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방송가 거짓말 경계선

리얼 예능도 짜고 치는 고스톱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전현무가 무작정 떠나는 방식으로 그려진 카자흐스탄 여행. 실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관광청으로부터 지원받은 기획 촬영이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후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모든 예능에 회의감을 드러내는 시청자가 늘었다. 연예인도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데서 위안받고, 그 평범한 일상에 울고 웃으며 공감하던 이들은 방송가가 ‘짜고 친’ 고스톱판에 놀아났다며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 661회분에는 전현무가 계획 없이 비행기에 훌쩍 올라타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여행기가 담겼다. 그가 공항에서 목적지를 즉흥적으로 정하기부터 숙소에서 간신히 체크인하기까지. 준비 없는 실제 상황임이 여실해 보이는 장면으로 꾸려졌다.

무계획 표방
무작위 연출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모처럼 생긴 1박2일 휴일을 맞은 전현무는 배낭 하나만 멘 채 무작정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 일정표가 빼곡한 전광판 앞에 섰던 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라는 이유로 7시간 비행 거리에 있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여행지로 선택했다.

아무런 준비 없는 여행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난제를 헤쳐나가는 우여곡절은 해당 회차 재미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한 가지씩 임무를 해결하고 아름다운 경관에 가닿는 장면도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방송은 29시간 동안 펼쳐진 이 여행을 누구의 개입도 없는 우연의 연속으로 포장했다. 시청자는 늘 그래왔듯 그 우연을 보며 깔깔 웃거나 감동했다.

문제는 방송 직후 벌어졌다. 전현무는 차치하고라도 제작진 항공권이 사전에 예매돼있었을 것이 뻔한 정황과 복잡한 카자흐스탄 렌터카 이용 절차가 매끄럽게 처리됐다는 점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의심을 샀다.

유튜브 채널 ‘엠뚜루마뚜루: MBC 공식 종합 채널’에 올라온 해당 회차 <나혼산> 영상에는 “아, 이게 그 관광청은 본인들이 지원해 준 게 맞다고 하는데 제작진은 아니라는 그 방송임?” “전현무는 연예 대상 말고 연기 대상 받겠네” 등 날 선 댓글 반응이 이어졌다.

<나혼산> 제작진이 화제성을 얻기 위해 사전 기획을 즉흥으로 포장했다면, 이는 ‘관찰 예능’이라는 장르를 저버린 기만행위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지난달 25일 MBC에서 낸 첫 공식 입장은 “이번 카자흐스탄 여행과 관련해 촬영 지원이나 협찬 등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마티시 관광청이 자체 홈페이지에 “한국 제작진과 사전 협의해 촬영을 지원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1차 입장을 낸 지 엿새 만인 지난달 31일, 제작진은 다시 공식 입장을 냈다. “카자흐스탄 방송분은 알마티시 관광청으로부터 금전적 협찬이나 제작비 지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면서도 “현지 촬영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와 현장 진행에 필요한 촬영 협조를 받아 원활하게 진행했다”고 했다. 한 번 더 낸 공식 입장은 오히려 논란을 부추겼다.

지난 4일 <나혼산> 제작진은 세 번째 공식 입장문을 공개했다. “자세한 입장 표명이 늦어진 데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특성상 세부 제작 과정을 시청자분들께 공유하는 것이 자칫 프로그램의 근간인 현실감을 해치고 몰입을 방해할까 염려하다가 빠른 입장 표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즉흥 여행이라더니 제작진 대거 동행
전 부치며 매니저 동원 박나래도 소환

이어 “해당 방송을 위해 제작진은 해외 촬영 가능성에 대비해 항공편과 촬영 여건을 미리 검토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근거리 국가를 중심으로 여러 가능성을 살펴봤으며, 전현무가 평소 관심을 보여온 여행지와 당시 항공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카자흐스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또 “카자흐스탄행이 결정되면 곧바로 촬영에 대응할 수 있도록 스태프 항공권을 미리 발권하고 현지에 촬영 협조도 요청해 뒀다. 전현무가 당일 다른 목적지를 선택하거나 카자흐스탄행 항공권을 구하지 못하면 해당 스태프 항공권은 취소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 역시 여행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담아낼 계획이었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전현무가 당일 카자흐스탄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예측하고 비행기 표를 미리 예매, 현지 촬영 협조까지 요청하는 것이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제작진은 “방송에서 ‘즉흥 여행’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여행과 촬영의 모든 과정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진행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도 했지만, 시청자는 오히려 배신감을 표했다.

사태는 일파만파 번져, 지난 6일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게시글 형식으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번 에피소드 민원을 내고,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에 방송심의 보충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렌터카 대여 시작 시점이 전현무가 탄 비행기가 알마티에 도착하기 전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또 차량을 수령할 수 없는 시기에 이미 대여가 이뤄지고 한참 지났다는 점에서 “해당 장면이 실제 예약 절차를 그대로 보여준 것인지, 아니면 방송상 ‘즉흥 여행’ 맥락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로 연출, 재구성한 장면인지 합리적 의문이 남는다”고 주장했다.

방미심위는 해당 민원을 접수해 검토한 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 위반 여부에 대한 정식 심의 절차에 착수했다.

처음 부정
이후 번복

이번 논란은 <나혼산> 과거 장면 재검증으로까지 번졌다. 지난해 한 연예 유튜브 채널이 박나래 전 매니저 측 주장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나혼산>에서 박나래가 직접 준비한 것처럼 방송된 명절 음식 일부에 매니저들의 상당한 도움이 있었다는 것.

당시에는 단발성 사건 정도로 넘어갔지만, 이번 전현무 사태를 계기로 <나혼산> 진실성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재조명됐다.

전문가들은 사전 여행 기획 여부보다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보며 우연히 발생한 상황이라고 믿도록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설계했는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즉흥성을 표방하는 콘텐츠에서 즉흥성 자체가 허구였다면, 이는 단순한 연출 문제를 넘어 기만으로 이어진다.

촬영 순서를 조정하고 상황을 유도하고 편집으로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은 관찰 예능, 혹은 리얼리티 예능에서 활용해 오던 오랜 문법이다. 이 문법을 벗어나 연출을 실제 상황인 것처럼 조작했다면 법 위반을 검토해야 할 정도에 이르게 된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는 방송이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뤄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해 시청자를 혼동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특정 장르에만 적용되는 규정이 아니므로 리얼리티 프로그램 역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위반 시 방송법 제100조에 따라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 방송 관계자에 대한 징계, 주의·경고 등의 제재를 조치할 수 있으며, 위반 정도에 따라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리얼’과 ‘관찰’을 앞세운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유사한 사건은 장르를 바꿔가며 꾸준히 반복됐다. 2013년 SBS <정글의 법칙> 뉴질랜드 편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오지에서 출연진이 극한 생존 체험을 하는 것처럼 방송됐다.

이후 촬영 장소가 일반인도 방문하는 관광 코스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진정성 논란이 커졌다. 이에 방미심위 산하 연예오락특별위원회는 실제 여행 상품으로 이용되는 곳을 오지인 것처럼 연출해 시청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었다고 보고, 법정 제재인 ‘주의’ 의견을 냈다.

방송은 무죄
기만은 유죄

2019년 방영한 TV조선 <아내의 맛> 함소원·진화 부부 편에서는 중국 시부모의 별장으로 소개된 장소가 실제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로 보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작진은 일부 에피소드에 ‘과장된 연출’이 있었다고 인정했고, 결국 시즌 종료를 결정했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2021년 경기 득점 순서와 방송에서 제시된 스코어 자막·편집 순서가 달랐다는 점이 SBS 자체 조사에서 확인되면서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책임 PD와 CP가 교체되고 결방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4년이 지난 지난해 시즌 역시 편파 판정과 편집 조작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제작진은 어째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까? 개별 프로그램이 행하는 가벼운 일탈로 보기엔 사례가 여럿이고 패턴이 뚜렷하다. 관찰·리얼리티 예능은 제작비 대비 화제성이 높다. 대본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진짜 리액션은 각본 있는 드라마와는 다른 몰입감을 준다.

그러나 100% 우연에만 의존하면 제작 리스크가 커질 우려가 있다.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올 수도 있고, 방송 분량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제작진은 이 장르에서 최소한의 설계와 최대한의 실제 상황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조작 논란으로 번진다.

관찰 예능은 협찬·PPL과 구조적으로 얽혀 있다. 여행 예능이라면 항공사·호텔·현지 관광청에서 협조받고, 육아 예능이라면 유아용품 브랜드의 협찬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상업적 지원이 순수한 일상이라는 프레이밍과 충돌한다.

협찬은 불법이 아니지만, 협찬받았다는 사실을 감춘 채 프로그램 출연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양 포장하는 행위는 광고를 다큐멘터리로 위장하는 셈이 된다.

시청률과 화제성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찾으려는 압박이 커진다. 온라인 클립·쇼츠 조회 수가 본방송 시청률만큼 중요해진 요즘,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제작진에게 있어서는 프로그램에 의도를 넣어 설계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기 마련이다.

각국 방송 규제 기관은 비교적 명확한 원칙을 두고 있다. 영국 방송·통신을 규제하는 Ofcom은 사실 프로그램이나 사실 사안을 다룬 내용이 시청자를 ‘중대하게(materially)’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맥락 속에서 시청자가 얼마나 오인하게 했는지다. Ofcom은 프로그램 편집 방식, 시청자에게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연출 없는 프로그램 제작 불가하지만…
시청자 오도하지 않게 할 규정 필요

BBC 편집 가이드라인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만들어낸 것을 사실로 제시하거나, 시청자를 의도적으로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두 기준 모두 중요한 사실에 대한 오인 유발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 방송윤리·프로그램 향상기구(BPO)는 ‘야라세(사전 각본)’라는 별도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BPO는 “시청자와 무엇을 어디까지 약속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사전에 어느 정도 연출이 예상되는 프로그램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여지는지에 따라 시청자의 기대와 판단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규제 기관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연출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어떤 사실성을 약속했는지, 제작진이 연출과 편집에서 기대를 넘어 시청자를 실질적으로 오도했는지가 주요 쟁점이다.

미국에서 일부 리얼리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재연이나 연출된 장면을 별도로 알린다. 제작자가 법적 책임을 피하고자 엔딩 크레디트나 시작 화면에 “본 프로그램은 연출된 상황이나 편집이 포함돼있습니다”는 고지 문구를 넣는 방식이다. 의무 관행이나 법적 면책 장치로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제작진이 실제 상황과 재연·연출 사이 경계를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면에서 참고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방통위 방송심의 체계와 재연·연출에 관한 규정을 갖추고 있다. 다만 ‘관찰형 예능 제작 시 사전 연출 사실을 시청자에게 어디까지 알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방송 관계자 지적이다. 사후 제재는 가능하지만, 시청자의 오인을 사전에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도 맹점이다.

이번 <나혼산> 사태에서 시청자들이 분노한 지점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리얼리티 예능은 시청자에게 ‘함께 지켜본다’는 감각을 판다. 출연자와 같은 시점에서 상황을 경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함께 놀라는 것이 이 장르의 핵심 재미다. 그런데 그 놀라움이 처음부터 각본에 있던 것이었다면, 시청자는 ‘속아서 웃었다’는 데 모욕감을 느낀다.

해법은 무엇일까. 완전한 무편집·무연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시청자들이 이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해외 사례처럼 연출·편집·협찬 포함 여부를 사전에 알리는 장치를 최소한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협찬 혹은 상황 설계 여부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로부터 얻은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몰라서 발생하는 사후 배신감을 예방하는 장치다. 장르별·리얼리티 수준별로 세분화한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광고를
다큐로

전현무는 오는 20일 MBN 신규 예능 <디스이즈 현무로드>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기준은 있다’를 표방한다지만, 진정성 논란은 가시지 않을 듯하다. 리얼리티 예능이 팔고자 하는 ‘진정성’이라는 상품과 실제 제작 방식 사이 차이가 클수록, 그리고 그 틈을 감추려는 시도가 있을수록 신뢰는 무너진다. 시청자는 완벽한 진실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싶어한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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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