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0] 새누리 당권 전쟁 중간점검

‘친박 vs 비박’ 누가 잡아도 쪼개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3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당권을 두고 후보자간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향방은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 앞서의 전대가 기싸움이라면 지금의 전대는 철저한 눈치싸움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이하 전대)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13총선 참패는 새누리당의 위기의식을 고취시켰다.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당내에서 들려온다. 누가 당권을 잡느냐는 이런 ‘대선위기론’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일요시사>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전대를 점검해봤다.

대선위기론
전대에 영향

전당대회준비위원회(이하 전준위) 구성을 마친 새누리당은 본격적인 전대체제에 돌입했다.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이하 혁신비대위)는 앞서 회의에서 오는 8월9일 열리는 전준위 구성을 의결했다. 위원장에는 박명재 사무총장이 임명됐다.

그 과정에서 친박-비박은 한차례 격돌했다. 권성동 당시 사무총장의 사퇴를 두고 비박(비 박근혜)계는 “친박(친 박근혜)계가 무리하게 (권 사무총장)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친박계는 “비박계가 모든 걸 친박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결국 권 당시 사무총장이 자진사퇴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불똥은 새로운 곳으로 튀었다. 권 전 사무총장이 자신의 사퇴 조건으로 김태흠 제1사무부총장의 동반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비박계에서도 같은 주장을 내놨다. 당내 여성 최다선이자 비박계인 나경원 의원은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권 사무총장 사퇴가) 국민의 생각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 (권 사무총장 사퇴 같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자꾸 반복되면서 아직도 새누리당이 정신 못 차렸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무총장을 임명하지 않고 부총장(김태흠 의원)이 대행하는 체제는 맞지 않다”며 “빨리 후임 사무총장을 인선하고 한 달 동안 전대를 잘 치르는 수순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박계 강성으로 분류되는 김 부총장이 전대를 준비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결국 김 부총장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앙금은 남아있었다. 김 부총장은 사퇴를 알리는 입장문을 통해 “내가 부총장직을 유지함으로 전대 준비 과정에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면, 당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부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면서도 “전대 일정, 지도체제 개편 등의 핵심 사안들을 당내 비대위원들 주도로 결정해놓고 모든 것에 친박계의 음모가 있는 것처럼 몰고 갔다. 이는 이율배반적”이라고 쏘아붙였다.

권성동·김태흠
동반 사퇴하기로

두 사람의 동반 사퇴로 계파 갈등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뇌관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체제’와 ‘모바일 사전투표’가 오는 6일 의총에서 논의될 예정이어서 갈등이 재점화될 여지를 남겨뒀다.

지도체제는 당권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요소다. 현재 비박계는 ‘단일지도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친박계는 ‘집단지도체제’를 고수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집단지도체제는 당대표보다 최고위원회의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시스템이다. 당대표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번 4·13 총선을 통해 드러났듯 ‘봉숭아학당’ 식의 파행을 거듭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단일지도체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유다. 이에 혁신비대위는 단일지도체제를 의결했는데, 친박계는 최근 수용불가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박계는 이런 친박계를 두고 전대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단일지도체제로 전환될 경우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선거가 분리돼 시행된다. 당원들의 투표권도 1인1표가 된다. 다수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친박계 입장에서는 그만큼 불리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해당 단일지도체제는 이미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과 정진석 원내대표, 그리고 김무성 전 대표가 모여 합의를 본 사항이다. 앞서 지난 5월 말 세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의총에서 (집단지도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정 원내대표가 말을 꺼내자 최 의원은 “맞다. 그거(집단지도체제) 고쳐야 된다. 나도 그거 고치는 것에 찬성”이라고 했고, 김 전 대표도 “그거(집단지도체제) 손 봐야 되겠다. 지금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전준위원장에 박명재 임명전대 가시화
‘단일’이냐 ‘집단’이냐 지도체제 두고 논란

그러나 최근 최 의원을 위시로 친박계에서 입장을 선회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최 의원과 유기준, 홍문종, 정우택, 한선교 의원 등 친박계 중진 5인,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회동을 갖고 현행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최 의원의 당대표 출마가 이러한 공감대를 불러온 핵심요소라고 보고 있다. 즉 최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는 주장이다.

최 의원은 아직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당초 출마가 유력했으나 최근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총선 책임론에 대한 당내 여론이 좋지 못하다는 게 이유다. 최근 사석에서 불출마 얘기를 꺼내는 것도 이러한 점이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고 있어 언제든 출마할 수 있다고 정치권은 내다본다.
 

만약 최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면 기존의 이정현, 이주영 의원과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또한 홍문종 의원이 최근 TBS라디오에 출연해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데 정치인이라는 게 자기가 출마 의사를 갖는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실행에 옮겨지는 건 아니다”라며 “아직 선언을 못하고 있지만 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해 구도는 더욱 복잡해졌다.

최경환·홍문종
물밑협상 있었나?

이와 관련해 최 의원과 홍 의원간 진로에 대한 대화가 있었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다시 말해 홍 의원이 당권 도전 의사를 보였으니, 최 의원은 대권 도전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에 최 의원이 홍 의원의 당권을 위해 물밑에서 전폭적 지원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중이다.

비박계도 상황이 복잡해졌다. 앞서 정병국 의원 단일 후보로 의견이 모아지는 듯 했으나, 김용태 의원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김 의원은 최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수직적 당청관계를 근본적으로 고치겠다”며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와 당헌·당규를 훼손하는 외부 또는 당내 특정 세력의 자의적 당권 개입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당대표 후보군 가운데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인사는 김 의원이 처음이었다.

김 의원은 연일 혁신의 메시지를 던지며 자신을 어필하고 있다. KBS라디오에 출연해 “(권 전 사무총장은) 사실 교체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특정 계파가 당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친박계를 겨냥했다. 이어서 그는 “이번 전대에서 당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부터 좌지우지 되는 것을 막고 공당으로서의 면모를 복원하는 것, 그것을 혁신의 1호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친박 후보 난립…최경환 시그널 기다리나
기존 정병국에 김용태 가세 “판 커졌다”


비박계 후보군 중 또 다른 한 축인 정병국 의원은 곧 출마를 공식화할 것임을 알렸다. 부산의 한 호텔에서 개최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최종 세미나’에 참석한 정 의원은 기자들에게 “전대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돼 있고 뜻도 모아졌다 생각한다”며 “다만 전대 일정과 룰이 확정되는 시점에 이야기하겠다”고 전했다.

김 의원과의 교통정리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정 의원은 “전대는 누구나 뜻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각과 가치관이 같다면 함께 뜻을 모을 수 있다”고 말해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놨다.
 

일각에서는 김무성 전 대표가 정 의원의 당선을 위해 전폭적 지원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양상은 최 의원의 지원을 받는 홍 의원과 김 전 대표의 지원을 받는 정 의원간의 양자 구도로 전개될 수 있다.

최근 모바일 사전투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오는 의총에서 해당 투표 도입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에 계파간 유불리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젊은 당원의 투표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비박계에 유리한 방식이라는 해석이 많다. 대리투표를 사전에 얼마나 예방할 수 있는가가 최대 논쟁거리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비박계에 유리한
모바일 사전투표

그러나 아직까지 친박계가 당 주류라는 측면에서 우세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석수 129석 중 70여석이 친박계로 분류된다. 지난 공천과정에서 비박계 의원들이 상당수 탈락해 원내를 기준으로 보면 비박계가 열세인 게 사실이다.


물론, 변수는 존재한다. 70여석 중 지역구 의원이 아닌 비례대표의 비중이 높아 투표권을 갖는 대의원, 당원들을 끌어 모으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또한 친박계 내에서도 ‘진박 마케팅’의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어 판세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정부가 임기 말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표심이 미래 권력으로 향할 수도 있다. 결국 당권 후보들이 남은 한 달 동안 어떤 리더십을 보이느냐가 승패를 가를 관건이 될 전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정현 ‘보도 개입’ 논란
“비판 보도 빼 달라”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때 아닌 복병을 만났다.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KBS 보도에 이 의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해경 비판 보도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 전화 통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에 대한 언론단체 입장’이라는 자료에는 이 의원이 김 국장에게 “뉴스 편집에서 빼 달라”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 “하필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KBS를 봤으니, 내용을 바꿔 달라” 등의 말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이 의원의 당권 행보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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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