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국민만 믿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목소리는 차분하고도 진중했다. 18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후 7번째 기자회견은 평소의 농담이나 화려한 수사 대신 ‘성찰’과 ‘낮은 자세’를 선택했다. 짙은 남색 정장과 넥타이 차림으로 연단에 선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 대부분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지방선거 이후 갑작스러운 국민의 실망과 걱정에 직면해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많은 시간 숙고하고 성찰한 결과는 언제나 국민은 옳다는 것이다. 모두 제 부족함 때문”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특히 “작은 성과와 국민들께서 보내주시는 큰 성원 앞에서 두려움과 겸손함이 줄어들었다”며 “국민에 대한 두려움을 되살리고 모든 일에 더 세심하게, 더 낮게, 더 치열하게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그간 정국의 뇌관이었던 정치 현안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먼저 연임 개헌 논란에 대해 “헌법 개정을 통한 저의 연임은 헌법상 불가능하고, 저 역시 연임을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확고하게 말씀드린다. 저는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간 명시적 선언을 피한 이유에 대해서는 “마치 제가 연임을 구상하다가 포기하려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정치공세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재판과 맞물려 논란이 된 조작기소 특검법의 공소 취소 문제에서도 한발 더 나아가 국회를 향해 직접 요청했다.
그는 “특검의 권한 사항 중 기존 기소 사건들에 대한 이송 또는 처분에 관한 조항들은 삭제하시고 진상규명에만 집중해주시기 바란다”며 “불필요하게 공소 취소 논란이 발생하지 않게 조치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면 ‘인사 참사’ 논란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인사의 기준, 판단의 근거들도 다 다르다”며 “나름의 최선의 인선을 했다고는 하지만 국민 검증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논란들이 발생하고 있는 걸 보고 있다”고 자세를 낮췄다.
각종 의혹이 불거진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최종 결론은 내지 못했다”며 “국민의 눈높이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어 “차제에 인사 시스템도 재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책 실패 논란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몸을 낮췄다. 개인투자자 피해를 낳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에 대해 “정부 정책에 불완전성이 좀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며 “부족함이 있었던 건 맞는 것 같다”고 일부 인정했다.
반면, 부동산 문제와 외교·안보 현안에서는 단호한 어조를 유지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언급하며 “부동산 시장을 반드시 안정시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공급·규제·세제 정책의 신속한 집행과 함께 ‘경제수도 서울, 행정수도 세종’의 2수도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미국의 군사적 기여 요구가 거센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에 대해서는 “전쟁에 관여,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 명백하게 말할 수 있다”고 두 차례나 강조하며 선을 그었다. 다만 “자국 상선과 국민의 생명,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은 필요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결국은 모든 것들을 다 합쳐서 저의 부족 때문”이라며 “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세심하지 못한 것이 매우 큰 문제인 것을 이제 많이 아프게 깨닫게 됐다”고 재차 자신을 낮췄다.
이날 회견은 이례적으로 30분 지연된 끝에 99분간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의자 없이 연단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고, 기자단과의 거리도 이전보다 가까워졌다. ‘국민의 뜻을 더 살피겠다’는 슬로건처럼 낮은 자세로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회견 내내 이 대통령은 미소나 농담 없이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이 “말을 줄이고 귀를 키우시라”는 등 뼈아픈 온라인 국민 의견을 전할 때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끝으로 그는 마무리 발언에서 “국민 여러분, 제가 부족한 게 맞다. 일과 결과에 집중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세심하지 못한 게 매우 큰 문제인 것을 이제 많이 아프게 깨닫게 됐다”며 “더 많이 소통하고 존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참모진들과 함께 회견장을 떠났다.
이날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여야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 생중계를 시청한 뒤 기자들과 만나 “회견을 보는 동안 대통령과 내내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이었다”면서 “당도 더 겸손하게 경청하면서 민생을 살펴 가겠다”고 강조했다.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국민 앞에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뜻과 삶을 더 살피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민주당도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서 산적한 민생 현안을 해결하고, 국민 통합 속에 안정적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반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친문, 친노 친김대중만 이재명의 동지들이라고 선언했다”며 “국민 통합이 아니라 좌파 통합이 목표인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이재명 대통령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걸 확인한 기자회견이었다. 국민 심판의 날만 더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이 대통령은 6·29 선언이 아니라 ‘전두환 4·13 호헌 선언의 길’을 선택했다”며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해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할 의무가 있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임을 망각하고 있다”고 맹폭했다.
<jungwon933@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