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검찰이 권력에서 풀려나면 스스로 바로 설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방식은 아름다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죠.” 참여정부의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전 의원은 노무현정부의 검찰개혁이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고 회고했다. “검찰을 믿지 않는다”며 일찍이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그는 “노무현의 방식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이재명의 방식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노무현정부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그였기에, 이번 검찰청 폐지 국면을 바라보는 소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두관 전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내각에 몸담았고 이후에도 당내 주요 직책을 거치며 검찰개혁의 명암을 현장에서 체감해 왔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 도중 ‘노무현정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검사와의 대화’를 꼽았다. 2003년 3월9일,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국정 철학을 바탕으로 파격적인 토론을 진행한 날이다.
당시 사람들은 대통령이 검사에게 항명을 당한 날로 기억했지만 김 전 의원은 그날을 떠올리며 “헌정사 최초로 검찰의 독립을 만천하에 선포한 날”이라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23년, 격변의 시기를 지나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있다. 대대적인 전환기 속 김 전 의원은 한발 앞서 검찰개혁에 따른 부작용과 보완책을 짚었다. 단순히 제도를 없애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민주적 통제와 시스템의 미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제안한 셈이다. 다음은 김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먼저 근황을 여쭙고 싶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잘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양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민주당에서 ‘메가프로젝트 부울경 위원장’이라는 큰 역할을 줬다. 그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깊게 고민하면서 동시에 양산에서의 활동도 더 깊이, 더 넓게 하고 있다.
양산에서의 활동을 더 진정성 있게 하기 위해서 최근 양산으로 이사할 준비도 마쳤다. 그동안 경기도 김포에 집을 두고 양산에는 작은 오피스텔에 거처했는데 김포를 완전히 정리하고 곧 내려갈 생각이다.
-여러 자리가 제안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중하게 고사한 자리를 굳이 공개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 양산 활동에 전념하고 부울경 메가프로젝트에 힘을 쏟으려면 다른 직분을 맡는 것은 개인의 욕심이지 않겠나. 그래서 더 좋은 분이 그 직분을 맡으시도록 말씀드렸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평가하시나.
▲훌륭한 출발이었고 이제는 약간의 재도약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빛의 혁명으로 출발한 이정부는 대통령의 효능감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그동안 민주당에서 지속적으로 시도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문제를 해결하니 주가가 상상 이상으로 뛰었다. 반도체 호황과 맞물려서 다소 과열된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한국 주식의 변화 가능성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러나 최근 정부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주식이 오히려 원망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정부의 경제개혁 성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이 걱정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균형 발전을 추진하고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확실하게 선보이면서 결과적으로 부동산도 안정될 것으로 생각한다. 땅값은 인구에 따라 움직이고, 지방으로 이전하는 추세인 만큼 수도권의 땅과 집값이 언제까지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 조직 뜯어고친 이…안팎 평가는?
“선의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판 짰다”
특히 국가 안보의 문제, 외교의 영역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 우크라이나와 이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경제 안보와 국방 안보를 지키는 일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검찰개혁도 이정부의 큰 변화로 꼽힌다.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만큼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노무현정부의 검찰개혁 관련해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검사와의 대화’다. 2003년 대통령이 평검사들 앞에 앉아 텔레비전 생중계로 토론을 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해도 대한민국 헌정사에 없던 장면이다. 검사들은 대통령에게 인사 문제를 따졌고 대통령은 그걸 다 받았다. 그날 남은 말이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였다.
사람들은 그날을 대통령이 검사들에게 봉변당한 날로 기억하지만 나는 헌정사 최초로 검찰의 독립을 만천하에 선포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검사들은 그런 노 전 대통령의 선의를 악의로 되갚았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어떤 방식이었나.
▲권력이 간섭하지 않고 검찰의 독립성을 지켜주면 검찰이 법의 집행자로서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노 전 대통령의 방식은 검찰을 놓아주는 것이었다. 검찰이 권력에서 풀려나면 스스로 바로 설 것으로 믿으신 거다. 방식은 아름다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검찰은 자율을 받았지만 자정하지 않았다. 풀려난 칼은 더 자유롭게 휘둘러졌고, 끝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사무칠 일을 맞이했다.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검찰개혁과 이정부의 검찰개혁을 비교한다면?
▲이정부의 방식은 노 전 대통령의 방식과 다르다. 사람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조직을 뜯어고쳐 시스템을 바꾼 점에서다. 수사와 기소를 떼어놓고, 검찰청이라는 이름 자체를 없앴다. 10월2일이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그 자리에 선다. 사람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지 않아도 굴러가도록 판을 다시 짠 것이다.
둘 중 무엇이 옳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노무현의 방식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이재명의 방식이 가능해졌다. 한번 놓아줘 봤기 때문에, 놓아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온 국민이 알게 된 것이다. 20년이 걸렸고, 값을 충분히 치렀다.
-‘검찰 없는 세상’, 부작용은 없을까?
▲정확히 말하면 검찰 없는 세상이 아니라 검사의 수사권이 없는 세상이다. 부작용은 반드시 있을 것이고,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78년 유지되던 질서가 바뀌면 당연히 부작용은 생긴다. 이 대통령이 이 부분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까지 표명했지만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나는 지금도 이것이 나중에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찌 되었건 민주당은 혼란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검찰개혁 부작용? 없다면 거짓말”
개혁 밀어붙인 강성층…수습은?
-혼란을 막는 방법을 제시한다면?
▲이관 사건의 목록과 담당 부서를 당사자가 조회할 수 있게 하고 중수청 인사도 최대한 독립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전환기 6개월을 특별 관리 기간으로 삼아서 수사 공백이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 검찰 수사권을 없애는 일보다 검찰이 하던 수사를 빠뜨리지 않는 일이 100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참에 고발권 문제도 정치 의제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단위 인구당 고소·고발건이 일본의 100배가 넘는다. 같은 대륙법계 체계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이런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됐는지도 정치권이 장기적인 개혁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앞으로 이정부가 나아갈 방향과 핵심 과제에 대해 제언한다면.
▲국제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지금까지의 기조를 잘 유지해야 한다. 이제 세계 질서가 ‘일극 중심’에서 ‘무극 상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할도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도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국익관점의 외교 안보를 추진해야 한다.
또 반도체를 중심으로 미래 먹거리를 차질없이 준비해야 한다. AI로 표현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여기에서 얼마나 앞서가느냐에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려 있다고 본다.
검찰개혁을 포함한 국가 개조에도 힘써야 한다. 사법개혁, 언론개혁 등 많은 난제가 있다. 나는 이정부의 남은 3년이 지방 소멸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 최근 시도하는 거점 지방국립대 지원이 큰 변화의 시작을 알렸는데, 아주 긍정적인 신호다. 메가프로젝트와 맞물려 큰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시도를 지속해야 대한민국에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장 민심은 어떻게 보고 계시나?
▲부울경을 다니면서 듣는 이야기는 물가와 집값, 그리고 아이들 일자리다. 검찰개혁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정치의 숙제이지 밥상의 숙제가 아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걸 자꾸 헷갈린다. 이번 추석 밥상에서 제일 많이 나올 말은 아마 이것일 거다. “그래서 우리 애는 어디 취직하나.”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큰 개혁을 해도 민심은 따뜻해지지 않는다.
정부가 잘하고 있는 것과 국민이 체감하는 것 사이에는 늘 시차가 있다. 그 시차를 못 견디고 조바심을 내면 정치는 무리수를 둔다. 지금 정부가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일요시사> 독자에게 추석 덕담 한마디.
▲나는 마을 이장을 하면서 정치의 원리를 이해했다. 마을 일은 큰소리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명절 전날 마을회관 앞을 쓰는 사람이 하는 거다. 나랏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 추석에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정치 이야기로 얼굴 붉히지 마시고,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으면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여러분 밥상에까지 싸움을 올려놓은 것이 늘 미안하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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