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제주 실종 102일 만에 야자수 농장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장미란씨의 사망 원인을 두고 경찰의 수사 발표가 번복을 거듭하고 있다.
시신 발견 당일부터 ‘타살 혐의점이 없다’며 자살에 무게를 실었던 경찰이 정밀 부검 결과 ‘사인 불명’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이자 성급한 결론으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석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31일 기자 간담회에서 장씨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시신 부패가 심해 사인이 불명하다는 결론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이 진실인지 밝히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계속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시신 발견 직후부터 경찰이 보였던 태도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초 경찰은 지난 24일 시신 발견 당시 “시신의 자세와 위치 등을 볼 때 타살 가능성은 낮다”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같은 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주청장 보고로는 목을 매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며 구체적인 사인까지 거론해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장씨가 주거지에서 가져간 끈이 발견됐고, 야자수 나무 윗부분이 사람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목맴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 27일에는 현장에서 직접 나무줄기를 당겨보는 재연 실험까지 강행하며 “자살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을 잘 아는 현지 주민들과 유가족은 강한 의문을 제기해 왔다. 장씨가 발견된 농장은 평소 고인이 무서워했던 인적이 드문 곳인 데다, 야자수 특성상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많고 휘어지기 쉬워 목을 매는 행위 자체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의혹이 계속되자, 경찰은 “재연 실험 결과는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해 다소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라며 또다시 말을 바꿨다.
경찰의 이 같은 ‘갈지자’ 수사 행보는 최초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암장)했던 과오를 덮기 위해,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낳고 있다. 경찰이 ‘자살’이라는 섣부른 예단을 내린 배경에 초기 부실 수사를 덮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경찰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최종 사인이 자살로 결론 날 경우, 초기 대응 실패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에 직면하게 된다. 반대로 타살 정황이라도 드러난다면, 경찰의 무능이 한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거센 책임론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현재 경찰은 장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정확한 행적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사 결과를 번복하며 수차례 신뢰를 잃은 만큼, 명확한 물증 없이는 어떤 결론을 내놓아도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근거 없이 추정치만으로 여론을 호도하려다 스스로 수사 신뢰도를 깎아내린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제주경찰청은 실종 신고를 허위 종결한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인 부 경장을 내달 1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부 경장이 처리한 실종사건 298건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도 같은 날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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