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기업 경영진 연봉 공개

회사 어려워도 사장 월급은 ‘팍팍’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대졸 신입사원 1000명 중 임원이 되는 사람은 7.4명에 불과하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임원으로 등극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당연히 임원이 수령하는 연봉은 일반 직원과 비교를 달리 한다. 기업의 가치가 곧 임원의 연봉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까닭이다. 다만 이들이 받는 엄청난 연봉과 각종 특혜는 형평성 논란을 부각시키는 또 다른 단서가 되기도 한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기업 경영 환경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 이 무렵부터 주주의 의견이 반영된 임원 보상 규정이 중요 사안으로 떠올랐고 핵심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임원들에게는 한층 무거워진 책무가 주어졌다. 대신 실적에 맞게끔 연봉을 책정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임원들이 받는 보수 역시 한층 확대되기 시작했다.

실적 따라
천차만별

2015년 회계연도 결산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기업의 등기임원 보수내용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5억원 이상 보수를 받은 경영인은 748명에 달한다. 720명이었던 지난해보다 3.9%(28명)가 늘어난 셈이다.

임원 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삼성전자였다. 이 회사의 평균 임원 보수는 66억5600만원으로 대기업 집단 가운데 단연 일등이다. 삼성전자에 이어 CJ제일제당(33억600만원), SK이노베이션(29억6000만원), 현대자동차(28억7880만원), LG(25억70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임원 평균 연봉 수령액 기준으로 10억원 이상인 기업은 16.6%(40개사), 2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2.5%(6개사)였다.

공개된 임원들의 연봉을 보면 ‘실적이 곧 연봉’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과를 낸 경영진 다수는 두둑한 보너스까지 더해져 연봉이 크게 올랐지만 부진했던 회사의 경영진은 연봉 하락을 감내해야 했다. 이 같은 현상은 같은 그룹 계열사별, 업종별로도 확연히 드러났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재계에서 보수를 가장 많이 받은 연봉자로 등극했다. 권 부회장은 지난해 삼성전자로부터 급여 20억8300만원, 상여 48억3700만원, 기타 근로소득 80억3400만원 등 총 149억54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DS(부품)부문장을 맡고 있는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실적을 견인한 반도체부문의 최고 성과에 힘입어 보수가 크게 늘었다. 고액 연봉자들의 경우 전체 연봉의 40% 가량이 세금이라는 점에서 권 부회장의 실수령액은 9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손경식 CJ그룹 회장도 CJ제일제당으로부터 80억원의 보수를 챙겼다. CJ제일제당의 영업실적이 전년 대비 36% 급증하면서 손 회장의 연봉도 뛴 것으로 풀이된다. LG그룹 계열사에서는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의 연봉이 전년 대비 2배 늘어난 21억5100만원을 기록했다.

차 부회장은 LG생활건강을 2005년 취임 당시보다 매출은 5배, 영업이익은 7배나 증가시켰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도 20억1700만원의 연봉을 신고했다. 지난해까지 이어진 실적 성과가 반영돼 이전보다 보수가 약 8억원 증가했다.

김창근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지난해 26억5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이 연결기준으로 지난해 1조980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이익을 실현한 보답이었다.

신종균 IM 부진에 100억 깎인 48억
정몽구 98억 받아…대기업 총수 1위

반면 신종균 삼성전자 IM(정보기술·모바일)부문 사장은 100억원 가까이 연봉이 깎인 47억99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신 사장은 2013∼2014년에 걸쳐 2년 연속 연봉왕 신화를 썼던 인물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스마트폰 실적이 연봉 하락으로 이어졌다. 윤부근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부문 사장도 전년 대비 18억원 감소한 36억9700만원을 연봉을 수령하는 데 그쳤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과 권오갑 사장은 조선업종의 극심한 불황을 대변하듯 연봉이 공개 한도 5억원을 넘지 않아 공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연봉 많아도
직무는 글쎄

통상 실적에 따라 연봉의 변동이 나타나지만 직무 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보수를 챙겨간 임원들도 더러 보인다. 횡령 혐의로 구속 수감됐던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지난해 40억7700만원의 연봉을 받았고 '형제의 난'으로 재계를 뜨겁게 달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4개 계열사로부터 58억원의 연봉을 수령했다. 대림산업은 4명의 등기이사에게 총 16억4200만원을 지급했는데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이해욱 부회장이다. 산술적으로 4억1100만원의 연봉을 수령했다고 짐작 가능하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지난해 급여 28억1700만원, 성과급 15억9100만원을 포함해 보수로 44억800만원을 받았다. 지난 1월 분식회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1365억원을 선고받았던 조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한 바 있다. 건강 악화로 그룹 계열사 등기임원에서 모두 사퇴하고 보수를 받지 않은 이재현 CJ그룹 회장과는 대조적이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코오롱 7억8800만원, 코오롱인더스트리 14억1858만원, 코오롱글로벌 7억원, 코오롱생명과학 9억50만원, 코오롱글로텍에서 10억300만원 등 5개 계열사에서 48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코오롱의 재계 순위가 30위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회장의 보수는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퇴직금 15억500만원을 포함해 21억5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고 전 사장은 대우조선해양이 3년 동안 5조5000억원의 적자를 내던 시기에 회사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현대상선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그룹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주변의 반응과 상관 없이 현대상선(9억6000만원), 현대엘리베이터(27억2200만원), 현대증권(8억5000만원) 등을 포함한 45억3200만원을 받았다.

문제는 임원과 직원의 현격한 보수 차이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임원과 직원사이의 연봉 격차가 66.1배로 가장 컸고 CJ제일제당(58.6배), 신세계푸드(48.4배), 현대백화점(44.1배)에서도 40배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이외에도 SK이노베이션(38.9배), 효성(32.9배), 롯데쇼핑(31.4배), 이마트(31.0배), 현대차(30.0배), 동국제강(28.4배), LG(27.9배), 호텔신라(27.1배), 아모레퍼시픽(26.8배), 두산(23.4배), 두산중공업(23.4배), GS(23.2배), GS리테일(22.9배), 오리온(22.7배), LG전자(20.9배), LG유플러스(20.4배) 등이 뒤를 이었다. 20배 이상 차이나는 기업만 해도 20곳에 이른다. 

힘빠지는 직원들
커지는 임금격차

그나마 연봉이라도 공개되면 다행이다. 상당수 대기업 임원들의 연봉은 공개조차 되지 않는다. 공개된 재벌 총수 사이에서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서 각각 56억원, 42억원 등 총 98억원을 챙기며 연봉 1위를 차지했다. 정 회장은 2014년까지 보수를 받았던 현대제철 등기이사에서 사퇴하면서 연봉이 117억원 감소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지주회사인 LG로부터 급여 38억원, 상여 15억4800만원 등 총 53억4800만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2014년의 44억2000만원과 비교하면 21%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해 한진칼에서 25억5955만원, 대한항공에서 27억504만5600원, 한진에서 11억4615만원을 각각 보수로 받아 총 64억1074만5600원의 연봉을 수령했다.

최신원 SKC 회장은 17억2600만원의 연봉을 받았고 최 회장의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에서 10억원, SK가스에서 12억원의 급여를 받아 총 연봉은 22억원으로 나타났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연봉은 19억7700만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연봉은 31억 3천만원이었다. 두산 박정원 회장이 14억1100만원, LS그룹 구자열 회장 24억9900만원, LS산전 구자균 회장이 22억22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에게는 급여 5억4100만원과 상여 6억6200만원 등 총 12억700만원의 연봉이 지급됐다.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급여 18억원, 성과급 8억원 등 총 26억5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그러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공개 명단에서 아예 제외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올해부터 등기이사에 복귀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삼성그룹 총수 역시 등기이사로 등재되지 않아 연봉 공개대상에서 제외됐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 사이에서 유일하게 연봉 공개대상이 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해 20억310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5억 이상 748명…작년보다 늘어나
임원급은 일반 직원과 확연히 달라

이처럼 총수에 따른 연봉 공개 유무가 발생하는 건 현행법에 기인한 바가 크다. 2013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임원 연봉공개 범위를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상장사 등기 임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재벌 총수 상당수는 대거 등기 임원에서 물러나면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반쪽짜리 법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 건 당연했다.

다행히 한정적으로 공개되던 임원 보수는 조만간 한층 광범위하게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달리 말하자면 등기 임원에 오르지 않아 정확한 연봉 공개가 이뤄지지 않던 일부 재벌 총수들의 실 수령액이 낱낱이 공개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3월2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통과된 자본시장법은 상장기업의 보수 총액 기준 상위 5위까지 공개하도록 했으며 2년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시행된다. 단, 공개 대상은 보수 총액이 5억원 이상 임직원으로 국한된다.

앞서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적용시기를 '법 시행 후 2년 뒤'로 명시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적용 시기가 2018년으로 규정됐다. 이는 등기임원의 보수 공시의 무를 강화하고 개별임원 보수 공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다만 개정된 자본시장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까지는 애매한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일단 기업마다 상이한 공시 기준자체가 걸림돌이다. 현행 사업보고서에 공시하는 직원 보수 총액과 1인당 평균 보수 공개 시 일부 회사는 미등기임원까지 포함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부장급 이하 일반 직원만 포함시키고 있어 기업마다 기준을 달리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 LG전자, 카카오, 메리츠증권 등은 미등기임원까지 포함해 직원 평균 보수를 산정하고 있었다. 반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삼성증권, 삼성화재 등은 미등기임원을 제외한 채 공시하고 있었다.

이처럼 통일된 기준이 없다보니 기업마다 직원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사업보고서에 직원 보수 총액을 공시하고 직원 수로 나눈 1인당 평균 보수를 기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 공시 서식제도만 놓고 보면 어떤 것이 맞고 틀린 지를 구분하기 힘들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까지 재계의 반대를 확실히 무마해야 한다는 숙제도 남아 있다. 이미 재계는 사생활 침해 등을 우려하며 관련 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상위 5인을 무조건 공개하는 경우 높은 성과를 내서 많은 급여를 받는 직원들도 공개 대상에 포함되는 등 문제 발생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거물 상당수
얼만지 몰라

재계 관계자는 “주요국에서 임원개별보수 공개가 회사의 투명성 제고나 실적개선과는 연관성이 적다는 실증연구가 나온 상태”라며 “오히려 연봉이 공개된 임원들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보수공개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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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