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국내 주식시장이 오후 8시까지 연장됐다. 직장인도 퇴근한 뒤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는 점에서 여론은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거래 시간이 늘어난다고 투자 기회와 시장 유동성까지 같은 비율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정된 거래량이 길어진 시간대와 복수 거래소로 흩어지면서 호가 공백과 가격 왜곡, 변동성 확대가 나타날 수 있다.
한국거래소(KRX)는 지난 14일부터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운영되는 애프터마켓을 개설했다. 정규 시장인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거래한 뒤 30분간 시간 외 종가매매를 거쳐 오후 4시부터 다시 실시간 거래가 시작되는 구조다.
쪼개진 시장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노동자들에게는 사실상 ‘12시간 주식시장’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거래 시간 연장이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제도인지, 거래소 간 점유율 경쟁의 비용을 시장 참여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퇴근하고도 국내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KRX가 내세운 애프터마켓의 가장 큰 장점이다. 기존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운영되던 시간 외 단일가매매는 폐지된다. 종전에는 10분마다 주문을 모아 하나의 가격으로 체결했다. 앞으로는 매수·매도 호가가 맞으면 정규장처럼 즉시 거래가 이뤄진다.
연장된 시간 동안 시장가 주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지정가와 최우선·최유리지정가 주문만 가능하며 전일 종가 대비 ±30%의 가격 제한폭 과 변동성 완화장치(VI)가 적용된다. 넥스트레이드(NXT)가 애프터마켓에서 600여개 종목을 거래하는 것과 달리 KRX 애프터마켓에서는 관리가 필요한 일부 종목을 제외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주식 대부분을 사고팔 수 있다. ETF와 ETN은 거래 대상에서 빠진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편리해졌다. 근무시간과 정규 시장 운영시간이 겹쳐 주문을 내기 어려웠던 직장인도 퇴근 뒤 기업 공시와 해외시장 움직임을 확인하면서 국내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정규장 마감 이후 나온 실적 발표나 대규모 계약, 유상증자, 최대주주 변경 등의 정보도 다음 날 오전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거래 시간이 늘었다고 원하는 가격에 주식을 쉽게 사고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게 영업 시간을 늘려도 손님 수가 그대로라면 시간마다 찾는 손님은 줄어드는 것과 같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오후 8시까지 장을 열어도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이 충분히 늘지 않으면, 저녁에는 거래 상대가 적어질 수 있다.
팔려는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거래가 안 되거나, 급히 팔기 위해 원하는 가격보다 싸게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거래량이 적은 중·소형주는 매수·매도 호가 사이가 벌어지고, 적은 주문만으로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 있다.
오후 4∼8시 실시간 거래
하루 거래 사실상 12시간
사려는 사람은 있는데 팔려는 사람이 없거나, 팔려는 사람은 있는데 받아줄 매수자가 없는 이른바 ‘호가 공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미국 금융산업규제국(FINRA)은 시간 외 시장에서는 정규장보다 거래 상대방이 적어 주문이 일부만 체결되거나 아예 체결되지 않을 수 있으며, 적은 거래량으로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의 차이가 확대되면서 투자자가 정규장보다 불리한 가격에 거래할 가능성도 시간외매매의 대표적인 위험으로 꼽힌다. 시장이 둘로 나뉘는 문제도 있다. 한국에서는 KRX와 NXT가 같은 시간대에 애프터마켓을 운영하게 됐다.
문제는 복수 시장 체제에서 특정 거래소의 호가와 체결 가격이 다른 거래소보다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주식이라도 KRX와 NXT에서 제시하는 가격이 다를 수 있다. 증권사 시스템이 두 곳의 가격을 비교해 더 유리한 곳으로 주문을 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늦어지거나 오류가 나면 투자자가 불리한 가격에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와 중·소형 증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전산 투자와 운영 인력에도 차이가 있다. 모든 증권사에 같은 시점까지 동일한 제도 대응이 요구되지만, 중·소형사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인력으로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SOR, 주문·결제 시스템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투자자 보호 문제도 남는다. 시간 외 시장은 기관투자자와 시장조성자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기업 공시나 해외발 뉴스가 나온 직후 정보 해석 능력이 부족한 개인 투자자들이 먼저 반응하면 가격이 실제 가치보다 과도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정규장이 다시 열렸을 때 기관과 외국인의 주문이 들어오면서 전날 저녁 형성된 가격이 급격히 되돌려질 수도 있다. 거래 시간 연장이 개인 투자자의 과잉매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식시장이 근무시간에만 열릴 때는 직장인이 시세를 계속 확인하는 데 물리적인 제약이 있었다.
호가 얇아지고 가격 출렁 지적
소형주 ‘저유동성 덫’ 우려도
투자 편의가 늘어난 만큼 충동 매매와 단기 투자, 이른바 ‘빚투’의 노출 시간도 함께 늘어나는 셈이다. 투자자는 낮 동안 벌어진 주가 변동을 퇴근 뒤 뒤늦게 확인하고 추격매수하거나 공포에 손절할 수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거래 시간이 늘수록 수수료 수익을 얻을 기회가 커지지만 투자자가 더 자주 거래한다고 수익률까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는 KRX가 추진했던 오전 7시 프리마켓과 오후 8시 애프터마켓 신설에 반대하며 거래 시간 확대가 증권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건강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주식시장이 오전 9시에 열린다고 증권사 직원이 그 시간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다. 리서치와 운용, 영업, 전산, 시장 감시 담당자는 개장 전부터 해외시장과 기업 공시를 확인하고 주문 시스템을 점검한다.
장이 오후 8시에 끝난 뒤에는 주문 정리와 고객 민원, 매매 내역 확인, 결제 및 전산 점검 업무가 남는다. 별도의 교대조와 추가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거래 시간 4시간 연장이 기존 노동자의 출퇴근 시간을 그대로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각국 시장이 거래 시간을 경쟁적으로 늘릴 경우, 오히려 투자 매력이 높은 시장으로 글로벌 자금이 쏠리고 경쟁력이 낮은 시장에서는 유동성이 이탈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은 정규장 전후로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을 운영하고 있으며 나스닥은 올해 SEC로부터 하루 23시간 거래 체계를 승인받았다. 그러나 미국 금융당국은 시간 외 거래에 대해 낮은 유동성, 넓은 호가 차이, 높은 변동성, 거래 시장별 가격 차이, 뉴스에 대한 과잉 반응 등을 별도의 위험으로 경고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2024년 거래 종료 시각을 오후 3시에서 3시30분으로 늦췄다. 연장 시간은 30분에 불과했고 종가 형성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마감 동시호가 제도도 함께 도입했다. 홍콩 증권시장은 오후 4시에 연속매매를 끝내고 마감 동시호가를 거쳐 오후 4시8∼10분 사이 장을 마친다. 일본과 홍콩의 사례를 보면 아시아 주요 거래소가 모두 저녁까지 현물 주식시장을 여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정반대 논의도 있었다. 유럽금융시장협회(AFME)와 영국투자협회(IA)는 긴 거래 시간이 유동성을 얇게 분산시키고 금융 노동자의 정신건강과 일·생활 균형을 해친다며 유럽 주식시장의 거래 시간을 90분 줄이자고 제안했다.
누구를 위해?
짧은 시간에 거래를 집중하는 것이 시장 효율성과 유동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국 핵심은 오후 8시까지 거래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그 시간에 충분한 매수·매도 주문이 존재하는지, KRX와 NXT 사이에서 투자자가 불리한 가격을 받지 않는지, 소형주 가격이 일부 주문에 휘둘리지 않는지, 증권사 직원의 노동시간이 어떻게 관리되는지가 중요하다.
거래소 간 점유율 경쟁은 투자자 선택권을 넓힐 수 있으나, 경쟁의 비용을 개인 투자자의 손실 위험과 증권 노동자의 장시간 근무, 중·소형 증권사의 전산 부담으로 떠넘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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