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미애는 귤 한 조각으로 입을 축인 후 계속 읽어 나갔다.
“꿈이 현실로 변하면 마음속을 덮고 있던 환상의 베일이 벗겨지는 것일까?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자 처음 본 다른 세상 앞에서 신기함도 있었지만 오히려 두려움이 앞섰어. 내가 한국에서 마음속으로 지녔던 미국에 대한 친밀감은 허무하고 공허해지고 말았지. 차라리 이 순간부터 즉시 빨리 그런 헛된 공상을 버리고 현실을 바로 보는 게 아주 필요하다고 판단했어. 그래야만 나중에 제대로 된 친밀감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공항을 빠져나갔단다. 너무도 넓은 땅. 내가 얼마나 작고 고지식한 미물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시가지를 지나 택시를 타고 존의 집으로 가는 동안,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그럭저럭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 어쨌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하니까. 존이 동두천에서 속삭인 말은 대부분 허풍선이란 게 차츰 시일이 흐르면서 드러났지만 백프로 뻥은 아니기에 내가 잘해 실현시켜 보려고 해. 나름 정은 많아서 매일 껴안아 주며, 어서 빨리 나를 닮은 아기를 낳아 달라고 조르고 있어. 호호. 시부모도 인간미 있는 분들이라 어떤 편견 없이 아주 잘해 주셔. 한국 노친네들도 조선족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시집온 며느리들을 따스하게 대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 아 참, 출국할 때 적어 온 은희 전화번호로 연락해 보았는데 전혀 불통이었어. 아무래도 무슨 사단이 있지 않나 싶어 걱정인데 어찌 해 볼 방도가 없어서 막 겁이 나곤 해.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속담에 배신당한 적이 너무 많으니 말야. 어디서든 별일 없이 살고 있으면 좋을 텐데. 이런 얘길 하면 괜히 우울해지니깐 그만 할래. 난 여기서 열심히 살 거야. 이곳 아메리카 어딘가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고 새끼를 낳아 퍼뜨릴 테야. 그러면 어느 훗날 제삿술 한잔 받아 먹을 수도 있으려나 호호, 사람 맘은 참 간사한가 봐. 떠나오고 보니 더 그리운 고향, 그곳에선 늘 쌍을 찡그리며 무시했던 고추장과 된장과 김치찌개가 얼마나 먹고 싶은지 그리고 밤마다 꿈에 이따금 나타나는 기억이 있어. 고향의 낡은 초가집 우물가에서 검둥개가 새끼를 낳는 장면인데 그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도 했거든. 그래도 꿈과 사실이 막 헛갈려. 우물 옆에 선 오래 묵은 무화과 나무엔 새악시가 구박을 못 견뎌 목매 죽었다는 얘기가 떠돌았지. 검둥개는 바로 그 나무 밑에서 말없이 헐떡거리며 새끼를 낳고 있었어. 초여름 오후라 학교에서 돌아오니 모두 논밭에 나갔는지 집은 텅 비어 괴괴했지. 어린 계집애였던 난 처음엔 너무 놀라 울음을 터트렸어. 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통스런 신음소리와 허연 침과 꼬리 밑의 핏물. 난 개가 죽는 줄 알고 캄캄한 천둥번개 같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떨었어. 하지만 얼마 후 검둥이가 무녀리 첫 새끼를 낳고 이어서 두 마리 세 마리, 다섯 마리까지 꼬물이 강아지를 낳는 동안 난 경이스런 맘으로 응원하며 지켜보았어. 마치 내가 낳듯이 검둥이는 기진맥진한 모습인데도 새끼들의 몸을 깨끗이 핥아 주더구나. 그러자 검정과 하양이 여러 가지 무늬로 섞인 강아지들이 귀엽게 낑낑거리며 어미 젖을 빨기 시작했지. 그제야 검둥이는 안락하면서도 연민 어린 눈으로 제 새끼들과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더군. 내가 가져다 준 국밥은 본체만체한 채 그 모습을 보며 난 개에게도 내가 모르는 영혼이 흐른다는 걸 느꼈어. 언젠가 아기를 낳으면 피부 색깔이나 생김새가 어떻든 내 몸처럼 사랑해 줄 거야. 한번 속담을 흉내내 얘기해 볼까 봐. 생명은 영원하고 편견은 변한다. 호호, 정말 그럴까 몰라. 어쨌든 우린 그런 희망을 갖고 살자꾸나, 아 너무 그리워. 너도 이곳에 와서 함께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구 경아, 희영, 안나도 보고 싶다고 전해줘.”
희비 쌍곡선
미애는 낭독을 마치자 편지지를 곱게 접어 국제우편 봉투 속에 집어넣었다. 아마 그건 한두 번 되풀이된 건 아닐 터였다.
머나먼 꿈의 나라인 미국에서 또 다른 어떤 여자로부터 새 편지가 올 때까지 그건 무슨 신약성서처럼 계속 낭독될 터였다.
어떤 여자는 자기 삶의 목소리를 테이프에 녹음해서 보내오기도 했다. 블루문 클럽에 있을 때 청운은 맑고도 어딘지 애조 띤 여성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기지촌 여인들은 꿈을 이룬 이전 동료의 얘기를 들으며 흐뭇한 감동에 젖기도 하고 선망과 질투를 은근슬쩍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구 참, 듣기야 좋지만서두 이게 다 사실인지 쫌 의심스럽기도 하네.”
“엥, 그게 뭔 소리여?”
“왠지 침소봉대한 성싶은 구석이 보인단 말이지.”
“침소봉대는 웬 미국놈 빠는 소린겨? 겨우 간만에 미국 땅 가서 친정에 소식을 보내려다가 보면 좀 치장을 하는 게 정상이지, 뭘 미주알 고주알 따져? 일부러 불행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을 필욘 없잖아.”
공개적인 매춘 하지 않아
미군과 술 마시고 2차까지
늙은 몸 팔아 겨우 연명
“그래도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희비 쌍곡선이 교차해야지만 재미가 있지 맨날 햇빛만 내리쬐면 눈부셔서 얼마나 볼까 싶어.”
“이게 영화야? 드라마야? 실제 현실이잖아. 비극이나 불행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해.”
“그래, 그냥 한번 해본 소리일 뿐야.”
“알어, 니 맘 아니까 됐어. 니 맘이나 내 맘이나 우리들 맘이 뭐 그리 차이가 있겠니.”
“호호, 동감이야.”
몽키하우스에서는 모든 양공주들이 동등했다. 적어도 미군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성병균 보균자로서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기지촌 클럽 안팎을 놓고 보면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의 차이가 있었다. 이른바 상류층은 공개적인 매춘을 하지 않고 미군과 계약 결혼 또는 동거를 해 살아가는 여자들이었다.
계급 높은 장교들과 사는 양색시들은 동두천 바닥에서 공작부인으로 행세할 수도 있었다. 여기엔 클럽 댄싱걸도 포함되었다.
그녀들은 대체로 호스티스와는 다른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설령 미군과 성매매를 하더라도 스스로 상대를 골랐다.
중류층은 클럽에서 호스티스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양색시들로, 미군과 함께 술을 마셔 매상을 올려 주고 이어 몸까지 제공하는 위안부였는데 그 수가 가장 많았다.
마지막으로 하류층은 인생의 막바지에 늙은 몸을 팔아 겨우 연명해 나가는 퇴기와 비슷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론 미군을 유혹하기 어려워 썩 진한 화장을 하곤 싸구려 화대로 양키 녀석들을 꼬셨다.
대개 주색과 마약에 중독돼 가난하거나 취향이 괴상한 놈들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그녀들을 먹여 살렸다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쥐꼬리 같은 화대로 늙은 몸과 영혼을 괴롭혔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퇴기들은 인간의 악마성을 마구 표출하기도 하는 일부 미군들의 무자비한 폭력 범죄 앞에 무방비로 방치돼 있었다.
반평생을 몸 바쳐 외국군에 시달려 온 늙은 패랭이꽃들은 청춘을 잃어버린 채 밤거리를 방황하며 펨프(매춘 중개인)나 히빠리(최하급 위안부) 노릇을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얼어 죽거나 미군 범죄의 희생자가 되어 한 많은 생을 끝내곤 했다.
상류층에서 하류층에 이르는 위안부 여자들이 맞대 놓고 계층 의식을 드러내는 건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가는 모두의 눈총을 받고 따돌림을 당했다. 그렇긴 해도 은연중에 어떤 감정이나 기색이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일까? 하지만 몽키하우스에 감금된 여자들은 어쨌든 모두가 비슷해 보였다.
신세 타령
수용소에서는 성병 검사실에 가서 규칙적으로 체크를 하고 주사를 맞았다. 한낮의 자유시간에 여자들은 뜨개질을 하거나 주간지를 읽거나 끼리끼리 모여 앉아 한 맺힌 신세 타령이나 미군 체험담을 늘어놓곤 했다.
‘저 여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그 어떤 누군가가 당장 밝혀내긴 어려울 거야. 아마 본인들 스스로도 언젠가 미군이 이 땅을 떠나거나, 한미 관계가 평등해져서 한국인들 모두가 또렷이 현실을 알게 될 때까지는….’
청운은 여숙소의 방문을 닫은 후 어둑한 복도를 걸어 내려오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