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철의 부동산테크 {필승전략 6}

민자역사, 이것이 투자 핵심이다!


서울 및 수도권에 민자역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민자역사는 지하철 이용 외에 대형 쇼핑몰, 광장 등 편의시설과 문화시설이 집중된다는 장점이 인근 부동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민자역사 개발지인 서울역, 용산역, 왕십리역 등은 지역의 중심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수도권 민자역사 개발 봇물 “투자자 관심 뜨겁다”
편의·문화시설 등 상권 형성…주변 부동산도 영향

민자역사에 관심이 많은 만큼 잡음도 적지 않다. 사업자 횡령과 분식회계 의혹으로 얼룩진 노량진 민자역사가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03년 사업시행자가 선정됐지만 사전 및 이중·삼중 분양으로 노량진역사(주)를 상대로 코레일(이하 한국철도공사)이 사업주관권 및 사업추진협약을 취소한 상태다.

뛰어난 입지조건
풍부한 유동인구

노량진역사(주)는 이에 반발해 코레일을 상대로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 지루한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민자역사 개발 과정에서 시공사도 몇 번씩 바뀌면서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도 있다. 서울 창동 민자역사의 경우 일정에 따르면 이미 준공, 개장되는 게 맞지만 시공업체가 대우건설에서 대덕건설, 효성 등으로 바뀌면서 공사가 지연돼 개장이 미뤄지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또 있다. 당초 2005년 개장 예정이었던 서울 왕십리 민자역사도 사업시행사 재선정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4년 착공해 2009년에야 문을 열 수 있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추진 중인 크고 작은 역세권 개발사업은 총 70여건으로 이 중 10여건만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픈 후에도 상권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신촌 민자역사는 문을 연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빈 상가가 절반이다.

민자역사는 민간 자본이 투입되어 건설된 역사(驛舍)의 줄임말로 이는 공기업인 코레일의 예산뿐만 아니라, 민간의 자본이 투입된 경우를 일컫는다. 민자역사 사업은 ‘국유철도의 운영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코레일이 민간자본을 유치해 역사를 현대화하는 사업이다. 투자된 민간자본에 대한 반대급부로 30년간 토지사용권을 제공한다. 민간개발업체는 역사를 신축해 코레일에 제공하고 기타 상업시설을 소유해 운영하는 것이다.

전국 역세권 사업 70여건
이중 10여건만 제대로 추진
안정적 수익 기대
세금 혜택도 유리


이러한 민자역사 변신의 출발은 영등포역. 1987년 민자 유치 개발을 시작해 증축을 거듭하면서 1991년 사업을 마무리했다. KTX 시발역인 서울역과 용산역(2004년)도 잇달아 민자역사로 재탄생했다. 이들 민자역사는 뛰어난 입지조건과 풍부한 유동인구를 토대로 새로운 상권을 형성해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거듭나며 지역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8년 문을 연 왕십리 민자역사 ‘비트플렉스’는 온 가족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몰’을 추구한다. ‘아이가 워터파크에서 물놀이하는 동안 엄마는 엔터식스에서 쇼핑하고 아빠는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운동하다가 함께 식사하는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또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다양한 레스토랑, 영화관, 대형서점 등이 입점해 젊은층의 ‘만남의 장소’로도 알려지면서 주변 개발과 함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민자역사내 상업시설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백화점, 할인점, 멀티플렉스극장, 대형서점 등이 들어서는 메머드급이라는 점이고 쇼핑·문화 등 여가시설을 두루 갖춰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기가 수월하다. 또 대부분 환승역을 끼고 있어 고정적 지하철 이용 승객을 확보할 수 있고 역사 인근에 수십만명에 달하는 배후 주거인구를 가진 곳도 있어 안정수익을 기대해 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유지에 건설돼 토지소유권이 확실하고 코레일에서 지분을 25%씩 참여해 시행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세금면에서도 유리하다. 민자역사는 성격상 임대분양 방식으로 분양한다. 등기 분양과는 달리 영구 임대 방식이기 때문에 전대·전매 시 취·등록세나 양도소득세가 없어 수익 구조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서울역, 용산역, 왕십리역, 신촌역, 청량리역, 평택역 등은 이미 오픈을 해 운영 중인 대표적인 민자역사 들이다. 현재 신축중이거나 신축예정인 민자역사는 알려진 곳만도 창동역, 의정부역, 수색역, 성북역 등이다. 안산 중앙역, 인천 송도신도시, 의왕시 의왕역도 민자역사를 추진 중으로 알려졌다. 민자역사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크기 때문에 향후 곳곳에서 확산될 조짐이다.

최근 오픈했거나 추진 중인 민자역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8월에 오픈한 청량리 민자역사는 총 면적 17만7793㎡에 지상 3층, 지하 9층 규모로 백화점동과 역무동 및 1600여대 규모의 주차장동으로 이뤄졌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한화역사가 공동시행사로 참여하고, 한화건설과 롯데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공사비로 3700억원이 투입됐으며, 열차가 다니지 않는 새벽 1시부터 4시까지만 공사를 진행해 착공에서 완공까지 5년7개월이 걸렸다. 준공된 청량리 민자역사는 중앙선과 지하철 1호선이 지하 환승 통로로 연결돼 있으며, 경전철 면목선까지 건설될 경우 다양한 철도 노선이 교차하는 교통 중심지가 될 전망이다. 또한 여기에 총 58개의 노선이 지나가는 ‘청량리 버스 환승센터’를 합치면 하루 평균 17만명이 이용하는 교통요지로 떠오르게 된다.

청량리 민자역사는 주변에 지상 45층, 50층, 51층, 55층 등 4개동의 초고층 주상복합, 판매, 여가, 문화, 복지시설이 들어서는 동부청과시장의 시장정비사업과 함께 스카이라인을 형성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이외에도 대형 유통센터로서 청량리시장, 경동시장, 서울약령시 등과 함께 지역상권이 살아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창동역에 들어서는 민자역사 ‘투비스타’는 2011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대 30년까지 장기임대로 분양하며, 민자역사 최초로 계약 종료 시 임대 분양금 100%를 전액 반환(최대 30년)해주는 ‘페이백’(Pay Back)시스템을 마련했다. 지하 2층∼지상 8층이며 연면적은 8만6952㎡로 초대형 규모다.

지역 랜드마크 역할
경제 파급효과 크다

지상 1, 2층은 지하철역사로 사용하며 7, 8층에는 롯데시네마 영화관 9개관이 들어올 예정이다. 3층에는 패션잡화, 수입잡화, 귀금속 상가가, 4층에는 남녀 의류상가가 각각 입점할 예정이다. 5층은 브랜드아웃렛으로, 6층은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파는 전자상가로 구성된다.
‘투비스타’는 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의 환승역인 창동역을 개발해 만드는 창동민자역사 쇼핑센터다. 서울 동북부권 230만명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투비스타는 뛰어난 입지여건을 자랑한다. 먼저 다른 민자역사보다 교통시설 집중도가 높다. 지하철 1·4호선뿐만 아니라 경원선이 지난다. 버스와 택시가 모여드는 환승센터를 갖고 있다.

유동인구도 많다. 창동역의 하루 유동인구는 20만명으로 집객효과가 탁월하다. 게다가 인근 도봉구와 노원구 거주자가 100만명에 이르고 이용객 범위를 성북구 강북구를 비롯해 의정부나 동두천 일대까지 확장하면 모두 230만명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변에 개발호재와 함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창동뉴타운, 강북예술의 전당, 북부법조타운 조성 등이 예정돼 있어 개발호재도 많다. 얼마전 서울시가 동북권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부동산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민자역사 사업사부터 꼼꼼히 살펴라”

서울 성북·석계 신경제 전략거점의 핵심구역인 성북역 일대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동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하나로 성북역사를 포함한 190만㎡ 규모의 ‘성북·석계 신경제 전략거점’마스터플랜이 조만간 확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춘천 가는 기차’를 타던 추억의 성북역이 대지면적 9만487㎡에 지하 1층∼지상 22층 규모의 동북권 최대 복합 쇼핑몰인 성북민자역사로 거듭나게 될 전망이다. 민자역사의 주요 시설물로는 백화점 호텔 테마파크 영화관 피트니스센터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진다. 내년 7월 착공해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건축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성북민자역사와 붙어있는 성북역세권 구역의 개발도 본격화된다. 현재 시멘트공장 및 물류센터 등이 있는 약 15만㎡의 대규모 부지 위에 공동주택 약 3000채와 오피스텔 약 2000실 등 주거 업무 문화시설을 짓는 계획을 수립 중으로 알려졌다.
민자역사 상가의 최고의 장점은 안정성이다. 철도공사 소유의 부지에 신축을 하기 때문이다. 철도공사와 협의해 사업을 진행하므로 인허가의 걸림돌도 적다. 아파트 단지내 상가처럼 전철 등 이용객을 고정적인 고객으로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역사가 같은 건물내에 있어 이용객들의 접근성도 좋다. 더군다나 민자역사 개발과 함께 주변 상권도 활성화되어 유동인구가 증가하는 시너지 효과도 있다. 그래서 민자역사 주변에 보면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활발하다.


그렇다면 유의할 점은 없을까.
민자역사 상가는 100% 임대분양 방식이다. 토지소유권이 철도공사에 있기 때문이다. 분양업체는 계약자에게 보증금을 받고 사용권을 준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만 분양업체와 짧게는 10년, 길게는 60년까지 임대계약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환금성이 거의 없다. 상가활성화에 실패 시 자칫 잘못하면 장기간 거액을 묻어 둘 수도 있다. 그러므로 투자에 임하기 전에 입지조건을 잘 따져보지 않으면 임대수익은커녕 원금 보장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민자역사 상가 계약자는 크게 점포를 직접적으로 직영을 하거나 재임대를 통해서 임대수익을 얻는 경우로 나뉜다. 그러나 아무리 유망지역의 민자역사 상가라고 모두 투자가치가 높다고 보기가 어렵다. 동일 역사 내에서도 상가의 위치나 아이템, 운영능력 등에 따라 수익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역사 이용객의 동선의 흐름에 따라서 수익성의 차이가 크다. 하차하는 쪽보다는 승차하는 쪽이나 대합실, 만남의 광장 쪽이 유리하다. 고객의 정체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환승하는 사람들보다는 승하차하는 고객들이 상가의 수요층이다.

민자역사의 상권 유지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유동인구 확보가 필수적이다. 대형 백화점이나 극장 등 집객요소가 있어야 기본적인 유동인구를 확보할 수 있다. 기존 상권이 탄탄한 곳에서는 민자역사의 상권 활성화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므로 분양 받기 전, 기존 상권과 부대시설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입지조건만이 역사 상권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인은 아니다. 역세권 특수를 확보했더라도 주기적인 관리와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다. 타 상권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운영 관리 법인이 있는 테마형 상가나 통합 마케팅 관리를 갖춘 출자회사를 선택해야 한다.

투자하려는 민자역사의 출자회사를 알아볼 때,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중 하나가 분양방식이다. 출자회사가 민자역사마다 다르므로 분양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같은 역사 내 있더라도 업종에 따라서 분양 방식이 다른 경우도 있다. 과거 용산 역사 내 특화 상권이라 할 수 있는 전자상가의 경우 주주와 조합 몫을 제외한 나머지 분량을 일반 투자자에게 분양했다.

그러나 식당, 패션 등 쇼핑센터는 경쟁 입찰제로 분양했다. 일반적으로 일반분양보다 경쟁 입찰 분양가가 높다. 따라서 주변 상가 시세보다 150∼200%를 넘지 않는 선에서 입찰 받아야 손해 보지 않는다. 분양 후, 전대 등 2차 계약부터는 프리미엄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유동인구와 접근성이 큰 점포일수록 프리미엄이 높게 형성되므로 투자가치가 있다면 일찍 분양받는 것이 수익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100% 임대분양 방식
계약 길어 유의해야

일반적으로 영구 임대 분양은 전매 또는 전대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역시 출자회사마다 방침이 다르다. 전대가 가능한 곳과 그렇지 않은 역사를 먼저 알아보고 투자해야 하겠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보통 권리포기 또는 재계약이 이뤄진다. 재계약은 연간 임대료의 5%가 넘지 않는 선에서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게 관행이다.

전문가들은 “민자역사 내 상가는 운영 주체가 누구인지 운영계획과 경험 등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본 뒤 투자에 임해야 실패 할 확률이 적을 것”라고 조언한다.


장경철은?

- 스피드뱅크, 조인스랜드, 닥터아파트 부동산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부동산 기사 제공
- 프라임경제 객원기자
-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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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