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군 당국의 중간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군은 최종 조사에서 북한의 ‘고의적 매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합당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공언했지만, 11년 전 목함지뢰 도발 때와는 전혀 다른 정치·외교적 환경 탓에 실효성 있는 대응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 대화 재개를 추진 중인 이재명정부가 단호한 대응과 대화 기조 유지 사이에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이경호 국방부 부대변인은 29일 서울 용산구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지뢰 매설이 확인되면 이를 도발로 볼 것이냐는 질의에 “여러 가지 분석 결과 및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최종 판단을 통해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이번 사고 관련 중간 결과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현장 조사를 토대로 종합 판단한 결과, 이번 지뢰 폭발 원인은 북한군의 지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군의 이 같은 판단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기반한다. 부상 장병의 방탄 헬멧 등에서 폭약 성분인 TNT와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된 반면, 우리 군의 M14 대인지뢰 등이 터질 때 발생하는 철제 파편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폭발물이 목함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군은 이 밖에도 ▲사고 지역에 아군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점 ▲인근 지역에서 지난해 북한군의 지뢰 매설 추정 흔적이 식별된 점 ▲피해 장병의 부상 정도 등을 종합해 해당 폭발물이 북한군의 지뢰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사고 현장에서는 폭발하지 않은 북한군의 수지(플라스틱) 반보병지뢰 1발도 추가로 식별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군 당국을 고심하게 만드는 것은 북한의 ‘고의성’ 여부다. 우리 장병을 직접 겨냥해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한 ‘도발’인지, 과거 매설됐던 지뢰가 유실됐거나 50년 넘게 방치된 상태였는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사고 지역이 MDL 이남인 것을 알고도 내려와 지뢰를 매설했다는 고의성이 입증된다면, 이는 방어적 목적이 아닌 군사 공작에 해당되기 때문에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된다.
2015년 목함지뢰 도발 당시에는 우리 군이 상시적으로 오가던 추진철책 통문 길목에 지뢰가 매설돼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가 명확했고, 감시장비에도 관련 정황이 포착됐다. 반면 이번 사고 지역은 우리 군이 약 50년간 사실상 진입하지 않았던 곳으로, 수색로를 새로 개척하던 중에 발생했다.
합참 관계자 역시 “아군을 대상으로 (북한이) 병력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공작을 했다고 보기에는 제한이 있을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북한 소행임은 거의 확실시되지만, 우리 군을 직접 노린 최근의 도발 행위라는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정부의 대응 명분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상응 조치’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거론된다. 다만 통일부는 “현 단계에서는 제반 사항을 철저히 규명하는 게 중요하며 구체적인 조치는 결과에 따라 추후에 검토될 부분”이라며 말을 아꼈다.
북한의 고의적 도발로 최종 결론이 날 경우, 정부의 대응 수위는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2015년 박근혜정부는 북한 소행 발표 당일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즉각 재개한다고 밝히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후 북한의 포격 도발과 우리 군의 대응 사격으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판문점 고위급 접촉을 통해 북한의 ‘유감’ 표명을 끌어내며 끝내 출구를 찾았다. 강경 압박을 통해 협상 테이블을 연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북한은 지난 2023년 이후 현재까지도 대남 노선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최고 통치 규범인 노동당 규약에서 대남·통일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하기까지 했다.
반면, 이재명정부는 출범 직후 남북 긴장 완화 조치라며 지난해 6월 전방의 고정식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했다. 야권에서는 “철거한 확성기부터 다시 세우라”고 압박하지만, 대북 유화 기조를 유지해 온 정부가 이를 뒤집고 확성기를 재설치하기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게다가 2023년 4월부터 남북 간 모든 공식 통신선이 끊겨 있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상황을 관리할 직통 채널조차 없는 실정이다. 정전협정 위반 문제를 제기할 공식 통로로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사실상 유일하다.
정부의 고심은 현재 추진 중인 외교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이 대통령은 불과 며칠 전 유엔총회 연설에서 “멈춰있던 북미 대화가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어렵게 조성하려는 대화 국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그렇다고 소극적 대응에 그치기엔 우리 군 장병의 안전이 위협받았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이 만만치 않다. 최근 인사 참사 논란 등으로 국정 운영의 부침을 겪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자칫 이번 사태가 안보 불신으로 번질 경우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 일각에서는 북한군 지뢰가 확인된 지역을 중심으로 DMZ 내 수색 및 지뢰 제거 작전을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장병 안전 확보라는 명분이 뚜렷하고, 확성기 재개보다 군사적 긴장을 덜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날 이 대통령은 이번 사고와 관련 “진상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군 당국은 유엔사령부와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이번 사안과 관련해 근거 없는 음모론을 부추기면서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합참은 유엔사와 추가 현장 조사를 통해 미폭발 지뢰와 폭발 원점, 매설 시점 등을 명확히 규명한 뒤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결과에 따라 이재명정부의 대북 정책은 중대한 분수령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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