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21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필자가 이재명정부에서 가장 신뢰하고 높이 평가해 온 참모가 강 실장이기에 소식을 접한 순간 아쉬움부터 컸다. 그는 충남도지사 출마와 국무총리 기용 가능성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동안에도 더 큰 자리를 향해 떠나기보다 대통령 곁을 지켜온 사람이다.
강 실장은 대통령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대통령이 미처 보지 못한 곳을 먼저 살피고, 정치와 정책, 청와대와 여당 사이를 조율해 온 실무형 참모였다.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기회까지 뒤로 미룬 그가 임명 15개월여 만에 물러나겠다고 하니 유능하고 충직한 참모 한 사람을 너무 일찍 잃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강 실장은 용혜인 전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와 김승원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잇단 낙마를 비롯한 인사 논란과 국정 지지율 하락에 대해 비서실장으로서 종합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사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피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이 짊어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았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과 유능한 참모를 실제로 떠나보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잘못을 외면하거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변명했다면 사표를 수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참모라면 물러나게 하는 것보다 남아서 문제를 바로잡게 하는 것이 더 무거운 책임을 묻는 방법일 수 있다.
강 실장의 사의를 지켜보며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왕과 신하의 우화가 떠올랐다. 눈앞에서는 분명 불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더 큰 불행을 막아준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는 이 우화에 새로운 상황을 더해 오늘의 정치에 맞게 재구성해 봤다. 옛날 어느 나라에 사냥을 무척 좋아하는 왕이 있었고, 왕의 곁에는 두 신하가 있었다.
첫 번째 신하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모든 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뜻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신하는 눈에 보이는 현실만 믿으며 그런 말을 답답하게 여겼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과 사냥을 떠날 채비를 하다가 실수로 손가락 하나를 크게 다쳤다. 의원들이 급히 치료했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 결국 손가락을 잘라내야 했다.
첫 번째 신하는 절망에 빠진 왕에게 “지금은 큰 불행처럼 보이지만 이 일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뜻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위로했다. 왕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화를 내고 그 신하의 벼슬을 거둬 궁에서 내쫓았다. 신하는 자신이 궁을 떠나는 일에도 아직 알지 못하는 뜻이 있을 것이라며 조용히 물러났다.
며칠 뒤 왕이 예정대로 사냥을 떠나기로 하자 두 번째 신하가 동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 전날 왕이 탈 말을 살피던 두 번째 신하가 갑자기 날뛰는 말에 치여 다리가 부러졌다. 두 신하가 모두 동행할 수 없게 됐지만 왕은 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몇 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숲으로 들어간 왕은 사슴을 쫓다가 일행과 멀어졌다.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왕은 사람을 붙잡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부족에게 사로잡혔다. 부족 사람들은 왕을 결박해 제단으로 끌고 갔지만 제사장은 왕의 몸을 살피다가 손가락 하나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는 흠이 없는 사람만 제물로 바칠 수 있다며 왕을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왕은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잘린 손가락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궁으로 돌아온 왕은 첫 번째 신하를 다시 불러 용서를 구했다. 왕이 궁에서 쫓겨난 일에는 어떤 뜻이 있었느냐고 묻자, 신하는 자신이 궁에 남았다면 왕과 함께 사냥을 갔을 것이고 부족 사람들은 손가락이 없는 왕 대신 몸이 온전한 자신을 제물로 바쳤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리가 부러진 두 번째 신하도 사냥에 동행했다면 왕 대신 제물이 됐을 것이다.
왕의 잘린 손가락과 첫 번째 신하의 축출, 두 번째 신하의 부러진 다리는 모두 고통스러운 불행이었다. 그러나 왕은 손가락을 잃었기 때문에 살았고 두 신하는 사냥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살았다. 세 사람에게 닥친 작은 불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더 큰 불행을 막아준 것이다.
이 우화를 오늘의 정치에 대입하면 이 대통령을 둘러싼 ‘3+1’의 악재가 떠오른다. 공소 취소 논란과 오랜 정치적 동지인 정성호 전 법무부 장관의 퇴임, 후임으로 지명했던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가 먼저 닥친 세 가지 사법 악재다. 여기에 강훈식 비서실장의 사의가 더해졌다. 앞의 ‘3’은 이미 더 큰 사법적 위기를 막는 역설로 작동하고 있지만, 마지막 ‘+1’은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역설이 될 수도, 단순한 손실로 끝날 수도 있다.
공소 취소 논란은 이 대통령에게 잘린 손가락처럼 아픈 일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과거의 기소와 재판 문제가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고, 여당이 추진하는 조작기소 특검과 공소 취소 논의도 특혜 시비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최근 특검법에서 기존 기소 사건의 이송·처분 조항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진상규명과 자신의 재판 처리를 분리하겠다는 의미 있는 선택이다.
공소 취소를 서두르지 않는 것이 당장은 불리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대통령을 지키는 길일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정치적 결정으로 끝냈다는 선례를 남기면 임기 내내 특혜 논란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조작 기소 의혹은 특검이 철저히 밝히되 기존 공소 유지와 취소는 공개된 기준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단하도록 대통령이 거리를 두는 것이 대통령 개인과 형사사법제도를 함께 보호하는 길이다.
정성호 전 장관의 퇴임은 왕의 곁에서 쫓겨난 첫 번째 신하와 닮았다. 그는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였지만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 여부는 법무부 장관이 직접 결정할 일이 아니라 담당 검찰이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가 장관직에 머물며 공소 취소 결정에 관여했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오랜 측근이 대통령의 사법 문제를 해결해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퇴임은 대통령과 공소 취소 결정 사이에 필요한 거리를 만들어줬다.
김승원 후보자의 낙마는 두 번째 신하의 부러진 다리와 닮았다. 김 후보자는 조작 기소 의혹과 공소 취소 논쟁을 다뤄야 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지만 신약 임상시험 청탁 의혹과 공소 취소 관련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끝에 자진 사퇴했다. 임명을 강행했다면 후보자 개인의 의혹에 대통령의 사법 문제까지 겹쳐 법무부의 중립성과 신뢰가 더 크게 흔들렸을 수 있었다. 출발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막은 셈이다.
이렇게 공소 취소 논란은 대통령이 자신의 재판과 거리를 둘 명분을 만들었고, 정 전 장관의 퇴임은 측근이 대통령 사건을 정리한다는 의심을 줄였다. 김 후보자의 낙마는 후보자의 의혹과 대통령의 사법 문제가 하나로 묶이는 위기를 막았다. 세 사건 모두 당장은 뼈아픈 악재였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을 사법 특혜 논란에서 한 걸음 떨어뜨려 놨다. 이것이 이미 작동하기 시작한 ‘3’의 역설이다.
이 오래된 우화에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는 세 번째 신하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이정부에는 그런 신하를 떠올리게 하는 참모가 있다. 강훈식 비서실장이다. 강 실장의 사의는 핵심 참모가 인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대통령의 부담을 덜고 국정 쇄신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강 실장의 사의는 앞선 세 가지 역설과 성격이 다르다. 공소 취소를 서두르지 않은 선택과 정 전 장관의 퇴임, 김 후보자의 낙마는 대통령과 사법 문제 사이에 필요한 거리를 만들었다. 반면 강 실장의 사의는 수리하는 순간 유능한 참모를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앞선 ‘3’이 이미 작동한 역설이라면 ‘+1’은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비로소 완성되는 역설이다.
김용범 전 정책실장이 이미 물러난 상황에서 강 실장까지 떠나면 청와대 3실장 가운데 두 자리가 비게 된다. 국정 쇄신을 위해 비서실장을 교체했다가 오히려 국정 운영의 중심이 흔들릴 수도 있다. 강 실장이 사의를 밝힘으로써 정치적 책임을 보여준 만큼 이제는 그를 남겨 인사 검증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사표를 수리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묻는 방법일 수 있다.
책임지는 사람을 무조건 떠나보내는 것만이 책임 정치는 아니다. 사표를 반려한다고 해서 잘못까지 덮어서는 안 되지만, 잘못을 인정한 사람에게 그 원인을 찾아 고치게 하는 것도 책임 정치다. 강 실장을 그대로 떠나보내면 ‘+1’은 역설이 아니라 유능한 참모를 잃은 손실로 끝날 수 있다. 반대로 그를 남겨 인사 실패를 바로잡게 한다면 사의 표명은 이정부를 다시 세우는 네 번째 역설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네 가지 악재를 한데 묶어 ‘네 가지 역설’이라고 부르기보다 ‘3+1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앞선 ‘3’은 사법적 중립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면서 이 대통령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고 있다. 그러나 강 실장의 사의가 마지막 방패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를 내보내 책임 정치의 모양을 갖출 것인지, 남겨두고 인사 시스템을 바로잡게 할 것인지는 대통령의 몫이다.
이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다. 조작 기소 의혹은 철저히 규명하되 자신의 재판을 끝내기 위해 공소 취소를 서두른다는 의심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 법무부 장관도 대통령의 사법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아니라 어느 정권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사람을 세워야 한다. 동시에 강 실장의 사의를 단순한 문책으로 끝내지 말고 청와대 인사 검증과 국정 운영을 쇄신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공소 취소 논란과 정성호 전 장관의 퇴임, 김승원 후보자의 낙마는 이 대통령에게 뼈아픈 악재였지만 더 큰 사법적 위기를 막아주는 ‘3’의 역설이 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강훈식 비서실장의 사의다. 강 실장을 떠나보내면 ‘+1’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잃은 손실로 남는다. 그를 남겨 인사 실패의 원인을 고치게 할 때 비로소 ‘+1’의 역설은 완성된다.
강 실장은 사의를 밝힘으로써 책임을 보여줬다. 이제 그 책임을 완성하는 길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남아서 잘못된 인사 시스템을 고치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책임은 물러남으로써 완성되지만, 어떤 책임은 남아서 고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 대통령을 살릴 ‘3’의 역설은 이미 시작됐다. 마지막 ‘+1’의 역설을 완성할 사람은 이제 이 대통령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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