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혼·딩크족에게 이른바 ‘저출산세’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온라인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장차 납부할 세금과 보험료로 무자녀 가구의 노후까지 유지되는 만큼 그 사회적 비용을 나눠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난임과 질병, 경제적 사정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까지 징벌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저출산세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개인의 선택으로 발생한 사회적 비용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필자가 이 기사를 보면서 떠올린 것은 비혼·딩크족보다 국회였다. 아이를 낳지 않은 개인에게까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정작 국가의 법과 예산을 책임진 국회는 입법을 지연시키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회사가 공사를 늦추면 지체상금을 물고 납품업체가 계약기한을 넘기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그런데 여야가 정쟁으로 국회를 멈추고 민생법안과 예산 처리를 늦춰도 그 비용은 정치권이 아니라 기다리는 국민이 부담한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법을 만드는 국회부터 지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들이 의견을 달리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여당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고 야당은 정부와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 충분한 토론 없이 법안을 밀어붙이는 졸속입법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정책을 놓고 다투는 것과 회의를 열지 않거나 상대 당의 법안이라는 이유로 심사를 미루며 국회 기능을 멈춰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반대는 국회의원의 권리지만 토론과 표결조차 하지 않는 것은 책임 회피다.
우리 국회에서는 법안의 내용보다 누가 발의했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여당이 발의한 법안은 야당이 막고 야당이 발의한 법안은 여당이 외면한다. 여야가 대립하면 상임위원회 일정부터 합의하지 못하고 법안은 토론과 표결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쌓여간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장기간 잠자던 법안은 폐기되고 다음 국회에서 비슷한 법안이 다시 발의된다. 의원은 새 법안을 냈다고 홍보하지만 국민이 기다린 시간과 행정력, 입법 비용은 누구도 계산하지 않는다.
헌법은 정부가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기한을 지키지 못해도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구조는 사실상 없다.
여야가 예산안을 협상 카드로 붙잡고 기한을 넘겨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국민에게 사과하면 그만이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사업계획을 제때 세우기 어렵고 복지와 일자리 사업도 영향을 받는다. 정치권의 며칠은 짧지만 예산을 기다리는 국민에게는 생계가 걸린 시간이다.
민생법안의 지연은 피해가 더 직접적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과 소상공인 보호, 산업재해 예방과 돌봄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법안이 늦어지면 제도가 없는 기간만큼 피해자가 늘어날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의 기준을 정하는 법안이 표류하면 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청년의 일자리도 늦어진다.
법을 고쳐야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입법이 끝날 때까지 지급하기 어렵고, 제도적 보호가 필요한 국민은 불안 속에서 기다려야 한다. 법안 한 건의 지연이 한 가정에는 생존의 지연이고 한 기업에는 투자의 지연이 될 수 있다.
기업이 공사나 납품을 늦추면 지연된 날짜와 손해를 계산해 책임을 묻는다. 그런데 국회는 예산안과 법안 처리가 몇 달, 몇 년씩 늦어져도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세비와 의정활동 지원을 받고 정당은 국고보조금을 받지만 입법 성과나 처리기한 준수 여부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본회의와 상임위원회가 파행을 거듭해도 기본적인 의원수당은 지급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국민이 맡긴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했는데도 비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부담하는 불공정한 구조다.
그래서 국회에도 ‘입법 지연책임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먼저 예산안과 결산, 민생 관련 법안처럼 처리기한이 중요한 안건에는 단계별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법안이 일정 기간 이상 계류되면 어느 상임위원회에서 어떤 이유로 심사가 중단됐는지 공개해야 한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회의 개최에 반대한 정당과 의원, 쟁점과 협상 과정을 국민이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연의 원인과 책임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법안을 소리 없이 묻어버리는 관행을 줄일 수 있다.
입법 지연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비용도 분석해야 한다. 국회예산정책처와 국회입법조사처가 예산 집행의 지연이 사업과 일자리, 지역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추산하고, 산업 관련 법안의 표류로 투자와 고용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모든 손실을 정확한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더라도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국회가 법안 시행에 필요한 재정만 따질 것이 아니라 법안을 처리하지 않아 발생하는 비용도 국민에게 보고해야 한다.
책임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불이익도 필요하다. 정당한 이유 없이 회의를 거부하거나 법정 처리기한을 반복해서 넘길 경우 해당 의원의 무단 불출석 일수에 비례해 의원수당을 감액하고 출석 현황과 회의 무산 경위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지거나 토론한 행위에는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책임을 물을 대상은 반대 의견이 아니라 회의를 열지 않고 토론과 표결의 기회 자체를 없애는 행위다. 국회 역시 불가피한 지연과 정치적 목적의 고의적인 지연을 구분하는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법안이 이유 없이 장기간 방치되지 않도록 현행 신속처리안건제도도 보완해야 한다. 일정 기간 심사하지 않은 법안은 자동으로 안건에 올리되 충분한 토론 기간을 보장하고, 표결할 것인지 계속 심사할 것인지부터 공개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방식이다. 좋은 법안이면 통과시키고 문제가 있는 법안이면 부결하면 된다. 가장 나쁜 것은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은 채 서랍 속에 넣어두는 정치다. 국회의원에게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킬 의무는 없지만 국민을 대신해 검토하고 판단할 의무는 있다.
입법 지연책임제가 다수당의 법안 강행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다수당이 모든 법안에 ‘민생’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소수당에 압박한다면 책임제는 오히려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 처리 속도와 법안 통과 건수만으로 국회의 생산성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무조건 빠른 입법이 아니라 국민에게 지연 이유를 설명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책임 있는 입법이다. 신중한 심사와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무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싸울 자유는 있다. 자신의 소신에 따라 법안에 반대하고 필리버스터와 같은 합법적인 수단으로 다수당을 견제할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정쟁을 이유로 국회 문을 닫고 국민의 시간과 기회를 끝없이 빼앗을 자유까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도로를 막으면 혼잡비용을 물리고 공사가 늦어지면 지체상금을 부과하면서 국회가 멈췄을 때는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지 물어야 한다. 정치인의 자유에도 국민에게 손해를 전가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따른다.
정치권은 입만 열면 민생을 말하지만 민생법안을 볼모로 상대 당을 압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협상이 결렬되면 여당은 야당 탓을 하고 야당은 여당 탓을 한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어느 당이 먼저 싸움을 시작했느냐보다 자신의 삶과 관련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않는지가 더 중요하다.
싸움은 여야가 해놓고 그 손해를 국민에게 세금과 시간, 불편으로 내게 해서는 안 된다. 공사를 늦춘 기업에 지체상금을 물리는 나라라면 입법을 늦춘 국회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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