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기상청 일기예보 논란

비 온다고?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장마철이 시작되면 기상청은 청개구리가 되기 일쑤다. 상당히 높은 확률로 빗나가는 예보 때문이다. 하루 이틀 틀리는 게 아니다 보니 기상청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다. 과거 반복되는 오보로 ‘구라청’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매년 사업도 벌이고 있으나 성과는 없고 탈만 일어나 정부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사람들이 일기예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매번 변화하는 날씨를 완벽하게 맞출 순 없다. 그러나 당장 찾아온 우기에 당일 날씨도 맞추지 못하는 기상청의 행보는 너무하기만 하다. 기상청을 믿을 수 없다며 예보와 상관없이 우산을 챙기는 이들도 있다. 기상청 체육대회 날에는 꼭 비가 온다는 말이 나올 만큼 기상청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심하다.

틀릴 것 같아?
맞을 수 있어?

최근 기상청은 장마전선 북상으로 인해 주중에 많은 비를 예보했다. 그러나 날씨는 맑기만 했고 휴가계획을 취소했던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특히 지난 12일의 정확도 0%의 예보는 당일 예보도 제대로 못하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기상청은 전날인 11일 오후 5시 예보에서 “12일 서울에 4~50㎜ 장맛비가 내린다”고 알렸다. 하지만 비는 3㎜ 정도 내리다 오전께 그치고 오후 11시경에는 잠깐 빗방울이 떨어지는 수준으로 왔다. 완전한 오보는 아니었다. 그러나 기상청은 지난 12일 오후까지도 “비가 다시 내릴 것”이라며 예고했지만 계속해서 비가 내리지 않자 오후 5시에 “오늘은 비가 없을 것”이라고 정정했다.


당시 전국 5곳의 야구장을 방문 할 계획이던 팬들은 예보와는 다르게 맑은 날씨가 저녁까지 이어지자 불만을 표출했다. 각종 인터넷 야구 사이트에는 “비 예보가 있어서 (예매를) 취소했는데 경기 하나요?”라는 질문들이 올라오곤 했다. 잠실 등 전국 5곳에서 열리는 경기를 위해 야구장을 방문할 계획이던 팬들 상당수는 일기예보를 믿고 예매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야구장 입장객은 평일 평균의 80%에 불과했다.

우천 예상에 방콕 했는데…햇빛만 ‘쨍쨍’
거꾸로 가는 청개구리 예보에 상인도 울상

지난 5월에는 긴급 지진 통보문 팩스로 인한 사건도 있었다. ‘강원도 횡성군 북동쪽 1.2㎞ 지역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팩스가 언론사와 경찰청 등 공공기관 76곳에 전달됐다. 통보문에는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고 건물 붕괴 등의 피해가 우려되니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 바란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규모 6.5의 지진은 한반도 역대 최대 지진인 5.3을 웃도는 강진으로 지난 4월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많은 사망자를 낸 지진과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예보도 기상청의 실수로 밝혀졌다. 기상청은 “원래는 18일 오후 5시15분 쯤 에콰도르에서 발생한 규모 6.7 지진 통보문을 발송해야 하는데 담당직원이 19일 훈련용 통보문을 보내는 실수를 했다”고 해명했다.
 

기상청의 실수는 그 전에도 있었다. 지난 4월에는 매년 다가오는 황사와 미세먼지에 관한 뒤늦은 대처로 비판을 받았다. 뒷북 예보로 ‘생중계하느냐’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민간 예보기관인 '케이웨더'가 지난 4월8일부터 황사를 예보했지만 기상청은 황사 농도가 짙어진 다음날에야 “황사가 발생했다”고 했다. 다음 날인 10일에는 황사 종료시간을 오전에서 오후까지 수시로 정정하는 오보도 냈다.

뒤늦은 황사 경고
수시로 정정하기도

지난해 4월 우기에나 쏟아질 만한 장대비가 예보와 다르게 쏟아졌다. 기상청은 당시 전남과 제주도에 20∼60㎜의 비가 올 것이라 예상했고, 전북엔 10∼40㎜ 그 외의 지방은 5∼20㎜의 비가 올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예보는 엇나갔다.


비의 양과 내리는 지역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기상청은 수도권에 비가 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으나 비는 출근길부터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오보로 인한 피해도 연이어 발생했다. 제주도에는 2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공항을 향하던 항공기들이 회항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농가에서는 농작물의 지지대와 하우스가 망가지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기상청의 잦은 오보로 취소되거나 변경되는 행사들도 있었다. 서울 강남 소재의 한 업체에서는 갑작스러운 비로인해 체육대회 일정이 변경됐다. 체육대회 당일 예보와 다른 날씨에 급하게 계획을 바꾼 것이다. 그들은 행사 날 식당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매년 4∼5월은 많은 업체들이 사내 사기진작을 위해 행사를 벌인다. 관계자들은 일정을 짜다보니 날씨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수원의 한 업체에서 근무하는 A씨는 지난달 29일부터 30일까지 비가 온 뒤 그친다는 예보를 믿고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A씨가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비는 계속 내렸다. 이튿날 비가 그친다는 예보와 다르게 4일 동안 비가 내린 것이다.

지난달 강릉의 한 서핑강사 B(29)씨는 “서핑 교육 일정을 잡았지만 비가 오고 파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해서 취소했다”고 했다. 그는 교육 날이 되자 “비가 조금 내리다가 곧 날씨가 맑게 개여 허탈했다”고 한다.

날씨에 민감한 업자들은 생계를 위해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기상청의 오보는 업자들에겐 타격이 크다. 이들은 오보가 잦아도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과수원의 경우 미리 대비를 하지 않으면 생각지 못한 돌풍과 폭우에 과일들이 상처를 입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한 관계자는 꽃수정 작업을 하는 봄철에 제일 많이 주의한다고 했다.
 

배의 경우 꽃이 약 1주일정도 피기 때문에 만개한 시점에서 꽃수정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운 봄철에 피기 때문에 비소식이 들리면 서둘러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자연수정(꿀벌을 통한 수정)은 어렵기 때문에 인공수정을 한다는 것으로 수꽃을 따내 꽃가루를 붓에 묻혀 수정시키는 등의 방법을 말한다.

휴가지서 ‘쫄딱’
밉기만 한 기상청

기상청의 날씨 오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공직기강 헤이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받아 공직기강 감사까지 받았다. 기상청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 2월 532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 4호기를 도입하는 등 첨단 장비도 들여놨다. 그러나 결과는 변함없이 오보의 연속이다.

슈퍼컴퓨터 4호기는 한달 전기료만 2억5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 2010년 영국 기상청에서 ‘수치예보 모델’ 프로그램도 들여와 연간 약 1억5000만원의 사용료도 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보의 원인으로 기상청 내의 인사문제와 예보관들의 능력을 꼽는다.

성능이 뛰어난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예보관의 능력이 떨어지면 무용지물 이라고 한다. 예보는 슈퍼컴퓨터와 수치예보 프로그램이 날씨 예보 결과를 산출한 뒤 예보관들이 그것을 보고 최종적인 예보를 내놓는 순으로 이루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보 정확도는 수치예보 모델 성능이 40%, 모델에 입력되는 기상 관측 자료가 32%, 예보관 능력이 28%를 차지한다고 과거 정부 연구용역에서 분석됐다”고 했다.

일각에선 예보관의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잦은 부서이동 때문이라고 한다. 보직순환으로 2∼3년마다 예보관들이 다른 부서로 옮겨가는 탓에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는 의견이다.
기관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말도 있다. 기상청 내 각종 비리가 상주하고 있다는 것으로 ‘비리청’과 기상청에 마피아를 합친 ‘기피아’라는 단어도 나타났다. 기상청의 비리 논란은 꾸준히 롱런하는 중이다.

기피아의 사례로 기상청을 퇴직한 C(61) 청장이 세운 한국기상기후아카데미가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기상청은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아카데미에 모든 교육 훈련 용역계약비 34억원을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청장에게 일감을 몰아준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일각에선 기상과 같은 특수 분야는 업계가 좁기 때문에 청장이나 차장과 같은 임원들의 힘이 학연 등에 영향을 받아 상당한 권력을 가진다는 주장도 있다.

아카데미의 원장 역시 기상청 차장을 지낸 인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아카데미에서 지난 2010년 기상업무 교육과 훈련지정을 신청하며 기상청에서 작성한 57개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베껴 제출한 것을 적발했다. 이어 신청서에는 21명의 교관이 있는 것처럼 허위로 작성하는 공문서 위조했다고도 전했다. 기상청에서는 신청서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지정 승인을 했다.

올해 초에는 산하기관인 기상산업진흥원의 D(60) 원장이 민간 업체로부터 향응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해임 됐다. D 원장은 지난 2013년 기상청이 조직 내 비리를 없애고 개혁하기 위해 출범시킨 창조개혁기획단의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내부 자정을 담당하던 공직자가 향응을 통해 해임된 일에 대해 기상청 관계자 들은 “책임은 민간 업체에 있다”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새 장비가 아깝다”
당일 예보도 ‘땡’


지난 2014년엔 납품비리 행태로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감사원은 ‘공직비리 기동점검’ 결과 발표에서 기상청 담당자가 기상장비 납품과정에 개입해 압력을 행사하는 등 비리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감사원은 2013년에 기상청에 대한 비리점검도 실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기상청 공무원 E(47)씨는 검정기준에 미달되는 기상측기를 준공처리 하기 위해 성능확인을 거부한 산하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다. 두 차례 이어진 준공검사에서 부적격 처리된 장비를 납품업체 이사의 부탁으로 산하기관에 준공처리를 하도록 지시한 것도 밝혀졌다.

기상청이 수억원대의 기상장비를 입찰할 때마다 납품 비리를 고발하는 투서가 계속 접수된다. 연이은 내부고발에 한 기상청 고위 공직자가 자진 사퇴했다는 말도 있다. 기상청 내에서 내부고발 투서가 이어지는 이유로 파벌싸움의 폐해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Y대와 S대 출신이 파벌을 이루며 음해 등을 펼친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기상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상청의 고질적인 비리는 학연과 인맥으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만큼 폐쇄적인 학벌 조직 문화가 기상청 내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지난 2013년 새누리당 이종훈 전 의원은 기상청에 대해 “Y대와 S대 출신 ‘기피아’들이 학연으로 유착되며 요직을 장악하고, 퇴직 후에도 용역사업을 독점하고 있다”고 했다. 기상청이 이종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년간 2개 학교 출신이 기상청 5급 이상 승진자 중 40%에 달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폐쇄된 조직 사회
학벌끼리 물어뜯어


기상청은 계속된 오보와 비리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국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SNS에서는 오탈자로 인해 지탄을 받았다. 센스폭발이라는 단어를 섹스폭발이라고 적은 것이다. 이 일로 한동안 기상청 SNS는 조롱거리가 됐었다.

현재 기상청은 청장과 차장이 외부인사로 지정될 정도로 정부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외부인사를 지정하는 점을 문제 삼는다. 개혁을 위한 것이 아닌 고위 공직자들의 관피아 낙하산을 위한 정책이라는 의견이다. 이 주장이 무색하게 지금도 기상청에선 비리가 지속되고 있다. 개혁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안재필 기자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애물단지’슈퍼컴퓨터 3호기
공짜로 준다 해도 “안 받아”

지난 4일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 따르면 슈퍼컴퓨터 4호기가 도입되며 지난 5일부로 슈퍼컴퓨터 3호기의 운영이 중단됐다. 기상청이 지난 2009년 500억원에 사들인 이 장비는 현역으로 충분히 사용가능해 100억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전체 운영비가 해마다 60억원이 넘다보니 무상으로 주겠다고 해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다. 과거 슈퍼컴퓨터 1호기와 2호기도 인수처를 찾았지만 무상임에도 받겠다는 곳이 없어 창고신세가 된 전례가 있다.

2009년 500억에 매입
운영비 해마다 60억

최근 고등과학원(KIAS)이 슈퍼컴퓨터 3호기의 4개 시스템 중 초기시스템 한 개를 분리해서 인수하기로 했다. 기상청은 지난해 9월부터 3차례 나머지 시스템에 대한 수요조사를 벌였지만 인수처를 찾을 수 없었다. 슈퍼컴퓨터 3호기도 1,2호기의 전철을 밟게 된 것이다.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30일까지 수요조사를 벌였지만 문의조차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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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