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777호 특별기획> 2010 대박 좇는 사람들 현장보고 ②경마·경륜·경정장 가는길

“숨겨진 ‘대박’이 여기 있었네!”


경마장, 경마도 보고 공원도 돌고 데이트 코스로 그만
경륜장, 경주 외 공연, 북카페, 자전거대여 등 놀거리


‘경마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연상될까.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도박, 폐인, 자산탕진 등 부정적인 말들이 잇따라 떠오른다. 대박이라는 환상을 좇는 이들의 종착역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일부 언론에서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킨 때문이다. 실제론 어떨까. 경마장, 경륜장, 경정장을 차례로 찾아 그 실상을 두 눈에 담아왔다.

지난 11월20일 서울 과천에 자리한 경마공원을 찾았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이다. 가로수가 나란히 서있는 길을 따라 10여분쯤 걸어가니 경마장 입구가 나왔다. 입장권은 800원, 경마장과 가족공원의 이용이 가능하다.

경마장 전설의 배당률 1만5000배

경마장 내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경기가 진행되는 매주 토·일요일 이틀 간 방문객이 7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연령대도 다양한 편이다. 중장년층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가족단위로도 많이 찾는다. 데이트코스로 이곳을 찾은 연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30만평의 드넓은 대지위에 경마장 뿐 아니라 공원도 조성돼 있어 가족과 연인들이 오기도 좋기 때문이다. 처음 방문한 곳은 ‘예시장’. 다음 경기에 출전할 말들을 미리 선보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관객들은 말들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베팅할 말을 정한다. 예시 중인 말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사뭇 진지했다.

승부예상지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어 도착한 곳은 투표소. 경마를 위해 찾아든 인파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광판에 표시되는 베팅율과 예상지를 번갈아 보며 어떤 말을 선택할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윽고, 투표 마감 5분 전이 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투표소 앞으로 물 밀듯 몰려들었다. 40여개에 달하는 창구에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줄의 끝자락에 선 이들은 자기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 가운데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미처 베팅할 말을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었다. 그러자 뒤편에서 “아저씨, 뒤에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이느냐.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쳤다. 이 남성은 머쓱한 표정으로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경정장, 베팅하는 이도 많지만 노년층 소통의 장으로
어두운 이미지 벗고 건전한 문화 공간으로 ‘변신성공’


투표 시간이 마감됐다. 일부는 시간 상 마권을 구매하지 못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투표를 마친 이들은 경마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관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나같이 한손엔 마권을, 반대 손엔 예상지를 꼭 쥔 모습이었다.

이들을 따라 관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텅 비어있던 관람석은 이내 빼곡히 채워졌다. 경기장은 경기 준비로 한창이었다. 경기를 기다리다 긴장한 탓인지 몇몇의 관객들은 연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들이 출발대 앞에 섰다. 긴장되는 순간, 장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삑, 출발을 알리는 부저가 울리자 14마리의 말들이 일제히 출발선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관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경주가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해설과 환호는 열기를 더해 갔다. 그리고 경기 시작 2분 만에 승패가 판가름 났다. 희비가 교차됐다. 비명에 가까운 탄성과 아쉬운 탄식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흥에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떨떠름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이 더 많았다. 관객석에 비치된 휴지통에는 마권이 가득했다.


경기가 끝난 뒤 베팅에 성공한 이들은 배당금을 받으러 갔다. 배당금을 받기 위해 창구 앞에 선 이들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문득 배당금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한국마사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최고 배당률은 3365배였다. 100원에서 10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33만6500원에서 3억3650만원 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1993년 세워진 기록은 깨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 배당률은 1만5954배. 최고 베팅액인 10만원을 걸었을 경우 15억954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세금 27%를 공제하더라도 11억이 넘는 돈을 만질 수 있다. 그야말로 ‘대박’이다. 이 배당률은 경마장에 ‘전설’로 남았다는 후문이다.

배당금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이들은 다시 예시장으로 향했다. 다시 한 번 베팅을 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이처럼 경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매주 주말 경마장을 찾는다는 김명진(58·가명)씨에게 질문을 던져 봤다. “처음엔 친구 따라와 뭣 모르고 했지. 하다보니까 돈도 돈이지만 재미가 있더라고. 로또나 복권 같은 건 순전히 운이잖아. 경마는 공부하고 분석하면 답이 보여. 그 재미가 쏠쏠해. 또 로또는 배당금 중에 세금으로 반 넘게 떼 가잖아. 근데 경마는 73%정도를 주니까. 일석이조지.”

경마공원으로 데이트를 나왔다는 20대 커플의 얘기도 들어봤다.
“여자친구랑 자주 와요. 딱히 베팅해서 돈 벌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에요. 베팅해봤자 500원에서 1000원 정도. 많진 않지만 돈이 걸려있으니까 경기 볼 때도 흥이 나요. 넉넉잡아 하루 5000원이면 충분히 놀 수 있어요. 경마 보다 지루하면 공원에 나와 걷기도 하고요.”

경륜장 “아이들도 함께 즐겨요”

이들의 말대로다. 직접 경험해본 결과, 승부를 예측하는 이 ‘놀이’는 적잖은 즐거움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공원에서 여유를 누리는 것은 경마공원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었다. 취재를 마친 필자는 한동안 공원을 거닐다 돌아왔다.

그 다음날인 지난 21일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경륜장을 찾았다. 5층 규모의 돔 경기장은 웅장했다. 경기장 외관에 넋을 놓고 입구를 들어서다 진행요원에게 저지당했다. 소지품검사를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인 만큼 행여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란다. 요원은 탐지기로 필자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별 탈 없이 경륜장으로 입성했다. 이곳 역시 많은 인파로 붐볐다. 경기가 있는 금·토·일요일 3일간 2만명이 넘는 인원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경륜장 내부를 둘러보다 보니 특이한 점이 있다. 유달리 어린 아이들이 많다는 것. 궁금증을 못 이기고 안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봤다.

직원에 따르면 경륜장에서는 경기와 베팅을 제외하고도 풍부한 놀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북카페나 다양한 공연과 전시회,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주기까지 한다는 설명이다.
직원은 “주말이면 시민들이 전부 이곳으로 몰려드는 통에 광명시에는 개미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들다”며 농을 건네기도 했다.

경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경륜장 2층에서 클래식음악 공연과 전시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공연에 정신이 팔려 베팅은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경기 시간이 임박하자 투표를 마친 사람들은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적막감마저 흘렀다. 이내 경기가 시작됐고 참가선수들은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여전히 관객석은 고요했다.

이따금씩 “누구누구 힘내라”는 외침만 들려올 뿐이었다. 자칫 경륜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의 눈빛은 경기에 집중하다 못해 푹 빠져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고요함은 경기와 동시에 끝났다. 순위가 발표되자 사방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선수들은 손을 들어 화답했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고 관객들은 썰물처럼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이들에 섞여 밖으로 나가던 중 선수들의 장단점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는 한 무리가 보였다. 옆으로 다가가 가만히 귀를 기울여봤다. 알 수 없는 용어들이 오갔다.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이들은 선수들의 코치나 감독 쯤 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은 이들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뒤 말끔히 해소됐다.

“(선수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제가 취미로 자전거를 오래 탔어요. 자연스레 선수들의 장단점이 보이더라고요. 물론 베팅도 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자전거가 좋아서 오는 거예요. 오늘도 집에서 경륜장까지 자전거 타고 2시간 걸려서 왔어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가 “여기 오는 사람들은 거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에요”라고 거들었다. 주차장에 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았던 것이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취재를 마치고 경륜장을 빠져나오는 길. 많은 아이들이 경륜장 앞 공터에서 자전거를 타며 해맑은 모습으로 뛰놀고 있었다.

경정장 노년층 ‘소통의 장’

마지막 행선지인 경정장을 찾기 위해 지난 24일 경기도 하남으로 떠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온 어린이들의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긴 했지만 이곳 방문객의 대부분은 장년층 혹은 노인들이었다. 수·목요일 이틀에만 경기가 있어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방문이 어렵기 때문이다.

방문객 수도 경마장이나 경륜장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매주 8000여명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수상경기 특성상 겨울에는 여름에 비해 방문객이 적다.

이곳은 경기장이라기보다 ‘소통의 장’이라는 표현이 더 걸맞는 듯 했다. 예상지와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삼삼오오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 중 한 무리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봤다. 올해 일흔한 살의 허태회(가명) 할아버지는 손자를 대하듯 살갑게 대화에 응해줬다.

“우리 나이쯤 되면 친구도 없고 갈 데도 마땅치가 않아. 여기 오면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좋지. 용돈도 벌어 가면 더 좋고. 잃으면 마는 거고. 그래도 한 번 땄다하면 손주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기 펴는 거지 뭐. 허허허.” 
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경기 시작시간이 가까워졌다. 보다 생생한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야외 관람석으로 나가봤다.


강을 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탓인지 야외 관람석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밖에서 경기를 기다리던 일부 관객들은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들을 제외한 관객 대부분은 경정장 건물 내부에서 화면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기다림도 잠시,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용 보트들이 물살을 가르며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속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든다. 순식간에 경기가 끝났고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노인이 ‘껄껄’ 웃으며 “그것 봐. 내가 뭐랬어. 여기에 걸라고 했지”라고 거들먹거렸다. 한건 한 모양새다. 그리고 노인은 “내가 쏜다”며 건물 내부 음식점으로 일행을 이끌고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소박한 대박’에 마냥 기뻐할 손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취재후기

일부 언론보도, 그리고 기자의 생각과 달리 직접 확인한 경마장, 경륜장, 경정장은 건전한 문화의 공간이자 쉼터였고, 소통의 장이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는 색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닐까. 검은 안경을 벗어던지고,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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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