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건강보험 고갈론’ 어디로 사라졌나

30조원 준비금과 ‘삼전닉스’ 성과급에 가려진 구조적 위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강보험 재정이 곧 바닥날 것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건강보험 고갈 초읽기’ ‘2028년 적립금 소진’ ‘보험료 폭탄 불가피’ 같은 제목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했다. 고령화로 병원비는 급증하는데 보험료를 내는 생산연령인구는 줄어드니 건강보험이 버틸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은 머지않아 보험료가 크게 오르거나 의료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런데 요즘은 건강보험 고갈이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건강보험 재정이 갑자기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당시 보험료를 올리기 위해 위기론을 부풀린 것인지 궁금하다. 지난 8일 강청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보험료율 법정 상한 인상에 선을 그으면서 이런 의문은 더 커졌다. 몇 년 전의 고갈론은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국민을 겁주기 위한 언론 플레이였을까?

부과 체계
합리적으로

고갈 외치더니 보험료는 동결= 강 이사장은 “국민 부담을 늘리면서 보험료율을 무리하게 인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 8%인 보험료율 법정 상한을 높이는 방안도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보험료율 동결이 반복되면 향후 더 큰 폭의 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며 일정한 수준의 인상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무조건 더 걷기보다 부과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고 불필요한 지출부터 줄이겠다는 취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2027년도 직장가입자 건강보험료율을 올해와 같은 7.19%로 동결했다. 건강보험료율은 2024년과 2025년 7.09%로 2년 연속 동결됐다가 올해 7.19%로 올랐다. 그러나 내년에는 다시 동결하기로 했다. 몇 년 전 보도대로라면 큰 폭으로 올려도 부족해야 할 시점인데 오히려 동결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동결하면서도 중증·희귀난치질환자와 당뇨 환자, 고령자와 아동 등 약 197만명에게 연간 최대 8000억원 규모의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보험료는 더 걷지 않으면서 필요한 보장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생긴다. 불과 몇 년 전 곧 바닥난다던 건강보험 재정이 어떻게 이처럼 달라졌을까.

준비금 30조원의 두 얼굴= 현재 건강보험 재정만 보면 당장 곳간이 바닥날 상황은 아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24년 건강보험 재정은 수입 99조870억원, 지출 97조3626억원으로 1조7244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2021년부터 4년 연속 흑자를 이어가면서 누적 준비금은 역대 최대인 29조7221억원에 달했다. ‘고갈 직전’이라는 표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수치다.

2025년에도 건강보험은 4996억원의 당기수지 흑자를 내면서 5년 연속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누적 준비금도 30조원 안팎을 지키고 있어 당장 보험료를 급격히 올리지 않아도 제도를 운영할 여력은 있다. 건보공단이 금융시장에서 운용한 준비금에서도 2024년 약 8300억원, 2025년 약 7088억원의 현금 수익을 거뒀다. 보험료 이외의 수입도 재정을 받쳐준 셈이다.

그러나 흑자라는 결과만 보고 재정이 완전히 좋아졌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건강보험 당기수지 흑자는 2023년 약 4조1000억원에서 2024년 1조7000억원, 2025년 약 5000억원으로 빠르게 줄었다. 올해 1분기에는 국고 지원금 교부 시기 등의 영향으로 3조9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상반기 전체로는 약 1조3000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근거 없는 거짓말 키운 이유?
조건부 전망을 공포의 언어로

계절적 요인이 큰 분기 수지만으로 연간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흑자 폭이 계속 줄어드는 흐름은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삼전닉스가 건보 살렸나=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건강보험 재정을 살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처음 들으면 건보공단이 두 회사의 주식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크게 올랐으니 건보공단의 투자금도 불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른바 ‘삼전닉스 효과’의 실제 내용은 그것과 다르다.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임직원에게 지급할 성과급도 크게 늘어났다. 건강보험료는 기본급뿐 아니라 성과급에도 부과되며 근로자와 회사가 절반씩 부담한다. 두 회사가 대규모 성과급을 지급하면 건강보험공단으로 들어오는 보험료도 함께 증가한다. 기업의 이익이 임직원 성과급을 거쳐 건강보험 재정으로 흘러 들어오는 구조다.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 증가로 2027년 건강보험료 수입이 약 3조8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전체 보험료 수입을 약 4% 늘리는 것과 맞먹는 효과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러한 추가 수입 전망이 내년도 보험료율 동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삼전닉스가 주식 투자로 건보를 살린 것이 아니라 성과급으로 당장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일회성 수입을 실력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삼전닉스 성과급에 따라 예상되는 보험료 수입 증가는 반가운 일이지만 지속 가능한 재정 대책은 아니다. 올해 반도체 경기가 좋아 내년에 성과급이 많이 지급되더라도 이후 실적이 나빠지면 보험료 수입도 곧바로 줄어든다. 반도체 기업의 이익과 성과급은 세계 경기와 메모리 가격, 환율과 통상 환경에 따라 크게 변한다. 건강보험의 미래를 몇몇 기업의 실적에 맡길 수는 없다. 잠시 좋아진 숫자와 지속 가능한 구조를 구분해야 한다.

건보공단이 준비금을 운용해 올린 금융 수익도 마찬가지다. 2024년 약 8300억원의 수익은 건강보험 재정에 큰 도움이 됐지만 금융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수익률은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 국민의 병원비를 책임질 준비금은 높은 수익보다 안정성이 우선돼야 하므로 주식시장이 좋다고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도 없다.

삼전닉스
주가가 왜?

임금과 고용이 안정적으로 늘고 보험료 부과 기반이 넓어지며 불필요한 의료비가 줄어야 건강보험의 체질이 진정으로 개선됐다고 할 수 있다.

2028년 고갈 전망은 거짓이었나= 그렇다고 과거의 건강보험 고갈론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3년 당시 보험료율과 의료비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4년부터 적자가 발생하고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2032년에는 누적 적자액이 61조6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름의 통계와 계산에 근거한 전망이었다.

의료개혁과 비상진료 지원에 필요한 비용까지 반영한 후속 분석에서도 적자 전환과 준비금 소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필수·지역의료 강화와 의료 공백 대응에 건강보험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면 고갈 시점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와 생산연령인구 감소도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전망의 근거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정 전망은 미래에 대한 조건부 계산이지 확정된 결론이 아니다. 보험료율과 임금, 취업자 수, 의료 이용량, 수가와 정부 지원금 가운데 어느 하나만 달라져도 적자 전환과 준비금 소진 시기는 몇 년씩 움직인다. 실제로 정부 지원이 늘고 의료 이용량과 보험료 수입이 예상과 달라지면서 2024년 적자 전망도 현실화하지 않았다.

전망이 거짓이었다기보다 전망의 전제가 현실에서 달라진 것이다.

전망이 예언으로 둔갑했다= 문제는 ‘전망’이 정치와 언론을 거치면서 ‘예언’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는 수입과 지출에 관한 여러 가정과 다양한 시나리오가 담겨있었지만 기사 제목에는 ‘2028년 건강보험 고갈’만 남았다. 현재의 조건이 유지될 경우라는 중요한 전제는 뒤로 밀렸다. 가장 비관적인 숫자가 마치 피할 수 없는 미래인 것처럼 국민에게 전달됐다.

‘고갈’이라는 표현도 불필요한 공포를 키웠다. 건강보험은 국민연금처럼 수십년 동안 보험료를 쌓아뒀다가 먼 훗날 지급하는 적립식 제도가 아니다. 그해 걷은 보험료와 정부 지원금으로 그해 발생한 의료비를 지급하는 사회보험에 가깝다. 준비금은 예상하지 못한 감염병이나 경기침체, 의료비 급증에 대비하는 비상용 완충장치다.

비상용
완충장치

따라서 준비금이 소진된다고 해서 다음 날부터 병원비 지급이 중단되고 건강보험 제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험료율과 국고 지원을 조정하고 급여 범위와 지출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런데도 언론은 ‘준비금 소진’을 ‘건강보험 파산’처럼 표현했다.

고갈론은 근거 없는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조건부 전망을 공포의 언어로 키운 측면이 있었다.

더 걷기 전에 새는 돈부터 막아야= 강 이사장은 보험료율 인상보다 소득 중심의 부과 체계 개편을 먼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직장가입자의 월급과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소득과 부담 능력을 더 정확히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소득을 얻고도 가입 형태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는 불공정을 줄일 필요가 있다. 보험료율을 올리기 전에 공평하게 걷는 체계부터 마련해야 한다.

부당 청구와 과잉 진료로 새는 돈을 막는 일도 시급하다. 비의료인이 의사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병원’의 허위·부당 청구와 의료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로 건강보험 재정이 새고 있다면 이를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의학적 필요성과 관계없이 반복되는 CT와 MRI 검사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는 국민에게 더 부담시키기 전에 불필요한 지출부터 찾아내야 한다.

복지부는 약가 제도 개선과 검체·영상 수가 조정, 거짓·부당 청구 관리 강화 등을 통해 연간 수조원의 건강보험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대로 절감할 수 있다면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고도 필요한 보장을 확대할 여지가 생긴다. 다만 절감 목표가 실제로 달성되는지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보험료 인상에는 엄격하면서 지출 절감에는 느슨해서는 안 된다.

지출 효율화가 진료 제한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출을 줄인다는 명분이 환자의 필요한 치료까지 막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병원을 몇 번 이용했는지만 보고 과잉 의료 이용자로 판단하면 고령자와 만성질환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같은 검사를 반복하더라도 환자의 질환과 치료 과정에 따라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 횟수가 아니라 의료적 필요성과 효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저소득층과 고령자가 병원비 부담 때문에 치료와 검사를 미루면 질병이 악화돼 오히려 더 큰 의료비가 들어간다. 당장의 지출을 아끼려다 장기적인 지출을 늘리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줄여야 할 것은 필요한 진료가 아니라 부당 청구와 과잉 공급, 효과가 낮은 의료 행위다. 필요한 곳에는 더 쓰고 불필요한 곳에서는 과감히 줄이는 정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국민 겁주기 위한 언론 플레이?
정확한 수치로 동의부터 구해야

강 이사장이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생애주기 중심으로 연결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병이 생긴 뒤 병원에서 치료하는 데만 돈을 쓰지 말고 건강관리와 조기 검진, 재활과 돌봄까지 연결하자는 것이다. 노쇠와 만성질환을 초기에 관리하면 국민의 삶도 나아지고 장기적인 의료비도 줄일 수 있다. 예방과 돌봄은 복지정책이면서 재정정책이다.

정부도 법정 책임 다해야= 정부는 내년도 건강보험 국고 지원금을 올해보다 1조1000억원 늘어난 13조8000억원으로 편성했다. 국고 지원을 확대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전체 지원율은 보험료 예상 수입의 약 14.4%로 법정 기준인 20%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최근 10년간 정부 지원액이 법정 기준보다 약 19조4000억원 부족했던 만큼 건강보험 재정의 책임을 공단과 가입자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필수·지역의료 강화와 의료개혁은 개별 가입자의 의료 이용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가 추진하는 공공정책이다. 정부가 결정한 정책의 비용을 건강보험 재정에서만 꺼내 쓴다면 국민의 보험료로 정부 사업을 대신하는 셈이 된다.

국가 정책에 필요한 재정은 국회의 예산 심의를 거쳐 국가 재정에서도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을 정부 정책의 쌈짓돈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

2014년 건보공단이 담배회사 3곳을 상대로 제기한 53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도 같은 원칙에서 바라볼 수 있다. 흡연으로 발생한 질병의 치료비를 가입자 전체의 보험료로만 부담하는 것이 타당한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국민 건강을 해쳐 이익을 얻은 기업에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건강보험 재원을 넓히는 방식도 보험료 인상 하나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

공포가 아니라 신뢰로 지켜야= 건강보험 재정은 지금 당장 무너질 만큼 나쁘지도 않고 앞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좋지도 않다. 약 30조원의 준비금과 자금 운용 수익이 당장의 재정을 받치고 있고, 내년에는 삼전닉스 성과급에 따른 보험료 수입 증가도 예상된다. 그러나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라는 파도는 이미 밀려오고 있다. 지금의 흑자에 안주하는 것도, 고갈 날짜만 앞세워 국민을 겁주는 것도 옳지 않다.

국민은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말 자체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부당 청구와 과잉 진료를 그대로 두고 정부가 내야 할 돈도 제대로 내지 않은 채 보험료부터 올리려는 순서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새는 돈을 막고 부담 능력에 맞게 걷고 국가가 책임질 몫을 낸 뒤에도 부족하다면 정확한 수치로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건강보험 개혁의 올바른 순서다.

정부 정책
쌈짓돈처럼

몇 년 전 나온 건강보험 고갈론은 완전한 거짓말도, 피할 수 없는 예언도 아니었다. 구조적 위험을 알리는 경고였지만 정치와 언론을 거치면서 보험료 인상을 재촉하는 공포의 언어로 부풀려진 측면이 있었다. 삼전닉스 성과급으로 늘어날 보험료 수입 역시 건강보험의 미래를 보장하는 해결책은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공포로 올리는 보험료가 아니라 신뢰로 지키는 건강보험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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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