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새누리 전대> 불붙은 막후전쟁

‘친박-비박’ 최대주주 나선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막’의 뒤에서 큰손들이 움직이고 있다.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무성·최경환 등 계파 최대주주들이 막후 지원에 나선 모습이다. 이에 당권 후보자들은 앞서 계파 청산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음에도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당대표, 최고위원을 분리해 선출하도록 개정된 게임의 룰이 김·최의 영향력을 더욱 극대화했기 때문. 과연 이들 두 ‘큰손’은 누구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의 출마설이 댕겨놓은 불씨는 이제 막후 지원으로 번져가는 추세다. 불출마 선언을 한 최경환 의원과 비박계 수장 김무성 의원의 행보에 정가의 눈길이 쏠린다. 이들의 힘은 지역 표심을 결집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이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치열한 계파 대리전 양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무성·최경환
전대 큰손들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곧 출마 의사를 밝힐 사람도 있다. 후보자 수가 많아진 만큼 경쟁 또한 점점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친박-비박의 진영 대결 구도다. 후보들 간 신경전이 치열한 가운데 각 계파의 단일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 김·최 의원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란 게 정가의 중론이다. 이번 당권 전쟁이 결국 ‘김무성 대 최경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두 의원은 틈날 때마다 “계파를 청산하겠다”고 외쳤지만, 사실상 각 진영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번 당권은 정권 실세 최 의원이 이끄는 친박계가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총선을 통해 비주류로 전락한 비박계와 이들에 대한 지원에 나선 김 의원의 반격이 될 것인가. 이들은 각각 독자 지지층이 두터운 만큼 전대 결과를 뒤바꿀 수 있는 최대 변수로 여겨진다.


전대 후보자들이 난립하다 보니 ‘단일화’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친박계는 친박대로 비박계는 비박대로 경선을 통해 각각 1명의 유력 주자를 뽑을 예정이다.

이러한 단일화 기조는 최근 전대 룰이 변하면서 가시화됐다. 새누리당은 지난 14일, 전국위원회와 상임 전국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전대 규칙 개정안을 의결했다.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담은 당헌·당규 개정안을 최종 의결함에 따라 이번 전대에서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이 분리 선출된다. 이에 기존 1인 2표제에서 1인 1표제로 바뀌게 되었고, 예비경선인 ‘컷오프’도 도입된다.

전대 룰 확정
단일화 초읽기

기존에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한 선거로 묶어 1위 득표자가 대표를, 2~5위 득표자가 최고위원을 맡았다. 후보자들 입장에선 ‘꿩 대신 닭’이 가능했던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제는 당대표와 최고위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될 분기점이 생긴 것이다.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면 컷오프 대상이 될 수 있다. 여러모로 셈법이 복잡해진 것이다.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후보자 한 명의 경쟁력보다 계파의 힘과 막후 영향력에 의존할 확률이 높아졌다. 이번 당권이 김무성·최경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정가의 예상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실제 역할에 나설 것인가. 먼저 최 의원은 불출마 선언 이후 전대에 개입하지 않을 뜻을 보였다.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전대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한 그는 최근 전대를 앞두고 해외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일각에서 이는 전대 역할론에 대한 선긋기로 해석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 의원은 오는 19일부터 영국, 벨기에 등을 방문하는 일정을 소화한다. 약 일주일 정도 해외에 체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사석에서 최 의원이 지인들에게 “조용히 있고 싶은데 나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가 많아서 괴롭다”며 “전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싶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거리두기라는 일각의 예상에 신빙성을 높인다.


당대표·최고위원 분리 눈치작전 치열
선 긋는 최경환…귀국 이후 행보 주목

그러나 이러한 최 의원의 결정을 전대에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낮다는 주장도 있다. 어찌됐든 친박계에는 서청원이라는 단일화에 있어서 최대 카드가 있는 만큼 당분간은 최 의원의 역할이 없다는 주장이다. 즉 단일화가 이루어지고 난 후 최 의원의 역할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일주일간의 해외 일정으로 전대 역할론을 거부한 것이라 보기에는 과하다는 논리다.

불출마 선언 직후 최 의원의 눈에 띄는 행보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 의원은 최근 경북 지역 의원들과 부부동반으로 만찬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당대표 경선에서 컷오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가에서는 최 의원의 컷오프 도입 주장을 두고 사실상 ‘서청원 추대론’이 아니냐고 보는 시각이 있다. 최 의원은 서 의원을 제외하면 마땅한 유력후보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불출마 선언 직전 서 의원에게 “나서달라”고 말한 것은 작은 예다.

최근 “현재 친박 후보군(이주영·이정현·한선교 등) 중에 최 의원이 ‘이 사람’이라고 딱히 지지할 만한 인사가 없는 것으로 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최 의원 측이 밝힌 소식이 전해지면서 추대론은 더욱 힘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이에 사실상 서 의원으로 단일화되길 원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과연 정가의 시선대로 최 의원과 서 의원이 당권 확보를 위해 전략적 동지 관계를 형성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

비박계 대주주인 김 의원은 최 의원보다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선 모습이다.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잠행 중이던 그는 최근 기지개를 켜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난 14일 당대표 2주년 기념식을 가진 김 의원은 서서히 발언 수위도 높이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약 1300여명의 지지자가 모여 세를 과시했으며 사회를 본 박성중 의원을 포함해 정병국·한선교 의원 등 당권 후보자들과 최고위원직에 출마한 강석호 의원 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백의종군 최경환
귀국 후 역할론

앞서 김 의원은 익명의 측근에게 “비박계 단일 후보가 나오면 조직까지 다 동원해 정당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친박계가 당권을 잡게 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김 의원 또한 최 의원처럼 선제적 조건으로 단일화를 내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전략포럼’에 참석한 김 의원은 비박계 단일화에 대해 “당선되기 위해선 당연히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방법론적으론 컷오프를 언급해 최 의원과 같은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김 의원은 “(당권) 후보가 난립할 텐데, 어차피 선거대책 기구가 만들어지면 거기서 컷오프 한다는 것 아닌가”라며 “컷오프하는 게 단일화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두 계파 거물의 움직임에 후보자들은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주영 의원의 경우 최 의원을 찾아가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와 관련해 최 의원은 국회 의원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백의종군을 한 사람이 무슨 지지(선언)냐”며 “일절 안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평소에 찾아오지. 불출마한 날 오면 좀 그렇지 않나”라며 “불공정 시비가 일 것 아닌가”라고 약간의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해당 발언이 나오기 3일 전 이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발표하면서 “총선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던 분들이나 당의 통합을 방해하는 인사들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당 운영이 돼야 한다”고 최 의원을 겨냥한 듯한 발언에 대한 앙금으로 해석된다.

원조 친박으로 분류됐으나 최근 비박 성향을 보이고 있는 한선교 의원은 연일 서청원·최경환 책임론을 꺼내들며 여론을 모으고 있다.

PBC 라디오에 출연한 한 의원은 “이제까지 당의 중심에서 당을 좌지우지했던 세력은 제외시키겠다”라며 “자신이 당대표가 되면 서청원, 최경환 의원은 2선으로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총선 책임론에 대해선 “지난 총선에서 국민과 당원들이 저희에게 호된 매를 드셨다”며 “최고위에서 김무성, 서청원 대표간의 갈등이 주요인”이라고 콕 찍어 비난했다.


적극적인 김무성 “비박 후보 지지”
사드로 TK민심 흔들, 변수로 떠올라

최근 거론되고 있는 단일화에 대해선 강한 분노를 표했다.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 의원은 “일대일로 한번 붙자”며 “이게 무슨 짓이냐”고 비난했다. 이어 “당에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께서 ‘단일화를 해야 한다’라고 얘기를 하면 안 된다”며 “단일화라는 것은 계파의 존재를 강하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 외 이정현 의원은 주변 상황에 관계없이 경선을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상태다.
 

비박계 후보자들은 상대적으로 친박계에 비해 조용하면서도 나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병국 의원은 최근 당 전국원외위원장협의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수평적 당청관계를 강조하며 원외위원장의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회의에서 “당이 계파 패권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이 강한 나라 당원이 강한 정당을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할 때”라며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함께 당원이 중심된 아래로부터의 정당개혁을 추진해 ‘수평정당의 시대’를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해당 회의에는 이성헌 원외위원장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약 50여명이 참석했다.

정 의원은 최근 김 의원을 찾아가 지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회동 직후 기자들을 만나 “(김 의원에게) 도와달라고 했다”며 “김 의원은 ‘열심히 하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 의원이 비박계 단일화를 돕기로 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뜻은 다 갖고 있다”며 “결국 우리가 당을 살려서 정권재창출을 하는데 뜻이 갈라지면 안 되지 않나. 그런 부분에 공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실 측은 정 의원의 지원 요청에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적 ‘합종연횡’ 여부도 큰 관심사다. 알려진 것처럼 김 의원은 부산·경남(PK), 최 의원은 대구·경북(TK)의 맹주다. 이들은 지역의 표심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지고 있다. 당의 핵심 지지층이 이들 TK·PK 지역에 몰려 있다는 것만 봐도 이들 두 맹주의 지지 없이는 사실상 당선되기 힘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비박 결집 김무성
단일화가 해답?

후보자로 출마했거나 출마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지역을 보면 친박계는 경기(서청원, 한선교), 경남(이주영), 전남(이정현)에 분포해 있고 비박계는 서울(김용태, 나경원), 경기(정병국) 등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즉 향후 전대의 그림은 ‘TK-충청 및 후보자 지역(친박)’ 대 ‘PK-수도권(비박)’의 대결로 압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 배치 등으로 TK 지역에서 현 정부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 친박계 입장에선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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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