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모든 재난에는 ‘0번째 날’이 있다. 세상이 아직 종말을 눈치채지 못한, 고요하고 일상적인 바로 그 순간. 잭 크레거 감독의 신작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인류를 집어삼킬 악몽이 시작되는 바로 그 ‘0번째 밤’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서서히 밀어 넣는다.
영화는 의료 택배 기사 브라이언(오스틴 에이브럼스 분)의 평범한 밤으로 시작된다. 평소보다 두 배 높은 수당에 혹해 폭설이 쏟아지는 심야, 라쿤 시티 종합 병원으로 긴급 배달을 떠나는 그. 하지만 눈발을 헤치며 가던 중 누군가를 들이받고, 그때부터 브라이언의 일상은 산산조각 난다. 통신은 끊기고, 정체불명의 존재들은 끊임없이 그를 위협한다.
17일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전 세계 2억장의 판매고를 올린 전설적인 게임 ‘바이오하자드’를 모티브로, 시리즈의 화려한 액션 대신 원초적인 ‘생존 공포’에 집중한 작품이다.
국내 개봉명에 붙은 ‘0번째 밤’이라는 부제는 단순한 시간적 배경을 넘어, 기존 시리즈와의 단절이자 새로운 리부트의 선언으로도 읽힌다. 덕분에 기존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신선함을, 새로운 관객에게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진입 장벽 없는 공포 영화로 다가온다.
이 영화의 가장 특별한 점은 주인공이 절대적으로 평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메가폰을 잡은 잭 크레거 감독이 “이 모든 사건을 겪는 주인공이 평범한 인물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이라고 밝혔듯, 브라이언은 위기 앞에서 총의 안전장치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고 허둥댄다.
브라이언은 영웅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재난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이다. 하얗고 차가운 눈이 뒤덮인 라쿤 시티 외곽에서 도심 내부에 위치한 라쿤 시티 종합 병원까지, 자신이 무엇을 배달하는지도 모른 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그의 시선은 관객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존적 공포를 선사한다.
특히 원작 게임의 시스템을 차용한 듯, 소지한 총기의 잔탄을 수시로 상기시키는 연출은 탁월한 몰입 요소 중 하나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시점에 동화된 관객은, 어느새 줄어드는 총알 개수를 함께 세며 한 발의 실수가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서바이벌 호러의 정수를 맛보게 된다.
잭 크레거 감독은 <바바리안> <웨폰> 등을 통해 이미 장르적 역량을 입증한 호러 장인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적절한 ‘점프 스퀘어’ 기법을 곳곳에 집어 넣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다가도, 숨 막히는 순간에 슬쩍 코믹한 장면을 섞어 능숙하게 완급을 조절했다.
이는 “시작부터 끝까지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며 롤러코스터 같은 경험을 안겨준다.
원작 게임의 열성 팬임을 자처한 감독의 애정도 영화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레온 S. 케네디나 질 밸런타인 같은 상징적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지만, 게임 속 아이템인 ‘헤비 필드 샷건 탄약 상자’나 세이브 포인트인 ‘타자기’, FPS 게임을 연상시키는 1인칭 구도 등은 원작 팬들에게 반가운 선물이자, 이 세계관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도 읽힌다.
잭 크레거 감독은 전염병의 원인이나 거대한 음모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대신 예고 없이 닥친 재앙 속에서 한 개인이 느끼는 공포와 생존 본능에 집중해 장르적 몰입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작정하고 활용한 듯, 피와 살점이 튀는 잔혹한 묘사는 2024년 개봉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탠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렬하다.
기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주인공 앨리스라는 초인의 활극이었다면, 이 작품은 정반대로 개인의 처절한 생존기다. 평범한 남자의 평범하지 않은 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라쿤 시티의 차가운 눈발 속에 갇힌 듯한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국내 극장가에서 절찬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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