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차 유엔총회 일반 토의가 열리던 지난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과 백악관의 거리는 약 330km다. 뉴욕에서는 세계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를 이야기했고, 워싱턴에서는 세계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 나라의 정상이 마주 앉았다.
이번 일반 토의를 지켜보며 필자의 머릿속에 오래 남은 장면은 193개국이 참여하는 유엔총회의 연단보다 백악관의 회담장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대화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무역과 기술 경쟁, 대만해협과 중동 문제를 두 나라가 직접 논의할 필요가 있다. 충돌의 위험을 낮춘다면 세계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시 주석에게 9월24일 백악관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간과 겹치는 날짜에 회담을 잡은 것이다. 세계가 뉴욕에 모인 바로 그 주에 두 강대국은 워싱턴에서 별도의 무대를 만들었다.
시 주석의 선택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지만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에는 가지 않았다. 유엔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회원국들이 모인 자리보다 양자회담에 집중한 셈이다. 다른 회원국을 무시하려는 의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가 함께 모인 장소를 지나쳐 두 나라만의 회담장으로 향한 장면이 남긴 인상도 가볍지 않다.
미국에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유엔 본부가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 총회에서 연설한 뒤 이틀 만에 중국 주석을 백악관으로 맞이했다. 미국의 외교 현안과 국내 일정에 따른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국제사회가 한자리에 모인 기간에 세계의 이목을 끄는 회담을 따로 연 결과, 총회에서 오간 여러 나라의 발언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려워졌다. 강대국의 정상회담이 총회보다 더 큰 뉴스가 된 까닭을 유엔도 돌아봐야 한다.
총회의 존재감이 약해진 책임을 미국과 중국에만 돌릴 수는 없다. 올해 일반 토의는 9월22일부터 26일까지 열렸고, 28일에도 이어졌다. 각국에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은 유엔총회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연설 뒤에 다음 나라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서로 다른 입장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하는 질문은 뒤로 밀리기 쉽다.
회의가 오래 열린다고 해서 함께 논의하는 시간까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조연설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 모든 회원국이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세계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대국의 결정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협상력이 부족한 나라에는 총회 연단이 소중하다. 그렇지만 발언권을 보장하는 것과 현안을 해결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정상들이 자국의 정책을 설명하고 내려온 뒤에도 상대국의 주장에 답하고 공동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필자는 지금의 일반 토의를 유지하면서 정상들이 함께 참여하는 2~3일의 핵심 토론 일정을 별도로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분쟁과 안보, 경제와 기후, AI처럼 국경을 넘어 영향을 주는 의제를 미리 정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각국은 회의 전에 쟁점과 제안을 제출하고, 정상들은 현장에서 서로의 제안에 답해야 한다.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그대로 기록하되 합의할 수 있는 과제와 후속 일정은 정하고 헤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작은 나라의 목소리가 줄어서는 안 된다. 모든 회원국의 발언권과 현장 발언을 희망하는 나라의 기회는 보장해야 한다. 핵심 토론에서는 해당 문제를 직접 겪는 나라가 먼저 쟁점을 제시할 수 있다. 기후 위기에 취약한 나라가 기후 문제를, 분쟁으로 주민이 피란한 나라가 난민 문제를 말하는 식이다. 강대국은 그 목소리에 답하고, 다른 회원국도 질문과 제안으로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정상들의 참석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연설을 마치자마자 다음 일정으로 떠나는 일이 반복되면 총회는 각국의 입장을 발표하는 장소에 머물기 쉽다. 정상들이 모든 회의에 참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연설에서 제기한 핵심 의제의 토론에는 남아 다른 나라의 질문을 듣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엔이 정상을 뉴욕에 모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함께 논의할 시간까지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총회 기간에 열리는 양자 정상회담도 유엔의 논의와 연결할 수 있다. 정상들이 한 도시에 모인 기회에 서로 만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짧은 만남이 긴 협상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여러 나라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논의했다면 그 결과를 회담 사진과 공동 발표에만 남겨서는 부족하다. 어떤 문제를 다뤘고 후속 조치를 어떻게 이어갈지, 가능한 범위에서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방식도 생각해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다룬 문제는 미국과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관세와 공급망은 다른 나라의 산업과 일자리에도 영향을 준다. 대만해협의 긴장과 중동의 분쟁은 주변국의 안전을 흔든다. 두 나라가 직접 협상할 권리는 있다. 동시에 그 결과에 영향을 받는 나라들이 자신의 우려를 말하고 대응을 논의할 자리도 필요하다. 강대국의 합의가 국제사회의 협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여기에 유엔총회의 역할이 있다. 유엔은 모든 회원국이 각자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드문 공간이다. 전쟁과 난민, 기후와 보건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합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강대국 사이의 대화가 활발할수록 그 영향을 받는 나라들도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총회는 양자회담에서 빠지기 쉬운 나라들의 목소리를 공동의 논의로 이어주는 자리가 돼야 한다.
유엔총회는 해마다 세계 각국의 대표를 뉴욕으로 모이게 한다. 다른 국제회의에는 없는 힘이다. 이제는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연설을 듣고 답하며, 합의한 과제의 이행 여부를 다음 총회에서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일반 토의가 끝난 뒤 연설 영상과 회담 사진만 남는다면 이듬해에도 같은 문제를 들고 다시 연단에 서게 될 것이다.
총회의 무게는 연설의 수보다 그 자리에서 시작해 다음 해까지 이어지는 논의에 달려 있다.
뉴욕에는 세계가 모였고, 워싱턴에는 미국과 중국이 모였다. 두 나라가 총회 기간을 피해 만났더라도 회담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엔총회가 정상들을 함께 앉혀 현안에 대한 답을 찾는 자리였다면 세계의 시선도 그토록 쉽게 옮겨가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일반 토의가 남긴 질문은 두 가지다. 미국과 중국은 왜 세계가 모인 바로 그 주에 따로 만났는가. 그리고 유엔은 왜 세계가 함께 모인 시간을 더 잘 쓰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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