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 조성 논란

‘혈세’ 57억원 들여 장군님 기념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강원도 철원군서 때아닌 박정희 논란이 수년째 진행 중이다. ‘군탄공원’이라는 정식명칭을 두고 지역 보수성향 사회단체들이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이라는 표지석을 공원 입구에 세우고 군청과 함께 명칭 변경을 진행해왔다. 이미 2번이나 도지명위원회에서 딱지를 놨으나 공원을 재단장해 올해 안으로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청은 현재 공원을 2배로 확장하는 공사와 진입로 확포장공사, 군탄공원 힐링코스를 조성 중이다. 도비와 군비를 포함해 국비까지 무려 ‘57억원’의 혈세가 들었다. 오는 8월13일 준공이 확정된 공원 안엔 또 다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조형물까지 들어선다.         

쿠데타 장본인

군탄공원의 조성 당시 명칭은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 공원’이었다. 공원 일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2년 3개월 뒤인 1963년 8월 퇴역하면서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우한 군인이 되지 말자”는 전역사를 한 곳이다. 당시는 박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이었다. 그는 1963년 8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육군 제5군단 비행장에서 군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육군 제5군단이 1969년 전역비를 세웠고, 1976년 청와대가 주도해 공원화사업(5만5000㎡)을 추진하면서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로 불렸다. 1988년 노태우정권 시절 ‘5·16’이 군사쿠데타로 규정되면서 행정구역명을 딴 ‘군탄공원’으로 개명했다. 지난 2000년 철원군번영회 등이 박 전 대통령 전역지 되찾기 운동을 벌였지만, 반대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철원군은 지난 2012년 지역 사회단체들로 구성해 발족한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 유적공원화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와 함께 공원 명칭을 ‘박정희 장군 전역기념공원’으로 변경하는 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강원도청은 2013년과 2014년에 열린 두 차례의 지명위원회에서 철원군의 지명 변경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청 측은 “역사 유래가 있는 고유지명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보류했다.


그러나 철원군은 공원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는 올해에 다시 명칭 변경안을 도에 제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명 변경은 군지명위원회와 도지명위원회를 거쳐 국가지명위원회를 통과해야 최종 확정된다. 도에서 통과가 된다고 해도 중앙에서 보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군청 측은 지난해 공원 조성사업에 관한 보도자료를 내면서 처음엔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이라는 명칭으로 발송을 했다가 군탄공원으로 수정해 재발송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7월엔 박근혜 당시 대통령후보가 철원을 찾은 자리에서 부친의 기념비에 대해 철원군수에게 묻기도 했다. 지난 1989년 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가 군탄공원을 찾아 지구당 간부들에게 기념탑 보수와 관리를 당부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위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도 2014년 12월에 추진위가 세운 공원 입구 표지석 앞에서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공원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사실상 지난 수년간 박정희 전역공원은 철원군의 '뜨거운 감자'였다. 군청으로 항의성 민원 전화가 폭주했고, 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등에서 군민들의 찬반 의견이 뜨거웠다. 특히 지난 2014년, 명칭 변경을 도지명위에 상정하는 과정에서 같은 해 9월, 추진위가 주도해 세운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이라고 씌여진 표지석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 표지석은 추진위가 군민모금운동을 벌여 높이 9m, 폭 3m 규모로 설치한 것이다. 이현종 철원군수, 한기호 전 국회의원과 지역주민이 낸 성금 3400만원으로 건립됐으며, 이 군수와 주민 15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표지석엔 “5000년 역사의 바다에 박정희 장군이 남긴 항해의 흔적은 너무나 크고 깊다. 군사정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장군의 고뇌가 서려 있는 이곳을 40년 전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는 찬양 일색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추진위 측은 명칭을 복원하면 누구나 한 번씩 방문하는 안보관광지로 활성화시키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군탄공원 내엔 현재 1969년에 육군이 세운 것과 2014년에 민간이 주도해 세운 2개의 대형 비석이 존재한다. 최초에 세워진 기념비는 기단 높이 1m, 비신 높이 4.39m로, 몸체엔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기념비’라고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철원군청은 확장공사 후 문을 여는 공원 내에 또 다시 “박정희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전역 기념 조형물을 제작해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철원군청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박정희 장군의 어록과 업적을 새겨 넣어 7월 중에 조성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와 서명도 들어간다. 공원 조성엔 국비, 도비, 군비를 포함해 45억원이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도지명위 두 차례 ‘불가’ 통보했으나 재추진
대형 기념비만 3개…누구를 위한 공원인가?

군청에 따르면, 인근 국방부 부지를 사들여 2만4000㎡ 규모의 공원을 4만138㎡로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 중으로 현재 9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조형물을 포함해 광장, 주차장, 야외무대 등 재단장에 45억원이 들었으며, 43번 국도와 연결되는 진입로 확포장공사엔 추가로 군비 6억원이 소요됐다. 또 공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신철원~군탄공원을 잇는 산책로를 현재 공사 중이다.

‘군탄공원 힐링코스’라고 이름 붙인 산책로는 지난해 11월에 착공해 오는 8월4일 준공 예정이다. 총 길이 0.85㎞, 폭 4m로 조성 중이다. 힐링코스에도 보상비용을 포함해 군비 6억원이 들었다. 전체 예산 57억원 중 27억원이 국비로 충당됐다.

군에선 공원 재단장 이유로 시설 노후와 공간 협소, 낮은 접근성, 다양한 문화체험 제공, 지역경제 활성화, 안보관광지 등 관광자원 개발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역 시민사회선 수년째 계속되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또 공원을 새롭게 꾸민 것도 명칭 변경을 위한 전 단계로 보고 있다.    

군청 측은 명칭 변경 추진에 대해 “확정된 사항은 없다. 군청 차원에서 추진사항도 없다. 명칭도 민간단체에서 한 거다. 우리가 나서서 명칭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건 없다. 재추진하고 그런 건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또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도 있고 비판적인 사람도 있어서 중립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며 “현재 딸인 박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아니다. 확장 취지는 전역공원에 초점을 두기보다 휴식공간 제공, 군민 정주여건 개선, 시설 재정비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군민은 “정권이 딸로 바뀌니까 옛날 명칭으로 돌아가려는 거다. 잘 보이고 싶어서 계속 줄 서기하는 것”이라며 “철원이 전쟁을 직접 겪은 지역이라 보수적이다. 보수적 환경에 묻혀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피력했다.

이 군민은 또 “추진 이유로 관광자원화를 꼽지만 빼어난 절경을 가진 한탄강도 그렇게 못하는데 그게 되겠나”라고 반문하며 “박정희라는 이미지만 빼면 그냥 평범한 공원이다. 몇십억원씩 쏟아 부으면서 지자체마다 뭐든 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현재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념사업은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진행 중이다. 경북 구미를 필두로 서울 중구, 마포구 상암, 경북 포항, 문경, 청도군, 강원도 양구, 울릉도 등에서 지자체예산과 국비가 함께 투입되며 ‘박정희 업적 기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기념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주목받던 지난 2012년께부터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정신 빠진 철원군

김용빈 철원군농민회 정책실장은 “공과 과가 있는데 기념이라고 하면 공만 하겠다는 것인데, 자충수를 두는 거다. 역사의 진실이 규명되는 날이 오면 지금 한 부끄러운 짓을 어떻게 할 거냐”라며 “(관에서) 공원시설에 공과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현판, 게시판, 비석 등으로 과에 대한 기록도 공에 대한 표시 옆에 나란히 우리 명의로 남기겠다. 지역주민의 의사가 다양하게 표출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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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