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부추기는 힐링의 숲을 찾아서 ①경남 통영시

은은한 편백 향과 푸른 바다에 취하다

화사한 봄과 눈부신 여름 가운데 살며시 찾아드는 계절, 초여름. 산들거리는 바람결에 초록빛 싱그러움이 끝없이 퍼져 나간다. 이맘때면 한껏 물오른 초목이 뿜어내는 풋풋한 향내에 발걸음이 숲으로 향한다.

자연의 소리에 마음까지 정갈해지는 미래사
묵은 때 씻겨 주는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경남 통영시 미륵산에 자리한 미래사 편백 숲은 고즈넉한 숲길 산책과 푸른 바다의 정취를 한 번에 취하는 일거양득 여행지다. 미래사 앞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한 데다, 주차장 뒤편에 산책로가 이어져 찾기도 쉽다. 버스를 이용하면 미래사 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미륵산길을 따라 40~50분 걸어야 한다.

미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인 효봉 스님의 상좌 구산 스님이 1951년 작은 암자를 세운 데서 시작됐다. 이후 중창을 거듭하며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사찰이 작고 아담해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숲길을 산책하기 전에 미래사부터 발도장을 찍어보자. 새소리, 물소리, 목탁 소리에 마음이 정갈해진다.

오솔길 끝
한려수도 비경

미래사 편백 숲길은 70여년 전 일본인이 심은 것을 해방 뒤 사찰에서 매입해 산책로를 꾸몄다. 하늘 위로 쭉쭉 뻗은 편백 숲 사이로 오솔길을 내, 편히 오가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숲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과 코끝에 맺히는 은은한 향기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준다.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항균·살균 작용은 물론, 아토피나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 중간에 잠시 멈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과 청량한 기운이 스며드는 기분이다. 마음 속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가듯 개운하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오솔길 끝에는 깜짝 선물이 기다린다. 목재 다리 건너 이어진 길모퉁이를 돌면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며 푸른 바다가 시야에 가득 담긴다. 울창한 산림 너머로 호수인 듯 잔잔한 한려수도가 그림처럼 걸렸다. 예상치 못한 장관에 감탄사가 연달아 나온다.

미래사 아래 쪽에 자리한 나폴리농원은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더욱 효과적으로 누리는 체험 공간이다. 한 시간 정도 맨발로 숲길을 걷는 동안 심신이 치유된다. 효소를 넣어 자연 발효한 편백 톱밥 길이 발을 편안히 해준다. 길목마다 마련된 명상 쉼터와 피라미드, 잔디밭 침대 등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여러 코스 덕분에 삼림욕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나무에 청진기를 대고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 체험도 특별하다.

산책하고 나서 해먹에 누워 즐기는 휴식이 꿀맛 같다. 기분 좋은 흔들림과 살랑거리는 바람이 여행으로 쌓인 피로감마저 훌훌 날려버린다. 마지막 코스인 냉수 족욕과 편백 삶은 물을 이용한 온수 족욕까지 차례로 마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훈남 바리스타가 주는 핸드 드립 커피도 감미롭다.

숲을 나서면 연한 코발트 빛 바다가 눈에 안긴다. 바다 위로 봉긋봉긋 솟은 섬들이 하나하나 정겨운 미소를 보낸다. 섬들의 고향에 온 느낌이다. 그 가운데서도 역사적인 의미를 품은 곳이 한산도다. 한산도 제승당은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히는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경상·충청 삼도 수군의 본영이 있던 곳으로, 전란 기간 해군의 총사령부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된 이곳에 1739년(영조15) 통제사로 부임한 조경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를 세우고, 건물을 중건해 제승당이라 이름 지었다.

맨발로 걷는
삼림욕 체험

수루에 서면 한산도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격전이 벌어졌을 그곳은 이제 유람선과 고깃배가 유유히 지나갈 뿐이다. 자나깨나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던 이순신 장군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다. 제승당 뒤편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사당에 들러 향을 피우고 묵념을 올린다.

한산도까지 정기 여객선과 유람선이 다니지만, 요트를 이용하면 더 특별한 여행이 된다. 통영요트학교에서 운영하는 요트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개별 여행자도 편하고 저렴하게 세일링을 경험할 수 있다. 도남관광단지 인근 통영요트학교 계류장에서 출발하며, 코스별로 1시간~2시간30분 소요된다.


맞은편에는 해마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당이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최적의 음악 무대를 갖춘 이곳은 평소에도 수준 높은 공연이 펼쳐진다. 이른 저녁 문화의 향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여운은 통영 앞바다에서 잡은 활어회와 푸짐한 해산물로 즐겨보자. 통영 운하의 야경을 감상하며 식사하고 싶다면 미수해안로에 자리한 ‘민수사’를 추천한다.

다음 날은 서피랑 99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다소 번잡해진 동피랑과 달리 골목마다 아직 소박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서피랑은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동네다. 담벼락에 적힌 박경리 선생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예쁜 벽화 앞에서 여행의 추억도 남겨보자.

서피랑 위에는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서포루가 있다. 이곳에서 서면 통영 시내와 인근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피랑을 지나 ‘토영 이야~길’ 1코스를 따라 걸으면 충렬사, 세병관, 중앙시장, 동피랑 등 통영 시내 주요 명소를 하루에 돌아볼 수 있다. 출출하면 동피랑 아래 자리한 ‘통영명가’의 굴 요리나 멍게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래보자. 1인당 생선 한 마리를 큼지막하게 구워 내놓는 ‘통영생선구이’도 유명하다. 생선살이 촉촉하고, 곁들여 나오는 반찬 모두 맛깔스럽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 편백 산책 코스: 미래사→편백 숲→나폴리농원→서피랑→토영이야길
· 제승당 산책 코스: 요트 체험→제승당→통영국제음악당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미래사→편백 숲→나폴리농원→통영국제음악당
· 둘째 날: 서피랑→토영이야길→요트 체험→제승당

관련 웹사이트
· 통영요트학교 http://www.tyyacht.com
· 나폴리농원 http://www.napory.com
· 통영국제음악당 http://www.timf.org
· 제승당 관리사무소 http://www.jeseungdang.gsnd.net
· 유투어 통영관광포털 http://www.tour.tongyeong.go.kr

문의 전화
· 통영시청 관광마케팅과 055-650-0712
· 미래사 055-645-5324
· 통영국제음악당 055-650-0400
· 제승당 055-254-4481
· 통영요트학교 055-641-5051

대중교통(버스)
· 서울-통영: 서울고속터미널에서 하루 18회(06:20~다음 날 00:30) 운행, 약 4시간10분 소요.
· 부산-통영: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20~30분 간격(06:10~22:30) 운행, 약 1시간40분 소요.
· 광주-통영: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루 7회(08:00~18:35)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서울고속터미널 1688-4700, 코버스 www.kobus.co.kr, 부산서부버스터미널 1577-8301, 광주종합버스터미널 www.usquare.co.kr, 통영종합버스터미널 1688-0017

자가운전
· 통영대전고속도로→통영 IC→남해안대로→관문사거리에서 좌회전→중앙로→무전6길→미륵산길→미래사
· 거가대로→송정 IC→거제대로→미늘삼거리에서 좌회전→통영해안로→북신로→여황로→미수로→발개로→미륵산길→미래사

숙박
· 통영엔쵸비관광호텔: 통영시 동호로, 055-642-6000
· 센트럴호텔: 광도면 춘원2로, 055-643-7001~3
· 안정궁관광한옥펜션: 광도면 안정2길, 055-648-2528
· 비치캐슬호텔&리조트: 통영시 평인일주로, 055-644-2700
· 통영거북선호텔: 통영시 미수해안로, 055-646-0710

식당
· 통영생선구이: 생선구이, 용남면 동달안길, 055-646-6960
· 민수사: 활어회, 통영시 미수해안로, 055-648-5489
· 통영명가: 굴 코스 요리, 통영시 동피랑길, 055-649-0533
· 통영회해물세상: 해물탕, 통영시 중앙시장2길, 055-649-8188
· 엄마손충무김밥: 충무김밥, 통영시 통영해안로, 055-641-9144

주변 볼거리
동피랑, 강구안, 통영해저터널, 달아공원, 비진도, 사량도, 전혁림미술관,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통영옻칠미술관, 청마문학관, 통영수산과학관, 남망산조각공원, 이순신공원 등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