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이렇게 결심하고 보니 가슴속의 의혹도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었다. 별이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다시 중얼거렸다.
‘그래, 결정은 오라버니에게 맡기자. 나로서는 가슴을 태우는 이 격렬한 욕망을 고백하는 수밖에 없다. 아, 나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 가슴을 태우는 불길은 대체 어떤 불길인가?’
계모의 학대
별이는 편지의 사연을 상상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적을 준비를 했다. 연필을 들고 쓰다가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는 또 쓰곤 했다.
쓰다가 잘못 쓰면 지워 다시 쓰고, 또 제가 쓴 것이 부끄러워져 연필을 놓기도 하고, 그래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연필을 잡았다.
별이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자주 망설였다. 표정으로 보아 부끄러워하면서도 대담하게 쓰는 것 같았다.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의 행복을 기도하면서 이 글을 드립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그대가 주지 않는 한 이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름을 밝히긴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그대에게 내 소원을 이루어줄 뜻이 없다면 이름을 알려고 하지 마셔요. 적어도, 내 기도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별이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대로 인하여 내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으시거든 내 창백한 뺨과 여윈 몸과 슬픔에 잠긴 표정, 늘 눈물이 고여 있는 이 눈을 보소서. 그대와 사랑을 이렇게 비는 나는 그대의 원수가 아니라, 그대와는 참으로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계집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도 좋을 것인가, 이것은 죄악이 아닌가. 이런 것을 따지는 일은 어른들에게나 맡겨놓아야 할 일인 줄 압니다. 우리 세대에 어울리는 사랑은 점잔빼는 사랑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다면, 이 달콤한 금단의 사랑을 남매라는 이름으로 가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대와 자유로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도 자유로이 포옹하고 입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이 계집을 가엾게 여기소서. 사랑이 목말라 죽을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이런 고백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랑을 거절하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으리니, 죽은 내 묘비에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의 이름으로 그대 이름이 새겨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생각할수록 하릴없는 글귀를 가득히 쓴 별이는 더 이상 쓸 곳이 없자 마지막 인사는 종이 가장자리의 빈 데에다 썼다.
한참을 망설이던 별이는 이윽고 편지를 고이 접어 봉투 속에 넣었다. 봉투를 집어 들려는 찰나 그것은 별이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이 불길한 징조가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그런 징조에 마음 쓰지 않고 봉투를 오빠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한편 은우는 밤늦게 바다에서 돌아와 편지를 발견하곤 꺼내어 읽어 보았다. 은우의 낯빛이 살짝 붉어지더니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면서 안색은 창백해졌다.
“이게 도대체 뭐지? 흠, 별이가 마을의 어떤 녀석을 짝사랑하는가 보군. 그런데 왜 여기다 놔뒀을까? 흐흣, 나더러 전해 달라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대체 어떤 놈일까?”
은우는 일부러 크게 웃으며 말했다. 별이는 그제야 자기의 진심이 크게 조롱당한 것을 깨닫곤 해쓱한 낯빛으로 파르르 떨었다. 이윽고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조롱을 당해도 싸지! 어쩌자고 상처 난 가슴을 그에게 내보였던가! 어쩌자고 속으로 가만히 앓아야 할 가슴의 병을 이다지도 경솔하게 적어 보냈을까? 먼저, 내 속을 드러내고 거절당해도 민망하지 않을 방법으로 그의 의중을 떠보았어야 했던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이 실수를 어쩔거나. 봉투를 집어들 때 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것은, 내 사랑을 드러내지 말라는 계시였거늘…내 희망도 그렇게 무참하게 깨어질 것을 미리 알리는 계시였던 것을…편지를 보내는 날짜를 바꾸든지 계획 자체를 바꾸었어야 했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편지를 보내는 대신 오라버니를 직접 만나 내 마음을 열어 보였어야 했다. 오라버니에게 내 눈물과 사랑이 담긴 얼굴을 보여주었더라면 난 편지가 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뜻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만약 오라버니가 내 뜻을 거절한다면 그의 목을 끌어안고, 내 애절한 뜻을 전하고 애걸할 수도 있었을 텐데.’
누이인 별이가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 은우는 그냥 그대로 있다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고 생각하고는 고향을 떠나 먼 육지로 배를 타고 떠났다.
인천상륙작전 후 부평에 최초 기지촌
군산에 1만평 거대한 아메리카 타운
실성한 별이는 제 옷을 찢고 여윈 가슴을 치며 애통해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별이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오빠가 간 곳을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절망한 별이는 집을 떠나 달아난 오라비를 찾으러 매일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미친 듯이 오라비를 찾아다니던 별이는 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산기슭에 쓰러지고 말았다. 긴 머리카락을 땅바닥에 늘어뜨리고 핼쑥한 뺨은 낙엽에 댄 채….
아무 말 없이 흐느끼며 눈물로 마른 풀을 적시고 가녀린 손가락의 손톱으로 딱딱한 흙을 긁어댔다. 어깨를 떨며 하염없이 울던 그녀는 마침내 일어나 바위 벼랑으로 기어오르더니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아무튼 그동안 방패막이가 되어 주던 오빠가 떠나 버리자 계모의 학대는 한층 더 악랄해졌다. 컴컴한 방안에 가두어 손발을 묶어둔 채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미국 노래를 반복적으로 들려 주었다.
며칠 동안 전혀 밥은 주지 않고 쓰디쓴 커피와 짜디짠 소금물과 달디단 설탕물만 강제로 주입시키며 고문하는 맛을 즐겼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창녀굴에다 팔아넘겨 버린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 간 곳은 인천 근처의 부평에 자리잡은 기지촌이었다.
그곳은 6·25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미군들의 노고를 위안하기 위한 최초의 양색시촌인 셈이었다.
여느 여자들과 달리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영어는 한마디도 모르는 벙어리였지만 정인은 미군들에게 인기가 꽤 좋았다.
혹시 미국인들이 롤리타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이른바 소녀 성애 취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정인의 몸매는 보통 한국 여자보다 아담하고 가냘픈 편이라 미군들의 눈엔 어린 소녀로 보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정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여성들이 그들에겐 아담한 체구의 ‘소녀’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모든 미군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마 일부 양키 녀석들이 위험 지역인 한국에 지원한 이유 중엔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받은 점도 없진 않았으리라.
실제로 몸집이 거대한 미군이 위안부 아가씨들의 어깨를 감싼 채 걸으며 희롱거리는 모습엔 그런 요소도 엿보였다.
1년여 후 정인은 클럽에서 알게 된 언니를 따라 서울 무교동의 한 살롱으로 옮겨갔다. 미군 클럽에 진 빚은 다 갚은 상태였으나 포주가 놓아 주려 하지 않아 거의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무교동과 퇴계로의 밤거리는 화려하고 상큼했다. 하지만 미군 클럽에서와는 달리 정인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살롱엔 탤런트처럼 세련미 넘치고 쭉쭉 빠진 팔등신 미녀들이 우글거렸고 한국 남자들은 대개 그런 미희들을 선호했다.
그 당시 한국엔 아직 롤리타 콤플렉스니 소녀 성애니 하는 하는 말이 유행하지 않았다.
일부 성도착자나 정신병자가 그런 취향을 지녔는지는 몰라도 일반 남자들은 대체로 그런 짓을 범죄성을 떠나 혐오스러워할 정도였다.
그리고 팔리다
그 무렵 전북 군산 지역에 박정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아메리카 타운이 건설되었다. 미성읍 산북리 일대의 1만여 평 옥토 위에 지어진 거대한 미군 전용 위락시설이었다.
당연히 수많은 위안부 여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모집책들은 전국 각지의 직업소개소와 유흥가를 돌며 얼굴이 반반한 아가씨들을 뽑아 그곳으로 데려갔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정신대란 이름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징발해 가던 모습과 같은 건 아니었지만 비슷한 구석이 없잖아 있었다. 과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