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42) 비밀 입국

일단 비행기는 착륙했는데…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김포공항 입국 수속대에서 동일이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한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이동하여 활주로로 시선을 주었다.

마치 파란 하늘 저만치서 문석원을 태운 비행기가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잠시 전 도쿄 하네다 공항에 있는 요원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아베 고타로를 포함하여 동 비행기에 탑승하는 모든 일본인들이 열한 시 삼십 분 대한항공 편으로 이륙했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예정대로라면 비행기가 곧 도착할 터였다.

고개를 돌려 저만치 세관대로 시선을 주었다.

문석원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지고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후일 그 속에 권총을 감추어 들여왔다 주장하기로 입을 맞춘 상태였다.

그 생각에 이르자 절로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또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스물세 살의 천방지축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안쓰러움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또한 그런 인간이기에 오히려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주위를 살피던 중 저만치 창공에서 비행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히 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처음 살폈을 때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으려니 했는데 어느 순간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만큼 상념이 많아 그런 것이라 애써 자위하고 천천히 세관대로 걸음을 옮겼다.

입국 수속 시에는 별 문제가 없으리란 판단에서였다.

세관대에 가까이 다가서자 눈에 익은 세관원이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문득 그에게 귀띔을 주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부터는 모든 일이 철저하게 비밀리에 그리고 소수에 국한되어야 했다.

행여나 후일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남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멀찌감치 자리 잡았다.


혹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현장에서 처리하기보다는 남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장소를 선택함이 옳다는 판단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곳에서 주시하다 일이 어긋나면 곧바로 처리하기로 작정했다.

그러기를 잠시 후 입국 수속대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문석원이 탑승했던 비행기의 승객들이, 단체관광객이었던 만큼 한꺼번에 몰려들어 마치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저런 상태에서 제대로 입국 수속 절차를 밟을 턱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를 입증이라도 하듯 거침없이 입국 수속대를 통과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방과 수하물을 들고 세관대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한 사나이가 동일의 시선에 들어왔다.

바로 문석원이었다.

그가 바로 눈에 뜨인 사유가 있었다.

거구의 문석원이 한여름인데도 검정색 양복을 입고 거기에 더하여 중절모까지 쓰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의 모습을 살피자 절로 긴장되었다.

눈에 띄는 스타일이 집중 관심 대상이 될 수도 있던 터였다.

아울러 일국의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하는 자의 행동거지를 살피니 절로 쓴 웃음이 나왔다.

이내 허허실실이란 병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혹여 문석원이 의도적으로 저리 행동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곧 잡념을 물리치고 가만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문석원이 세관대에 도착하여 가방을 올려놓자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동일의 긴장감을 알아차렸는지 세관원이 문석원의 수하물보다는 그의 외모에 잠시 관심을 보이더니 손쉽게 통과시켜주었다.

김포공항 도착…수속절차 밟고 호텔행
거사일 10일 전…결연한 의지 드러내

마음이 급하게 움직였다.

입국장을 벗어나면 곧바로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할 터였다.

동일이 곧바로 그곳을 벗어나 공항 게이트로이동했다.

그곳과 가까운 곳에 준비해둔 승용차 안에 들어 게이트를 주시했다.

석원이 가방을 들고 게이트를 벗어나 택시를 잡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거리를 두면서 석원이 탄 택시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김포대로를 벗어난 택시가 서울 한복판으로 방향을 잡고 곧바로 목적지인 고려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그를 살피며 슬그머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가 입국하기 이전에 그와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조사를 마쳤었다.

어머니의 오빠들 가족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문석원과의 연결고리는 희박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도어맨에게 키를 주고는 거리를 두고 문석원의 뒤를 따랐다.

문석원이 프런트에서 숙박절차를 밟는 모습을 살피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갔다.

천천히 복도를 걸어 문석원이 예약해 놓은 룸의 바로 옆 룸으로 들어갔다.

“도착했습니까?”

이강철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맞이했다.

“지금 프런트에서 수속 밟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내처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조만간에 문석원도 올라올 것입니다.”

말을 마친 동일이 강철 옆에서 정중하게 고개 숙이는 남자를 주시했다.

“정 팀장 혼자서는 너무 힘에 겨울 듯하여 저희 멤버 중에 일본어에 능숙한 사람을 차출하였습니다.”

“김경수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탁드리려 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동일이 강철의 얼굴을 주시하다 이내 자신의 이름을 밝힌 사내를 바라보았다.

흡사 자신의 20대 후반을 보듯 단단하기 그지없는 몸매와 날카로운 눈매를 살피며 가만히 속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친구입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말투며 절도 있는 행동하며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현역 군인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래요, 우리 며칠 함께 고생합시다.”

동일이 강철과 경수에게 소파에 자리하기를 권했다.

“전에 실장과 함께 대강 들었었지만, 앞으로 10일 정도 남았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강철의 질문에 동일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오락가락하는 친구라 일찌감치 보낸 겁니다.”

“그렇군요.”

강철이 짐작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 친구를 어떻게 돌릴 예정입니까?”

“나름대로 계획은 잡고 있습니다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 과정에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하시라도 말씀 주십시오.”

“나도 그러하겠지만 경수 씨도 단 한시도 문석원에게 시선을 떼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말을 마친 동일이 기척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쪽에 설치해둔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자동적으로 두 사람도 동일 곁에 바짝 붙었다.

동일이 모니터를 켜자 석원의 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방금 입실한 석원이 룸을 구석구석 살피는 모습이 나타났다.

“어제 은밀하게 설치했습니다.”

두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석원의 움직임을 주시하다 잠시 후 모두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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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