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최고의 진기명기 '장면들'

믿을 수 없는 리커버리 샷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지만 골프에서도 위기의 순간 최고의 샷이 나온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창의적인 샷에 갤러리는 열광한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PGA투어에서 실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9개의 리커버리 샷을 선정해 소개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비롯해 필 미컬슨, 빌 하스(이상 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미구엘 앙헬 히메네즈, 세르히오 가르시아(이상 스페인), 빅토르 뒤뷔송(프랑스), 비제이 싱(피지)의 샷이 최고의 진기명기로 꼽혔다. 특히 미컬슨은 9가지의 샷 중 2개가 선정돼 ‘쇼트 게임의 달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위기의 순간
최고의 샷

최고의 샷은 가르시아의 나무 위 샷이다. 그는 2013년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최종 4라운드 10번홀에서 티샷이 나무로 올라가는 불운을 맞았다. 보통 선수들은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할 법한 상황에서 가르시아는 그대로 샷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무 위로 올라간 가르시아는 자세가 나오지 않아 여러 번 다양한 각도에서 어드레스 자세를 취해야 했다. 결국 페어웨이를 등진 채 왼손으로는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손으로 클럽을 쥐어 등 뒤쪽으로 볼을 쳐냈다. 다행히 볼은 페어웨이로 빠져나왔다. 나무 위 샷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가르시아는 나무에서 내려온 뒤 첫 번째 샷을 30야드밖에 보내지 못했고 결국 더블보기를 범했다.

히메네즈는 2010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벽치기’ 샷을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히메네즈는 로드 홀로 불리는 17번홀에서 볼이 그린 뒤 돌담 바로 앞에 멈추자 궁여지책으로 돌담을 향해 볼을 쳤다. 볼은 벽에 맞고 바운스된 뒤 그린에 올라갔고 갤러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세계 랭킹 2위 조던 스피스(미국)도 지난해 디 오픈을 앞두고 로드 홀에서 벽치기 샷을 연습한 적이 있다.


하스가 2011년 투어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보여준 ‘워터해저드 샷’도 명장면에 선정됐다. 이스트레이크 골프장 17번홀에서 열린 연장 두 번째 홀에서 하스는 절제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두 번째 샷이 그린 왼쪽 연못 가장자리에 떨어져 볼이 반쯤 물에 잠긴 것. 오른발은 물에 담근 채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가르시아 나무 위 샷 ‘최고’
창의적 샷에 갤러리는 열광

그러나 하스가 물을 튀기며 친 워터해저드 샷은 홀을 약 90㎝ 지나친 지점에 절묘하게 멈춰 섰다. 가볍게 파 세이브하며 고비를 넘긴 그는 세 번째 연장전에서 파를 지켜내 승리했다. 하스는 당시 우승으로 페덱스컵 보너스 1000만달러까지 챙기는 ‘잭팟’을 터뜨렸다. 그의 샷은 그해 PGA투어가 선정한 ‘올해의 샷’으로도 뽑혔다.

뒤뷔송은 지난 2014년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시리즈 액센추어 매치플레이 결승에서 호주의 제이슨 데이에게 비록 패했지만 당시 연장전에서 보여준 두 차례의 리커버리 샷이 명장면으로 꼽혔다.

뒤뷔송은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선인장 밑 모래밭에 들어간 볼을 홀 1.2m에 붙여 파 세이브에 성공했고, 연장 두 번째 홀에서도 덤불 사이로 빠진 볼을 다시 2m에 붙인 뒤 기어이 파를 잡아냈다. 뒤뷔송은 연장 다섯 번째 홀에서 백기를 들긴 했지만 두 번의 파세이브는 최고의 샷으로 뽑혔다. 데이는 당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때 우즈를 밀어내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싱은 200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6번홀에서 퍼터로 이색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파5 홀인 이곳에서 싱의 두 번째 샷은 그린 옆 프린지와 러프 사이에 떨어졌다. 싱은 퍼터를 90도로 돌려 잡더니 페이스가 아니라 ‘토’(헤드 앞 끝)로 볼을 쳐내 5m 거리의 홀에 집어넣어 이글을 잡았다.

싱은 경기 후 “연습을 많이 해본 샷이었으나 대회에서는 처음 써먹었다”며 “볼이 프린지와 러프 사이에 멈춰 있어서 샌드웨지를 썼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진기샷 잘하는
톱랭커 압권

미컬슨은 2008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콜로니얼 골프장에서 열린 크라운플라자 인비테이셔널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환상적인 로브 샷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미컬슨의 티샷은 왼쪽 나무 숲 러프로 들어갔다. 핀까지 거리는 140 야드. 키 큰 나무들이 가로막고 있어 파 세이브도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 미컬슨은 로브 샷을 감행했고, 나뭇가지 위로 붕 떠오른 볼은 그린에 안착하더니 홀 2.7m 거리에 멈췄다.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우승을 차지한 미컬슨은 “내 생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멋진 샷”이라고 했다.

미컬슨은 2014년 WGC 캐딜락 챔피언십 1라운드 때도 쇼트 게임의 진수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대회장인 블루 몬스터 TPC 17번홀. 파4 419야드인 이 홀에서 미컬슨의 티샷은 그린 주변까지 날아가 카트 도로에 멈췄다. 카트 도로 뒤쪽엔 갤러리 스탠드가 있었다. 구제를 받고 드롭을 해도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미컬슨은 카트 도로에서 그대로 샷을 하기로 결정했다. 홀까지 47야드. 미컬슨은 웨지 샷을 했고, 볼은 그린에 떨어진 후 홀 2.7m 거리에 붙었다. 미컬슨은 버디로 연결했다.

나무 위에서…
최고의 장면

세계 랭킹 3위 매킬로이는 지난 2014년 메이저 우승자들만 출전하는 이벤트 대회인 PGA그랜드 슬램에서 ‘왼손 해저드 샷’으로 트러블 상황을 탈출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2라운드 17번홀(파5)에서 그의 티샷은 페어웨이 왼쪽 워터해저드 가장자리에 빠졌다. 스탠스를 잡을 수 없게 된 매킬로이는 웨지 헤드를 거꾸로 잡은 뒤 왼손잡이 스윙으로 볼을 페어웨이에서 꺼냈다. 매킬로이는 세 번째 샷을 러프로 보내고, 네 번째 샷으로도 볼을 그린에 올리지 못했지만 다섯 번째 웨지 샷을 그대로 홀에 집어넣어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우즈가 2005년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16번홀(파3)에서 보여준 ‘기적의 칩샷’은 우즈의 명성과 어우러진 까닭에 골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당시 우즈의 티샷은 러프에 빠지고 말았다. 파 세이브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즈는 회심의 칩샷을 날렸고, 홀 8m 거리의 그린에 떨어진 볼은 90도로 꺾이면서 경사를 타고 내려가더니 홀 앞에서 약 1.5초 동안 멈춰선 뒤 거짓말처럼 빨려 들어갔다.
이 장면은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을 뿐

니라 TV뉴스와 인터넷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더구나 우즈의 볼은 마치 연출한 듯 홀에 들어가면서 나이키의 상징인 갈고리 모양의 로고를 보여줘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하지만 역대급 진기명기 샷도 통하지 않는 악명높은 벙커들이 골퍼들을 골탕먹이고 있다.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샌드세이브율이 가장 높은 선수는 데이비드 톰스(미국)로 66.67%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다. 가장 나쁜 선수는 34.57% 확률을 보이는 키건 브래들리(미국). 전체 199명 중 정확히 중간인 100위 자리에는 세계 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올라 있다. 공교롭게도 확률도 절반인 50%다. 세계 최고 선수들도 벙커에 들어갔을 때 빠져나와서 1퍼트로 마무리하는 확률이 평균적으로 50%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난감한 골퍼들…색다른 흥밋거리
아무 것도 안통하는 치명적 벙커들

스코틀랜드 출신 골프코스 설계가 도널드 로스는 “골프 코스 내에 잘못 배치된 벙커는 없다. 따라서 벙커가 어디에 있든지 그것을 피하는 것은 플레이어 몫”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전 세계 골프장에는 한번 빠지면 탈출하는 것 자체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하는 ‘마의 벙커’가 꽤 있다.

오크몬트 골프장의 ‘교회 의자들(Church Pews)’로 불리는 벙커도 한번 빠지고 나면 악명에 치를 떠는 곳이다. 3번홀과 4번홀 페어웨이 사이에 있는 이 벙커는 길이가 100야드 이상 될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이 벙커 내에 있는 기다란 러프 둔덕들이 마치 교회 의자를 일렬로 정렬해놓은 것 같아 이런 닉네임이 붙었다. 원래 6개 벙커로 나뉘어 있었지만 이것을 하나로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7개 ‘의자’밖에 없었지만 점점 늘어 지금은 12개가 됐고, 각 의자들은 두껍고 질긴 페스큐 잔디로 구성됐다. 이곳에 공이 빠지면 탈출은커녕 찾는 것조차 힘들다.


2011년 디오픈이 열린 잉글랜드 로열 세인트조지스 골프장의 4번홀 12m짜리 벙커는 깊고 위협적인 시각 효과로 ‘히말라야 벙커’라는 애칭을 얻었다. 정말 벙커 한쪽 사이드가 히말라야를 보는 것 같은 웅장함을 준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벙커가 많다고 해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7번홀의 ‘나카지마 벙커’보다 더 악명을 떨친 벙커는 없을 것이다. ‘로드홀’로 불리는 이 홀에서도 나카지마 벙커는 유독 유명세를 타고 있다. 1978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일본 나카지마 쓰네유키는 이 홀에서 9타를 치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볼을 두 번 만에 그린에 올렸지만 첫 퍼트가 길어 ‘그린 OB’가 나면서 벙커에 빠졌고, 벙커에서 나오는 데 5타를 소비했다.

악명높은 벙커
선수들 눈물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파인밸리 골프장 10번홀(파3) 그린 앞 벙커는 ‘악마의 항문(Devil’s Asshole)’이라는 아주 독특한 닉네임을 갖고 있다. 그 모양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깊이는 3m밖에 되지 않지만 너무 작아서 백스윙 각도가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체임버스베이 골프장 18번홀 페어웨이 중앙에 있는 벙커는 ‘지하실(Basement)’이란 애칭이 있다. 3.6m 높이에 지하실처럼 넓은 이 벙커는 레이업하는 공을 모두 잡아먹는 것으로 악명 높다.

‘모래 언덕’을 연상시킬 정도로 높아 탈출하기 힘든 샌드힐스 골프장 18번홀 벙커, PGA 웨스트스타디움 코스 16번홀 5m짜리 벙커, 로열포트러시 골프장 17번홀 벙커 등도 피하는 게 상책인 치명적인 벙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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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