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2013 정계개편' 시나리오 대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22 13:07:47
  • 댓글 0개

여야 모두 심각한 계파갈등 "이참에 판 깨고 새판 짜자"

[일요시사=정치팀] 국정원과 NLL 정치공방이 몰고 온 '나비효과'가 정치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다. 여야 모두 깊숙이 가라앉아있던 계파갈등이 수면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야 내부의 계파갈등은 이미 단순한 의견대립을 넘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계파갈등 끝에 굳건했던 여야의 양당구도가 깨지고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여의도에 나도는 심상찮은 '2013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외전'보다 치열한 '내전'이 시작됐다. 벌써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국정원과 NLL 의혹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여야 내부의 계파갈등이라는 나비효과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내부의 계파갈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예사롭지가 않다. 대선기간 대선승리라는 대의를 목표로 1년 가까이 묵히고 묵혀 곪을 대로 곪은 갈등이 이제야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나비효과
극단적 예측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정원과 NLL 나비효과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각각 분당하는 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예측마저 들려온다.

우선 민주당의 경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진실공방을 놓고 친노(친노무현)계가 다시 당의 전면으로 부상하며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의원을 필두로 한 친노계는 대선패배 이후 두문불출하며 그동안 민주당의 중심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NLL 논란을 놓고 여야 간 대치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달 30일 문 의원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회의록 원본의 공개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확인될 경우 정치를 그만 두겠다"는 초강수 배수진을 치며 화려하게 정치권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이후 민주당 내에서 친노계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친노가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이 당권을 장악하고 활동영역을 넓혀가던 비노(비노무현)계로서는 무척 심기가 불편한 일이다. 비노계인 김한길체제가 출범한 지 이제 고작 2달이 지났다. 게다가 비노계는 친노계가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좀 더 자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정원·NLL이 뒤흔들어 놓은 정치권
대립 넘어 싸움으로 번진 계파갈등

갑작스런 친노계의 재등장에 비노계 일각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친노계가 국정원과 NLL 의혹에 대해 연일 강경대응을 주문하는데 대해 비노계는 큰 불만을 품고 있다. 일례로 비노계로 분류되는 조경태 최고위원은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노계인 이해찬, 정세균 상임고문을 대놓고 공격했다.

그는 "요즘 막말 플레이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당 원내대변인(홍익표)부터 상임고문(이해찬)까지 합세해 뭘 하자는 거냐"고 따졌다. 이어 "이런 막가파식 발언이 무슨 도움이 되냐. 상임고문이 당에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을 깨서야 되겠냐.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득만 추구하는 독선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이해찬 상임고문이 당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당신'이라 지칭하고 "박정희가 누구한테 죽었나. 박씨 집안은 정보부와 인연이 질긴가. 국정원을 비호하면 당선무효 세력이 늘 것"이라고 발언해 대선불복 논란이 일어난 것을 비판한 발언이었다.

강경 친노
유화 비노


조 최고위원은 또 최근 장외투쟁론을 제기한 범(汎)친노계 정세균 상임고문을 겨냥해서도 "장외로 가자는 분이 있는데 장외투쟁이 능사냐"고 꼬집었다. 이 자리에서 김한길 대표 역시 "잘못을 지적할 때 말에 신중을 기해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며 조 최고위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친노계와 비노계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 셈이다.

반면 친노계는 비노계가 주도하고 있는 당지도부의 무기력함을 질타하며 답답해하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가 지난 15일 중진연석회의 등을 통해 김현, 진선미 의원을 국정원 국조특위 위원에서 제척하고 국정조사를 정상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을 놓고 친노와 비노 의원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친노 의원들이 주축이 된 특위위원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기록관에 보관중이라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비노계가 대화록 공개를 주도한 친노계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해 신경전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막말과 장외투쟁, 대선 불복 등 연일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친노 중심의 강경파와 의정활동 중심의 대여 공격을 이끌고자 하는 온건파 중심의 비노계 지도부가 맞서면서 현재 민주당 내에서 친노계와 비노계는 끊임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비노계는 친노계에 대해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친노계가 민생을 외면하고 정치공세에만 치중했기 때문인데 친노계가 제대로 반성도 하지 않고 연일 강경대응만 주문하며 다시 당을 망치려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대선 친노계의 책임론까지 다시 거론되는 것은 이미 의견대립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친노계 또한 비노계에 대한 불만이 큰 것은 마찬가지다. 친노계는 비노계에 대해 국정원과 NLL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앞에 두고 비노계가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 지지층들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친노계와 비노계는 사실상 이미 섞이기 힘든 물과 기름 같은 사이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해묵은 전쟁
친이 vs 친박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싸움은 좀 더 복잡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계파싸움은 친박(친박근혜)계와 친이(친이명박)계 간의 갈등이다. 대선 이후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에서는 최근 감사원의 "4대강 사업이 대운하용이다"라는 4대강 사업 감사결과 발표를 계기로 친이계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4대강 감사결과 발표 또한 국정원 사건 '물타기'의 일종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발표 역시 국정원 사건의 나비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감사원의 이번 발표는 4대강 사업에 대해 긍정적이던 초기 감사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청와대는 감사결과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논평했다.

친이계 입장에서는 감사원과 청와대의 공조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국정원 사건을 물타기 하기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내세운 것은 당내 친이계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이번 발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친이계 힘 빼기 시도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친이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은 감사원의 발표 이후 연일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7일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권력기관이 정쟁을 유발하는 동기를 제공하면, 그 부담은 여권 전체가 지게 된다"며 남재준 국정원장과 양건 감사원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친이계인 이병석 국회부의장도 이날 "최근 감사원의 4대강 감사는 원칙도 기준도 없는 정치·코드감사"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친이계가 이번 사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는 친이계가 분당까지 염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친이계는 최근 이뤄졌던 당 지도부 인선에서 친이계가 철저하게 배제된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당의 지지도가 떨어질 경우 ‘친이계의 봉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무성 의원의 NLL 대화록 발언 파문도 일종의 새누리당 내부 권력싸움으로 분석된다. 지난 6월26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의원은 자신이 대선기간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을 읽었다는 발언을 해 궁지에 몰렸었다.

민주당은 발언이 알려진 후 새누리당이 국정원으로부터 대화록 원문을 받아 선거공작에 활용한 증거라며 김 의원을 강하게 압박했다.

한편 김 의원의 대화록 발언이 나온 회의는 비공개회의였다는 점에서 새누리당 내부에서 누군가가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발언 내용을 일부러 언론에 흘린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김 의원은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지난 2010년 박 대통령이 반대하던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고 친이계 의원들의 추대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가 되면서 박 대통령과 이미 한차례 갈라섰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당내 친박계가 김 의원이 당내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 같은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는 사실상 친박과 김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새누리당 내 신주류 간 갈등의 신호탄이 된다. 김 의원은 이미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상당수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김 의원의 영향력이 범박(범박근혜)계에 까지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만약 비박과 범박까지 아우르는 친김무성계와 친박계 간의 갈등이 표면화 된다면 당내 소수인 친이계와의 갈등과는 달리 당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리는 대규모의 전면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친박 직계 진영에서는 벌써부터 김 의원의 대항마를 찾느라 분주하다는 후문이다.

거대 여야 양당구도 드디어 깨지나?
안철수 신당, 반사이익에 활짝 웃을까?

김 의원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서청원 전 의원과 유승민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다. 하지만 친박 진영에서 김 의원을 견제하면 할수록 친김무성계와 친박계의 갈등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이 10월 재보선 직후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고 차기 대권을 준비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김 의원이 이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다면 친박계와 친김무성계 간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내부에선 친박계와 비박계의 복잡한 전선이 형성되어 있어 현재도 보이지 않는 계파싸움이 치열하다는 후문이다. 그야말로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 싸움인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원과 NLL 파동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여야 당내 계파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계파싸움 끝엔 최악의 경우 여야 각 당이 분당되면서 그동안 굳건하게 이어져온 양당구도가 깨지고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들이 여야의 분당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과거와는 달리 당 지도부의 장악력이 약해진데다 각 당에 구심점 역할을 할 존재가 없고, 계파 간 갈등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현실성이 없는 시나리오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분당이 일어난다고 해도 당이 둘로 쪼개지는 수준이 아니라 권력싸움에서 밀려난 이들의 퇴출에 가까운 소규모 이탈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주류 친김무성
친박에 견제 받나?

한편 여야 내부의 계파갈등이 깊어질수록 주목을 받는 것은 '안철수 신당'이다. 계파갈등을 피해 각 당을 뛰쳐나온 인사들이 대거 안철수 신당으로 모여들 가능성도 점쳐지기 때문이다. 그 경우 안철수 신당이 순식간에 원내 제3당으로 등장하는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과연 국정원과 NLL사건이 몰고 온 후폭풍은 여야의 정치지형을 어디까지 바꿔 놓을까? 날로 뜨거워지는 한여름의 열기와 정치권의 계파싸움에 대한민국의 온도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