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지위' 박근혜 최악의 시나리오

당정청 모두…박근혜정권은 끝났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지금, 곳곳에서 악재가 터지고 있다. 레임덕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이다. 진앙의 중심이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곪아왔던 일들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 것이란 게 정가의 일반적인 시각. 돌파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정운영의 3대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 당·정·청에서 동시에 논란이 쏟아지면서 야권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선 집권 이후 최대 위기가 찾아온 셈이다. 자칫 박근혜호가 조기에 좌초될 수 있는 위기에 놓여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 당에서는 친박 핵심의 공천 개입 파동, 정부에서는 사드 배치로 인한 민심 이반, 청와대에서는 ‘실세 중의 실세’ 우병우 민정수석의 김정주 NXC 회장, 진경준 검사장과의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흔들리는 보스
레임덕 가시화

새누리당은 친박 실세들의 공천 개입 파동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8·9 전당대회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터진 악재다.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은 지난 18∼20일에 걸쳐 윤상현·최경환·현기환 새누리당 의원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18일 보도에 따르면, 윤상현 의원은 김성회 당시 화성갑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빠져야 된다. 형. 내가 대통령 뜻이 어딘지 알잖아. 경선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만들지. 친박 브랜드로 ‘친박이다. 대통령 사람이다’ 서청원, 최경환, 현기환 의원... 완전 (친박) 핵심들 아니냐”라며 지역구 변경을 종용했다.

그날 저녁 최경환 의원의 통화 내용도 공개됐다. 그는 “사람이 세상을 무리하게 살면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 감이 그렇게 떨어지면 어떻게 정치를 하나”라며 핀잔을 줬다. 김 후보가 지역구 변경이 대통령의 뜻이냐고 묻자 “그럼, 그럼, 그럼, 그럼. 옆에 보내려고 하는 건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고...”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일에는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과 통화한 내용도 공개됐다. 공천 개입에 청와대도 연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가서 (서청원 전) 대표님한테 저한테 얘기했던 거 하고 똑같이 얘기하세요. 대표님 가는 데 안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물어보세요”라며 “나하고 약속하고 얘기한 거는 대통령한테 약속한 거랑 똑같은 거 아녜요”라고 반문했다. 또한 현 전 수석은 “정말 이런 식으로 합니까? 서로 인간적 관계까지 다 까면서 이런 식으로 합니까”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친박 실세들
공천개입 의혹

하나하나부터 모든 게 다 문제다. 윤 의원은 지난 총선 전 “김무성 죽여버려” 등 막말을 한 녹취록이 공개돼 공천에서 배제된 바 있다. 최 의원은 최근 당대표 불출마 선언을 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난 총선 기간 나는 최고위원은커녕, 공관위 구성과 공천 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고 한 말이 결국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현 전 수석은 지난 3월,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과 서울 시내의 모 호텔에서 극비 회동했다는 보도가 나갔을 때 이를 부인했는데, 또 다른 총선 개입 의혹을 받게 됐다.
 

녹취록 공개 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야권은 지난 20일,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친박 핵심의 녹취록이 공개된 만큼 청와대의 공천 관여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현 전 수석의 녹취록까지 공개가 됐다. ‘나의 뜻이 대통령의 뜻이다’라는 말은 기가 막힌 대사다.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했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것을 정무수석이 확인시켜준 녹취록”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용태 의원은 공천 개입과 관련해 “대통령을 판 사람들에게 (박 대통령이) 속은 게 맞느냐”라며 “이제 박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주호영 의원도 YTN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법적으로 불법행위에 가깝다. 당의 책임 있는 기구가 과정들을 소상히 밝혀서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처벌할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기 막바지 곳곳서 대형 악재 돌출
‘어쩌나’ 핵심 측근들이 진앙의 중심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있어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앞서 사태가 터지기 전 서청원 의원의 당대표 출마가 유력해 친박 당대표가 가시권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터진 후 서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고 현재 비박계 후보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어 가능성이 낮아진 실정이다.
 

이에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실시될지 주목된다. 비박계는 ‘진상조사 불가피론’을 주장하는 반면 친박계는 ‘진상조사 무용론’으로 맞서고 있다. 조사 여부에 따라 공천에 개입한 사람이 추가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드의 성주 배치 결정으로 인한 전통 지지층의 이탈은 내년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만한 사안이다. 국방부는 지난 13일 “한미 공동실무단은 사드의 최적의 배치 용지로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건의했고 이에 대해 양국 국방부 장관이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대대적인 민심 이반을 불러왔다. 서울과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일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가 발족한 지 5일 후인 지난 21일 성주 주민 2500여명(경찰 추산 2000명)은 서울역 광장에 운집해 결사 반대를 외쳤다.

김안수 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드 배치라는 실수를 모두에게 알리고 반드시 철회할 것을 알리고자 천리를 달려 왔다”며 “(정부가) 어제는 후보지, 오늘은 바로 최적지 이런 식으로 발표했다.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장관이나 정부 관계자가 현장 방문 한 번 없이 책상 위에서 결정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어떻게 (주거지와) 1.5㎞밖에 안 떨어진 곳에 ‘듣도 보도 못한’ 무기를 들여놓을 수 있나”라고 항의했다.

사드 성주 배치
극렬한 민심이반

MBC의 ‘외부세력 개입’ 보도가 나오면서 성주 군민들의 반발은 더욱 극심해졌다. 지난 16일, MBC는 3차례에 걸쳐 관련 의혹을 보도했다.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시위에 외부인사가 참여한 것을 확인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해당 보도가 ‘윗선’의 지시로 진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을 낳았다. 지난 21일 전국언론노조 주최 ‘사드 배치 논란 언론보도 긴급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도건협 언론노조 대구MBC 지부장의 주장에 의하면, 지난 16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에 방문했던 날 지역 MBC 관리부서인 ‘전국부’에서 리포트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대구MBC로 들어왔다고 한다.

도 지부장은 토론 중 “리포트에서 성주 군민의 폭력을 앞세우고 이에 대해 경찰이 엄단하기 위한 전담반을 구성했다는 내용을 붙이고, 그 뒤에 성주 군민의 집회 내용을 언급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거부했더니 서울MBC에서 관련 내용을 자체적으로 리포트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20일 KBS 지역총국 기자들의 모임인 전국기자협회는 “‘윗선’이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부당하게 ‘공안몰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두 공영방송 모두 보도의 편향성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단단히 뿔이 난 성주 군민들은 시위 때마다 성주해병대전우회 회원을 중심으로 자율 질서요원을 배치하는가 하면, 상징인 파란 리본을 달지 않은 사람들이 시위 대열로 합류하려 하면 일일이 신원을 확인하며 막아서는 등 더 이상의 왜곡 차단에 나서는 모습이다.

공천 개입 의혹 “대통령의 뜻”
민심 이반 점입가경 사드 사태
'우병우 사태' 권력실세 스캔들

사드 배치 발표를 전후로 민심 이반이 두드러진다. 이는 동남권 신공항 사태와 맞물려 가속화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매일경제·MBN의 의뢰로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전국 유권자 2526명(총 통화시도 2만3314명 중 2526명 응답 완료. 응답률 10.8%)을 대상으로 조사한 박근혜 대통령 취임 177주차 국정수행 지지도(7월 2주차) 여론조사 주간 집계 결과를 지난 18일 발표했다.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7월 1주차에 비해 전체 지지도는 0.8%포인트 오른 33.8%(매우 잘함 8.9%, 잘하는 편 24.9%)를 기록했다.

그러나 성주 사드 배치가 발표되기 전인 지난 12일과 발표 이틀 후인 지난 15일 지지율을 비교하면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울산의 지지도가 각각 9.2%포인트 9.9%포인트 하락해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전통 지지층의 이탈이 심한 상황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드 배치 규탄 목소리는 비단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예상한 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고 나섰다. 한미 실무단이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자 지난 8일 중국 외교부는 “한미 양국은 중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의 단호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다”며 “중국은 이에 강력한 불만과 반대를 표명한다”고 전했다.


지난 9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교부 또한 “사드 배치는 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움직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에 전략적 균형을 훼손시키는 행동”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청와대 실세’ ‘리틀 김기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우병우 민정수석은 최근 넥슨과의 스캔들에 휘말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18일 넥슨이 우 수석의 처가가 보유한 강남 부동산을 1326억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진경준 검사장의 주선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진 검사장은 넥슨코리아로부터 주식을 공짜로 받아 126억원의 차익을 남긴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해당 언론사는 진 검사장과 함께 수사를 받고 있는 김정주 NXC(넥슨 지주 회사) 대표가 우 수석과 일면식도 없다는 점, 반면 김 대표와 진 검사장이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는 점, 진 검사장이 우 수석의 서울대 법대·사법연수원 2년 후배로 평소 가까운 사이였었다는 점 등을 들어 주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해당 언론사는 넥슨이 우 수석 처가의 부동산을 매입해주는 대가로 우 수석이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보유를 문제 삼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도 당일 우 수석은 “처가 소유의 부동산 매매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며 즉각 해명에 나섰다. 그는 “처가에서 정상적으로 중개수수료를 지급하고 이루어진 부동산 거래에 대해 진 검사장에게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이유도 없고 부탁한 적도 없다”며 “명백한 허위 보도이고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확산되는 추세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우 수석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우 수석에 대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해서 대통령의 치마폭에 숨어 있을 문제가 아니다”라며 즉각 사퇴를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병우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거리고 있다”라며 “우 수석이 사퇴해야 박 대통령이 살고 검찰도 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병국·주호영·김용태 등 새누리당 비박계 인사들도 사퇴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께 부담을 안 드리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는 게 좋다”(정병국),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사정 기관을 관할하는 민정수석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은 맞지 않는다(주호영)”, “양심이 있으면 물러나야 한다(김용태)”고 한목소리로 우 수석을 압박했다.

실세 중 실세
우병우 사태

박 대통령은 우 수석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해 논란이 됐다. ‘우병우 구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게 중론이다.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는데 당시 박 대통령은 “요즘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저항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며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얼핏 사드 문제에 대한 심경 고백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발언이 우 수석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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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