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관 앞에서 연 ‘이재명정부 실정 대국민 보고대회’를 두고 “국민의힘에는 국민이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잇따른 인사 논란과 국정 혼선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제1야당의 책무라며 공세를 이어갔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국민이 없다고 하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민주적 책임이 없다고 맞서는 형국이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두 정당 모두 당명에 담긴 약속에서 멀어지고 있다.
민주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계 정당의 이름에는 ‘민주’라는 두 글자가 거의 빠지지 않았다. 반면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은 자유·한국·나라·국민 등 시대마다 다른 가치를 당명에 내세웠다. 민주당계가 하나의 핵심 가치를 오래 붙들었다면 보수 정당은 시대에 따라 필요하다고 판단한 가치와 이미지를 새롭게 조합했다.
당명만 살펴봐도 두 정당이 어떤 역사와 정치적 정체성을 강조해 왔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두 정당의 계보를 하나의 직선으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분당과 합당, 창당과 해산이 반복됐고 일부 세력은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졌다. 같은 이름을 사용했지만 정치적 뿌리가 다른 정당도 있었고, 이름은 달라도 주류 세력과 지지 기반을 이어받은 정당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뿌리와 주류 세력의 이동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두 계보의 차이는 분명하다. 민주당계는 ‘민주’를 계승했고 보수 정당은 새로운 이름으로 시대 변화에 대응했다.
1955년 민주당은 이승만정부의 자유당에 맞서 출범했다. 이후 신민당·신한민주당·평화민주당을 거쳐 1991년 다시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새정치국민회의와 열린우리당처럼 ‘민주’가 빠진 시기도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새천년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2015년 더불어민주당이 됐다.
당이 갈라지고 지도자가 바뀌어도 민주당계 정당은 결국 ‘민주’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민주당계가 ‘민주’를 놓지 않은 것은 정치적 정통성과 관련이 있다. 이승만정부의 권위주의에 맞선 1950년대 민주당, 박정희정부에 맞선 신민당, 전두환정부에 저항한 신한민주당의 역사를 계승한다는 의미다. 민주화운동과 정권교체의 역사는 민주당계 정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민주라는 두 글자는 단순한 당명이 아니라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정치적 족보였고, 지지층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이름에 민주가 들어간다고 그 정당의 정치까지 저절로 민주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이기고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존중하고 권력을 절제하는 데서 완성된다.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거나 당내의 다른 목소리를 억누른다면 ‘민주’라는 이름은 빛을 잃는다. 야당 시절 자신들이 요구했던 원칙을 권력을 잡은 뒤에도 지켜야 진정한 민주 정당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의 당명에는 시대별 가치가 담겼다. 자유당은 자유를, 민주공화당은 민주와 공화를, 민주정의당은 민주와 정의를, 민주자유당은 민주와 자유를 내세웠다. 신한국당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한나라당은 지역과 세력을 넘어 하나의 나라가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 새누리당은 새로운 세상, 자유한국당은 자유와 국가, 미래통합당은 미래와 보수통합을 강조했다.
2020년에는 국민 전체의 힘을 모으겠다는 뜻으로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그러나 1990년 민주자유당 이후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여섯 차례나 이름이 바뀌었다. 시대 변화에 대응하려는 선택이었지만 정치적 위기 때마다 과거와 단절하려 했다는 의미도 있다. 선거 패배와 권력형 비리, 대통령 탄핵과 당내 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간판을 걸고 재출발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고 과거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방식과 인물, 정책이 달라지지 않는 당명 교체는 혁신이 아니라 포장지 교체에 불과하다.
정치적 성격만 놓고 보면 보수는 전통과 계승, 안정과 연속성을 중시하고 진보·개혁 세력은 변화와 새로운 질서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보수정당은 이름을 오래 지키고 진보·개혁 정당이 시대에 맞춰 새로운 이름을 선택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정당사는 역설적으로 그 반대에 가깝다.
민주당계는 ‘민주’라는 이름을 끈질기게 계승했고 보수 정당은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당명을 바꿨다. 보수는 이름을 바꾸며 변화를 추구했고 진보·개혁 진영은 이름을 지키며 계승을 강조한 셈이다.
정당의 이름은 선거를 위한 광고 문구가 아니라 국민과 맺은 정치적 계약이어야 한다. 민주당이라는 이름에는 민주주의의 절차와 다양성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담겨있다. 국민의힘이라는 이름에는 특정 계층과 지역, 강성 지지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삶과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약속이 들어 있다. 이름이 거창할수록 책임도 무거워진다. 당명에 내세운 가치와 실제 정치가 멀어질수록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장점은 역사적 정체성이 분명하다는 것이지만, 과거의 민주화 경력에 지나치게 기대면 민주를 독점한다는 오만에 빠질 수 있다. 국민의힘의 장점은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다는 것이지만, 위기 때마다 이름부터 바꾸면 정치적 책임을 간판 뒤에 숨긴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쪽은 이름을 너무 믿는 것이 문제고 다른 한쪽은 이름을 너무 쉽게 바꾸는 것이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름을 지키거나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약속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최근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과연 당명처럼 민주적인 정당인지 묻게 된다.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정부 조직 개편과 검찰개혁, 각종 특검법을 추진하면서 야당과 토론하고 타협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당내에서도 지도부나 강성 지지층과 다른 의견을 내면 배신이나 해당 행위로 몰리는 분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결정하되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반대편을 설득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숫자의 힘으로 결론부터 정해놓고 절차만 밟는다면 ‘민주’라는 당명은 빛을 잃는다.
국민의힘도 과연 국민을 위한 정당인지 돌아봐야 한다. 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맞서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국회를 멈춰 세우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민생 법안까지 정쟁의 볼모가 된다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당내에서는 노선과 계파 갈등으로 충돌하면서도 고물가와 주거, 일자리와 자영업자의 어려움에는 체감할 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삶보다 계파와 선거의 유불리에 매달린다면 국민의힘 역시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당의 이름이 모두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는 말이라는 점이다. ‘더불어’는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를 묻고, ‘국민의힘’은 그 힘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지를 묻는다. 민주당이 자기편하고만 더불어 가고 반대 의견을 억누른다면 ‘더불어’도 ‘민주’도 빈말이 된다.
국민의힘이 일부 지지층의 힘만 대변하고 국민의 삶을 외면한다면 ‘국민’은 간판을 장식하는 두 글자에 불과하다. 두 당의 이름은 상대편까지 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민주당은 민주를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여기지 말아야 하고, 국민의힘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만 국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에만 민주주의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힘에만 국민을 위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은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고 국민의힘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삶을 지켜야 한다. 서로 상대의 이름값을 따지기 전에 자신의 이름부터 돌아봐야 한다. 국민은 정당의 간판보다 그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민주와 국민은 어느 한 정당이 독점할 수 있는 상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공유해야 할 헌법적 가치다. 두 정당의 이름은 달라도 결국 책임져야 할 대상은 같은 대한민국과 같은 국민이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가 빠진 민주당도, 국민이 빠진 국민의힘도 아니다. 이름에 새겨진 약속을 지키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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