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형국이다.’ 검찰과 경찰을 내세운 정치권의 대리전에 국민의 삶이 볼모로 잡혔다. 법 제정 이후 70년 넘게 유지된 체계가 한순간에 바뀌면서 국민이 감내해야 할 후폭풍은 가늠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인수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타당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책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탄했다.
“검찰청 폐지, 수사‧기소 완전 분리 등은 중립에서 보면 사법 체계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가 개혁인지, 개악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위험한 부분입니다. 이미 법안은 통과됐고 정책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국민 피해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예상되는
후폭풍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김인수 전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부위원장을 만났다.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29회)에 합격한 이후 31년8개월 동안 공직생활을 하다가 2017년 권익위 부위원장(차관급)직을 마지막으로 ‘자연인’이 됐다. 인터뷰 동안 여러 차례 스스로 ‘시민’이라고 칭했지만 김 전 부위원장은 퇴직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직자’였다.
김 전 부위원장은 첫 질문을 하기도 전에 2024년 글로벌 통계 플랫폼 ‘넘베오(Numbeo)’에서 조사한 강력 범죄율, 치안 지수 등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그는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강력 범죄율, 경찰 대응 속도, 치안 인프라 등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며 “세계적으로 안전한 국가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수사기관에 왜 변화를 주는 건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정치를 언급했다. 검찰청 폐지 등 정부조직법 개정안,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시행을 앞둔 현 상황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고 말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정부는 여론이 악화하자 ‘해경 해체’라는 답을 내놨다. 사고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아예 폐기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마저도 몇 년 뒤에 부활했다. 이재명정부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안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처리한 방식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검찰청 폐지가 예정된 만큼 보완수사권만큼은 남겨둬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법안을 처리한 배경에 일종의 ‘한풀이’ ‘분풀이’의 감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정치적 의도 개입
숙의나 토론 없어
김 전 부위원장은 “박근혜정부 인수위원회에 참여했을 당시에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전 정부 때부터 계속 논의되던 사안이어서 박정부에서도 얘기가 나왔던 것”이라며 “검찰청 폐지나 보완수사권 박탈은 아예 결이 다른 문제, 차원이 다른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한 국민 여론은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이후 폭발했다. 경찰에 수사권이 집중되는 만큼 검찰에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남겨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나이, 성별, 지역과 관계없이 보완수사권을 없애면 안 된다는 응답이 우세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보완수사권 대신 ‘보완수사 요구권’을 남겼다.
김 전 부위원장은 “사건을 수사해 본 경험은 없지만 직접 하는 것과 요구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수사라는 게 범위나 규모를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니고 수사 과정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우가 많다. 만일 한 수사기관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있다면 다른 수사기관에서 또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할 일도 있지 않겠나. 보완수사권은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권한이었다”고 한탄했다.
무엇보다 김 전 부위원장은 국민 피해를 염려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72년 만에 사법 체계의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여파를 가늠하기 어려운 듯했다. 그는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피해가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범죄 피해 정도가 빈부 격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도 짚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범죄에 걸려들 가능성이 작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일하지 않아도 되고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에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일도 드물다. 또 범죄 피해를 본 경우에도 변호사를 선임한다든지, 자신을 지킬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벌려 놓고
뒷감당은?
그러면서 “10년여 동안 권익위에 근무하면서 국민의 민원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 민원은 돈 없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연로한 분들이 제기했다.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 부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우려스러운 점은 국민의 생명이나 재산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여성의 범죄 피해를 걱정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안전한 국가로 평가받지만, 성범죄나 디지털 범죄 증가, 낮은 안전 체감도는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여성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큰 범죄, 여성이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이 통계로 잡힌다는 뜻”이라며 “(정책에)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20~30대 여성층의 우려는 매우 큰 수준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로 보완수사권 폐지가 확정된 이후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20~30대 여성이 이탈했다. 임기 초 60%대를 유지했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주저앉은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김 전 부위원장은 광주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인 사건, 제주도 여성 실종 사건 등이 하나의 신호였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보완수사권 폐지를 찬성하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고민해 보라는 일종의 사인이었을 수 있는데 (정부와 민주당은) 눈과 귀를 완전히 막고 달려가 버렸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책 실패가 불러올 후폭풍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사실 실패한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회복이 어렵다. 아니, 회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 그 여파가 굉장히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윤석열정부에서 추진한 사병 월급 200만원 정책을 예로 들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이병부터 병장까지 모든 병사에게 월급 2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취임 즉시 시행하겠다는 약속은 2025년 기준 병장부터 주는 걸로 바뀌었다. 문제는 당시 불거진 형평성 논란이었다.
통제·견제
사실상 없어
김 전 부위원장은 “병사의 월급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하사관 등 초급 간부와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면 간부들이 버틸 수 없다.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는 건 양질의 인재가 아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군 기강 해이 같은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정책의 후폭풍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관련 법 시행은 다음 달 2일부터지만 이미 현장에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도 말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당장 10월2일에 검찰청이 폐지되고 보완수사권도 사라진다. 수사 절차도 달라질 거고, 권한이나 책임 소재도 바뀔 것이다. 경찰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일단 사건을 내버려 둘 것이고 검찰은 없어지는 판국에 굳이 뭘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중간에서 피해자만 붕 떠버리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건 범죄”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경찰을 통제하거나 견제할 방안은 없는지 묻자 권익위에서 시행 중인 ‘경찰 옴부즈만 제도’를 언급했다. 경찰 옴부즈만 제도는 수사 과정에 위법이 있거나 절차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피해자나 피의자가 인권 침해를 당했을 때 신고하면 조사한다는 내용이다. 조사 결과 문제가 발견되면 시정이나 징계 등을 권고할 수 있다.
지난 9일 권익위원장을 지낸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경찰 옴부즈만 제도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중대범죄수사청, 공소청, 감사원 등 수사‧감사기관 전반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김 전 부위원장은 “경찰 옴부즈만 제도는 수사의 진행 여부,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본질적인 부분은 건드릴 수 없다. 다시 말해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대응 방안인 셈”이라고 토로했다.
국민 반대에도 강행
사회적 약자 첫 표적
3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한 그는 “남들이 보기에는 느리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는 급진적이기보다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차선을 급하게 바꾸면 사고가 날 수 있다. 우리 몸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고장 날 수 있다”며 “교통 시스템, 신체 시스템, 사회 시스템 다 똑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스템이 이미 구축된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면 ‘핀셋 처방’을 하면 된다. 고치는 것 이상으로 큰 변화를 주면 부하가 걸릴 수 있다”며 “정책은 기본적으로 검증된 다음, 타당성을 검토해서 결정해야 한다. 이번 사법 체계 변화는 그런 과정이 부족했다. 오만과 독선의 정치가 만든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또 “사회는 살아 있으니까 어떻게든 돌아갈 것이고 이번 사법 체계 변화도 발생하고 있는, 발생할 문제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보완해 나가면 안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에 발생할 가능성이 큰 피해는 당하는 사람으로선 황당할 수도 있고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김 전 부위원장이 정책을 국민에게 소개하고 정착시키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거듭 언급한 이유는 본인이 우리나라 사회를 뒤흔든 법안의 실무자였기 때문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권익위 재직 기간(2014년 11월~2017년 11월) 동안 부위원장과 사무처장을 겸했는데, 당시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었다.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이 제안해 김영란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법안은 올해 시행 10년을 맞았다. 김 전 부위원장은 제정부터 시행에 이르기까지 3년여 동안 법안의 연착륙을 위해 뛰어다닌 인물이다. 김영란법은 2015년 3월 제정, 1년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6년 9월부터 시행됐다.
김 전 부위원장은 “원래 법 통과 이후 시행까지 1년의 준비 기간이 주어졌는데 1년으로는 시행령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는 권익위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1년6개월로 늘어난 것”이라며 “처음 제안이 나왔던 2010년부터 따지면 5년9개월의 논의를 거쳐 적용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7월31일에 통과돼 10월2일부터 시행된다. 시행 당일 아비규환 상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벌써부터
조짐 보여
김 전 부위원장은 “정책을 시행할 때는 명분이 중요하다. 김영란법은 청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명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사법 체계 변화는 제대로 된 명분 없이 진행돼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은 법을 만들고 떠나가면 끝이지만 실무진은 법안이 정착되기까지 죽도록 일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아무 대책, 방도도 없다는 사실에 암담할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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