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은닉 의혹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30여년 만에 다시 시작됐다. 수사의 중심에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거액을 출연한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가 놓여 있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지난달 21일, 김 여사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과 동아시아문화센터, 노태우센터, 차명계좌 제공 의혹을 받는 전직 비서관들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김 여사가 두 재단에 출연한 152억원의 자금 원천과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이른바 ‘김옥숙 메모’다.
메모에는 ‘선경 300억원’ ‘신 회장 100억원’ 등을 포함해 모두 904억원 규모의 자금 내역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 관장 측은 이 가운데 300억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최종현 전 선경그룹 회장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실제 300억원이 전달됐다는 주장을 부인해 왔다.
검찰은 메모의 작성 경위와 진위, 자금의 실체뿐 아니라 이후 김 여사의 재산 형성과 재단 출연 과정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형 권력형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1997년 노 전 대통령에게 내란·뇌물수수죄 등으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여원을 확정했다. 미납됐던 약 230억원은 2013년 동생 노재우씨와 전 사돈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이 각각 150억원과 80억원가량을 대납하면서 완납됐다.
그러나 비자금 의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24년 최태원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김옥숙 메모’가 법정에 제출되면서 새로운 자금 내역이 공개됐고, 이후 시민단체 등이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은닉 및 조세포탈 의혹을 검찰에 고발했다.
5·18기념재단 등은 2024년 10월 김 여사와 노 관장, 노재헌 당시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인 측이 주장한 의혹 규모는 김옥숙 메모 904억원, 차명보험 의혹 210억원, 두 공익법인 출연금 152억원을 합친 약 1266억원이다.
다만 이 가운데 어느 돈이 실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서 비롯됐는지, 또 재단 출연금과 비자금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현재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동아시아문화센터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김 여사의 거액 출연이다. 국세청 공시자료 등을 토대로 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동아시아문화센터에 모두 147억원을 출연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10억원, 2017년 10억원, 2018년 12억원, 2020년 95억원, 2021년 20억원이다. 특히 2020년 한 해에만 95억원이 들어왔다. 이후 2022년 설립된 노태우센터에 출연한 5억원까지 더하면 두 재단에 대한 김 여사의 출연금은 152억원에 달한다.
검찰이 이번 강제수사에서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152억원이다. 김 여사의 돈이 어떤 계좌에서 출발해 재단으로 들어갔는지, 재단에 들어온 뒤 어디에 사용됐는지, 출연 당시 자금의 성격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면 비자금 의혹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단의 부동산 거래 시점도 의혹의 한 축이다. 자료에 따르면 동아시아문화센터는 김 여사가 10억원을 출연한 직후인 2017년 10월 서울 종로구 청운동 건물을 14억6000만원에 매입했다. 이어 김 여사가 95억원을 출연한 이듬해인 2021년 4월에는 종로구 사직동 건물을 30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청운동 건물은 이후 증축을 거쳐 2024년 11월 47억원에 매각됐다. 최초 매입가격과 비교하면 약 32억4000만원 오른 가격이다. 재단 결산자료에는 장부상 처분이익이 21억5182만원으로 기록됐다.
특히 김 여사가 2018년 12억원을 출연한 뒤 그해 재단 지출 가운데 상당 부분이 청운동 건물 증축·수리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직동 건물에서도 대규모 공사 흔적이 발견된다.
2023년 말 결산서류에 28억6951만원으로 잡혀 있던 ‘건설 중인 자산’은 2024년 말 0원이 됐다. 같은 기간 건물 취득원가는 14억8163만원에서 36억4593만원으로 증가했다.
결산자료만 놓고 보면 사직동 건물의 신축 관련 비용이 건물 계정으로 옮겨진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다만 이 역시 실제 자금의 출처와 사용처를 확인해야 비자금과의 연관성을 판단할 수 있다.
재단의 회계 및 공시자료에서도 여러 차례 수정과 수치 불일치가 발견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0년 김 여사가 95억원을 출연했을 당시 공시자료에서 출연자와 이사장 노재헌씨의 관계가 ‘해당 없음’으로 기재된 사실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지적됐다. 이후 일부 공시 내용이 수정되기도 했다.
2023년 재무제표에서는 주식 18억원이 기재돼있었지만 같은 해 명세서에는 해당 항목이 0원으로 나타났다는 지적도 있다. 총자산 역시 한 결산자료에서 222억원으로 기록됐다가 이듬해 자료에서는 152억원으로 수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약 70억원에 달하는 차이다.
공익사업에 사용돼야 할 운용소득 약 12억원이 해당 연도에 집행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같은 수치 불일치는 단순한 회계 오류일 수도 있지만, 검찰 입장에서는 거액의 자금이 실제 어디에 있었고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살펴봐야 할 자료가 된다.
김 여사의 과거 자금 운용 의혹도 이번 수사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2007년 세무조사 과정에서 김 여사가 2000~2001년 차명으로 농협중앙회 보험상품에 210억원을 납입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됐다. 이 내용은 2024년 국정감사에서도 다시 제기됐다.
여기에 이혼소송에서 공개된 904억원 규모의 메모와 공익법인 출연금 152억원이 더해지면서 시민단체가 제기한 전체 의혹 규모가 1266억원대로 확대됐다.
하지만 세 숫자를 단순히 합산했다고 해서 모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904억원의 메모에 적힌 자금 가운데 실제 비자금의 규모와 성격, 210억원 차명보험의 자금 원천, 152억원 재단 출연금의 원천은 각각 별도로 확인돼야 한다.
결국 핵심은 ‘돈이 어디서 나와 어디로 갔느냐’다. 이번 압수수색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검찰은 김 여사의 자택과 동아시아문화센터 등을 대상으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재단 출연금 152억원의 계좌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노 관장에 대해서도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 관장은 현재 피의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앞으로 확인해야 할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김 여사가 동아시아문화센터와 노태우센터에 출연한 152억원의 실제 원천이다. 둘째, 이 돈이 재단에 들어간 뒤 부동산 매입·증축과 금융상품 등에 어떤 방식으로 사용됐는지다. 셋째, 이 과정에서 자금의 출처를 숨기거나 세금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이 모든 의혹을 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거액의 출연금과 부동산 거래, 반복적으로 수정된 결산자료, 과거 차명보험 의혹, 그리고 법정에 등장한 904억원 규모의 메모가 한꺼번에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온 만큼, 이번 수사의 핵심은 결국 동아시아문화센터로 들어간 147억원을 포함한 152억원이 과연 어디에서 시작된 돈이었는지를 밝혀내는 데 맞춰질 전망이다.
30여 년 전 끝난 것으로 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가운데, 동아시아문화센터가 단순한 공익법인이었는지 아니면 은닉자금의 이동 과정에 관여했는지는 향후 계좌추적과 관련자 조사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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