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그룹 장손 급사로 본' 비명횡사한 재벌가 황태자들

금지옥엽 키워 가슴에 묻다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재벌가엔 유독 단명한 사람들이 많다. 스트레스가 심해서일까.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로열패밀리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얼마 전 44세,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대성그룹 장손과 에넥스 차남도 그렇다.

대성가 장손 김정한 라파바이오 대표가 사망했다. 대성그룹에 따르면 김영대 대성 회장의 장남 김 대표는 지난 1일 오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향년 44세.

비운의 사고
갑자기 떠나

김 대표는 대성그룹 창업주인 고 김수근 명예회장의 맏손자다. 미국 루이스앤클락 대학(물리학 전공)과 런던대학(경영학)을 졸업하고 2002년 대성산업 연구개발실 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기계사업부 상무, 부사장 등을 거쳐 사장에 올랐지만 지난해 4월 물러났다.

대신 그의 동생(김 회장의 3남) 신한씨가 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같은 해 5월엔 김 대표가 맡고 있는 라파바이오, 대성엘앤에이, 제이헨, 포디알에스 등 4개 회사가 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 회장의 차남 인한씨는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성은 1947년 대성산업공사로 출발해 에너지·해외자원개발, 산업 기초소재, 기계전자·정보통신 등 사업을 펼쳐왔다. 계열사인 대성창업투자, 대성, 코리아닷컴 등은 IT·출판·영화·방송콘텐츠·음악·게임·애니메이션 사업도 해왔다.


장남 김영대 회장과 차남 김영민 회장, 3남 김영훈 회장 등 대성가 삼형제는 김 창업주가 작고한 2001년 지분 다툼을 벌인 뒤 등을 돌려 아직까지 발길을 끊고 있다. 이들은 2006년 모친 고 여귀옥씨가 타계하자 유산상속을 놓고 또 다시 갈등을 빚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삼형제는 유산정리에 합의했지만 이후 전혀 왕래가 없다. 최근까진 ‘대성’ 사명을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세 회장은 각각 대성산업, 서울도시가스, 대성그룹을 독자경영하고 있지만 법적으론 계열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김영대 대성 회장 장남 심장마비 사망
에넥스 창업주 차남도 출장 갔다 숨져

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는) 잘나가다 갑자기 동생에게 밀려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며 “직접 경영한 라파바이오도 경영난 속에 임금 체불로 고소를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엔 에넥스 창업주의 차남이 출장을 갔다 숨지는 일도 있었다. 국내 주방가구 빅3 중 하나로 꼽히는 에넥스의 박진호 전 사장은 미국 서부지역 출장을 위해 탑승한 항공기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54세. 업계에선 그가 별다른 지병이 없었던 점으로 미뤄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넥스 창업주 박유재 회장의 차남인 박 전 사장은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KAIST)에서 기계공학과 항공우주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5년 한국통신에 입사했다. 위성사업단 무궁화3호 발사 기술부장으로 일했던 그는 2002년 에넥스 기획담당 상무를 맡아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2006∼2010년 에넥스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다 에넥스 중국법인을 지휘하던 형 박진규 현 에넥스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박 전 사장은 에넥스 관계사이자 에넥스 가구 시공·사후서비스(A/S) 등을 담당하는 엔비스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대성가 장손과 에넥스 차남이 급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갑작스런 사고로 비명횡사한 재벌가 자녀들이 회자되고 있다.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에 꼭 한 명씩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문의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은 비운의 로열패밀리들은 다음과 같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은 2년 전 아들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의 차남 제홍씨는 러시아 한 호텔에서 추락사했다. 러시아로 출장 갔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 33세.

사조그룹에 따르면 제홍씨는 2014년 7월24일 판로개척 목적으로 출장을 떠나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는 한 호텔 9층 객실에 투숙했다. 그는 이날 새벽 호텔 식당에서 출장 동료, 현지 지사 직원 등과 식사 이후 객실로 들어간 뒤 지상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현지 수사당국은 제홍씨가 객실 창문을 여는 과정에서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추락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주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제홍씨의 사망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아들을 가슴에 묻은 주 회장의 마음고생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다. 한동안 아들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흘렸다는 후문. 제홍씨는 생전 남자답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주 회장의 애정이 각별했다고 한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도 금지옥엽으로 키운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그의 차남 은혁씨는 2013년 7월 물놀이 중 익사했다. 향년 36세.

경기 가평군 미사리 개인별장 앞 강에서 가족과 물놀이를 하다 갑자기 정신을 잃어 현장에 출동한 119에 의해 구조됐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4시간 만에 숨졌다.

“하늘이 버렸다”
가슴 찡한 사연

경찰은 은혁씨가 수영에 능숙했고 강가 선착장에서 보트 운행에 사용되는 전기케이블이 파손된 것을 발견, 은혁씨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최 전 회장과 그의 둘째부인인 가수 배인순씨 사이에서 태어난 은혁씨는 2011년부터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를 맡아 최 전 회장과 함께 경기 안성시 소재 동아방송대학을 경영해왔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8명의 형제와 슬하에 8남1녀의 자녀를 뒀다. 3세까지 합하면 30여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다복한 현대가문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대로 슬픈 가족사를 갖고 있다.

1982년 당시 인천제철 사장으로 재직하던 정 창업주의 장남 몽필씨는 49세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몽필씨는 승용차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를 들이받아 사망했는데, 그는 당시 일본에서 귀국하는 ‘왕회장’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다.

정 창업주로선 청천벽력과 같은 사고인 셈이다. 그는 장남을 잃고 “하늘이 나를 버렸다”는 말로 주위에 비통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몽필씨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권 승계 1순위였다.

수영하다 익사…외국서 추락사
유학 중 참변에 의문의 죽음도


롯데가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넷째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장남 동학씨가 사망한 가슴 저린 사연을 갖고 있다.

동학씨는 2005년 태국 방콕공항 인근 한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 그는 후배 한 명과 태국에 입국한 이후 사업차 필리핀으로 출국을 앞두고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를 당한 동학씨는 롯데에서 어떤 직책도 맡고 있지 않았다.

동학씨는 ‘롯데가 악동’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1994년 ‘프라이드 폭력 사건’을 시작으로, 2년 뒤인 1996년 동거녀와 함께 대마초와 코카인을 흡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1999년 롯데가문 선영 도굴범들의 현장검증 때 용의자들을 폭행해 물의를 빚은 데 이어 2000년엔 음주운전을 하다 추돌사고를 낸 뒤 경찰관을 매달고 질주해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동학씨는 해외에서 주로 생활하다 변을 당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1990년 장남 선재씨를 잃었다. 선재씨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23세에 요절했다. 김 전 회장과 부인 정희자씨는 아들의 사고 소식에 통곡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선재씨가 사고를 당한 이유가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어머니 정씨를 마중하러 가던 길이란 점은 이들 부부의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선재씨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보스턴 MIT대학에서 산업공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정씨는 졸지에 세상을 등진 선재씨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듬해 아들의 이름을 딴 선재미술관을 설립했다. 김 전 회장 부부는 1994년 선재씨를 닮았다는 이유로 톱스타 L씨를 양아들 삼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도 갑작스럽게 아들을 사고로 떠나보냈다. 이 회장은 2004년 9월 54세에 지병으로 별세한 남편 고 양회문 전 회장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경영일선에 나선 이 회장은 후계 작업을 서둘렀다. 시아버지 양재봉 창업주도 직접 승계를 챙겼다.


집안의 장손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은 당시 대학생이었다. 당초 해외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바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실무경험이 우선이란 판단에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양 부사장은 2006년 8월 공채로 대신증권에 입사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사고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2007년 1월 유일한 남동생 홍준씨가 불운한 사고로 사망한 것.

자녀 보내고
가슴에 대못

이 회장의 차남 홍준씨는 모로코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23세였다. 그는 2006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 교환학생 자격으로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방학을 맞아 모로코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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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