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명절 밥상에서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최근 청와대가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대신 다른 후보자를 제청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조 대법원장이 거부하면서, 관심은 후보자 한 사람을 넘어 두 사람의 대립으로 옮겨갔다.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이야기 끝에 또 다른 질문이 나왔다. 이 갈등이 길어지면 누가 더 커질까?
조 대법원장은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22일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요청 공문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23일에는 청와대가 주장한 ‘제청 과정의 절차적 흠결’도 헌법과 법률에 비춰 수긍하기 어렵다고 거듭 밝혔다.
청와대는 재제청을 요구한 사유를 공문에 이미 적었다고 즉각 반박했다.
이번 충돌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지난 1월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후보 4명을 추천했지만, 청와대와 대법원은 반년 넘게 최종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 노 전 대법관은 3월 후임자 없이 퇴임했고, 이흥구 대법관의 퇴임도 다가왔다.
대법관 인선은 통상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협의를 거쳐 진행해 왔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이 대통령과 직접 만나 후보를 협의하지 않은 채 지난달 18일 손봉기 후보자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후보자를 이 대법관 후임으로 함께 서면 제청했다.
청와대는 제청된 두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다르게 진행했다. 김 후보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였다며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 동의를 거쳐 이 대통령이 임명했다. 반면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국회에 보내지 않고 다른 후보자를 재제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헌법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제청권과 임명권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견이 생긴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손 후보자를 적법하게 제청한 만큼 다른 후보자를 새로 제청할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어느 쪽의 주장이 타당한지는 절차와 근거를 놓고 따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파장은 법적 판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 대법원장의 발표 시점도 주목받았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성수 신임 대법관 임명식에 참석해 이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차담에서는 재제청 문제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순방을 위해 출국한 다음 날인 22일,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거부 입장을 밝혔다.
발표 시점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대통령이 해외에 있는 동안 나온 공개적인 거부 입장은 양측의 대립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이에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6일 서면 브리핑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윤석열이 걸어간 몰락의 길”을 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말을 듣고 필자는 문재인정부와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을 떠올렸다. 박 대변인은 윤석열의 결말을 경고했지만, 필자의 생각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적으로 커졌던 과정으로 향했다.
윤석열은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정부와 충돌하며 정치 뉴스의 중심에 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서 시작된 대립은 검찰 인사와 수사권 문제를 거치며 커졌다. 정부와 여당이 그를 비판할수록 그를 권력에 맞서는 인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늘었다.
검찰총장이라는 직책만으로 얻기 어려운 정치적 인지도가 갈등 속에서 형성됐다. 그 관심은 그가 검찰을 떠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갈등만으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과 당시 야권의 후보 구도, 선거 과정의 여러 조건이 함께 작용했다. 하지만 문정부와 맞섰던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돼 대통령에 당선된 결과는 분명하다. 그를 둘러싼 갈등은 검찰 조직 내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대통령선거의 쟁점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 대법원장을 둘러싼 현재의 갈등을 돌아보게 된다.
조 대법원장에게 같은 경로가 열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는 정계 진출 의사를 밝힌 적이 없고, 대법원장이 퇴임 후 대선후보가 되는 길도 익숙하지 않다. 검찰총장과 대법원장은 맡은 역할과 정치적 환경 역시 다르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당사자가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지지층과 정당이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야권에서 뚜렷한 차기 후보가 보이지 않을수록 그런 상상은 힘을 얻을 수 있다.
국민의힘에는 문정부와 맞선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선후보로 받아들여 정권을 되찾은 경험이 있다. 이재명정부와 여당의 사법부 비판을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한 사법부 압박’으로 규정한다면, 조 대법원장을 대항의 상징으로 세우려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아직 그의 정계 진출을 말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윤석열을 거론하며 공세를 높일수록 두 사람을 비교하는 정치적 시선까지 커질 가능성은 있다.
지난 23일 내란 사건의 후속 수사를 맡을 특별수사본부 구성이 검토된다는 보도도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은 이를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압박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특수본 검토가 조 대법원장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지금 확인된 사실만으로 재제청 갈등과 특수본 논의를 하나의 의도로 연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사안이 맞물리면서 야권에서는 이를 ‘사법부 길들이기’로 읽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해석이 퍼지는 것 자체가 여권에는 부담이다. 특수본이 필요하다면 수사 대상과 범위, 기존 수사로 밝히지 못한 부분을 설명해야 한다. 재제청 문제에서도 어떤 절차에 흠결이 있었고 왜 다른 후보자가 필요한지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두 사안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조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만 높이면 각각의 쟁점은 사라지고 ‘대통령 대 대법원장’이라는 구도만 남는다.
그렇다고 이 대립이 조 대법원장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제청권을 지킨 대법원장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공석이 길어지면 갈등을 풀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청와대 역시 임명권을 지키려 했다는 평가와 인선 지연의 책임을 함께 마주할 것이다. 여권이 조 대법원장을 정권에 맞선 적으로 규정하고 야권이 청와대의 요구를 사법부 흔들기로만 몰아붙일수록, 정작 따져야 할 법적 쟁점은 뒤로 밀린다.
조 대법원장은 1957년 6월생으로, 정년에 따라 2027년 6월 퇴임할 예정이다. 사법부의 권한을 지킨 대법원장으로 기억될지, 헌법기관 사이의 대립을 풀지 못한 대법원장으로 기억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퇴임 뒤 정치권이 그의 이름을 부를지도 단정할 일은 아니다.
설령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권력과 맞선 이력이 대통령의 자격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경제·외교·안보·민생을 책임질 능력은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이정부와 민주당이 경계해야 할 것은 조 대법원장의 출마 여부보다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청와대는 재제청이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임명 절차를 다시 진행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 대법원장도 거부 이유를 되풀이하는 데 머물지 말고 공석을 해소할 다음 절차를 제시해야 한다. 헌법이 제청권과 임명권을 나눠 놓은 것은 두 기관이 끝없이 맞서라는 뜻이 아니다.
문정부가 윤석열과 대립했기 때문에 정권을 잃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선거에는 부동산과 민생, 후보의 경쟁력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그러나 정부와 맞서던 검찰총장이 야당의 대선후보가 돼 대통령이 된 결과는 돌아볼 만하다.
이정부가 새겨야 할 교훈은 조희대가 ‘제2의 윤석열’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다. 상대를 향한 공격이 때로는 그 상대를 정치의 중심에 세운다는 점이다.
추석 밥상에 오른 이야기가 다음 대선후보의 이름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조 대법원장은 28일 출근길에서 청와대의 요청은 “‘재제청하라’고만 왔다”며, 국민이 궁금해하는 내용은 앞으로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정감사에서는 재제청을 거부한 이유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대법관 공석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까지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
지금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해야 할 일은 서로의 권한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손봉기 후보자를 둘러싼 이견을 풀고 멈춘 임명 절차를 움직이는 것이다. 오늘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법관 자리는 계속 비어 있고, 정치권에서는 또 한 사람의 이름만 커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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