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가득 데이트 로드 ①백운사·백운호수·의왕철도박물관

고요함과 색다름 사이

백운산 자락의 고요한 산사에서 하루를 시작해 잔잔한 호숫가를 걷고, 오래된 열차가 간직한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백운사의 여유와 백운호수의 낭만, 철도박물관의 이색적인 볼거리가 어우러진 의왕은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하루 데이트 여행지이다.

백운사는 조선 시대부터 백운산 자락을 지켜온 사찰이다. 백운산의 비탈을 따라 석축과 전각이 층층이 자리하고 있어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깊은 산중에 들어온 듯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오색 연등과 푸른 기와를 차곡차곡 쌓은 낮은 담장, 작은 불상과 동자승 장식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숲과 어우러진 산사

석축 위에는 백운사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이 단정하게 들어서 있다. 푸른 숲을 배경으로 펼쳐진 팔작지붕의 곡선과 선명한 단청이 조화를 이루며, 처마 아래로 겹겹이 이어진 서까래에서는 전통 목조건축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경내에는 다층 석탑을 비롯해 바위에 새긴 관음보살상과 석조 관음보살 입상도 자리한다. 자비로운 표정의 보살상 앞에는 향로와 복전함이 정갈하게 놓여 있어 지금도 기도와 공양이 이어지는 사찰의 일상을 보여 준다. ‘소원을 이루는 곳’이라 적힌 공양함에서는 하얀 촛불이 잔잔하게 타오르고, 소원지를 매단 오색 연등에는 저마다의 바람이 담겨있다.

시선을 처마 끝으로 옮기면 작은 풍경이 숲을 배경으로 매달려 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울리는 맑은 소리는 산사의 적막을 잠시 흔들었다가 나무 사이로 가만히 번진다. 불교에서 풍경은 바람이 불 때마다 수행자의 마음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나란히 서서 풍경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짧은 순간은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여백이다.

백운사의 고요한 숲길을 내려오면 의왕 하루 데이트의 두 번째 장소인 백운호수와 만난다. 산자락에 아늑하게 자리한 사찰과 달리 백운호수에서는 탁 트인 하늘과 넓은 수면이 시야를 채운다. 잔잔한 물 위로 산 능선과 뭉게구름이 비치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가느다란 물결이 번지는 풍경이다.

백운호수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3년에 준공한 인공 호수이다. 청계산과 백운산, 모락산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해 산과 물이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농업 기반 시설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산책과 수상 레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의왕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백운호수 생태탐방로는 넓은 폭으로 조성되어 있어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며 걷기에 참 좋다. 한쪽으로는 잔잔한 수면이 펼쳐지고, 다른 쪽에서는 울창한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갈대와 수생식물이 자라는 구간을 지나면 호수를 넓게 조망할 수 있는 공간도 나타난다.

탐방로에서 만나는 흰색 아치형 보도교는 백운호수의 경관에 산뜻한 인상을 더한다. 다리 위에 서면 호수를 둘러싼 백운산과 바라산의 능선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수면에 비친 산 그림자와 탐방로를 함께 바라보며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은 지점이다. 탐방로에는 야간 경관 조명도 설치되어 있어 해가 진 뒤에는 낮과 다른 차분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산사에서 철길까지
의왕서 보내는 하루

호숫가 선착장에는 하얀 오리 모양의 페달보트가 정박해 있다. 함께 페달을 밟아 호수 안쪽으로 나아가면 산책로에서 바라볼 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물 위에서 마주 보는 산자락과 호숫가는 한층 가깝고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모터보트와 오리보트도 운영하지만, 기상과 현장 사정에 따라 이용 조건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당일 확인이 필요하다. 백운호수는 걷는 시간과 머무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하루 데이트에 잘 어울리는 장소이다. 한 걸음씩 맞춰 탐방로를 걷다가 물빛을 바라보고, 선착장에서 오리배를 타며 소소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마지막 장소는 한국 철도의 역사를 만나는 의왕철도박물관이다. 소나무가 늘어선 진입로를 지나 본관에 들어서면 오래된 사진과 승차권, 철도 장비와 열차 모형이 시대순으로 이어진다. 실내 1층 역사실은 1899년 인천과 노량진을 이은 경인선 개통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 철도 사진과 승차권, 열차 모형, 노선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철도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도시의 성장과 일상의 변화를 이끈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경의선 철도 연결 착공식 당시 남긴 서명 침목과 ‘서울↔판문’ 행선판은 분단으로 끊긴 철길과 남북 철도 연결을 향한 염원을 보여 주는 유물이다.

철도 운행을 뒷받침한 작은 유물도 눈여겨볼 만하다. 승무원이 정확한 운행 시각을 확인하려고 휴대했던 회중시계는 철도에서 시간이 곧 안전과 약속의 기준이었음을 전한다. 통표폐색기와 신호기, 건널목 차단기 앞에서는 한 구간에 두 열차가 동시에 진입하지 않도록 막았던 운행 체계를 살펴볼 수 있다.

교통카드가 보편화되기 전에 사용한 승차권 자동 발매기와 시대별 철도 제복도 반가운 볼거리다. 금액이 표시된 버튼과 동전 투입구가 남은 발매기는 종이 승차권을 손에 쥐고 개찰구를 지나던 시절의 기억을 불러낸다. 제복과 정모, 승무원 시계를 함께 살펴보면 철도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한 사람들의 역할과 일상도 한층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실내 관람을 마치고 야외 전시장으로 나가면 시대를 달리한 철도 차량이 실제 선로 위에 줄지어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차량은 검은 차체와 커다란 동륜을 갖춘 파시5-23호 증기기관차이다. 1942년 일본에서 제작한 부품을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특급 여객용 기관차로, 주요 간선에서 운행하다 디젤기관차가 보급되면서 운행을 마쳤다. 현재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파시형 증기기관차로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올라 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바퀴와 복잡하게 이어진 연결봉에서 증기기관차의 육중한 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야외 선로를 따라 대통령 전용 객차와 주한유엔군사령관 전용 객차, 우등형 동차, 옛 수도권 전동열차가 이어진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대통령 전용 객차는 국가 원수의 이동과 집무를 위해 마련한 열차의 구조와 당시 철도 기술을 보여 준다. 차량마다 차체의 색과 창문 형태, 바퀴 구조가 달라 두 사람이 각자 마음에 드는 열차를 찾아 비교하며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철길서 만난 시간

거대한 차체와 바퀴를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기차에 익숙한 어른에게도 색다른 설렘을 안겨 준다. 백운산의 산사에서 시작해 백운호수의 물길을 따라온 하루가 철길 위에서 과거의 시간과 만나는 순간이다. 오래된 객차 앞에 나란히 서서 다음 여행에서 함께 타고 싶은 열차와 가고 싶은 도시를 이야기하다 보면 의왕 데이트의 마지막은 새로운 여정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여행 정보>

-백운사(의왕) 주소: 경기도 의왕시 왕곡로 323, 문의: 031-452-8594
-백운호수 주소: 경기도 의왕시 백운로 526, 문의: 031-345-3533
-의왕철도박물관 주소: 경기도 의왕시 철도박물관로 142,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09:00~17:30(입장 마감 17:00), 동절기(11~2월) 09:00~17:00(입장 마감 16:30)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공휴일 다음 날, 1월1일, 설·추석 연휴 휴무, 이용 요금: 일반(만 19~64세) 4000원, 어린이·청소년(만 4세~18세) 2000원​​
※48개월 미만·만 65세 이상·장애인·국가유공자 무료, 문의: 031-461-3610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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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