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방위 시절 탈영을 고발한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
그는 만약 자신의 발언이 사실이 아닐 경우 “법적 처벌은 물론, 군 생활 중 받은 유공 훈장까지 모두 반납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도대체 그는 누구이길래, 현직 장관을 상대로 이토록 자신감을 보이는 걸까요?
2006년 2월, 계룡대의 어느 부대에 한 해군 소령이 부임합니다. 이름은 김영수.
평범하게 임무를 시작한 그가 한 달도 안 돼 마주한 건 상상 이상의 비리 장부였어요.
TV, 냉장고, 책상 같은 물품들이 시중가보다 40% 넘게 비싸게 납품되고 있었던 겁니다.
그가 더 꼼꼼해서도 아니었어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어설픈 비리 장부였던 거죠.
“이건 바로잡아야겠다” 싶었던 김 소령, 상부에 보고합니다.
그런데 돌아온 건 칭찬이 아니라 불호령이었어요.
보고서를 지우고 오히려 단가를 더 올리라는 지시까지 내려옵니다.
여기서 물러설 김 소령이 아니었습니다.
병사 두 명과 함께 직접 시장을 돌며 가격을 조사하고, 9억4000만원대 배임 정황과 위조 견적서까지 잡아냅니다.
하지만 상부에 보고할수록 돌아오는 건 침묵과 보복.
결국 그는 근무평점 최하위 점수를 받고 다른 부대로 쫓겨나듯 전출됩니다.
좌천, 새로운 결심
전출된 첫날, 그를 기다린 건 책상조차 없는 사무실이었어요.
조직은 그를 부적응자로 낙인 찍었고, 매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퇴근 후엔 소주로 하루를 버텼습니다.
난생 처음 극단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그는 회상합니다.
반년을 그렇게 무너져 있던 그를 살린 건 2007년 해군대학 조교 발령이었어요.
좌천이었지만, 혼자 쓰는 사무실이 생기면서 아무도 모르게 비리 조사를 이어갈 기회의 공간이 된 겁니다.
2년간 헌법과 민법, 군인사법 등 580여개에 이르는 방사청 규정을 파고들며 다시 증거를 모은 그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장을 넣습니다.
반복되는 무혐의
이번엔 반응이 왔습니다.
국방부가 정식 수사에 착수한 거죠.
9억4000만원 국고 손실과 유착 관계가 추가로 밝혀지며 16명 처벌 지시까지 떨어집니다.
‘이제 끝났구나’ 싶었던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해군 수사단장이 하필 정옥근 당시 해군참모총장의 친동생이었던 겁니다.
결과는 뻔했죠.
무혐의. 그는 순식간에 진급을 위해 상사를 음해하는 사람으로 몰립니다.
재수사, 또 좌절
답이 없어 보이던 2008년 12월, 기무사령관이 우연히 이 이야기를 듣고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보고합니다.
재수사가 결정되고, 이번엔 김영수 본인에게 계좌추적 권한까지 주어집니다.
병사 한 명과 다시 팀을 꾸린 그는 밤마다 컵라면으로 버티며 조사한 끝에 30명 넘는 연루자를 찾아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핵심 용의자 두 명이 '자살미수'로 정신병원에 실려가면서 수사가 막히고, 사건을 진두지휘하던 군 검찰 소속 부장검사마저 갑자기 직위 해제됩니다.
반년을 매달렸지만 결국 수사는 다시 멈춥니다.
언론에 알리다
모든 걸 걸고 그는 2008년부터 <PD수첩>과 접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09년 10월, 방송이 나갑니다. 그제서야 수사가 재개돼 7명이 구속되고 15명이 입건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정옥근 전 참모총장은 2012년 공금 횡령으로 처음엔 징역 2년을 받았지만, 이후 추가 비리까지 드러나 결국 징역 10년을 선고받습니다.
김 소령이 몇 년 전부터 주장했던 것이 결국 사실로 밝혀진 거죠.
계근대 내부고발에 대한 치하로 보국훈장도 이때 받게 됩니다.
군복을 벗어도 여전히 투쟁중.
그러나 2011년, 김 소령은 결국 군복을 벗습니다.
그리고 향한 곳은 계근단 수사에 성실히 임해준 국민권익위원회.
김 소령이 들어오면서 원래 없던 국방 분야가 신설됐습니다.
4년 6개월간 국방 조사관으로 일하며 700건 넘는 민원을 해결하는데요,
여기서도 또 비리가 보였어요.
이번엔 대놓고 뇌물을 주는 게 아니라, 공개입찰인 척하면서 몰래 정보를 흘려주는 방식으로 진화해 있었습니다.
다시 보고했지만 세 번 연속 묵살당했고, 결국 그는 이곳도 그만둡니다.
그리고 2016년, '국방권익연구소'를 세웁니다.
"정의를 행함으로써 오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
사관학교 시절 배운 이 말을 되새기며 그는 말합니다.
“내 투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김 소령의 10년, 그는 단 한 번도 승산이 있는 싸움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매번 묵살당하고 좌천당하면서도 멈추지 않았어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정치를 떠나서, 결국 우리는 이런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편한 길을 알면서도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
김 소령의 10년이 그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획&구성&편집 : 김미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