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근혜의 남자’ 김재원 신임 정무수석

친박 돌려쓰기…이번엔 진짜 오른팔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번에도 청와대 인사는 친박(친 박근혜)으로 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무수석비서관에 김재원 전 새누리당 의원을 임명했다. 김 수석은 선거사무소 외벽에 ‘박 대통령 오른팔’이라는 홍보물을 내걸 정도로 친박 핵심으로 통한다. 이번 인사 단행은 집권 후반기 국정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청와대가 ‘친박을 돌려쓰고 있다’라는 비판은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새누리당의 4·13 총선 패배 이후 한 달 만인 지난달 15일 비서실장과 정책조정수석, 경제수석을 교체한 데 이어 아프리카·프랑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사흘 만에 두 번째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나섰다.

자타공인 친박
김무성엔 '깨갱'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일 대통령 비서실 정무수석 비서관으로 김재원 전 새누리당 의원을 임명했다. 이로써 새누리당 내 비박계와 야당의 집중공세를 받았던 현기환 전 정무수석은 지난해 7월 임명 이후 11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김 수석은 현 정부 출범 이래 이정현, 박준우, 조윤선, 현 전 수석에 이은 5번째 정무수석이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김 신임 비서관은 국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분으로 대통령 정부특보를 역임했다”며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의정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권과 가교 역할을 수행해 나갈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이번 정부수석 교체는 4·13 총선 참패 이후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인적 쇄신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총선 패배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일신하고 임기말 국정과제를 추진할 적임자를 전면에 배치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집권 후반기를 맞아 당·청 간 정책 공조 강화와 김희옥 혁신비대위 체제와의 소통을 밀도 있게 진행해 국정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청와대 의지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총선 참패 이후 원내 2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의 정치적 위상과 역할을 고려, 더욱 공고한 당·청 관계를 유지해 남은 집권 후반기 국정 과제 성과를 도출하고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복안도 내재돼 있다는 관측이다.

청와대의 이번 정부수석 인선에 대해 각 당의 시선이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김 수석은 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관과의 소통 강화를 마련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재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김 수석은 국회 경험이 풍부하신 분이라 특히 국회를 존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금주 국민의당 대변인은 “김 수석의 경우 친박 핵심으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는 적임자일지 모르나, 국회와 국민의 뜻을 받들고 대통령께 이를 가감 없이 전달할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두 번째 참모 개편…비서실 정무수석 교체
집권 후반기 국정 장악력 높이겠다는 포석

김 수석은 지난 9일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고 늘 소통하는 정무수석으로서, 여당은 물론 야당도 자주 찾고 늘 경청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대통령님 국정운영 기조에 따라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정무수석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20대 국회 개원연설과 관련해 “이전 대통령들도 하셨던 것으로 안다”며 “절차상 국회의 연설 요청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요청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임명장을 받으면 곧 국회로 인사를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은 지난 4월 총선에 출마했다가 자신의 지역구였던 군위, 의성, 청송 지역이 인근 상주와 통합되면서 새누리당 경선과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낙천 후 중국외교학원의 방문학자로 초빙돼 지난달 24일 중국으로 출국했으나 비자 교체를 하러 잠시 귀국했다가 뒤늦게 발탁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김 수석은 박 대통령의 2007년,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 핵심 역할을 맡았다. 이완구 원내대표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로 세월호 사건 후 특별법 협상 등 대야 협상은 물론 당청 소통창구였다. 윤상현 의원과 함께 대통령 정무특보로 활약하던 시절, 정치권은 ‘윤상현은 행동가, 김재원은 전략가’라고 분류했다. 판세를 읽고 전략을 짜는 능력이 탁월했다는 뜻이다. 집권 후반기 각종 정국 현안을 돌파해야 하는 박 대통령으로선 적임자를 찾은 셈이다.

그런 김 수석이 어떤 정무적 역할을 펼 지엔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청와대의 변화 조짐이란 평가가 여야 가리지 않고 나온다. 김 수석은 국회 사정에 밝고 대야당 협상 경험도 풍부하다. 전략과 기획에도 능하다. 여소야대 국면, 집권 후반기 등 유리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을 박 대통령도 충분히 감안한 만큼 대야당 관계에서 원칙론보다는 현실론으로 한 클릭 이동했다는 뜻이다.

경선서 낙선
청와대로 컴백 

야당과 소통도 활발해질 수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선거캠프에서 김 수석 등 친박계 인사들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반면 당청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에 중심을 확고히 잡으려는 뜻으로 보인다. 김 수석은 확실한 친박계다. 결국 김 수석 발탁은 야당과 관계에선 ‘협치’를, 당청관계와 여당 내 역학에 대해선 ‘마이웨이’를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 정진석 원내대표가 정무수석에 발탁된 사례와도 비교된다. 정 원내대표가 정무수석으로 있을 당시 박 대통령 측과 소통을 고려한 차원이었다. 실제로 정 원내대표가 수석이었을 때 유력한 차기 권력이던 박근혜 당시 대표와 청와대간 가교 역할을 맡았다.

김 수석도 이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8일 현 전 수석이 정 원내대표와 광주로 가는 KTX 열차에서 바로 앞뒤 자리에 앉아 2시간가량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장면은 불편한 당-청 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꼽힌다.
 

또한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일부 새누리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상시청문회법에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도 현 전 수석 체제에서의 당-청 관계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바통은 김 수석에게 넘어갔다. 김 수석은 당-청 관계를 복원하고 1년 8개월 정도 남은 국정운영을 충실히 뒷받침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됐다. 김 수석은 친박의 브레인이라는 별명답게 날카로운 정무 전략을 구사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신임 수석은 1964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거쳐 1988년에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에 1990년에 졸업했다. 같은 해 석사장교(예사16기)로 육군3사관학교에 입대해 육군소위로 전역했다.

김 수석은 대학 4학년이던 1987년 제31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1988년부터 총무처, 내무부, 경북도청, 국무총리행정조정실(현 국무조정실)의 행정사무관으로 약 7년간 근무했다.

진정한 소통창구 기대?
막말 정치인으로 유명


국무총리실 근무 중이던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95년부터 1997년에 사법연수원을 거쳐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부산지검, 대구지검포항지청,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재직했다.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경상북도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였으며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 법제사법위원, 행정자치위원을 지냈다. 또 같은 기간 동안 한나라당의 기획위원장과 정보위원장을 맡아 일했으며, 특히 2006년 5월의 지방선거 당시 당의 클린공천감찰단장을 맡아 당내 공천비리를 일소하는 데 기여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는 박 대통령의 경선룰 협상의 대리인, 검증대리인 및 대변인을 맡아 일하면서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했으나, 2007년 8월 박 대통령이 당내경선에 패배했다, 이어 2008년 3월 한나라당의 제18대 국회의원 후보공천과정에 이른바 ‘영남대학살’의 과정에 희생되어 공천에 탈락하자 정계를 떠났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대학의 객원교수로 연구 활동을 했고, 상하이에 있는 푸단대학 한국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서 한국과 중국 및 동북아 정세 관련 연구활동에 참여했다.

2008년 11월부터 불교방송에서 <김재원의 아침저널>이라는 시사 프로그램 앵커로서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또 KBS1 라디오의 열린토론 패널과 각종 방송 등에 출연하여 정치전문 평론가로 활동했다. 2011년 7월에는 한나라당 당직개편으로 당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정치와 당에 복귀했다.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 후보로 경북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72.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당선후 19대 국회에서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간사를 역임하였다. 2013년 5월에는, 새누리당의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아 당의 주요 전략과 중장기적 기획업무를 맡으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세월호 논란
유족 고소도 

김 수석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막말을 쏟아낸 정치인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김 수석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해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하며 “이런 형태의 세금도둑적 작태에 대해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김 수석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새누리당 지도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하기도 했다.


<min1330@ilyosisa.co.kr>

 

[김재원은?] 

▲1964년 경북 의성 ▲대구 심인고 ▲서울대 공법학 학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제31회 행정고시 합격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행정사무관 ▲제36회 사법시험 합격 ▲부산지검·서울중앙지검 검사 ▲김재원 법률사무소 변호사 ▲17대, 19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경선후보 선대위 기획단장·대변인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푸단대 한국연구센터 연구원 ▲동북아재단 이사장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기사 속 기사> 새 청와대 참모진은?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김재원 전 의원 외에도 미래전략,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을 교체하는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단행했다.

미래전략 수석비서관에는 현대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에는 김용승 가톨릭대 부총장이 임명됐다. 

현대원 신임 미래전략수석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창조경제분과위원 등을 역임한 디지털 콘텐츠 미디어 정책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김용승 신임 교육문화수석은 교육부, 교육개혁추진협의회 총괄의장과 전국대학교 부총장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통일부 차관에는 김형석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에는 이준원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을, 환경부 차관에는 이정섭 환경부 환경정책실장을 각각 임명하는 등 차관인사도 단행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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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