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원내대표 파워게임

우·정·박, 그들에 미래 권력 달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모든 당의 안방마님이 결정됐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에 정의당까지 원내대표를 결정, 개원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이번 원내대표의 중요성은 앞선 그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향후 법안 통과는 물론 당대표 선출과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일요시사>는 당선된 원내대표들의 성향을 기반으로 앞으로 있을 굵직한 정치적 이벤트들을 예측해봤다.

제20대 국회 개원까지는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각 당은 원내대표를 결정하고 협상의 선봉장으로 세웠다. 이번 원내대표의 중요성은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당에서 생각하는 핵심 법안을 회기 내에 통과시키려면 이들의 역할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 주고
하나 받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4일, 당선자 총회에 참석해 원내대표의 중요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원내대표가)초기 원내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대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선출되는 원내대표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지금부터 대선까지 우리 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경제 관련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국회 운영이 돼야 한다. 실질적으로 대안 정당, 경제 정당으로서 경제 운영틀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 (그렇게) 남은 대선까지 능력을 보여주는 게 수권을 위한, 그리고 국민과의 약속 이행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원내 3당 중 가장 먼저 결정된 인물은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다. 국민의당은 지난달 27일 당선인 워크숍에서 박 의원을 원내대표에 앉혔다. 방식은 추대였고 만장일치였다. 박 원내대표는 현장에서 바로 이루어진 당선자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한민국과 국민만 생각하고 그 길로 가자, 그리고 때로는 더민주와, 때로는 새누리당과 협력하면서도 견제해 국민들로부터 생산적이고 일하는 국회, 그리고 민생을 생각하는 국회로 거듭날 것이다.”


정진석, 나경원, 유기준 3파전으로 진행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은 정진석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결론적으로 계파 중립을 내세웠던 정진석이 당선됨으로써 당내 갈등 해소에 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제2당으로 밀려난 새누리당 입장에서 원내대표 경선은 그만큼 중요했다. 정 원내대표가 최초의 원외 당선인이 된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총 119표 중 정진석 69표, 나경원 43표, 유기준 7표였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박계의 도움을 받은 정 원내대표는 당선 인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18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이 시간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런데 18개월 후에 무엇을 이뤄야 될지는 우리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새누리당의 마무리투수 겸 선발투수 역할을 하겠다. 박근혜정부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정권재창출의 선발투수가 되겠다.”

더민주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상호 의원이 총 120표 중 63표를 얻어 당선됐다. 우 원내대표 또한 정견 발표 시간 때 대선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았다. 그는 “계파싸움에 몰입하는 정당은 아무리 좋은 법안을 내도 국민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집권을 위해서는 당내 화합을 이룬 다음에 민생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어야 한다. 정기국회에서 민생현안에 대해 집요하게 싸우는 것이 수권정당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즉 3당 원내대표의 등장은 대선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여소야대 정국은 3명의 원내대표들의 행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반이 넘는 절대 당이 없는 상태에서 각 원내대표는 서로에 대한 탐색전부터 시작했다. 이는 곧 국민의당에 대한 러브콜로 이어졌다. 더민주와 새누리당의 우·정 원내대표가 당선 첫 행보로 박 원내대표와의 대화를 선택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먼저 정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당선 인사를 간 자리에서 정 원내대표는 앞서 만난 정의화 국회의장,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는 '악수'로 인사를 나눈 반면, 박 원내대표와는 '포옹'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이날 정 원내대표는 자신이 국민의당을 상징하는 ‘녹색 넥타이’를 착용했다며 박 원내대표에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또한 현장에서 정 원내대표는 “앞으로 박 원내대표를 많이 의지해야겠다”고 했다.


우 원내대표 또한 박 원내대표와의 인사로 시작을 알렸다. 당선이 된 직후 가진 첫 통화의 상대가 바로 박 원내대표였다. 단순히 회동 날짜를 잡는 형식적 통화라고 하지만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을 의식한 행보였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3명 모두
쉽지 않다”

두 거대 정당으로부터 동시에 관심을 받게 된 국민의당은 급할 것 없다는 입장이다. 박 원내대표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이 같은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당분간 두 분(우·정 원내대표)의 말씀을 듣겠다. 가급적 발언을 자제하고 관망 모드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최근 국회의장 선출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 논란이 되자 선을 긋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급할 것 없다는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3명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이후에 있을 국회의장 선출은 물론 향후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회의장 선출에서 박 원내대표의 의중에 따라 새누리당 출신이 될지 또는 더민주 출신이 될지 결정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의장직과 주요 상임위원장직, 또는 여기에 국회 사무총장직까지 묶어 빅딜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한다. 정국은 이미 국민의당에게 유리하게 작동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약 1년6개월 정도 남은 대선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민의당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쟁점 법안 통과가 결정된다. 이는 곧 정당의 지지율과 직결된다. 정당 지지율은 향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갑론을박이 있는 ‘연정’ 또한 결국은 국민의당이 대선을 염두해 둔 상황에서 나온 하나의 시나리오라는 게 정치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상호·정진석·박지원 궁합 주목
의장 보트 쥔 박, 사무총장과 빅딜?

연정은 대선을 앞두고 두 당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새누리당 또는 더민주 대통령에 국민의당 총리는 이런 메커니즘에 기인한다. 몇몇 정부부처 장관직 인사권을 국민의당이 받는 조건으로 두 정당 중 한 명의 후보를 밀어줄 수 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한 익명의 정치평론가는 “연정이라는 것은 결국 권력을 나눠 갖는다는 점을 전제로 나온 말이다.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 국민의당이 주체이자 파트너가 돼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라고 정리했다.

대선으로 가기 전 각 당에서는 전당대회라는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이 전대에서 각 당의 원내대표들은 차기 당대표 선출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정가에서는 이들 원내대표와 차기 당대표와의 궁합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은 전대 날짜를 연기해 내년 2월쯤 열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지금의 안철수·천정배 체제는 당분간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변수는 역시 안 대표의 대선 출마 여부다. 만약 그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올해 말로 전대가 앞당겨질 수 있다. 가능성은 높다. 국민의당 당헌 상 대선에 나가는 후보자는 선거 1년 전에 당직을 내려놓아야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의 대선 출마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일각에선 안 대표의 당선 여부가 박 원내대표의 손에 달려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말까지 안 대표가 당직을 가지게 됨으로써 이후 당 지지율과 함께 울고 웃는 상황이 됐다.

다시말해 국민의당이 국회에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안 대표의 지지율이 들쭉날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성과는 박 원내대표의 협상력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의 앞으로 활약 여부에 따라 안 대표의 지지율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박 원내대표는 최근 새누리당과 더민주 원내대표 경선에 대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그는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는) 친박이 밀고 (더민주 우 원내대표는) 친문이 미는 모습 아니냐”고 말했다. 두 정당 모두 계파 청산을 지상 과제로 내걸었는데 이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새누리당 정 원내대표는 계파 없음으로 주목받았다. 이는 이미 ‘진박 역풍’으로 총선에서의 패배를 겪은 새누리당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가 친박이라는 말이 새누리당 내부에서 나오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게 됐다.

한쪽으로
쏠리는 구도

앞서 경선이 있기 전부터 정 당시 후보가 친박계라는 소문이 당내에 돌았었다. 대표적으로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정진석 후보를 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박심’ 최경환 의원은 친박계 유기준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자 “친박 단일 후보는 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결국 정 후보가 당선되는 ‘가이드라인’이 됐다는 것이다. 언론계에서 정 원내대표는 MB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지만, 박 대통령 관계가 원만해 ‘범친박계’로 분류된다.
 


‘범박’이 당선됨에 따라 7월로 예정된 새누리당 전대에서 친박계 당대표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됐다는 후문이다. 이미 친박계가 과반을 넘겨 주류 계파로 올라서 ‘당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경선에서 승리한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원내) 2당이 됐다고 해서 집권 여당의 지위가 바뀐 게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책임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박근혜정부를 성공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전원이 친박이 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까지 겸임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 원내대표의 계파색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범친박계 정, 전대 변수 급부상
86그룹 우, 김-문 사이 줄타기

더민주 우 원내대표는 운동권 출신으로 86그룹의 리더이자 친문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에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의 관계에서 파열음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예상이 있다.

일찍이 김 대표는 친노 패권주의와 운동권 청산을 외친 바 있다. 1월 달에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친노 패권주의가 당에 얼마만큼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를 보겠다”며 “이것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여기(더민주)에 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당내 운동권 성향에 대해서는 “정당이 선거에서 득표하려면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안 되는 시대”라며 “그러한 체제를 탈바꿈하고 정신을 차려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정당으로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 원내대표는 향후 김 대표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상을 의식했는지 최근 한 종편 채널에서 운동권 청산을 시사했다. 그는 원내대표에 당선된 후 출연해 “과거 운동권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비판하는 논조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20대 청춘 시절에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모든 걸 희생한 노력에 대해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치권에 와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했느냐, 낡은 정치·운동권 문화를 극복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 그런 낡은 문화가 있다면 청산하고, 과거 운동권이라고 차별받지 않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더민주 전대는 8월 말로 연기된 상태다. 어느 때보다 이번 더민주 전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향후 김 대표의 거취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앞서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전대 이후 토사구팽 당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실제로 김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간의 불화설은 야권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다.

김 대표와 문 전 대표 간의 ‘불안한 동거’는 총선 이후 ‘김종인 합의 추대론’이 나오면서 더욱 불거졌다. 합의 추대론이 힘을 잃었을 때 김 대표 측은 문 전 대표의 입을 주목했지만, 그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배신감을 느낀 김 대표가 대선 주자로 문 전 대표 이외에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때문에 중간자로서의 우 원내대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만약 우 원내대표의 손이 한쪽으로 기운다면 이는 곧바로 당내 파열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피말리는 싸움
전대·대선 좌우

일반적인 시선이라면 자연스레 친문계인 우 원내대표가 문 전 대표와 손을 잡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경제 프레임’으로 총선 승리를 이끈 김 대표의 공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 5일 <한겨레>와 가진 당선 인터뷰에서 호남 참패에 대한 ‘김종인 책임론’에 대해 “야박하다”고 두둔해 당분간 김·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의 고충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최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의 만남에서 소수정당의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4일 있었던 두 원내대표 상견례 자리에서 노 원내대표는 정 원내대표에게 “그동안 진보 정당들이 원내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회에서 많은 설움을 받아왔다”며 “20대 국회는 변화와 혁신의 국회가 되어야하는 만큼 정의당이 더 이상 투명한 정당으로 취급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정 원내대표가 자신 또한 과거 17대 국회 때 ‘국민중심당’이라는 소수 정당의 원내대표로 있었다고 말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나왔다. 앞서 정의당은 지난 3일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서 만장일치로 노회찬 당선인을 원내대표로 추대했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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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