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밤, 막내고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온 고모는 필자에게 천사 같은 분이었다. 조문하러 가는 길에도, 영정 앞에서도 고모의 얼굴과 필자를 아껴주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많지만, 나를 사랑해준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랑을 받던 시간까지 한꺼번에 불러낸다. 고모를 떠나보내며 필자는 50년 전 국어 시간에 읽었던 한 편의 수필을 다시 생각했다.
독일 작가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76년 10월, 국어 시간에 이 글을 만났다. 울고 있는 아이와 작은 새의 죽음, 가난한 노파의 눈물처럼 지나치기 쉬운 장면들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사람이 큰 불행 앞에서만 슬퍼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깊이 생각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지 혼자 헤아리곤 했다.
고모의 사랑은 오래전부터 필자 곁에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직 결혼하지 않은 고모가 필자를 교회에 데리고 다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고2 때 찾아간 교회 사택에서 고모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공부하던 필자를 무척 아껴주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배웠지만, 필자는 일기장에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라고 적고 그 아래 고모의 사랑을 메모했다. 교과서에서 슬픔을 배우던 필자는 고모 곁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을 얻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고모 집에서 약 1년 동안 사촌동생들과 함께 생활했다. 고모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필자는 그 사랑을 받으며 때때로 슬픔을 느꼈다. 아버지 없이 어렵게 공부하는 조카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그 안에 담겨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고마운 보살핌 속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도 다시 느끼며 필자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썼다. 고등학생 때 기쁨으로 적었던 사랑을 대학생 때는 슬픔으로도 읽고 있었다.
고모는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도 나무라기보다 붙잡고 함께 울며 달랬다. 그 눈물은 필자를 슬프게 했지만, 자녀를 끝까지 품는 사랑은 따뜻한 기쁨을 주었다. 고모의 자손들은 목사, 교사, 연구소장, 변호사, 방송 기자, 대기업 간부 등으로 성장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도 사촌동생들과 가깝게 지내며 함께 울고 웃던 일들을 기억한다. 훗날 필자가 장로 안수를 받았을 때도 고모는 누구보다 기뻐해 줬다. 이제 고모를 떠나보내며 평생 받은 사랑의 무게를 새삼 느낀다.
고모는 필자의 아픔을 알아보고 자신의 생활 안에 필자의 자리를 내줬다. 그 기억을 돌아보며 오늘의 대한민국에 묻게 된다.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의 슬픔을 얼마나 알아보고, 그 사람을 위해 어떤 자리를 내주고 있는가. 50년 전 수필이 지나치기 쉬운 슬픔 앞에 멈춰 서게 했다면, 고모의 삶은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줬다.
오늘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쓴다면 그 질문에서 시작하고 싶다.
필자가 그 수필을 읽던 1976년, 교실 밖 대한민국은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공장이 들어서고 도시가 커졌으며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났다. 그 과정에는 학비 때문에 공부를 접는 학생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미루는 노동자도 있었다. 교과서에서 읽은 슬픔은 교실 밖 사람들의 삶에도 있었다.
당시 필자는 자신의 어려움을 견디느라 그들의 슬픔까지 충분히 헤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5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놀랄 만큼 풍요롭고 편리해졌다. 멀리 있는 사람과도 손 안의 화면으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고, 수많은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사정을 쉽게 알게 됐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깊이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사연 아래 위로를 남긴 뒤 화면을 넘기면, 그 사람의 어려움도 끝난 것처럼 잊기 쉽다.
오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는 고통 그 자체와 함께,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빨리 잊히는 풍경도 들어가야 한다.
퇴근길 청년이 휴대전화로 월세 이체 내역을 확인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월급이 들어온 날인데도 월세와 대출 이자가 빠져나간 뒤 남은 돈으로 다음 달을 계산해야 한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을 들어왔으나 얼마나 더 해야 삶이 나아질지는 알 수 없다.
부모가 안부를 물으면 걱정시키기 싫어 “잘 지낸다”고 답하고,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돌린다. 청년이 꿈을 포기했다고 꾸짖기 전에 괜찮다는 말 뒤에 숨긴 생활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내일 누구에게 맡길지 걱정하는 부모도 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오면 부부는 먼저 누가 직장을 빠져나올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도 남겨둔 업무가 마음에 걸리고,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게 하면 아이에게 미안하다.
출산을 권하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부모와 아이의 하루를 함께 책임질 준비는 충분한지 물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돌봄의 시간이 있다.
평생 자식 걱정을 하던 부모가 이제는 자신이 자식의 걱정거리가 될까 봐 아픈 곳을 숨긴다. 전화로는 밥을 잘 먹었다고 말하면서도 혼자 먹을 식사를 차리는 일은 자꾸 미룬다. 명절에 모두 돌아간 뒤 조용해진 집에서는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달력을 넘긴다. 우리는 오래 사는 시대를 만들었지만, 오래 사는 사람의 하루를 함께하는 방법에는 아직 충분히 답하지 못했다.
같은 집에 앉아 서로 다른 화면을 바라보는 가족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족 대화방에는 사진과 짧은 답장이 오가지만, 정작 식탁에서는 서로의 하루를 묻지 않을 때가 있다. “요즘 정말 괜찮으냐”는 질문은 시간을 들여 답을 들어야 하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뒤로 밀린다.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의 수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같지 않다. 고모가 필자의 형편을 알아차렸던 것처럼, 가까운 사람의 말과 표정을 오래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의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국민의 어려움을 들은 정치인이 해결 방법보다 어느 정부와 정당의 책임인지부터 따지는 순간이 있다. 책임을 가리는 일은 필요하지만,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월세 납부일은 돌아오고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은 다가온다. 국민의 생활은 정치의 합의를 기다리며 멈춰 있지 않는다. 국민의 슬픔이 정쟁의 재료로 쓰이고 해결은 뒤로 밀리는 풍경이 오늘의 수필에 들어가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받아들여야 할 슬픔도 있지만, 주거 불안과 돌봄의 공백처럼 우리의 선택으로 덜 수 있는 슬픔도 있다. 청년에게는 삶을 꾸릴 수 있는 일자리와 집이 필요하고, 돌봄에 지친 가족에게는 쉴 시간과 함께 책임질 제도가 필요하다.
정책을 마련했다는 발표 뒤에는 그것이 필요한 사람의 하루를 실제로 바꿨는지 확인하는 일이 따라야 한다. 같은 사연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그 사람의 하루가 덜 힘들어진 것은 아니다. 슬픔을 알아본 뒤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고 맡은 일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1976년 10월, 필자는 국어 교실에서 슬픔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고 고모 곁에서 그 슬픔을 보듬는 사랑을 받았다. 대학 시절에는 그 사랑에 담긴 안쓰러움을 알아차리며 기쁨과 슬픔이 함께 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50년이 지난 지금 고모는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필자를 위해 내줬던 자리는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제 필자는 그 기억으로 곁에 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살피고 사랑을 전할 시간을 미루지 않으려 한다. 50년 전에는 슬픔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다. 50년 뒤 지금은 그 슬픔에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skkim5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