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재벌 총수들 건강 체크

회장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부와 권력, 명예를 독차지 하더라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재벌 총수라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이들의 건강은 개인을 넘어 회사와 국가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클 뿐이다. 총수들의 건강문제를 예민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총수 체제로 굴러가는 기업에서 총수가 건강악화로 자리를 비울 경우 중대한 변수가 발생하곤 한다. 경영권 승계라는 예민한 사안과 맞물린다면 자칫 오너리스크 쯤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기업 내부에서 이들이 갖는 의사 결정권이 막대한 힘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고령 총수들
환갑은 기본

대기업 총수의 건강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 이상이 세간에 알려진 이후부터다. 2014년 5월 이 회장은 한남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아직까지도 병석에 누워있다. 지금까지도 삼성서울병원 20층 VIP 병실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의 입원이 장기화되자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로 재편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미래 먹거리에 집중한다는 전략은 그룹총수 역할을 하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과 연결된다.

지난해부터 삼성은 일부 계열사 매각과 인수 합병(M&A) 등 굵직한 사안들을 정리했다. 그룹 내 주요 화학 계열사를 한화와 롯데에 순차적으로 매각했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올해부터는 스마트카, 바이오사업 등 신수종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 회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벌 총수의 건강 악화는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자면 대기업 재벌 총수 대다수가 적지 않은 나이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기업 집단 70세 이상 총수가 절반 
신격호 맏어른…정지선이 가장 젊어

지난 1일자로 발표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52개 민간기업 가운데 전문경영인(CEO) 체제를 유지하는 7곳(포스코, KT, 대우조선해양, S-OIL, 대우건설, KT&G, 한국GM)을 제외한 45개 기업이 총수 체제를 취하고 있다. 대다수 재벌기업이 총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45개 기업의 동일인, 즉 사실상 총수라 불리는 인물들의 출생년도를 살펴보면 1920년대생이 3명, 1930년대생 6명, 1940년대생 13명, 1950년대생 14명, 1960년대생 8명, 1970년대생 1명으로 조사됐다. 가장 나이가 많은 총수는 신격호(1922년생) 롯데그룹 총괄회장이었고 정지선(1972년생) 현대백화점 회장은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특히 1940∼1950년대 출생자가 전체 인원의 절반에 이르고 60세 이상인 총수가 약 80%를 차지한다. 환갑을 넘지 않은 총수를 찾는 게 더 힘들다. 최근 건강 이상설에 시달리는 대다수 재벌 총수들의 경우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재판 받으면
밝혀지는 지병

재벌 총수의 건강 문제는 사법부의 방침과 맞물리면서 또 다른 논란을 만들기도 한다. 이재현 CJ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이호진 전 태광 회장 등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의 경우 비리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지병이 알려졌다는 점이다.

기업 비리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회장은 지난해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대법원에 재상고 후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이 회장은 신장이식수술 부작용과 유전병 등으로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병실에서 보냈을 만큼 위독한 상태다.


만성신부전증을 앓던 이재현 회장은 2013년 8월28일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급성거부반응, 수술에 따른 바이러스감염 의심 증상이 수반됐다. 항간에서는 형 집행을 따르지 않기 위한 꼼수 쯤으로 해석했지만 병세가 완연하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이 회장은 더욱이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CMT)'까지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CMT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손과 발·다리 근육이 소실되고 신경이 퇴화되는 질환으로 호흡곤란으로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소견이다. 이 회장은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상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소문마저 들린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 8월 부친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장례식장에 상주 노릇은 물론 빈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데다 장남인 이선호씨의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다소 갑작스러운 선호씨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이 회장 자신이 처한 상황, 즉 건강 적신호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터져 나왔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1300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고령과 건강 상태 악화가 받아들여져 법정구속은 면했다. 앞서 검찰은 조석래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법원의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건 조 회장의 건강이었다. 80대의 고령인 조 회장은 담낭암 수술 후 전립선암이 추가로 발견됐고 부정맥 증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저기 아픈 오너들 ‘비상’
건강리스크 터질까 전전긍긍

간암으로 투병중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역시 건강 악화가 형 집행에 발목을 잡은 케이스다. 이 전 회장은 2012년 간암 판정을 받은 뒤 3년여 투병해왔으나 현재까지 마땅한 간이식 수술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통상 간이식 수술은 가족 등 생체이식 대상자가 없을 경우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이식 희망의사를 요청한 뒤 뇌사자 등이 발생하면 순번대로 받게 된다.이 전 회장은 2011년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뒤 2012년 구속됐으나 간암 판정으로 인해 형집행정지 및 보석으로 그해 6월에 풀려난 바 있다.

2014년 5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건강을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한 전례가 있다. 미국에 머물며 신병치료를 받기 위함이었다. 2014년 2월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함께 벌금 50억원,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았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출국이 가능했다. 만성 폐질환, 당뇨가 악화된 데다 우울증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이 나이가 있다 보니 조금씩 지병이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그룹 경영에 불안요소가 될까봐 병세를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며 “그러다 검찰 조사 등을 받으면 몸을 제대로 관리하기도 상황이 어렵고,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에 심하게 발병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나이 불문
자기관리 철저

물론 고령이라고 해서 재벌 총수 모두가 건강 적신호에 노출된 건 아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닮아 타고난 체력가다. 1938년생인 정 회장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년 장시간 비행의 해외출장을 거르는 적이 없다. 평소 등산이나 테니스를 즐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전 직원들에게 골프가 아닌 등산을 권유한 일화도 유명하다.

구본무(1945년생) LG그룹 회장은 평상시 걷기와 주말 골프 등을 즐기면서 건강관리를 한다. 구 회장은 평일에는 러닝머신 걷기와 가벼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기초체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말에는 거래처 파트너와 계열사 임원, 지인들과 골프장을 돌면서 걷는 운동을 통해 체력을 다진다.


조양호(1949년생) 한진그룹 회장은 술·담배를 전혀 안 한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부터 건강체질인데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고 일상에서 건강을 저해할 만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멀리한다고 봐도 된다.

박삼구(1945년생)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골프와 등산을 즐긴다. 매년 계열사 임직원들과 산을 오르는데 헬스, 골프 등으로 체력을 다진터라 20, 30대 직원들도 박 회장의 등산 속도를 맞추기 어려다는 후문이다. 이외에도 허창수(1948년생) GS그룹 회장과 최태원(1960년생) SK그룹 회장은 평소 테니스로 건강을 관리하기로 소문나 있다.

문제는 총수의 건강에 의문부호가 따르는 기업일수록 ‘건강리스크’가 그룹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부가 집중돼 있는 국내경제 특성상 국내 재벌 총수들의 건강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막대하다. 재벌 총수들은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보고해야할 사안이 많은 만큼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고령의 총수의 경우 평소 별다른 아픈 곳이 없더라도 건강이상설이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업의 핵심
아프면 흔들린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국내 대기업은 총수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강하기 때문에 총수의 건강 문제가 터질 경우 긴장을 늦추기 힘들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총수가 아니면 결정하기 힘든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 등에서 지체될 때가 많아 중장기적으로 그룹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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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