의원에게는 면책·불체포특권만 주어지지 않고, 국회의원의 청렴의 의무, 국가이익 우선과 양심에 따른 직무수행의 의무, 지위남용 금지의 의무가 있다”며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헌법적 권리가 남용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에 대해 의원들 사이에서 폐지 또는 권한 줄이기에는 일정 부분 공감한 모양새다.

과도한 세비
눈먼 돈도

국회의원 세비도 과도한 특권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사무처가 발행한 ‘국회의원 권한 및 지원에 대한 국내와 사례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세비는 1억3796만원으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영국, 프랑스 보다는 높고 미국, 일본, 독일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일본과 미국은 각각 2억3698만원, 1억9488만원으로 우리나라 세비의 50%이상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이들 국가 대부분이 겸직을 통한 부수적인 수입을 허용하고, 퇴직 급여를 3년 이상 주는 등 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는 지원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반면 국회사무처 자료가 아닌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개 주요국 중 세비 상위 3위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단순 수치로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세비는 높았지만 GDP(국내총생산) 대비로 하면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진국 국회의원의 세비는 각 국가의 1인당 국민총생산의 2~3배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5.6배를 기록했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노 원내대표는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는 OECD 주요 국가 중 일본, 미국에 이어 3위”라며 “국민 소득 대비 의원 세비를 독일 수준으로 받으려면 세비를 절반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 세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도 쓴소리를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 일 안 하는 국회의원은 세비를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20대 국회 원구성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세비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 국회에선 내려놓을까
의원들은 여전히 갑론을박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국회의원의 세비를 동결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지상욱 대변인은 이날 혁신비대위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세비 동결은 특권 내려놓기나 개편 차원에서 올린 안건이 아니라 격차 해소,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솔선수범으로 제안됐다”며 “세비를 동결하는 방안을 이날 회의에서 의결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야당에 제안한 세비 삭감안과는 차이를 보였다. 동결 수순을 밟는 이유는 소속 의원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세비를 가지고 의원 특권 내려놓기 차원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게 상당 수 의원들의 의견”이라고 했다. 세비 동결은 야당과의 합의가 이뤄져야 확정된다. 하지만 야당의 반응은 차갑다.

더민주 관계자는 “지금까지 (세비동결에 대해)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라며 “비대위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의견을 취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른바 ‘눈먼 돈’으로 불리는 비상설 특별위원회 활동비도 특권으로 꼽힌다.

국회는 지난 6일 저출산대책특위, 정치발전특위, 평창동계올림픽특위, 지방재정분권특위, 민생경제특위, 남북관계개선특위, 미래일자리특위 등 7개 특위를 구성했다. 비상설 특위는 과거에 구성해 놓고 별다른 활동도 하지 않았던 것들이나 기존 상임위에서 다룰 수 있는 분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19대 국회에서 33개의 비상설특위가 만들어졌지만 이 중 대부분이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설립 취지에 맞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국조특위’는 16개월 동안 단 두 차례 회의를 열었다. 한 번은 위원회 구성, 다른 한 번은 위원회문을 닫으려고 소집했다. 비판 여론이 들끓자 당시 심재철 특위 위원장은 특위 활동 기간 받은 활동비 9000만원을 국회 사무처에 반납하기도 했다.

특위 위원장은 여야 각 당의 3선 이상 중진 가운데 상임위원장이나 주요 당직을 배정받지 못한 의원에게 돌아간다. 특위 위원장에게는 월 600만원의 활동비가 별도 지급되고, 위원들도 회의비나 수당 등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제 없어진
특권도 있는데…


국회사무처는 언론을 통해 집중 보도되고 있는 국회의원 특권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 특권 200가지는 잘못 알려진 이야기”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의원은 항공기, 철도, 선박을 무료로 이용한다’에 대해서는 과거 국회법에는 ‘의원은 국유 철도 선박과 항공기에 무료로 승용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로 전환된 이후 국회의원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국유의 교통수단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했다. 이 규정은 지난 2014년 3월 삭제됐다는 것이다.

‘의원 가족까지 국회 내 치과, 내과, 한의원 등의 진료가 무료’라는 주장에 “의무실에서의 간단한 진찰과 상담 서비스는 무료”라며 “진료 행위 관련 실비가 소요되는 경우에는 환자 본인이 부담한다”고 밝혔다. 해당 시설은 의원 뿐 아니라 국회 직원, 국회 출입기자 등도 이용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말 강원도 고성 연수원이 완공될 예정이다. 면적만 39만4139㎡로 축구장 크기의 55배에 달하고 350억 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됐다. 해당 시설은 강의실, 토의실, 간담회실은 물론 80여실의 숙소와 식당, 매점까지 갖춘 것으로 알려진다. 숙소에서는 근처 해수욕장이나 대형 워터파크, 골프장까지 차로 10∼1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존 연수원도 취지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3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들여 ‘국회 전용 콘도’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도 일었다. 이에 국회 사무처는 “해당 연수원은 5000여명의 국회직원, 지방의회 의원 및 직원, 시민에 대한 연수를 위한 교육·연수시설”이라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뜯어 고칠까 그냥 넘길까
본전 생각에 “다음부터∼”

‘단 하루만 국회의원을 해도 평생 연금이 나온다’는 특권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국회의원 연금은 19대 국회부터 사라졌다.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월 120만원을 지급하는 대한민국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은 19대 국회에서 폐지됐다.

즉 18대 국회의원까지만 적용받는 셈이다. 국회의원 재직기간도 1년이 넘어야 하고 재직 시 제명 처분을 받았거나 유죄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에는 받을 수 없다.

예비군 및 민방위 훈련 면제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향토예비군설치법 제5조’를 특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5조에는 ‘국방부장관은 예비군이 그 임무수행을 위하여 출동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예비군 대원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간 이내에 지정된 장소에서 소집에 응하도록 동원을 명령할 수 있다’ ‘국회의원, 외국에 여행 중이거나 체류 중인 사람, 국외를 왕래하는 선박의 선원 또는 항공기의 조종사와 승무원,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에 대해 동원을 보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에 국회사무처는 ‘민방위기본법’ 제18조 및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5조에 따른 것으로 국회의원만의 특권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차관급 대우
반 정치 우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의원은 차관급 대우를 받게 돼 있다. (같은 논리면) 장·차관 특권도 폐지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특권을 고리로 국회의원을 공격하는 것은 정치 혐오감 등 반(反)정치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의원 1명에 투입되는 돈은?

20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1명 당 연 6억7000만원의 혈세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됐다. 국회사무처가 지난 5월7일 발간한 ‘제20대 국회 종합안내서’에 따르면 개원일인 지난 5월30일 기준으로 의원 1명에게 지급되는 연봉은 상여금을 포함해 1억3796만원이다. 월로 나누면 1149만6820원이다.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일반수당 646만4000원, 입법활동비, 관리업무 수당, 정액급식비, 정근수당과 함께 설과 추석에 지급되는 명절휴가비까지 총 775만6800원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사무실 운영비 월 50만원, 차량 유비지 월 35만원, 차량 유류대 월 110만원 등 의정활동 경비로 지금되는 금액 역시 연간 9251만 8690원으로 집계됐다. 의원 본인에게 지급되는 금액만 한해 2억3048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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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