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문가들은 기후 문제가 ‘티핑 포인트’를 향해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티핑 포인트는 작은 변화가 쌓이다 어느 한순간 균형이 깨지는 순간을 뜻한다. 폭발적인 반응과 거대한 변화가 뒤따른다. 기후 문제에 대한 인류의 노력은 지구 온도가 그 지점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한 사투에 가까워졌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와 지구의 온도는 비례한다. CO₂ 농도가 늘면 온실효과가 커져 더 따뜻해지는 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구의 기후는 1만년 전부터 안정화됐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급변했던 기후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바뀌면서 인류는 정착하게 됐고 동시에 사회 발전이 시작됐다.
중요성 알지만
산업혁명은 역사의 변곡점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인류의 삶은 팽창했다. 하지만 기후 시스템으로 봤을 때는 위기의 시작점이었다. 1만년 동안 안정기를 유지했던 기후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이제 인류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추세다.
위기감을 느낀 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5년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를 통해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훨씬 아래로 유지하고, 1.5℃ 이내로 제한하도록 노력한다’는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전 세계 국가가 기후 문제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기후 위기가 인류의 삶에 얼마만큼 파고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됐다.
우리나라도 동참했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감축’과 ‘적응’ 두 축으로 구성된다.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흡수해 배출량을 줄여 궁극적으로 ‘탄소 중립’에 이르도록 하는 게 감축, 단순 순응(살아가는 것)을 넘어 현재 나타나거나 미래에 예상되는 기후 변화의 파급효과와 위험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일련의 조치가 적응이다. 인류의 목표는 지구 온도를 낮춰야 한다는 데 집중돼 있기에 정부 정책은 적응보다는 감축에 쏠려 있다.
지난 2일 한국환경연구원 별관에서 만난 신지영 한국환경연구원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센터장은 “그동안 기후 정책의 초점이 감축에 집중돼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극한기상이 일상화된 지금은 감축과 적응이 양 날개로 함께 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며 적응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단 온실가스가 나오는 게 줄어야 피해가 감소하기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감축해야 하는 건 맞다”며 “감축과 적응이 상호 보완적인 축으로서 각각의 정책적 역할을 구체화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적응은 기후가 변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영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어떻게 미리 준비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농업 부문에서는 변화하는 기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농작물을 개발하는 식이다. 해양 수산 부문에서도 기후 변화로 명태 포획량이 줄었다면 대체 어종으로 뭘 발굴할지를 고민한다. 극한 호우가 잦아져 홍수가 빈번하게 일어날 것을 예상해 하천 정비를 설계하는 것도 적응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
“갈수록 체감 격차 커질 것”
기후 위기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적응 대책을 세우는 것도 센터의 업무 중 하나다. 신 센터장은 “기후 변화에 대한 체감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온열질환에 노출되기 쉬운 야외 근로자나 취약 주거지역 등 기후 리스크의 강도와 회복력은 계층과 환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기후 불평등과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적응의 핵심 역할”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는 기후 위기가 초래한 ‘체감 격차’를 좁히는 일을 하는 셈이다.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는 2009년 7월 개소했다. 기후 위기 적응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 여부 등을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234개 지자체, 62개 공공기관 등이 적응 대책을 수립할 때 지원하며 교육, 홍보, 국제협력, 네트워크 등도 담당한다. 신 센터장은 “감축 대책이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게 하거나 흡수하도록 하는 등 ‘줄이자’는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면 적응은 사회 전반을 아우른다”고 정리했다.
문제는 기후 변화에 대한 체감도와 민감도가 높아지는 것에 비해 실행 정도는 낮다는 데 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제돼야 하는 사회적 비용 투입, 개인의 희생 등을 강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기후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내용으로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을 가리킨다. 공유지의 비극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다가 결국 모두가 피해 보는 현상을 뜻한다.
신 센터장은 “매년 KEI에서 국민 환경 인식 조사를 하는데, 환경 문제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묻는 질문이 있다. 2020~2021년 코로나19 시기에는 쓰레기 문제가 1위였는데 2023년부터는 기후 변화를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하는 환경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기후 문제가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이어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경각심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또 누군가 이걸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나의 일’이기에 ‘내가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진단했다.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되는 자금은 사실상 미래를 위한 비용이나 마찬가지라서 현세대의 생각과 충돌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피해를 보는 게 없는데 비용을 들인다고 생각하며 직접적인 이득은 볼 수 없는 구조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한 사람들에겐 이른바 ‘생돈’이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신 센터장은 “기후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사람들 간의 체감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정부도 센터도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각지대도 많을 수 있다. 사실 적응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스스로, 그리고 각자의 영향에서 예상되는 변화에 준비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 위기 자체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쉽지 않다”며 “국책연구기관으로서 과학적 데이터와 정량적 분석에 기반해 엄밀하게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현장의 변화 속도는 기존 과학계의 예측 범위를 훨씬 앞서가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지구의 온도가 오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에 따르면 1.5℃ 도달 예상 시점은 20~30년 뒤가 아니라 ‘2021~2040년(중간값 2030년대 초반)’으로, 이미 5~10년 안팎으로 임박한 상태”라고 전했다.
실행력 약해
그럼에도 신 센터장은 거듭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확실성이 높고 기후 위기가 급박하다고 해서 대응을 늦출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고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와 사회 전반이 선제적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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